고속도로 휴게소 울퉁불퉁 경제학
고속도로 휴게소 울퉁불퉁 경제학
#1. “어른이 내려가십니다. 준비해 주세요.”
1998년 봄.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1971년 문을 연 첫 번째 고속도로 휴게소 추풍령휴게소 사무실에 청와대 비서실이라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곧 도착할 테니 늘 먹는 음식을 준비하라는 전화였다. 추풍령휴게소의 한 직원은 “퇴임 후에도 한동안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청와대에서 전화로 알려왔다”고 말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고속도로를 타고 대구에 갈 때마다 항상 추풍령휴게소에 들렀다. 점심 메뉴도 ‘장터국수와 김밥’으로 항상 같았다. 지금은 직원 대기실로 쓰이는 1층 건물의 한 사무실은 귀빈실이었다. 1995년 2층으로 증축하면서 귀빈실의 긴 탁자와 노란색 비단에 봉황 무늬가 새겨진 의자 8개가 소장 사무실로 올라왔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이 귀빈용 의자에 앉아 장터국수로 점심을 해결했다. 추풍령휴게소는 첫 번째 휴게소라는 상징적 의미가 큰 곳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구인 이모 장군이 휴게소의 운영권을 받았고 지난해 5월까지만 해도 그의 아들이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추풍령휴게소의 매출은 명성과 달리 1996년 188억원에서 2001년 151억원, 지난해에는 104억원으로 급감했다. 적자도 쌓여갔다. 청원~상주 간 도로가 뚫리자 2차로인 경부고속도로의 옥천~영동 구간을 이용하는 차들이 급격히 줄었다. 속수무책이었다. 운영자는 결국 운영권을 도로공사에 반납했다.
지금은 한국도로공사 퇴직 직원들의 모임이 출자한 한도산업이 운영을 맡고 있다. 신형진 추풍령휴게소장은 “대전~당진 간 도로가 개통되고 영동~옥천 간 구간이 3차로로 확대되면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로공사도 “휴게소 뒤편 7만4000평 부지에 콘도, 스파, 쇼핑몰이 복합된 레저시설을 지을 계획”이라며 “아직 인허가가 나지 않아 공사비 규모나 착공 시기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금강·덕평은 이산화탄소 배출 거의 없는 친환경 돋보여#2. 경부고속도로에는 ‘마의 70km 구간’이 있다.
대전에서 김천까지다. 사고가 많이 나 ‘마의 구간’이 된 것은 아니다. 이 짧은 구간에만 옥천·금강·횡간·추풍령·김천 휴게소가 나란히 붙어 있고, 새 도로가 나면서 통행 차량이 크게 줄면서 휴게소들의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김석주 금강휴게소장은 “대전~통영, 중부내륙, 창원~상주 간 도로가 뚫리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며 “2003년 150억원을 들여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150명이던 직원을 110명으로 줄이는 등 노력했지만 지난해에도 7억5000만원 적자를 냈다”고 하소연했다.
2003년 12월 금강휴게소는 제2의 창업을 선언하고 건물을 신축했다.
국내 최초로 지열을 이용한 냉·난방 시설을 갖춘 친환경 건물이었다. 연매출을 200억원으로 잡고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구간에 새 길들이 생기면서 매출이 예상만 못했다. 금강휴게소 매출은 1996년 188억원으로 정점에 달했지만 지난해에는 104억원을 기록해 물가를 감안하면 반 토막이 났다.
대부분의 휴게소는 매출의 90% 가까이가 음식 판매에서 나온다. 하지만 금강휴게소는 편의점 매출이 30%다. 경치가 좋아 고속버스가 많이 들어오고 금강변에 위치한 휴게소를 데이트 장소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늘었기 때문이다. 김석주 휴게소장은 “길 따라 살고 길 따라 쇠퇴하는 게 휴게소 사업”이라며 “지금은 고속도로 휴게소가 고객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금강휴게소는 현재 강변 산책길 한쪽에 700만원을 들여 그네를 설치하고 있다. 나무 벽에 누군가 ‘사랑해’라고 크게 낙서한 것을 보고 연인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로 한 것. 김 소장은 “아무리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봐도 휴게소 고객들은 냉철하게 빠른 길을 따라 간다”고 말했다.
