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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주러 갔다 도움 받고 왔다

도와주러 갔다 도움 받고 왔다

착한 기업가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기업의 사회공헌이다. 일부에서는 회사 내에서 도움의 손길을 뻗칠 데도 많은데 왜 바깥에다 생색내기를 일삼느냐는 비난의 말을 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렇까? 기업에서 일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봉사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다.

어느새 ‘사회공헌’이란 말은 그 숭고한 뜻에도 불구하고 딱딱하고 건조한 말이 됐다. 기업들이 저마다 사회공헌을 발표하고, 해마다 내놓는 돈도 천문학적 금액에 달한다. 지난해 전경련을 통해 집계된 사회공헌 금액만 2조1600억원에 달한다. 500대 기업 중 40%만 응답한 점을 감안하면 실제 기업에서 사회공헌에 기부하는 돈은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엄청난 금액을 이웃에 쏟아붓지만 기업들의 이런 활동에 눈물을 흘리거나 감동받는 사람은 많지 않다.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사회공헌’이라는 세련된 말은 오히려 예전의 선행, 봉사, 이웃돕기보다 더 차가운 느낌이다. 기업들은 사회공헌팀을 꾸려가며 전략적으로 사회공헌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막상 효과는 미미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들의 선행에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것도 그중 하나다. 연말만 되면 신문에 등장하는 김치 담그기, 연탄 나르기, 장애인 방문 등의 사진은 자못 현장감이 넘치지만 사진을 찍은 사람 중 얼마나 그 현장에서 추위를 겪으며 땀을 흘리는지는 알 수 없다.

1년을 추위에 떤 사람들을 뒤에 세워놓고 1시간 동안 사진만 찍고 가는 그런 보도에 사람들이 쉽게 감동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 비영리 단체의 간사는 “기업체의 회장이나 사장이 방문하면 꼭 비서실과 관련 팀에서 미리 와서 세팅을 다 해놓는다. 그러곤 회장이 왔을 때 행사가 최고조에 이른 뒤 뒤치다꺼리는 실무자와 단체 사람들이 맡는다.

그들의 도움이 고맙긴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도움을 받는 단체나 시설의 사람들은 연말 이런 행사 분위기에 익숙하다. 연극처럼 주연과 조연은 나뉘어 있고, 자신들이 맡을 역할이 무엇인지 이들은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도움이나마 고마운 것이 사실이다.

한 장애인 시설의 원장은 “실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진심이 없이 오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지만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없이 몸만, 심지어 물건만 와도 도움이 된다”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는 또 “사실 장애인을 돌보는 것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여기에 경험, 체력도 뒷받침돼야 한다. 아무나 와서 하루 만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며 방문객들의 떠들썩한 세리머니(ceremony)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기업들도 전략적인 봉사로 실질 도움하지만 2009년 4월에 전경련에서 조사한 ‘기업의 사회공헌에 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이 기업의 가장 큰 의무로 고용(23.6%) 다음으로 사회공헌(18.9%)을 꼽고 있을 정도로 기업의 사회공헌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물론 요즘은 연중 꾸준히 한 시설이나 지역과 관계를 맺고 지속적인 도움을 주는 경우도 많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사업팀의 김미희 대리는 “기업들도 과거처럼 일회적인 봉사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전략적인 봉사를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평가했다. 다만 “사회공헌도 전략적으로 할 필요가 있지만 지나치게 계산적일 경우 오히려 부작용이 클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미 대기업과 그룹들은 사회공헌팀을 별도로 두고 그룹의 중요한 활동으로 여기고 있다. 대기업이나 그룹의 경우 한 해에 집행하는 예산만 수백~수천억원에 달하기도 한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전문가를 두고 시민단체나 비영리 단체, 또는 지역사회와 밀착해 도움을 주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기업들도 사회공헌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 문제는 여전히 많은 CEO가 과중한 업무와 바쁜 시간을 핑계로 사회공헌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직원들을 독려하고, 심지어 사규에 사회공헌을 의무화한 기업도 많지만 CEO들은 예외인 경우가 더러 있다.

이런 기업은 아무리 광범위한 사회공헌을 한다고 하더라도 남을 진심으로 도울 수 없고, 동시에 구성원들을 감동시킬 수도 없다. ‘바빠서…’라고 하는 순간 사회공헌활동은 CEO가 아무리 중요성을 강조해도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는 것을 구성원들은 몸으로 포착하기 때문이다.


