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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VS 도요다

스티브 VS 도요다

도요타와 애플은 전혀 다른 업종의 회사다. 하지만 위기를 극복하고 정상을 지키는 방법에 관해서는, 특히 시장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도요다 아키오가 스티브 잡스에게 한 수 배워야 할 것 같다.

올들어 희비가 엇갈리는 두 명의 글로벌 CEO가 있다. 바로 ‘애플 신화’를 이어가는 스티브 잡스(Steve Jobs)와 창업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한 도요타자동차 사장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다.

애플은 세계 IT업계를 주름잡고 있으며 도요타는 미국의 자존심 제너럴 모터스(GM)를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기업이 됐다. 업종도 다르고, 국적도 다른, 그래서 문화도 판이한 두 기업의 CEO를 비교하는 것이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고의 자리에서 왜 애플은 승승장구하는데, 도요타는 정상에 오르자마자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됐는지는 궁금증을 낳는다. 그 답을 찾아가는 작업은 도대체 어떤 기업이, 어떤 경영자가 모두가 도전하는 정상의 자리에 오른 후 계속 수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줄 것이다.

도요다 아키오와 스티브 잡스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그것은 오너 출신이란 점이다. 지난해 6월 경영권을 잡은 도요다 아키오는 도요다 가문의 4세로 도요타그룹의 초석을 마련한 도요다 사키치(佐吉)의 증손이자 그의 장남인 창업주 도요다 기이치로(喜一郎)의 장손이다. 아키오는 도요타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대규모 적자를 내면서 위기를 타개할 구원투수로 지난해 등판했다.

창업주 일가가 경영권을 잡은 것은 14년 만이다. 일각에서는 거대한 도요타를 맡기에 50대 초반은 너무 젊은 데다, 도요타처럼 큰 상장기업은 창업주 가족을 사장으로 뽑아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아키오의 취임을 반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창업정신을 이어받아 기본을 중시하는 오너 경영자가 필요하다는 논리가 앞섰다. 아무튼 당시 아키오의 등장은 그룹 내에서 천왕가로 불리는 도요다 일가의 일선 복귀로 주목 받았다.


천왕의 복위 vs 왕의 귀환도요타는 1950년 재고 과잉으로 부도 위기에 내몰렸다. 당시 도요다 일가는 지분을 포기하고 금융권의 협조융자를 받았다. 창업주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도요타는 차를 만드는 자공(自工)과 판매를 전담하는 자판(自販)으로 쪼개졌다. 판매를 예측하지 못하고 무턱대고 차를 만든 책임을 채권단이 물은 것이다.

이후 도요타는 한국전쟁 특수와 자판 직원들이 소비자 불만을 자공 쪽에 잘 전달해 팔릴 만한 차를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기술로는 닛산에 뒤졌지만 소비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보다 합리적 가격과 편리한 사양을 제시하는 도요타를 선호했다. 덕분에 도요타는 1960년대 초반 닛산을 제치고 국내 1등 자리를 굳혔다.

아키오가 취임 후 위기 타개책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려 한 것도 그런 교훈 때문이다. 도요타는 1982년 아키오의 부친인 쇼이치로(章一郞, 현 명예회장)가 사장에 오르면서 가문의 숙원이던 자판과 자공 통합을 이루었다. 이후 도요타는 연산 1000만 대 생산의 기염을 토하며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과 유럽 메이커를 제치고 세계 1위로 등극했다.

도요타는 1990년대까지 도요다 일가를 구심점으로 글로벌 기업이 됐다. 도요타 쇼이치로는 도요타를 글로벌 톱 자동차 제조사로 키운 토대를 닦았다. 하지만 일본이 10년 동안의 장기 불황을 맞자 1995년 오쿠다 히로시(奧田碩)를 비롯해 전문경영인들이 전면에 나섰다. 알고 보면 스티브 잡스도 다시 돌아온 오너 출신이다.

애플이 오너 경영으로 시작해 전문경영인 체제로 변화했다가 다시 오너 출신 경영자를 맞은 것은 도요타와 비슷하다. 잡스는 20대 초반이던 1976년 친구와 함께 자기 집 차고에서 애플Ⅰ, 애플Ⅱ 컴퓨터를 개발해 PC 시대를 열었다. 급기야 1980년대 매킨토시를 개발해낸 전설적 인물이다.

그러나 애플은 1980년대 초반 IBM PC의 등장과 함께 사세가 기울더니 84년에는 끝내 업계 선두자리를 IBM에 내주고 말았다. 잡스는 구원투수를 물색하다 펩시콜라의 시장 점유율을 코카콜라 이상으로 끌어올린 존 스컬리를 사장으로 영입했다. 그러나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고 말았다.

