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직접 회사의 홍보용 달력을 소개하는 이색적인 간담회가 지난 11월 30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열렸다. 주인공은 독일계 다국적 화학·제약회사인 머크의 유르겐 쾨닉(56) 한국지사 대표다.

쾨닉 대표는 먼저 내년 사업에 대해 참석자들과 간략한 질의응답을 마쳤다. 그리고 이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 ‘달력’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달력을 만드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며 운을 뗐다.

쾨닉 대표가 2010년 달력을 만드는 데 들인 시간은 18개월이다. 홍보용 달력 하나 만드는 데 웬 시간이 이렇게 많이 들었을까. “달력에 넣을 그림을 고르느라 어찌나 갤러리를 많이 다녔는지, ‘가 본 갤러리가 어딘지’ 물어보는 것보다 ‘가 보지 않은 갤러리가 어디냐’고 물어보는 게 나을 정도입니다. 달력에 들어갈 그림을 그려줄 작가를 만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왜 굳이 달력 그림을 그릴 작가를 직접 찾아나선 것일까.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머크 독일 본사가 사회적 책임(CSR) 활동으로 펼치고 있는 문화·예술지원사업을 한국에서도 추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머크어워드’ ‘머크 젊은 과학자상’ 선정(2004년)을 비롯한 서울대 의과대 장학금 지원(2008년)에다 4년 전부터 매달 직원들과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활동이 없어 아쉬웠다고 한다.

이번 작업에는 한국 작가의 작품을 달력에 넣어 다른 나라에 쉽게 한국의 문화를 알리겠다는 취지도 있다. 한국 머크가 만든 달력 1만부는 독일 본사를 비롯해 세계 60개국 지사에 배포될 예정이다. “달력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어 사람들이 작가와 작품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달력 하나로 한국의 문화·예술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면 좋지 않을까요?”

한국 머크의 2010년 달력 그림을 그린 주인공은 누구일까? 오인순(38) 작가가 선정됐다. 쾨닉 대표는 “어느 갤러리에서 오 작가의 그림을 보자마자 사로잡혔다”며 “그림 앞에 30분 동안 서 있었다”고 당시 느낌을 되새겼다. 오랜 시간 동안 쾨닉의 발걸음을 붙잡아 둔 그 그림은 2010년 달력의 1·2월을 장식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오 작가는 “달력을 통해 세계에 나의 작품을 알리게 돼 즐겁고, 한편으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한스 울리히 자이트 주한 독일대사는 “한국과 독일이 어떻게 함께 나아가야 하는지 보여주는 창조적 활동”이라며 쾨닉 대표의 열정에 찬사를 보냈다.

독일계 머크 그룹의 한국지사인 머크 주식회사와 2002년 설립된 머크 어드밴스드 테크놀러지는 1989년부터 의약분야와 함께 액정, 시약, 기능성 안료 및 화장품 원료의 화학 분야에서 비즈니스 활동을 영위하고 있다. 올해는 한국에 140억원을 투자해 첨단기술센터를 설립해 급속도로 성장하는 LCD시장에 대응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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