얼어붙은 마음 녹일 수 있는 것은…다들 바쁘지만 어떤 CEO들은 봉사활동에 정성을 들이기도 한다. 이들은 회사 차원에서는 물론 개인 차원에서 봉사와 도움의 손길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봉사를 통해 내가 얻는 것이 더 많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 많은 기업의 사례에서 사회공헌활동은 기업의 팀워크 향상과 구성원들 간의 신뢰, 회사에 헌신 등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복되는 직장생활의 공허감을 달래고, 보람과 자긍심을 갖게 하는 데 사회공헌활동보다 효과적인 것도 찾기 쉽지 않다. 앞선 기업들이 한결같이 사회공헌활동에 열심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행히 한국에도 진심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회사와 CEO들이 있다. 이들의 노력 덕에 사회공헌활동은 기업의 전략을 넘어서서 진심이 담긴 책임감 있는 행동으로 평가받기 시작하고 있다.

차가운 사회공헌을 따뜻한 온정의 손길로 바꾸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CEO의 헌신이 필요하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도움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 받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 CEO 4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


“누군들 저 혼자 살 수 있겠는가?”

머릿속 지식 가슴으로 내려와야 봉사활동 참맛 알 수 있어
지금은 대기업의 최고 경영층으로 있지만 사실 나는 어릴 때 꽤나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시자 평범한 주부였던 어머니는 채 서른 살도 안 되는 연세에 당장 어린 3남매를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이 되셨고, 별다른 방법이 없이 봇짐을 머리에 이고 세상 파고를 헤쳐 나가셔야만 하셨다.

6·25전쟁 직후의 어려운 사회환경 속에서 홀어머니가 올망졸망 매달린 아이 셋을 유일한 희망으로 삼고 살아가기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장날을 쫓아다니시기에 바쁜 어머니는 마음과 달리 우리 3남매를 돌볼 시간이 빠듯하셔서, 맏이인 내가 동생들을 챙겨가며 방학이면 신문배달, 평소에는 어머니의 과일 노점상 등에 나의 어린 손이라도 보태는 일이 기쁨이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탈 없이 잘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주변에서 이래저래 도와주는 손길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동해남부선을 따라 열리는 5일장에 가셨다가 밤늦게 돌아오시는 어머니를 기다리면서 어린 손으로 꾸려가는 살림에 이웃과 교회는 따뜻한 관심을 보내 주었다. 특히 나처럼 어려운 형편에 학업을 계속하고자 하는 전국의 많은 중학생에게 부산상고의 ‘김지태 장학금’ 같은 미래의 희망을 교육으로 응원하는 도움의 손길은 가뭄 속의 단비와 같았다.

많은 사람이 살아오면서 주위로부터 크고 작은 도움을 받은 적이 있지만, 대부분 남보다는 나에게만 집중해 살아왔고, 어느 사이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 더욱 익숙해져 온 것이 사실이다. 나도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는 성경 말씀이 왜 황금률로 불리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오랫동안 지식으로만 외우고 있었다.

사람에게서 가장 긴 여행은 머리로부터 가슴으로 옮겨 가는 것이라고 한다. 머릿속의 냉철한 지식이 가슴속의 뜨거운 열정이 되어야만 비로소 쓸모가 있을 텐데 그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섬기는 리더십(Servant Leadership)도 지식으로 열변을 토하기는 쉽지만, 무릎을 꿇는 섬김 정신으로 구성원을 이끌어 가기란 훨씬 어려운 게 사실이다. 나도 남을 도와야 한다는 지식이 가슴속에 뜨거운 감동으로 옮겨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신헌철 부회장(앞줄 왼쪽에서 둘째)은 2002년부터 마라톤을 통해 불우이웃 후원금을 마련해 기부하고 있다.

▎신헌철 부회장(앞줄 왼쪽에서 둘째)은 2002년부터 마라톤을 통해 불우이웃 후원금을 마련해 기부하고 있다.



