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해외입양의 빛과 그늘

해외입양의 빛과 그늘

▎지진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아이티 어린이들.

▎지진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아이티 어린이들.

아이티와 칠레 지진으로 수천 명의 어린이가 고아가 되면서 국제입양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일단의 미국인 선교사가 아동 인신매매 혐의로 체포된 뒤에도 아이티의 고아들이 조금씩 꾸준히 국경을 넘는다. 300여명의 아이티 어린이가 프랑스 가정에 입양됐으며 미 국무부 추산으로는 3월 말까지 2000명 가까운 아동이 미국인 입양 부모의 품에 안기게 될 전망이다.

어린이 유괴혐의 사건의 여파로 아이티와 미 당국 모두 심사를 강화한 덕분에 그런 어린이 중 대다수가 아동 인신매매 피해자가 아니라 합법적인 고아로 인정받을 듯하다.

그래도 고아가 된 어린이를 다른 나라로 데려가는 행위는 그 나라의 가장 소중한 자산을 강탈하는 짓이며 입양아들은 민족성에 큰 혼란을 겪고 부유한 서방인들의 알량한 동정심만 충족시킨다는 비판은 가라앉지 않을 듯하다(때로는 문화적 대학살이라는 거창한 용어까지 동원된다).

국제입양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걸핏하면 미국에도 고아가 많다는 점을 들어 그 아이들을 입양하는 편이 더 간편하고 비용이 적게 든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으레껏 “자신들과 전혀 다르게 생긴 아이들을 입양하려고” 애쓰는 ‘백인 미국인들’의 동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마치 해외입양을 모색하는 모든 부모가 어떻게든 안젤리나 졸리처럼 되려고 애쓰는 듯 말이다. 그런 주장의 배경에는 씻어내야 할 고질적인 오해가 몇 가지 있다. 그러나 먼저 내 경험담부터 이야기하겠다. 내 부모는 유산이 계속되고 국내입양에도 실패하자 콜롬비아 메데인의 쓰러져가는 고아원에서 언니, 쌍둥이 오빠, 나를 데려왔다. 1970년대 후반이었는데 그때 우리는 갓난아기들이었다.

둘은 조산아에 몹시 병약했다. 부모님은 정성스러운 간호로 우리의 건강을 되찾아줬다. 그 뒤 뉴저지주의 근로자 계급이 사는 교외 주거지로 데려왔다. 그리고 곧바로 본격적인 가정교육에 착수했다. 특히 근로윤리, 하느님에 대한 믿음, 맛 있는 라자냐를 음미하는 법 등을 가르치는 데 정성을 들였다.

하지만 그 중에 콜롬비아 특유의 문화는 없었다. 달리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다. 우리 동네에 언니, 오빠와 나를 제외하면 콜롬비아 인은 서너 명뿐이었다. 우리의 민족성을 알려줄 뚜렷한 표본은 없었다 해도 우리 자아상을 형성할 다른 준거 기준은 많았다. 우리는 뉴저지주 노동자계급 가정의 자녀였다.

우리는 아일랜드계와 이탈리아계 미국인 간호사, 배관공, 매장 점원 자녀들 속에서 성장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독특한 미국식 가정교육의 모든 의식을 거쳤다. 그리고 대다수 해외입양아처럼 아무런 문제 없이 성장했다. 분명 우리의 문화적 특성에는 중대하고 좁히기 어려워 보이는 골이 몇 가지 있다.

중학교 때 우리 동네로 이사온 콜롬비아 친구들과 친해지려고 무척 노력했지만 특별한 공통점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와 나이가 같았던 한 여자아이에게 “나도 콜롬비아 사람이야” 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아이는 미소를 짓더니 스페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아이는 영어로 “너는 어디에서 왔니” 라고 물었다. 내가 “메데인”이라고 대답하자 그 아이는 웃으며 “아냐”라고 말했다. “분명 그럴 리 없어.”훗날 내 쌍둥이 오빠(언니나 나보다 피부색이 더 검다)는 종종 인종차별적 수사대상이 되곤 했다.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됐지만 우리 셋 모두 운전면허(또는 투표권자 등록을 하거나 대학 장학금 신청)를 취득하려면 복잡하고 오랜 시일이 걸리는 귀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우리는 이민자이자 소수인종이었다(그래도 그런 일은 많지 않았다). 양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이탈리아계로서의 경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팔레르모나 1950년대 브루클린 벤손허스트에서 자란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메데인 사정보다 더 잘 알지만 내 스스로 콜롬비아계라고 부르기가 쑥스러울 만큼이나 이탈리아인이나 이탈리아계라고 하기에도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상관 없다. 민족적 유산을 잃었다 해도 입양으로 주어진 수많은 기회를 통해 그 이상의 보상을 받았다.

게다가 나의 문화적 카멜레온 같은 측면이 어느 정도 마음에 든다(태생은 콜롬비아인, 부모는 이탈리아인, 성장은 미국인). 내가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내 경험이 흑인 또는 아시아계나 피부색이 더 검은 히스패닉과 똑같다고 억지를 부리지는 않겠다. 인종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도 말하지 않으련다.

그러나 인종이나 민족이 입양부모, 외국 정부, 또는 사회 전반의 일차적인 관심사가 돼서는 안 된다. 대상 아동의 복지가 최우선 고려사항이 돼야 한다. 그 아이들이 어디로 가야 행복하고 만족스런 삶을 살아갈까? 글로벌 공동체가 어떻게 그들의 건강과 안전을 가장 잘 보장할까? 미국의 경우, 인종과 민족이 고려할 가치는 있지만 입양을 결정짓는 요소가 돼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연방정부가 입장을 정리한 지 상당한 세월이 흘렀다.

