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 때마다 셀 생산·기종장 도입 정면승부
▎캐논코리아 안산공장에서 한 직원이 복합기를 조립하고 있다.
1987년 초여름 전북 군산의 평야. 캐논과 롯데의 합작사인 롯데캐논(현 캐논코리아 비즈니스 솔루션) 경영진은 제2의 도약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일본 캐논이 2년여의 합작 결과에 만족해 한국에 제2공장을 짓기로 하고 공장 부지를 알아보던 중이었다.
군산이 물망에 올랐고 캐논 본사 경영진이 실사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캐논은 안산공장에 이어 지어질 군산 제2공장을 자신들의 대표적 해외공장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국 경영진의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6·29 선언 이후 노사 간 격돌이 심화되면서 폭력사태가 빈발했기 때문이다.
1986년 롯데캐논이 캐논과 기술도입계약을 체결하는 등 사전 작업을 마친 상태였지만, 일본 캐논 경영진은 가차없이 태국으로 발길을 돌렸다. 태국의 캐논 공장은 이후 국왕이 직접 일본 경영진을 마중 나올 만큼 대규모로 건설됐다. 롯데캐논은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이런 상황에서 자체 개발이라는 새 돌파구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기술력도 부족했던 만큼 하드웨어를 직접 개발한다는 생각은 못했지만, 소프트웨어 중심의 연구소를 설립하기로 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결국 1991년 복사기의 복잡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했다. 두 번째 위기는 1998년에 왔다. 생산본부장인 김영순 상무는 당시를 “회사 상황이 크게 악화되면서 정말 오늘 내일 하는 분위기였다”고 회상한다.
한국 정부가 수입선 다변화 정책을 폐지하면서 일본 캐논이 직접 한국에 복사기 등을 수출할 수 있게 된 것. 캐논 측은 철수를 고려할 정도였고 직원들의 동요도 많았다. 여기에 외환위기까지 닥쳤다.
김천주 사장은 “1997년 한국에서 디지털 복사기를 생산하고 있었는데 생산투자만 해놓은 상황에서 300만원에 팔려던 제품의 원가가 500만원, 600만원이 돼버렸다”며 “팔수록 손해기 때문에 제품이 있어도 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롯데캐논은 일본에서 이미 만든 제품을 한국으로 가져와 팔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셀 생산방식 처음엔 직원들 반대 심해셀 생산방식을 도입하기로 한 것이 바로 이때다. 당시 부장이었던 김영순 상무가 총대를 멨다. 김 상무는 “컨베이어에 익숙해 있던 라인을 철거한다는 말에 크게 반발했다”고 말했다. 현장 직원은 물론이고 고위 간부까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셀 생산이라는 말에 먼저 거부감부터 일으켰다.
지금은 퇴사한 한 직원은 “토요일 휴가를 내고 월요일에 출근해보니 컨베이어 벨트가 사라져 어쩔 줄 몰라 했었다”고 기억한다.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사장은 1998년 소니의 PSP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나서 컨베이어 벨트를 없애고 소규모 직원들이 다양한 공정을 수행토록 하는 ‘셀(Cell)’이라는 개념을 공장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캐논코리아 안산공장은 이듬해인 1999년 1월 셀 생산방식으로 공장을 개조했다. 마땅한 매뉴얼도 없었지만 경영악화를 벗어나려는 고육책이었다. 김천주 사장은 “셀 생산을 도입하자 생산량이 즉시 크게 늘었다”며 “셀은 아코디언처럼 기종에 따라 생산량을 손쉽게 조절할 수 있었다”고 설득했다.
미국 수출용, 러시아 수출용, 내수용 등 각 기종과 수출국가에 따라 라인을 멈춰 다시 돌려야 했던 컨베이어 공장은 셀 생산의 집중력을 따라갈 수 없었다. 현장직원들의 의욕도 한층 높아졌다.
단순히 같은 작업을 30초가량 반복해야 하는 컨베이어 벨트 방식 생산과 달리 숙련자는 한 제품을 혼자서 짧게는 50분, 길게는 5시간을 들여 만들기 때문에 현장직원들은 자신이 생산 주체라는 인식을 하게 됐다. 제품에 대한 이해도도 함께 늘어 불량률도 줄었다. 안산공장은 캐논의 26개 공장 가운데 클레임, 불량률 등이 가장 적은 사업소다.
셀 생산은 생산직원들의 노동의욕을 크게 끌어올리는 데도 한몫을 했다. 컨베이어 생산에서 개인의 능력차를 구별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셀 생산은 개인의 능력차가 그대로 드러난다. 기본적으로는 성과급이 크게 다르고, 바로 옆의 숙련작업자로부터 끊임없이 자극을 받게 된다.
잘 돌아가던 셀 생산라인은 2002년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맞는다. 일본에는 없는 기종장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 기종장(CCO: Cell Company Organization)은 몇 개의 셀을 자신의 책임 하에 관리한다. 하지만 직원들의 반대는 무척 심했다.
기종장 제도 도입 때도 반대 거세공장 실무진 사이에는 조립라인 격인 각 셀이 생산한 제품, 부품 등의 품질을 검사하는 검사부의 힘이 무척 세다. 라인 직원들과 마찰도 빚는다. 한마디로 현장 권력이다. 자재부 등 생산보조 부서들도 어쩔 수 없이 관료화된다. 직원들의 반대는 기종장 제도의 도입으로 이 모든 부서가 한꺼번에 없어지게 되기 때문이었다.
검사 등 주요 기능을 생산자들이 직접 하도록 만든 게 기종장 제도였다. 김영순 상무는 “기종장 도입 때가 직원들의 반발이 가장 컸지만 이로 인해 얻게 되는 장점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며 “무엇보다 한 명 한 명이 생활의 달인이나 다름없는 현장 생산직 사원들이 자신이 만든 제품의 검사도 가장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복사기 30개를 주문 받으면, 조립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돌려 물류창고에 잔뜩 쟁여 놓은 1000대의 복사기에서 주문을 소화해야 했다. 하지만 셀 생산은 주문량이 30개면 30~40개만 만들면 돼 재고가 크게 줄었다. 특히 기종장이 직접 부품 재고를 조절하면서, 부품 재고기간이 40일에서 8일로 크게 줄었다.
셀의 또 다른 장점인 스피드가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 안산공장은 조립이 끝나는 즉시 포장해 컨테이너에 싣는다. 부품과 제품 재고가 줄어들면 현금흐름이 크게 개선된다. 캐논코리아는 차입금이 0%다. 한국형 셀 생산인 기종장 제도가 안정을 찾으면서 캐논코리아는 단순 조립공장에서 개발형 공장으로 변신한다.
제품을 자체적으로 개발하면 그만큼 비용이 줄고 판매량도 늘게 된다. 현재 안산공장은 중국공장보다 생산비가 더 저렴하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이 안산공장을 보고 나서 “한국 제조업의 희망을 봤다”고 말한 데는 이처럼 긴 뒷얘기가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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