마라톤을 완주하는 이유내가 쉰다섯 살이던 2001년 여름에 그동안 시달렸던 퇴행성 관절염이 거의 다 나았다는 확신이 들자 마라톤 풀코스에 생전 처음 도전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남산순환도로에서 열심히 연습하게 되었다. 케이블카 승강장 입구에서 국립극장 뒤편까지 7㎞를 달리곤 하던 어느 날, 4~5명의 시각장애인이 서로 어깨를 감싸고, 한 손으로는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면서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내 자신의 건강과 취미를 위해 달리고 있는 데 비해 저분들은 안마사로서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 나가는 체력을 키우고자 지팡이로 세상을 두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이렇게 밝은 세상을 내 눈으로 바라보면서 달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해 그분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래서 이듬해 제73회 동아 마라톤 때부터는 내가 완주하는 것을 조건으로 회사 및 주변사람들로부터 1만원씩 불우이웃 후원금을 받아 회사의 사회복지기금에 보태어 쓰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약 20여 회에 걸쳐 풀코스 마라톤을 통해 걷힌 귀중한 성금은 그때마다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독거노인, 결손가정아동 등에 대한 생활자금, 장학금 등으로 값지게 쓰이고 있다.

그러는 사이 사회공헌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적극적인 참여는 그 파급 효과와 지속성 때문에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경험하게 되었다. 1995년에 시작된 SK텔레콤의 수도권지역 불우이웃돕기 김장 담그기 행사와 2004년에 시작된 SK에너지의 전국 30여 개 도시에서의 김장 담그기 행사 및 사랑의 연탄 나누기 등은 이제 연례 행사가 되었다.

2007년부터는 탈북자들을 위한 정부, 열매나눔재단, SK에너지의 일자리 만들기 노력이 현재 3개의 사회적 기업으로 훌륭하게 열매를 맺었고, 그것은 사회적 약자에게 물고기를 주는 것도 계속해야 하지만 물고기를 잡는 새로운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했다.

이런 것은 바로 최고경영자가 기업을 통해 만들어 낼 때 더욱 효과적이다. ‘혼자서는 실패하거니와 둘이서는 능히 당하나니, 세 겹줄은 끊어지지 않느니라’라는 성경 말씀처럼 구성원을 사회공헌의 세 겹줄로 묶을 수 있는 것도 최고경영자이고, 그 놀라운 결과를 회사 경영 속에서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최고경영자이기 때문에 남을 돕는 일에 스스로 감동 받기 쉬운 구성원들을 세 겹줄로 엮을 수 있는 힘을 발휘한다면 세상은 그만큼 더욱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김종훈 한미파슨스 회장


“봉사활동은 결국 남이 아니라

나를 돕는 것”

25년 전 장애인 시설 방문 후 충격

전 직원 매월 한 번씩 봉사활동 의무
매월 넷째 주 토요일, 나는 간편한 복장을 하고 우리 회사 직원들과 함께 사회복지시설을 찾는다. 1996년 회사를 설립한 후 지난 13년 동안 매월 빠짐없이 해 온 일이니, 이제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일상적인 생활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하는 곳은 주로 장애인들이 생활하는 사회복지시설로 전국에 30여 곳 정도가 우리 회사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내가 봉사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약 25년 전이다.

당시 다니던 교회에서 장애인시설을 방문했는데,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어린아이들을 보는 순간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두 발로 온전히 걸을 수 있고, 또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감사한 일인지를 느낀 순간이었다.

우리 회사의 구성원들도 처음 봉사활동을 가서 장애인들과 형편이 어려운 분들을 만나면, 처음엔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감사로 그리고 지속적인 봉사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혹자는 봉사활동은 자발적으로 해야지,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자발적으로 복지시설을 찾거나 어려운 분들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갖기가 매우 힘들다. 학교나 직장에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면, 처음에는 내키지 않지만 봉사활동에 참여하면 할수록 자신의 삶에 감사하게 되고, 또한 작은 변화들이 일어남을 알 수 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우리 회사에 취업한 신입사원들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대학생일 때보다 긍정적이고, 검소하고, 부지런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면에서 필자는 봉사활동은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돕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제2의 인생 사회복지사업에 집중

▎2009년 4월 김종훈 회장이 소망재활원생과 함께 미사리로 소풍을 나갔다.

▎2009년 4월 김종훈 회장이 소망재활원생과 함께 미사리로 소풍을 나갔다.

