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앱 붐 속 상대적 박탈감
모바일 앱 붐 속 상대적 박탈감
한 중견 게임회사 해외마케팅 팀에 근무하는 정모(29)씨는 요즘 출근이 즐겁다. 게임 개발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예전과는 달리 부드러워졌다.
메신저를 통해 서로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친분 있는 기자나 파워블로거에게 이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정씨가 앱스토어 사업을 부업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발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올릴 수 있도록 개발자를 지원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도 제공한다. 이익은 ‘적당히’ 나눠 갖기로 했지만 돈보다는 자신의 일을 하는 즐거움이 더 크다.
애플 앱스토어, 구글의 안드로이드 마켓 등 스마트폰 소프트웨어 오픈마켓이 직장에 소속된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다. 개발자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측면에서 지원하는 마케팅 전문가도 생겨났다.
스마트폰의 응용소프트웨어인 애플리케이션이 국내에 알려진 지 불과 6개월 만에 개발자는 물론이고 삼성전자·KT 등 대기업, 심지어 정부까지 나서서 모바일 세계에서 꿈을 찾으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제는 중견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도 속속 모바일용 애플리케이션을 내놓으면서 동참하고 있다.
정부, 모바일 콘텐트 확대에만 관심이를 바라보면서 쓴웃음을 짓는 개발자도 있다. 오랫동안 PC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온 베테랑 개발자, 중소형 개발업체다. 소프트웨어가 힘이라며 힘을 실어주겠다던 정책 담당자들이 이제는 ‘모바일 대세론’을 들고 나오는 것을 보면서 배신감마저 느낀다. 개발자가 자신이 만들고 싶은 소프트웨어를 마음껏 만들 수 있어 좋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정부의 지원정책까지 모바일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IT업계의 판을 흔들 킬러 콘텐트는 정작 PC 소프트웨어인데 한국이 조금씩 경쟁력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게 이들의 고민이다. 세계 IT시장에서 소프트웨어는 전체 시장 규모의 30%인 1조 달러를 2008년 넘어섰다.
반도체 시장의 4배, 휴대전화 시장의 6배다.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 규모도 정품 사용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면서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외국 소프트웨어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80%에 육박한다. PC용 소프트웨어 오픈마켓인 ‘프로그램 베이’를 운영하고 있는 3년차 개발회사 두리온은 2008년 11월 베타서비스를 시작해 올해 1월 ‘애플리케이션 오픈마켓 서비스’ 특허를 취득했다.
이경석 두리온 사장은 “최근 모바일을 향한 비정상적인 수준의 쏠림 현상은 소프트웨어 시장 전체로 봤을 때 득보다는 실이 크다”며 “1등인 애플의 틀 안에서 움직이는 건 개발자들이 편한 길을 선택하는 추세 때문”이라고 말했다.
모바일 대세론에 경고하고 나선 이들은 아직 스마트폰 보급률이 낮지만 PC 보급률은 훨씬 높고 운영체제(OS)나 문서작성 등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을 포함하면 아직까지 PC 시장이 훨씬 크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모바일 플랫폼 개발을 스마트폰으로 할 수는 없다. PC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지난해 4월 방송통신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 행정안전부는 모바일 인터넷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형 무선 인터넷 표준 플랫폼인 위피(WIPI)를 폐지해 아이폰 등 해외 스마트폰의 도입을 서두르기 위한 계획이었다. 이 계획에는 이동통신 매출액 중 데이터 매출 비중을 40% 이상으로 높이고 모바일 콘텐트 사업을 3조원 이상으로 확대하며 모바일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비율을 40%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방안도 담았다.
위피 폐지는 관련 업계의 반발로 6개월 이상 연기됐지만 결국 시행돼 지난해 말 아이폰이 들어왔다. 크게 히트하면서 아이폰의 모바일용 소프트웨어 시장인 앱스토어가 급격하게 주목 받았다. 애플리케이션으로 연간 7억원의 수익을 올린 개발자의 성공신화도 회자됐다. 삼성전자, SK텔레콤, KT 등은 독자적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스토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각 업체들이 참여하는 수퍼 애플리케이션 스토어도 연이어 등장했다. 마침표는 정부가 찍었다. 지식경제부와 행정안전부, 중소기업청은 지난달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만들겠다’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 지원센터를 출범했다.