#3. “덕평휴게소는 향후 휴게소의 발전방향을 보여준다.”
친환경 건물로 설계된 경부고속도로의 금강휴게소에 이어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을 받은 영동고속도로의 덕평자연휴게소를 설계한 연미건축의 인의식 대표는 “지금까지 덩그렇게 놓여진 건물에서 급한 일만 해결하고 다시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휴게소가 대다수였다”며 “자연을 생각하고 첨단기술을 갖추되 겉으로는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인 친환경 건축물이 운전자의 피로를 풀어줄 수 있는 대안”이라고 말했다.
금강과 덕평은 이산화탄소 배출이 거의 없다. 냉·난방 시설을 지열로 해결하기 때문이다. 뜨거운 아스팔트 주차장 밑으로 200m를 파내려가 기둥을 박아넣는 작업은 비용도 많이 들고 쉽지도 않다. 인의식 대표는 “설치비는 다소 비싸지만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비용을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업체 리드코프가 운영하고 있는 천안휴게소는 지난해 매출 98억7431만원을 올려 매출 20위를 기록했다. 천안휴게소에는 특별한 시설이 하나 있다. 207m 지하 암반수가 나오는 약수터다. 주말이면 인근 주민들이 와서 물을 받아가기도 한다.
류영수 천안휴게소장은 “1993년께 휴게소를 개장하면서 상수도 연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직접 지하수를 뽑아 사용해 왔다”며 “지금 약수터는 1997년에 207m 지하에서 음용 가능한 지하수를 뽑으면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천안휴게소 인근은 지리적으로 물이 좋은 곳이어서 인근에 음료회사, 맥주회사 공장이 있다. 90년대 말 지하수를 뽑는 데 든 비용은 2000만원이다. 물가 상승을 감안해도 이미 상수도 시설을 끌어오는 비용과 12년간의 수도요금을 충분히 뽑아냈다.
민자 휴게소 덕평 성공 고무적고속도로휴게소는 스쳐가는 곳이다. 목적지로 가는 중간에 필요에 의해 들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휴게소에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타는 운전자는 없다. 하지만 고속도로 휴게소는 해마다 전체 매출 7000억원, 임대료를 포함하면 1조4000억원 이상의 돈이 오가는 큰 시장이다.
다만 한국도로공사가 민간 소유인 금강휴게소와 덕평휴게소 등 민자 26곳을 제외한 129곳 모두를 소유한 상태에서 입찰을 통해 임대하는 극히 제한된 시장이기 때문에 관심에서 멀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김석주 금강휴게소장은 “왜 휴게소들이 최근 최첨단 건물을 올리고 다양한 메뉴를 개발하는 줄 아느냐”며 “휴게소의 겉모습이 아닌 경영상태에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 든 사례들은 순서대로 휴게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다. 휴게소 개수와 총매출은 끊임없이 증가하지만, 경영난에 빠져 임대권을 자진 반납하는 경우도 생겼다. 경쟁에서 밀리면 퇴출되는 시장논리가 조금이나마 작용한다는 증거다. 그래서 민자로 지어진 덕평자연휴게소가 갖는 의미는 크다.
코오롱그룹이 선봉에 섰다. 공사비 200억원을 들였다. 서울에서 가까운 지리적 이점도 작용했지만, 보기 좋고 의미도 깊은 친환경 건물에는 스포츠용품 아웃렛, 패스트푸드점 등이 입점해 있다. 시장의 수요에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다. 2007년 상행선만 개통됐을 때는 과연 공사비를 다 뽑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컸다지만, 올봄 영동고속도로 하행선과도 연결되면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금강휴게소도 ‘마의 70km 구간’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금강휴게소 자체를 즐기기 위해 국도로나마 이곳을 찾는 인근 지역 주민들이 주말이면 15%에 달한다. 목적지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휴게소 자체가 목적지가 되기 시작한 것.
