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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 신종플루의 경제학

불청객 신종플루의 경제학

지구촌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바로 신종플루다. 이 질병은 사람·동물은 물론 경제까지 마비시킨다. 소비는 벌써 위축됐다. 여행·레저업 등 일부 업종도 타격을 입고 있다. 소비 위축이 장기화하면 기업의 생산활동과 투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글로벌화된 질병 탓에 글로벌 경제가 벌벌 떨게 생긴 셈이다. 신종플루의 경제학을 살펴봤다.

14세기, 죽음의 병이 유럽 전역을 덮쳤다. 이름하여 흑사병. 이 병은 원래 야생 설치류의 돌림병이다. 벼룩에 의해 동물에게 전염되는데, 사람도 예외는 아니었다. 증세는 40도 전후의 고열과 현기증 그리고 구토 등. 지금의 신종플루와 흡사해 보인다. 사실 흑사병이 신종플루와 비슷한 것은 이뿐 아니다.

흑사병도, 신종플루도 경제 변화를 이끌고 있다. 질병이 경제를 바꿔놓는다는 얘기다. 먼저 흑사병을 보자. 이는 유럽의 재앙이었다.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은 2500만~3500만 명. 당시 유럽 전체 인구의 30% 수준이었다. 유럽 인구가 흑사병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이 무려 300년이 흐른 17세기였다고 하니, 당시 흑사병의 공포는 상상을 초월했던 모양이다.

흑사병 이후 유럽 경제 시스템은 변하기 시작한다. 흑사병으로 노동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망한 탓에 노동자의 힘이 커졌다. 심각한 노동력 부족은 높은 임금, 높은 생산비용 그리고 인플레이션을 낳았다. 이로 인해 많은 회사가 파산했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자산가들도 재산을 몽땅 잃었다고 한다. 노동집약적 봉건체제가 흑사병 때문에 붕괴된 것이다.



질병의 글로벌화라는 불청객요즘의 신종플루도 규모는 다르지만 유사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신종플루가 확산되면서 세계 경제가 영향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글로벌화의 진전에 따라 경제활동의 글로벌화뿐만 아니라 질병의 글로벌화라는 불청객이 찾아온 것이다. 멕시코에서 시작된 신종플루가 순식간에 지구 전체에 퍼져 나가고 있다.

신종플루는 다양한 측면에서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단 미시적 관점에서 접근해 보자. 일반적으로 신종플루로 수혜를 받는 곳이 의료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도 않다. 피해를 보는 곳도 있다. 바로 안과다. 신종플루 예방책 중 하나는 손을 깨끗하게 씻는 것이다.

반면 눈병은 손을 씻지 않을 때 가장 많이 걸린다고 한다. 신종플루 때문에 손을 자주 씻으니 안과 손님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지사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돈을 벌 수 있는 업종도 신종플루의 영향을 받는다. 백화점, 극장, 야외행사 등은 줄줄이 고배를 마신다. 반면 온라인 쇼핑, DVD 산업은 신종플루 때문에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신종플루 감염 속도가 완만해지고는 있다지만 환절기로 접어들며 소비자들의 우려가 유통시장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어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면역력 강화 제품에서 살균, 항균 기능을 갖춘 제품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것이다.



단계별 시나리오 세우고 대비해야

대형 마트의 경우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홍삼 등의 매출이 배 이상 껑충 뛰는가 하면 건강 보조식품을 찾는 고객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항균 스프레이나 항균 마스크, 같은 세제라도 일반 비누보다는 세균 박멸 손 세정제의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생활가전제품 역시 신종플루의 영향으로 건강가전을 찾는 소비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신종플루가 유통시장의 풍속도까지 바꿔놓고 있는 셈이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상품들 간의 관계는 대체재와 보완재로 나뉜다. 다른 상품의 수요가 늘면서 자기 상품의 수요가 같이 증가하면 보완재고, 자기 상품의 수요가 줄어들면 대체재이다. 이번 신종플루는 상품 간의 대체관계를 명확하게 보여 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거시경제다. 전염성 질병은 소비와 투자 모두에 악재다. 소비부문의 부진은 이미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여행, 대중교통, 소매업, 호텔 등 여러 부문이 타격을 입고 있다. 영화관람이나 외식 등 바깥 나들이를 삼가기 때문이다. 소비위축이 장기화할 것이라고 예상되면 기업들의 생산활동이나 투자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기업인의 해외출장이 위축되며 각종 국제행사는 차질을 빚는다. 이런 경향은 외신과 외국 연구기관의 분석에서도 나타난다. AFT통신은 유럽에서 신종플루로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영국이 신종플루로 인해 올해 국가경제가 7.5%까지 위축될 수 있다며 언스트영 클럽(the Ernst & Young ITEM Club)의 경제학자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ITEM은 신종플루가 올해 영국 경제를 4.5%까지 위축시킬 수 있고 만일 신종플루가 전 국민의 50%를 감염시킬 경우 인구의 0.4%가 사망함으로써 국가경제 규모가 7.5%까지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신종플루는 세계 경제 회복에 암초가 될 수 있다. 세계 경제의 위축은 우리 경기의 회복을 지연시킬 수 있다.

우리 경제 자체도 신종플루로 인해 타격을 받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지금 정부의 각종 대책은 신종플루를 통제하는 데 주력하는 듯하다. 그러나 경제계에서는 신종플루가 만연하는 경우의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고 시나리오별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국가적으로는 소비위축 가능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업들은 신종플루가 만연해 핵심인력이 회사에 출근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비한 비상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잘 대처하기만 하면 별일 아닐 수 있지만, 방심하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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