잡스는 85년 자신이 영입한 스컬리의 쿠데타로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나는 비운을 겪는다. 그 뒤 잡스는 넥스트라는 컴퓨터회사를 설립했다. ‘넥스트 스텝’이라는 이름의 컴퓨터 운영체제(OS)를 개발하고, 넥스트큐브와 넥스트스테이션 같은 멀티미디어 컴퓨터도 출시하며 재기에 나섰다.

넥스트스텝은 당시 가장 앞선 운영체제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가 인텔 칩과 손잡은 윈텔 진영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윈도가 애플의 매킨토시를 벤치마킹한 것이었던 만큼 잡스가 기술에서는 빌 게이츠를 앞섰지만 사업 수완에서는 한 수 아래였던 것이다.

세상에서 잊혀져 가는가 싶던 비운의 천재 잡스에게 기적처럼 기회가 왔다. 잡스가 방출된 후 세 번째 회장을 맡은 길버트 아멜리오가 잡스를 찾아왔다. 애플이 IBM에 계속 밀리면서 다른 곳에 팔려갈 수도 있다는 악소문까지 나돌자 회사를 살리기 위해 잡스에게 구조요청을 한 것이다. 잡스는 회사에서 쫓겨난 지 11년 만인 1996년 애플의 지휘봉을 다시 잡았다. 애플 신화를 쓰기 위한 ‘왕의 귀환’이었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vs 미래를 준비하라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제품을 창조해 세계를 놀라게 하곤 했다.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제품을 창조해 세계를 놀라게 하곤 했다.

‘천왕의 복위’든 ‘왕의 귀환’이든 중요한 것은 경영권을 잡은 이후 어떤 드라이브를 걸었느냐 하는 점이다. 아키오와 잡스는 전혀 상반된 혁신의 방향을 잡았다.

아키오가 비용절감으로 가격혁신을 이루는 구조조정을 단행한 반면, 잡스는 제품 개발과 품질 및 디자인 혁신을 위한 공격적 경영에 나섰다. 아키오는 도요타의 지휘권을 잡자마자 강력한 구조조정에 나섰다.

그는 취임 이후 “이번 금융위기는 100년 자동차산업에 처음 경험해보는 위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발언은 위기의 본질을 회사 내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외부 환경 탓으로 돌린 것이다. 아키오는 전 직원이 공유하는 명확한 비전을 내놓기보다 비용절감에만 열을 올렸다. 아키오는 “도요타가 핵심 경영이념인 ‘번영과 능률’에서 탈선해 길을 잃고 있다”며 전임 경영자들을 맹렬하게 비판했다.

아키오는 와타나베 가쓰아키(渡邊捷昭) 전 사장이 주창해온 ‘혁신제일주의’부터 과감하게 탈피하고자 했다. 가쓰아키는 생산 차종의 디자인 혁신과 생산 라인의 혁명적 변화를 추구해왔다. 아키오는 “그런 정책이 생산비를 상승시켰고 소비자가 도요타를 비싼 차라고 인식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 인식을 깨기 위해 가격정책을 다시 수립하라고 채근했다. 그것은 특히 도요타 차가 너무 비싸다고 느끼는 미국 소비자를 겨냥한 것이었다. 당시 <월스트리트 저널> 은 “귀공자가 도요타를 기본으로 되돌리고 있다”고 논평했지만, 그것은 어쩌면 낡은 정책으로 회귀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아키오는 북미와 일본 내 공장도 과감하게 구조조정했다. 과잉생산에 따른 폐단을 막겠다는 의도였다. 도요타가 경쟁력만 믿고 세계 1위 등극에만 치중해 지난해와 같은 급격한 경기 침체 시 발 빠른 감산 조치에 돌입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키오의 생각이었다. 도요타에서는 1950년 3000명을 해고한 이래 이렇다 할 대규모 구조조정이 없었다.

아키오가 일본 내 작업라인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은 거의 60년 만이었다. 아키오는 생산 공정도 정밀하게 진단했다. 태양전지를 장착하면서 기술적으로 더욱 복잡해진 ‘뉴 프리우스’의 조립공정을 비롯해 차체를 페인트 통에 담가 도색하는 값비싼 몇 가지 공정을 개선하려 했다.

아키오는 그 밖의 경비절감도 강조했는데 심지어 중역들이 출장 때 비즈니스석에 앉는 것조차 사치라며 이코노미석으로 낮추라고 지시했다. 14년 전 잡스가 애플로 돌아와 무엇을 했는지 되짚어 보자. 잡스 역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하지만 잡스가 주목한 것은 제품 가격이 아니라 제품 그 자체였다.

잡스는 가장 먼저 전임자가 개발한 저가 노트북 ‘이메이트(eMATE)’의 생산을 중단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성장엔진으로 삼을 만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데 전사적으로 집중할 것을 독려했다.