KAIST 소프트웨어정책연구센터 김진형 소장이 구상해온 모바일 개발자 양성 프로그램은 정부가 참여하면서 올해에만 전국에 100개의 앱센터를 만들 계획이다. 앱센터는 모바일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모이는 오프라인 공간이다.
이곳에서 개발자들은 기술 정보를 공유하고 모바일 소프트웨어 개발 교육과 훈련을 받는다. 들어가는 예산도 적게는 수십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들이 모바일 개발자 양성을 위해 들이는 예산도 지자체별로 수억원대다.
국내 굴지의 소프트웨어 업계 경영자들은 모바일 대세론이 흐름에 맞는다는 의견이다. 솔루션 개발업체 지란지교소프트의 오치영 사장은 “10년 전 인터넷 붐이 일었을 때처럼 (모바일) 쏠림현상이 일어났다”며 “당시 많은 기업이 거품처럼 사라졌지만 그곳에 역량이 집중됐기 때문에 구글, 네이버 같은 인터넷 대기업들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오 사장은 이를 시대의 흐름으로 봤다. 15년 전에는 여러 명이 한 대의 컴퓨터를 나눠 썼고 지금까지는 한 명이 한 대의 컴퓨터를 쓰는 시대였다면 앞으로는 한 명이 스마트폰을 비롯해 여러 대의 컴퓨터를 쓰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시대’로 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오 사장은 “대세는 모바일”이라고 단언하며 “다만 시장이 형성되는 데 최소 3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지란지교소프트는 1994년 만들어져 지난해 매출 130억원을 기록한 중견 소프트웨어 회사다. 국내 개발자의 선구자인 드림위즈의 이찬진 사장은 “최근 1년간 PC 소프트웨어를 산 적이 있느냐”고 반문하며 “OS와 오피스 프로그램과 같은 기업용 PC 소프트웨어를 포함하면 PC 시장이 크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PC 소프트웨어 시장은 사실상 없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이찬진 사장은 “PC의 기업용 소프트웨어와 모바일의 애플리케이션을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PC 소프트웨어 시장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 현재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PC 소프트웨어 개발 방치할 순 없어지난해 7월 프로그램 베이에 PC용 영어학습 프로그램 ‘똑똑이’를 올린 이현철(34)씨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국내 중견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에서 개발팀장을 지냈지만 열악한 개발환경과 저임금에 사표를 냈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만든 영어학습 프로그램, 주가분석 프로그램을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판매한 돈으로 와인바를 열었다.
하지만 프로그램 개발이 좋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PC용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두리온 측에서 PC 소프트웨어 오픈마켓을 연다는 e-메일을 보내오자 그는 이를 기회로 여겼다. 화면전환을 빠르게 시켜줘 사생활을 지켜주는 ‘눈치코치’라는 프로그램은 1년 이용료가 6000원이다. 이씨는 이 프로그램 하나만으로 프로그램베이에서 석 달 새 매출 500만원을 넘겼다.
그는 두리온과 매출을 5 대 5로 나눈다. 매출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오픈마켓에 내야하는 판매 수수료는 줄어든다. 이씨는 “능력 있는 개발자라고 해서 모두 회사를 세울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경영자 입장에서는 모바일 등 수익원을 다원화하고 정책 지원을 받는 일이 중요하겠지만 일반 개발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모바일 개발보다는 PC용 소프트웨어를 더 잘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이씨는 소프트웨어 5종을 판매 중이고 주가분석 소프트웨어 등 앞으로도 꾸준히 PC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오픈마켓에 올릴 생각이다. 그는 “그동안 마땅한 유통채널이 없어 많은 개발자의 좋은 아이디어가 사장됐던 게 아쉽다”고 말했다.
이경석 사장은 “앱센터니 하는 정부 정책은 결국 1등인 애플을 따라 하는 2등 전략”이라며 “한국은 이제 소프트웨어 분야의 후진국이 됐다”고 주장했다. 이 사장은 “규모가 작은 소프트웨어에서 시작해 기업용, 운영체계 등 정말 큰 PC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1등을 만들어야 한다”며 “개발자의 의지와 정부의 PC 소프트웨어 진흥정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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