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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이 다 갖는다? 그건 안 될 말이오

형님이 다 갖는다? 그건 안 될 말이오

최근 재계에서 ‘형제의 난’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형제 간의 우애를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서 갈등이 잦은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롯데마트가 한국야쿠르트와 손잡고 ‘롯데라면’이라는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1월 말 출시하기로 했다. 롯데가 PB상품 8200여 개 가운데 ‘롯데’란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롯데라면은 1965년 선보여 73년까지 인기를 끌었던 제품이다. 롯데마트 측은 “3∼4위권 제조업체와 손잡고 저렴한 제품을 내놓자는 전략”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롯데가 라면 시장에 진출하자 세간의 관심은 뜻밖에도 ‘형제 간의 경쟁’에 쏠렸다. 라면 시장 1위인 농심의 신춘호 회장이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친동생이기 때문이다. 신춘호 회장은 65년 자본금 500만원으로 롯데공업을 세웠다. 형님이 일본에서 운영하는 롯데 이름을 따왔다.

73년까지 ‘롯데라면’을 출시하다가 75년 ‘농심라면’을 히트시키면서 78년 사명을 농심으로 바꿨다. 농심은 이후 컵라면과 신라면 등을 출시하며 라면 시장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재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이들 형제 간의 왕래가 소원하다고 한다. 재계 관계자는 “사탕 하나를 출시해도 일일이 맛보는 신격호 회장이 동생과 친하다면 라면 시장에 쉽게 진출하겠느냐”고 말했다.

75년 농심라면이 인기를 끌게 된 데는 코미디언 구봉서, 곽규석 콤비가 등장했던 TV 광고의 힘이 컸다. 당시 카피가 ‘형님 먼저 드시오, 아우 먼저 드시게’로 형제 우애를 강조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아이로니컬하다.

과거 신격호 회장은 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과도 양평동 롯데제과 부지를 놓고 갈등을 일으킨 적이 있다. 1996년 서울 양평동 소재 롯데제과 부지 37만 평의 소유권을 놓고 창업주인 맏형 신격호 회장과 동생인 신준호 회장이 한바탕 싸움을 벌인 것이다.

신격호 회장이 신준호 회장에게 이 땅을 명의신탁했는데 나중에 신준호 회장이 부지 소유권을 주장한 게 분쟁의 발단이었다. 이에 신격호 회장은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소송을 법원에 내는 것은 물론, 신준호 회장의 그룹 내 직위를 모두 박탈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결국 이들 형제는 조금씩 양보하는 선에서 4개월 만에 분쟁은 끝났지만 이후 신격호 회장은 동생의 그룹 내 지위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최근 재계에선 기업의 작은 변화라도 오너 일가가 엮이면 ‘형제의 난’을 의심하는 경우가 많다. 최태원-재원, 최신원-창원 등 사촌 간의 경영으로 그룹을 꾸려가는 SK그룹의 경우 형제 간에 미묘한 지분 변화가 생길 때마다 계열 분리에 대한 보고서들이 쏟아진다.

이는 형제 간의 경영권 다툼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특히 2000년 현대그룹을 시작으로 대성·한진·두산·금호 등 오너 후계자들의 경영권 다툼이 자주 일어났다. 현재 국내에서 계열 분리 과정에서 다툼이 없었던 회사는 LG, GS 등 ‘범LG 계열’이다. 구씨와 허씨 두 대주주 가문은 국내 재계에서 큰 잡음 없이 대규모 분가를 이뤄낸 거의 유일한 사례로 꼽힌다.

국내에서 형제 간 경영권 다툼이 생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창업주들이 갑작스레 유고되는 경우다. 한화의 경우 1981년 타계한 고 김종희 창업주가 두 아들의 지분 분할에 대한 명확한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 처음엔 김승연-호연 형제의 역할 분담 구도에 별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92년 분가 과정에서 뒤늦게 일이 터졌다.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주요 계열사 경영에서 밀려난 데 반발해 형을 상대로 재산권 분할 소송을 제기한 것. 두 형제는 1995년 어머니 강태영 여사의 칠순잔치를 계기로 갈등을 봉합했다. 한국에 뿌리 깊게 내린 장자 상속 문화도 걸림돌이다. 장남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자신이 가업을 승계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또 그렇게 믿고 자란다.

따라서 동생이 후계자로 낙점될 때 이를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00년 3월 현대그룹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 아들들인 몽구 회장과 몽헌 전 회장 간에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자 세인들은 ‘왕자의 난’으로 불렀다.

이는 조선 태종 이방원이 왕자 시절 일으킨 난에 빗댄 것이다. 태조 이성계가 총애하는 계비 신덕왕후 강씨가 낳은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자 조선왕조를 세운 일등공신인 방원은 1398년 난을 일으켰다.

방원은 이복동생인 방석을 살해했고, 2년 후엔 바로 위 형인 방간과 또 한 차례 골육상쟁을 겪은 후 마침내 왕위에 오르게 된다. 동생을 후계자로 책봉한 것에 대해 형이 느끼는 배신감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거꾸로 동생들의 ‘반란’도 빈번했다. 2001년 2월 작고한 김수근 대성그룹 회장은 3형제가 그룹을 나눠 경영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장남 김영대 회장이 모기업인 대성산업을, 둘째 김영민 회장은 서울도시가스를, 막내 김영훈 회장은 대구도시가스를 맡으라는 얘기였다.

김 회장의 유언에 따라 형제들은 각자 독립하기로 했지만 분리될 회사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둘러싸고 이견이 생기면서 경영권 분쟁이 벌어졌다. 그 결과 재계 순위 40위권의 대성그룹에서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대성그룹 회장’ 직함을 두 사람이 쓴 것. 장남과 셋째 아들이 모두 양보하지 않은 까닭이다.

2대와 3대로 경영권이 이어지면서 취약해지는 지분 구조도 분쟁의 원인이다. 인하대 김진방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재벌 그룹들은 취약한 지분구조로 인해 경영권 분쟁을 자주 겪고 있다”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출자구조로 핵심기업 지분만 뺏으면 경영권을 쉽게 가져갈 수 있는 구조가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는 유럽과 미국의 가족 기업들도 일찌감치 거친 과정이다. 경영 세습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온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의 존 워드 교수는 <뉴스위크> 와의 인터뷰에서 “가족 기업 역사의 가장 취약한 시기는 2세의 형제 세대가 경영할 때다.

형제자매가 경영권을 공동 소유하거나 회사를 공동 경영하는 시기를 말한다”고 밝혔다. 그는 “경영 세습이 순조롭게 이뤄지는 데 성공한 경우는 3분의 1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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