비용절감의 실패 vs 제품 혁신의 성공잡스는 회사를 살리는 유일한 길을 창의성에서 찾으려 했다. 당시 컴퓨터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다다르고 IBM을 비롯한 경쟁사들이 파격적인 가격인하로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는데도 잡스는 그에 편승하지 않았다.

가격을 낮추는 단기적인 처방 대신 조금 더 먼 곳을 내다보고 제품 성능과 디자인에서 혁신을 이루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신개념 PC ‘아이맥’에 이어 온라인 비디오 서비스인 퀵타임TV에 ABC와 디즈니 등 유력한 콘텐트 회사들을 추가로 참여시키며 인터넷사업 확장의지도 분명히 했다.

도요타가 사상 최대의 리콜 사태를 맞게 된 것은 아키오가 지나칠 정도로 비용절감을 추진한 탓이 적지 않다. 물론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납품가격을 깎아온 것은 아키오가 취임하기 훨씬 전인 2000년부터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기간에 30% 가까이나 절감한 비용이 가져올 부작용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이전보다 더 강력한 비용절감을 강행한 것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키오가 무리하게 원가절감을 추진한 결과 부품 품질을 관리하는 비용까지 아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번 리콜 사유는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도 페달이 그대로 있거나 너무 늦게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감속 제어가 제대로 안 되고, 특히 회전할 때 사고 위험이 크다. 전문가들은 부품 불량을 원인으로 추정한다.

가속페달과 연결 부위에 쓰인 소재가 예상보다 빨리 마모됐다는 것이다. 레이 러후드 미 교통장관은 의회에 출석해 “도요타가 안전불감증에 빠져 대규모 리콜을 단행하기 전까지 늑장 대응으로 일관했다”고 증언했다. 미 당국은 도요타의 결함 은폐 사실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도요타에 관련 서류 제출을 명령했다.
▎대규모 리콜 사태에 대해 사과하는 아키오 사장.

▎대규모 리콜 사태에 대해 사과하는 아키오 사장.

조사 결과 법률 위반 사실이 확인될 경우 최대 1640만 달러(약 188억원)의 제재금이 부과될 수 있다. 도요타는 60일 이내에 문서를 제출해야 하고 이에 불응하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

2000년 이후 총 원가의 30%를 삭감하는 극한의 비용절감을 목표로 아웃소싱을 확대하면서 품질관리의 핵심인 ‘도요타 생산방식’(TPS)을 저해했다. 그 결과 글로벌 생산시스템 전체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런데도 아키오는 취임 직후 이를 개선하기는커녕 비용절감을 더욱 강하게 추진했다. 아키오도 이제야 사태의 원인을 파악한 눈치다. 그는 최근 이렇게 밝혔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빠르게 성장가도를 달려오느라 품질관리를 위한 직원교육 등을 놓친 것이 있다. 이제까지 우리는 급격한 회사의 성장이 고객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마치 불가피한 것처럼 말했다.”

과도하게 국외 생산거점을 확대한 것도 리콜 사태의 주된 원인이다. 도요타는 지속적인 엔고와 무역마찰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개선하기 위해 국외 생산 비중을 2001년 33.8%에서 지난해에는 60.3%까지 늘렸다. 국외에서 생산·조달한 제품의 품질불량은 글로벌 생산 시스템의 주된 위험 요인이다.

현지 인력에 본사 생산 시스템을 완벽하게 전수하지 못하고 과도한 원가절감을 추진하거나 국외 부품기업의 납품단가 인하에만 주력해 품질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아키오와 달리 잡스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혁신을 가격이 아니라 제품과 품질, 그리고 디자인에서 만들었다. 잡스가 내놓은 작품들은 그동안 모두 히트했다.

잡스가 1997년 애플로 복귀해 10여 년 동안 출시한 제품들, 예컨대 매킨토시 컴퓨터 아이맥(iMac)과 MP3 플레이어 아이팟(iPod), 휴대전화 아이폰(iPhone) 등은 모두 각 분야에서 시장을 석권했다. ‘아이팟 신화’로 정상에 선 잡스는 지난 1월 말 평판형 컴퓨터인 ‘아이패드’를 공개하면서 또 한 차례 전 세계 정보기술(IT) 업계를 발칵 뒤집었다.

아이패드는 9.7인치 터치스크린을 장착한 두께 1.27㎝, 무게 680g의 슬림형 평판 컴퓨터로 게임·영화·음악·전자책(e북)은 물론 인터넷 검색과 이동통신까지 가능한 복합 정보통신 기기다. 휴대전화와 휴대용 컴퓨터에서 지원되는 대부분의 기능이 구현된다. 잡스의 전략은 적중했고, 애플은 회생의 길로 돌아섰을 뿐 아니라 계속 성장하고 있다.