13년 전 한미파슨스를 설립하면서, 어떤 회사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다. 물론 CM(Construction Management·건설관리)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뛰어들어 우리 건설산업을 선진화시키겠다는 의무감도 있었지만,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 회사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경영자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이 봉사활동을 하는 사회공헌 모델이 되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생각을 통해 우리 회사의 미션을 ‘인류사회의 발전에 공헌하는 회사’로 정하게 되었고, 사회공헌활동을 회사의 핵심제도로 정착시키게 되었다. 주변의 경영자들이 필자에게 어떻게 하면 사회공헌활동을 잘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회사의 특성에 맞는 사회공헌활동을 하라고 조언한다.

많은 기업이 사회공헌활동을 너무 부담스럽게 여겨 시작도 못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너무 쉽게 생각해 계획도 세우지 않고 일단 아무거나 눈에 띄는 대로 하는 경우도 있다. 사회공헌활동은 회사의 특성에 맞게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하는 것이 좋다. 우리 회사의 경우도 건설사업관리라는 회사의 특성에 맞게 사회복지시설 신축, 노후복지시설 개선과 보수에 중점을 두고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회사 특성에 맞는 사회공헌활동은 구성원들의 전문적인 역량을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련된 협력회사와 공동으로 활동을 펼칠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내년 1월이면, 오랫동안 차근차근 준비해 온 사회복지재단이 설립된다. 새로이 설립되는 복지재단을 통해 장애인들의 자활과 자립을 돕고, 노후복지시설을 개선하며, 장기적으로 장애인들과 일반인들이 함께 어울려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고 지원하는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많은 경영인이 경영자의 자리에서 물러난 후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경영자의 자리에서 물러나면 사회복지사업에 제2의 인생을 집중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우리 사회는 급속히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인생의 많은 경험과 지식, 역량, 부를 가지고 있는 수많은 사회 지도층이 은퇴할 것이다.

은퇴한 이들이 봉사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의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제2의 인생을 살아간다면, 노령화 사회도 그리 걱정할 일만은 아니라고 본다. 언젠가 회사에서 물러나게 되면 다음에 태어날 손자, 손녀들의 손을 잡고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내 작은 바람이다. 그래서 손자, 손녀들이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우리 할아버지’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스튜어트 솔로몬 메트라이프생명 회장

“돈보다 크고 명예보다 깊은 행복”

30여 년 전 만난 보육원 원장의 삶에 감동

처음 선물한 냉장고 아직 못 잊어
사회공헌활동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은 아주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다. 내 조카딸은 태어난 지 몇 년만에 반자폐증 진단을 받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카딸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없고 평생 부모와 가족뿐 아니라 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조카딸은 비슷한 질환이 있는 아이들과 함께 특수시설에서 특수교육을 받아야 했는데, 대부분의 특수시설이 정부의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개인과 기업의 사회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나는 사회적 책임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진정한 사회적 책임의 의미를 깨달은 것은 시간이 좀 더 지나서였다. 1970년대, 당시 나는 미국 오하이오주의 작은 회사에서 일했다. 이 회사가 부산에 수입업체를 세우면서 한국에 살게 됐는데 여기에서 평생 존경할 만한 여성 한 분을 만나게 된다.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거제도에서 보육원을 운영하던 분이었다. 그분은 50년 넘게 고아, 불우아동, 신체·정신장애 아동을 돌보며 살고 있다고 했다. 보육원이 내가 살던 부산에서 멀지 않은 거제도에 있어 가끔 들르곤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보관하기 위한 큰 냉장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그 냉장고가 그리워

▎스튜어트 솔로몬 회장(맨 오른쪽)이 2005년 11월 성산행복한홈스쿨 개소를 맞아 벽화 그리기 자원봉사를 하던 중 아이들과 포즈를 취했다.

▎스튜어트 솔로몬 회장(맨 오른쪽)이 2005년 11월 성산행복한홈스쿨 개소를 맞아 벽화 그리기 자원봉사를 하던 중 아이들과 포즈를 취했다.

뜻은 좋았지만 사실 미국에서 대형 냉장고를 들여와 부산세관을 거쳐 보육원까지 배달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 함께 보육원에 도착한 냉장고의 전원을 꽂던 날, 원장님과 보육원 직원들 그리고 아이들의 얼굴에 피어난 기쁨과 감사의 웃음을 지금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내가 산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냉장고 값을 부담했기에 직접적으로 내 돈을 들인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선물을 했다는 생각에 벅찬 감동과 성취감을 느꼈다.