수많은 연구 결과, 다른 인종이나 문화의 가정으로 입양되는 어린이가 국내의 같은 인종 입양아보다 심리적 문제나 정체성 문제에 맞닥뜨릴 위험이 더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인정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백인 부모는 정서적으로 건강한 흑인·아시아계·히스패닉계 어린이를 양육할 역량이 있다.

다른 나라의 아동을 입양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들이고 싶거든 “미국 내에서 입양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다수 입양부모들의 동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입양부모가 마음 속 깊은 곳의 박애정신에서 입양을 선택한다면 합리적인 사람은 외국 어린이의 더 큰 고통과 국내 어린이의 훨씬 더 적은 고통 중 어느 쪽을 덜어주는 게 중요한지 따져보게 된다.

1977년 콜롬비아의 경우 9~10세까지 입양되지 않은 어린이는 길거리를 배회했다. 여자아이들은 주로 몸을 파는 여자가 됐고 남자들은 게릴라 집단에 들어가거나 코카인 농장의 일꾼이 됐다. 반면 같은 세대의 미국 고아들은 18세까지 음식·숙소, 그리고 일정 형태의 교육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실상 대다수 입양부모의 사정은 내 부모와 비슷하다.

임신이 불가능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간절히 아기를 기르고 싶어한다. 미국의 경우 입양 조건을 갖춘 고아의 60%가 5세 이상이다. 제3세계 유아의 공급은 자연발생적인 과정이 아니라 서방 입양시장의 수요에 따른 반응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물론 서방의 수요가 없으면 아동 인신매매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동 인신매매를 제외하더라도 미국 내보다 해외에서 입양할 유아가 훨씬 더 많다(유엔아동기금과 미국 보건복지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미국 내의 경우는 6만 명 미만인 반면 해외는 660만 명). 국제입양은 비용이 많이 들고(많은 경우 최대 4만 달러) 시간도 오래 걸린다(평균 1~3년). 다른 문화나 민족의 자녀를 양육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과 복잡성을 모두 따져볼 만큼 충분히 긴 기간이다.

즉흥적으로 가볍게 결정하는 과정이 결코 아니다. 실상, 대다수 부모는 미국내 입양을 시도했다가 번번이 좌절을 겪은 뒤에야 국제입양을 선택한다. 친부모가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꾼다든가, 국내 입양기관이 내건 조건이 엄격하고 때로는 자의적인 등 국내입양의 걸림돌은 부지기수다.

말이 나왔으니 얘기지만 일부 유명인의 널리 보도된 입양이 국제입양 붐을 촉발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오히려 특히 미국 내 국제입양은 2004년 2만5000건 안팎에서 2009년 1만3000건 이하로 급감했다. 지금은 사상 최저수준이다. 피임수단의 보급확대, 세계적인 아동 인신매매 단속, 그리고 상당수 국제입양 고아의 출생지인 러시아나 중국 같은 곳의 경제여건 호전 덕분이다.

요즘엔 국제입양 부모들이 입양자녀의 문화유산 의식을 보존해주려고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경우가 많다. 내가 콜롬비아에서 입양될 당시와는 크게 달라졌다. 하버드대의 한 조사에 따르면 다른 인종의 어린이를 받아들인 부모의 15%는 입양 후 더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동네로 이주한다.

같은 인종의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하도록 하려는 의도에서다. 많은 부모는 해당국 언어나 요리강습을 받고 더 많은 사람이 자녀 출생국 이민자 사회를 찾아가 그들의 문화를 직접 체험한다. 일부는 자녀들과 함께 국제입양 기관들이 마련한 ‘모국 투어’에 참가한다. 동시에 한국·중국 등지의 성인 입양아들은 전국적 조직을 결성해서 모국방문 활성화와 이중국적을 인정받으려는 로비활동 등을 펼친다.

아이티 고아들만 그렇게 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할 만한 이유가 없다. 물론 이들은 일관성 있는 인종적·민족적 정체성의 형성을 가로막는 장벽에 맞닥뜨리게 된다. 다른 국가나 인종에게 입양된 어린이는 거의 모두 그런 일을 겪는다. 그러나 그런 장벽이 반드시 뛰어넘기 어렵거나 반드시 심성을 황폐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결국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이가 어디 태생이냐가 아니라 인종이나 국적에 상관 없이 책임감 있는 부모의 손에 충분히 사랑받고 보살핌을 받느냐는 점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쓰레기 아냐?” 정비공이 치운 ‘맥주캔’…알고 보니 ‘미술품’

2‘국감 증인대’ 오른 스노우 대표...‘AI 외설 합성 논란’ 진땀

3 노벨 물리학상에 존 홉필드·제프리 힌튼

4탈모 치료제 '자살 충동유발 가능성' 제기...유럽당국 검토 착수

5국감서 배달앱 집중포화…오영주 장관 “상생 방안 마련할 것”

6 ‘UAE 토후국’ 샤르자 왕자, 네이버 ‘각 세종’ 방문…중동 사업 ‘훈풍’

7"중국배추 괜찮을까..." 김장철 앞두고 업계·소비자 고민↑

8포항시 "동해가스전 탐사시추, 지진 발생 가능성 낮아"

9영주 가흥신도시, 아이들 웃음꽃 피는 어린이테마공원 개장

실시간 뉴스

1“쓰레기 아냐?” 정비공이 치운 ‘맥주캔’…알고 보니 ‘미술품’

2‘국감 증인대’ 오른 스노우 대표...‘AI 외설 합성 논란’ 진땀

3 노벨 물리학상에 존 홉필드·제프리 힌튼

4탈모 치료제 '자살 충동유발 가능성' 제기...유럽당국 검토 착수

5국감서 배달앱 집중포화…오영주 장관 “상생 방안 마련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