김석주 금강휴게소장은 “1987년에 입사해 휴게소의 변화를 목격했다”며 “고객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요구하고 휴게소는 그 트렌드를 따라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금강휴게소를 찾은 임현성(28)씨는 “휴게소는 좋은 곳은 굉장히 좋고, 안 좋은 곳은 굉장히 안 좋다”며 “금강휴게소는 강도 볼 수 있고 건물도 좋아서 구미에서 대전으로 통학하면서 자주 찾는 곳”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휴게소에서 밥을 먹지는 않는다”며 “휴게소 음식이 깨끗하다고 하지만 단체급식을 하는 것 같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가장 많은 휴게소를 운영하는 곳은 한도산업으로 17개, 대보유통이 화성휴게소 등 6곳, 대신이 칠곡휴게소 등 4곳, 대주가 죽전 상행선과 칠곡 하행선 휴게소를 운영하고 있다.
상당수는 천안휴게소를 운영하는 대부업체 리드코프처럼 1~2곳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고속도로 휴게소는 땅과 건물을 소유한 금강휴게소를 제외하면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민영과 민자다. 민영 휴게소는 도로공사 소유의 휴게소 운영권을 입찰을 통해 얻는다. 기한은 5년이다. 도로공사 측은 “보증금은 매출 기준으로 각자 다르기 때문에 평균을 낼 수는 없다”며 “다만 매달 매출의 평균 11% 정도를 도로공사에 내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민자는 덕평자연휴게소처럼 도로공사의 땅에 건물을 지어 휴게소를 운영하고 15~20년가량 장기 임대계약을 맺는다. 고속도로휴게소가 민영화(임대)를 거쳐 2001년 이후 잠시 주춤했던 민자 유치를 덕평을 기점으로 다시 시행하게 되면서, 조심스럽게 그 다음 단계를 예측하는 주장들도 나오고 있다.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한국도로공사는 도로를 제공하는 곳이므로 차량 정비라면 몰라도 직접적 관계가 없는 휴게시설을 가지고 있어봤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장기적으로 현재 민자 휴게소 단계 이후에는 도로공사가 소유하고 있는 토지와 휴게 건물을 민간에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기업이 시장 논리에 의해 경쟁을 하게 되면 더 좋은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논리다. 휴게소 간 거리가 멀지 않기 때문에 서비스나 가격 경쟁력에서 뒤떨어지는 곳은 자연히 퇴출될 것이라는 것.
이에 대해 도로공사의 한 직원은 사견임을 전제로 “민간이 휴게소를 운영하게 되면 가격 상승을 멈출 수 없어 극단적으로 흘러갈 것”이라며 “우리가 관리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제어가 쉽지 않은데 민간기업이 운영하게 되면 서비스의 질도 책임질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민자는 사실상 2001년 이후 중단된 상태로 덕평은 예외적인 것”이라고 밝혀 향후 민자 유치를 재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도공, 민자유치 재개하지 않을 듯”
화물트럭 운전사 김영주(60)씨는 “청주에서 대전을 주로 다녀서 휴게소를 거의 안 들른다”며 “추풍령은 차들이 거의 없어 해가 지면 화물트럭 운전사들이 눈을 붙이려고 찾아오는 곳이 됐다”고 말했다.
트로트 테이프 행상을 하는 송범진(62)씨도 “추풍령이 예전과는 달리 오후 9시만 넘어도 사람이 거의 없다”며 “대전에서 오는 사람들은 옥천과 금강에 들렀다 오고, 대구에서 오는 사람들은 김천이나 칠곡을 간다”고 말했다. 업계는 한동안 중단됐다가 덕평으로 다시 시작한 민자 휴게소의 유치가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상·하행에 따로 있는 휴게소를 하나로 묶어 방문객 수를 늘리고 비용을 줄이자는 주장도 나온다. 인의식 연미건축 대표는 추풍령휴게소를 다시 살릴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추풍령은 상·하행이 연결돼 있고,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깊기 때문에 산 정상에 있다는 특징을 살려 리모델링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교수는 “만약 민간이 휴게소를 운영한다면 경치 좋은 고속도로의 한 구간에 콘퍼런스 센터를 만들고 주변에 숙박시설을 지어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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