보육원 아이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온 원장님의 고귀한 삶 덕분에 나는 사회적 책임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 것이다. 기업인으로서 사회에 공헌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 역시 절실히 깨달았다. 원장님은 지금도 보육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때 그 냉장고가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조카딸과 보육원 원장님은 진정한 사회공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결정적인 존재였다. 2005년에 한국 메트라이프 재단을 세우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물론이다. 현재 메트라이프 재단은 장애아동과 불우아동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 12월 11일에 23개 기관과 단체를 선정해 지원금을 전달했다.

남을 돕는 일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돈, 재능, 건강, 명예를 행복한 삶의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런 것들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모습에서 행복한 삶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많은 기업인이 사회적 책임 활동을 남을 돕는 것뿐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는 중요한 가치라고 여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철호 본죽 사장

‘멜린다 최’ 아내와 ‘나눔 창구’ 열어

“호떡 장사할 때 받은 도움 잊지 못해”

동참할 기회 제공하는 것이 또 다른 보답
2009년은 나와 아내에게 어떤 해보다 뜻 깊은 해였다. 지난 6월에 2~3년 동안 준비한 본사랑 복지법인을 설립했기 때문이다. 이제 사회공헌활동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본사랑이 있어 마치 월동준비를 끝낸 주부의 마음처럼 든든하다.

어떤 이들은 ‘본죽이 사회공헌활동도 하느냐’며 기업의 규모가 커지자 의례적으로 하는 일인 양 곱지 않은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김철호 대표와 본사랑 재단이 후원한 원더풀 아프가니스탄 국제 사진전 홍보대사인 제바 양. 김 대표는 제바를 집에 머무르게 하는 등 서울에서의 활동을 지원했다.

▎김철호 대표와 본사랑 재단이 후원한 원더풀 아프가니스탄 국제 사진전 홍보대사인 제바 양. 김 대표는 제바를 집에 머무르게 하는 등 서울에서의 활동을 지원했다.

내 삶은 누군가의 도움의 연속이었다. 그전에 하던 사업이 부도를 맞아 숙대 입구에서 호떡 장사를 할 때도, 본죽 1호점을 오픈할 때도 많은 이의 도움을 받았다. 돌아보면 나 혼자 힘으로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맹점 1000호를 열 수 있게 된 것 역시 가맹점주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 가맹점주들이 성공할 수 있게 비즈니스 면에서 돕고 있다. 단순히 부를 축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들이 더 높은 차원의 기쁨과 성공을 맛볼 수 있도록 사회공헌활동을 활발히 해서 나눔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 이런 결심을 하기까지 바로 옆에서 아내가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했다. 본죽연구소장으로 항상 곁을 지켜준 아내는 현재 본사랑 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독거노인들에게 죽 드리고 싶었지만…세계적인 기업인이자 자선가인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의 부인인 멜린다 게이츠가 혁신적인 자선활동으로 나눔의 역사를 바꿨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아내는 멜린다 게이츠와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사진을 벽에 붙여 놓고 멘토로 여길 정도로 사회공헌활동을 꿈꿔왔다.

그런 아내에게 나는 ‘멜린다 최’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물론 나와 아내, 둘이서 아무도 모르게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도 있다. 하지만 혼자 하면 10~20명밖에 도울 수 없는 일이 회사 전체가 하면 100~200명을 도울 수 있는 일로 커진다. 재단이라는 창구를 통해 같은 뜻이 있는 사람들이 힘을 모으면 1000명, 1만 명, 그 이상을 도울 수 있다.

남을 돕고 싶어도 기회가 없어서 혹은 바쁘게 살다 보니 신경을 못 써서 실천하지 못할 뿐이지 많은 사람이 돕고 베풀며 살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실제 죽 지원 사업을 할 때 현장 지원을 나온 직원이 “집 근처의 양로원을 지날 때마다 어려운 독거노인들에게 죽을 드리고 싶었지만 막상 혼자 찾아가려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며 “회사에서 지원 활동을 하면서 죽을 나눠 드릴 수 있게 돼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다시 한 번 가슴속에 사회공헌활동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렇게 기회가 없어 남을 돕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해 동참할 수 있는 창구를 더 많이 만들어야겠구나.’ 오늘도 나는 마음속에 남을 돕고 싶어 하는 작은 불씨가 있는 사람들이 나눔을 실천할 수 있게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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