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엔진 달고 톱5 향해 달린다
글로벌 엔진 달고 톱5 향해 달린다
지난 1월 4일 오전 10시 시무식이 열린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사옥 2층 대강당. 서울에 60년 만에 큰 눈이 내렸지만 현대·기아차의 차장급 이상 간부 직원들은 이미 출근을 마친 상태였다. 500여 명의 임직원이 담소를 주고받는 가운데 정몽구 회장이 사뭇 긴장된 모습으로 단상에 올랐다.
지난해 금융위기 여파 속에서도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 부담 없는 시무식을 기대했던 임직원들은 아연 긴장했다. 정 회장은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세계시장 점유율 확대, 지속적 품질 향상을 통한 소비자 인식 변화 등 세계 일류기업으로 부상할 수 있는 초석을 닦았다”며 “이를 바탕으로 2010년을 현대자동차그룹의 새 역사를 창조하는 해로 만들자”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보다 15% 신장한 540만 대를 판매해 확고한 ‘글로벌 톱5’를 굳히자”고 강조했다. 이날 시무식에 참석한 한 고위 간부는 “회장님께서 올해도 어김없이 특유의 공격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열심히 뛰자는 메시지가 전달된 시무식이었다”며 “10년 동안의 공격 경영에 이젠 판매를 늘리는 것 이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다. 다행스럽게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는 도요타·혼다 등 경쟁사들이 최근 대규모 리콜을 하면서 반사이익도 점쳐지는 분위기다.
현대·기아차는 이런 반사이익이 아니더라도 글로벌 톱 수준에 올라선 품질과 마케팅, 그리고 ‘하면 된다’는 정신력으로 초일류 자동차 회사를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도요타 리콜 사태가 파장을 더하면서 정몽구 회장의 경영철학인 ‘품질 최우선주의’는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미 미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차와 기아차의 브랜드 이미지는 상당히 높아진 상태다. 지난해 100년 만에 처음이라는 세계 자동차산업의 침체 속에서 현대·기아차는 유독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뒀다. 현대차의 경우 매출은 소폭 줄었지만 영업이익과 영업이익률이 사상 최대치에 근접했다.
기아차는 매출과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등 지표에서 모두 사상 최대치를 돌파했다. 지난해 원화가치 하락이라는 우호적인 환율과 정부의 10년 이상 노후차 교체 세제 지원 등을 감안해도 이런 실적은 기초 체력이 좋아진 결과라는 게 업계 평가다.
현대·기아차는 올해 세계시장에서 총 540만 대의 자동차를 판매, 국내 및 해외시장을 합해 약 85조원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이럴 경우 도요타·폴크스바겐·GM·르노-닛산에 이어 포드와 글로벌 톱5를 다툴 것으로 보인다.
100년 만의 불황에도 지난해 최고 실적현대차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수출 감소와 마케팅 비용 증가에도 불구하고 전년 대비 19% 늘어난 2조2350억원으로 2005년 2조3000억원 이후 최대다. 영업이익률도 7%로 전년의 5.8%에 비해 1.2%포인트 높아지며 2004년 이후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매출은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소폭 감소해 전년 대비 1% 감소한 31조8593억원을 올렸다.
경상이익과 순이익은 중국·인도 등 해외공장의 실적 개선에 따른 지분법 이익까지 늘면서 전년 대비 각각 111%, 105% 증가한 3조7813억원과 2조9615억원으로 집계됐다.
미국에서 좋은 실적을 올린 것은 실직자 보상 프로그램과 수퍼보울 및 타임스스퀘어 광고 등 적극적인 판촉, 마케팅 프로그램을 가동하면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미국 ‘빅3’의 몰락으로 생긴 공백을 상당 부분 메웠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시장을 집중 공략한 것도 주효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전년 대비 94%(약 25만 대) 증가한 57만300대를 판매하며 도요타를 제치고 중국 순위 4위로 올라섰고, 중국 공장의 지분법 이익은 3110억원으로 전년보다 391%나 늘어났다. 인도에서도 판매 대수는 14.4%, 매출은 28.7%나 증가했고, 공장도 859억원의 지분법 이익을 반영하면서 흑자로 돌아섰다.
현대차는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올해도 공격 경영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글로벌 점유율 향상에 힘써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5% 벽을 돌파한 5.2%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5.4%까지 높일 방침이다. 올해 3월 미국에 첫선을 보이는 YF쏘나타를 중심으로 미국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4.6%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아차의 목표인 3.2%를 합치면 7.8%로 닛산을 따돌리고 GM·도요타·포드·혼다·크라이슬러에 이어 6위권에 진입한다는 것이다. 현대·기아차의 강점은 기존 선진 시장인 미국·유럽 이외에 떠오르는 신흥시장인 중국·인도에서 호조를 보인다는 데 있다. 현대·기아차는 중국(합계 9.8%), 인도(현대차 20.6%)에서는 이미 톱3에 진입한 상태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현대·기아차에 대한 이미지는 ‘저가형 차’였다. 그러나 불과 10년 만에 두 회사의 주력 차종들은 세계 곳곳을 누비는 명차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세계가 인정하는 품질력과 철저한 사후 관리로 국내외의 평가가 좋다.