1995년부터 3년간 내리 적자를 내던 애플의 경영실적은 97년 4분기부터 흑자로 전환됐다. 흑자행진은 계속되고 있다. 한때 4% 선까지 떨어졌던 애플의 미국 컴퓨터시장 점유율도 이제는 20%대를 돌파했다. 주가도 계속 올랐다.


보수적 집단주의 vs 창조적 엘리트주의아키오 집권 이후 도요타에서는 학연과 파벌에 의한 조직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1960년대에 도요타의 실세그룹을 형성하고 있던 이른바 ‘3K’가 다시 부활했다는 것이다. 당시 3K는 ‘게리(경리) 담당, 고바이(구매) 담당, 고베상대’ 출신이 주요 요직을 장악했다는 것을 두고 나온 말인데, 지금은 고베상대 대신 아키오가 나온 게이오대가 새로운 K로 등장했다고 한다.

파벌이 형성되고 사내에서 정치적 논리가 판을 치면서 그동안 여기저기서 불거져온 위기의 징후들이 있었음에도 그것이 아키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던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능력과 실적을 중시하는 글로벌 기업의 합리적인 조직문화에서는 용납되기 힘든 보수적인 의사결정이 위기를 불러왔는지도 모른다.

아키오는 사태를 해결하는 데도 보수적인 입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눈치다. 그는 미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미 의회 청문회에 직접 출석해 리콜 사태의 원인이 된 품질 결함 문제를 설명하고 현지 고객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해온 미 의회와 현지 언론, 소비자들로부터 적지 않은 비난에 직면했다.

▎국내 아이폰 출시 현장 모습.

▎국내 아이폰 출시 현장 모습.

아키오는 “적절한 시기에 미국을 방문해 현지 고객들에게 사과할 계획이지만 이번 청문회에는 지원 역할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차량 결함을 은폐한 사실이 없고 품질 개선 의지도 뚜렷하다면 왜 사장이 직접 미 의회 청문회에 참석하지 않느냐”는 일본 현지 기자들 질의가 잇따랐다.

아키오와 그를 따르는 경영진이 보여주는 보수성과는 대조적으로 잡스는 자신과 직원들에게 창조성으로 무장하라고 강조해 왔다. <뉴욕타임스> 는 “철저한 엘리트주의와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잡스의 경영철학이 21세기 기업의 성공 신화를 다시 쓰고 있다”며 “인터넷 시대의 시대정신은 ‘집단지성’과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통하지만 잡스는 정반대의 길을 주창해 애플을 성공가도에 올려놓았다”고 평가했다.

잡스는 임직원에게 언제나 “다르게 사고하라”고 역설한다.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고 개발할 때는 집단적인 의견보다는 신념과 직관, 그리고 창조성을 따를 것을 주창해 왔다. 잡스는 “위대한 제품은 기호의 승리이며 기호는 공부와 관찰, 그리고 인간이 만든 최고의 것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그것을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접목하는 문화에 젖을 때 나온다”고 정의했다.

액정 디스플레이와 컴퓨터 본체의 일체화와 디자인의 아름다움이 양립할 수 없다고 고민하던 공업 디자이너에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구성요소는 당신의 충실에 있다.” 그래서 잡스는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를 중시해 왔다. 잡스는 “정말 탁월한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및 매니저는 그냥 뛰어난 사람보다 10배 더 뛰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애플을 창업했고 애플의 성공을 주도해온 잡스는 비전 제시에서부터 사소한 제품 개발 단계까지 곳곳에 관여했다. 세계 자동차업계 1위를 달리던 도요타가 500만 대 리콜로 급정차하면서 전 세계 36만 직원의 구심점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황태자 아키오는 등극 1년도 안 돼 최대 위기를 맞았다.

2년 연속 적자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전문경영인 체제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아키오가 들으면 섬뜩하기까지 할 <도요타가 사라지는 날> 이란 책을 쓴 오니즈카 히데아키(鬼塚英昭)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도요타의 ‘프리우스’마저 미국에서 팔리지 않게 되었다고 쓰곤 했다. 도요타의 수뇌부는 2008년 4~5월 무렵까지 시장을 낙관적으로 보았다. 이제 많은 사람, 특히 미국인은 겨우 빚을 얻어 차를 사는 행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어려운 분석도 금융 공학도 철학도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답은 다음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이 변했으니 자동차는 팔리지 않게 되었다.’”

잡스가 강조하는 애플사의 비전은 혁신적 제품으로 현실을 바꾸는 것이다. “경쟁사와 비슷하거나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 가격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생활이 우리 제품으로 보다 좋게 바뀌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다.”

잡스가 아이팟을 개발할 당시 주변에선 너무 고가여서 실패할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대히트 상품이 됐다. 가격과 전통적 효율에 지나치게 몰두했던 아키오와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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