세계 자동차 역사 바꾼 해외공장 확충지난해 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차기업인 GM이 파산보호 신청을 했고, 크라이슬러는 피아트에 인수되는 등 세계 자동차 업계의 지도가 바뀌었다. GM·포드 등 거대 공룡 자동차기업들의 몰락은 기존 자동차 시장의 경쟁구도에 변혁을 불러왔다. 현대·기아차는 2001년 이후 해외 생산기지 확충에 나섰다.
2011년 말이면 해외에 연산 350만 대의 생산기지를 확보하게 된다. 세계 자동차 역사상 가장 빠른 시간에 300만 대가 넘는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한 자동차 업체가 되는 것이다. 이럴 경우 국내와 합치면 650만 대로 도요타·GM에 이어 세계 3위권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전 세계 주요 권역별로 생산 거점을 구축하는 작업이 2012년이면 마무리된다.
연산 60만 대가 넘는 해외 거점은 중국(130만 대), 인도(60만 대), 미국(60만 대), 유럽(60만 대)이다. 나머지는 브라질(15만 대), 터키(15만 대), 러시아(10만 대)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 가운데 연산 300만 대가 넘는 해외 공장을 보유한 업체는 도요타·GM·폴크스바겐그룹 등 3개에 불과하다.
폴크스바겐이 사실상 단일 시장인 동유럽 지역에 대부분 공장을 갖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현대·기아차의 해외 공장 확충은 기네스북에 오를 수준이다. 요코하마국립대 조두섭 교수(경영)는 “1970년대 미쓰비시자동차에서 기술을 배웠던 현대차가 불과 40년 만에 세계 최대 규모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한 것은 자동차뿐 아니라 다른 산업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해외 현지경영 정착이 과제 급격히 덩치가 커짐에 따라 현대·기아차에 현지 경영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글로벌 초일류 자동차 업체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시장에 걸맞은 현지화된 자동차를 내놔야 한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시장 소비자는 미국·유럽 등 선진시장 소비자의 선호도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인도는 소형차이면서도 터번을 쓸 수 있도록 차가 높아야 한다.
중국은 80년대 유행처럼 번쩍거리는 크롬을 외관에 잔뜩 달고 엔진 배기량에 비해 덩치 큰 자동차가 인기다. 국내에서 90년대 유행한 1500㏄ 로열 프린스와 스텔라 같은 넓은 차가 호응이 좋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이미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시장에 이어 중국·인도 등에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했다.
현지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전략 차종을 개발하는 글로벌 R&D 네트워크를 구축한 상태다. 300만 대의 국내 생산시설을 기반으로 중국, 인도, 미국, 체코, 터키 공장에서도 현지 고객 요구에 맞는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현대차 인도 공장에서는 2008년 10월부터 아토스 후속 경차인 ‘i10’에 이은 두 번째 유럽시장 전략차종인 ‘i20’을 생산하고 있다.
i20은 유럽 디자인센터에서 디자인한 유럽풍 스타일과 각종 안전사양 및 편의사양을 두루 갖춘 유럽 전략형 프리미엄 콤팩트 카다. 글로벌 생산기지 구축에 따른 국제 분업 형태다. 나고야 주쿄대 전우석 교수(경영)는 “현대·기아차는 글로벌 생산기지 구축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면서 비교적 생산비가 싼 터키 공장에서 생산해 유럽에 공급하는 국제 분업 형태를 도입했다”고 평가했다.
이와 더불어 지난해 11월부터 체코 노소비체 공장을 가동해 준중형(C세그먼트)차인 ‘i30’을 유럽에 공급하고 있다. 향후 유럽 소비자가 선호하는 차를 현지에서 개발해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는 얘기다. 중국은 현대·기아차 글로벌 거점의 핵심이다. 해외 공장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연 130만 대 생산(2012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 소비자의 기호를 반영한 중국형 쏘나타 ‘링샹’과 중국형 아반떼 ‘엘라트라 위에동’을 각각 개발해 지난해 ‘대박’이 났다. 지난해엔 전년 대비 판매 신장률이 무려 50%를 넘었다.
러시아 공장이 가동되는 올해 말에는 경기도 화성시 남양연구소와 미국, 유럽의 R&D센터와 함께 개발에서부터 생산,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권역별로 현지 고객의 특성에 맞는 차량을 판매하는 ‘글로벌 현지밀착 경영’ 체제 완성 단계에 들어간다.
여기에 조만간 연산 30만 대 규모의 기아차 미국 조지아 공장이 완공된다. 기아차 관계자는 “미국시장에서 2001년 연간 판매 20만 대 돌파 이후 꾸준한 판매 증가를 보이고 있다”며 “조지아 공장은 기아차가 미국 판매에서 50만 대 고지를 돌파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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