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물전쟁 서막 … 포스코 독주 제동 걸까
쇳물전쟁 서막 … 포스코 독주 제동 걸까
지난 4월 8일 오후. 충남 당진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준공식장. 이명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축사를 통해 “1970년 포항제철(현 포스코)이 철강 한국의 첫 불을 붙이고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오늘 당진에 일관제철소가 준공됨으로써 대한민국 철강 산업의 새로운 미래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 축사에 앞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현대차 그룹은 쇳물에서 자동차에 이르는 세계 최초의 ‘자원 순환형 사업 구조’를 완성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제2고로가 완성되는 시점에서 현대제철은 연간 2000만t의 조강 능력을 보유한 세계적인 철강 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준공은 우리나라 철강 시장 재편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수년간 글로벌 철강 업체들이 국경 간 기업 인수합병(M&A), 설비 증설 등을 통해 몸집 불리기 경쟁을 했지만 국내 시장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포스코라는 거대 업체가 시장을 사실상 좌지우지했기 때문. 하지만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준공으로 국내 시장에서도 이른바 ‘쇳물 전쟁’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쇳물을 뽑는 제철 사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철광석을 고로(高爐)에서 녹여 쇳물을 뽑아내는 고로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고철(철스크랩)을 전기로(電氣爐)에서 녹여 쇳물을 만드는 전기로 제철이다. 그간 국내에서는 포스코만 고로를 가지고 있다 보니 국내 시장은 포스코 중심의 과점 체제가 유지됐다.
하지만 현대제철의 고로 사업 진출로 자연스레 이 구도가 깨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제철 고로 사업의 최대 강점은 그룹 내에 수요처가 있다는 것이다. 현대제철은 고로에서 나오는 쇳물로 열연강판(핫코일)을 만든다. 이것이 현대하이스코로 넘어가 자동차용 강판을 비롯한 냉연제품으로 만들어지고 다시 현대·기아차의 자동차 생산에 투입된다.
현대차그룹은 쇳물부터 자동차 최종 제품까지 그룹 내에서 일괄 생산 체제를 갖추게 된다. 이런 시장 구도에서 포스코는 자동차 강판 등 고부가가치 제품 시장에서 현대제철과의 일전에 대비해야 하는 처지다. 포스코가 현대제철 고로 준공식 이틀 전 광양제철소 내에서 자동차 강판 핵심원료인 고순도 페로망간(Fe-Mn) 생산 공장 착공식을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현대제철 일괄 생산체제 갖춰현대제철 고로 준공 이전에도 시장 변화 움직임은 여러 곳에서 포착됐다. 먼저 동국제강의 후판 공장 증설을 들 수 있다. 올 3월 동국제강은 고품질 조선용 후판 상업 생산에 본격 착수했다. 상반기 중 월 10만~12만t 규모의 최대 생산 체제를 가동, 올해 안에 충남 당진공장에서 100만t의 후판을 공급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동국제강은 경북 포항공장 생산량(260만t)을 합해 총 360만t의 후판을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번 당진공장의 후판 상업 생산을 계기로 동국제강은 만성적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조선업계에 후판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 후판 시장은 국내 공급이 부족해 지난해 연간 430만t에 달하는 물량이 수입됐다.
동국제강이 당진공장에서 연 100만t의 후판을 생산하게 되면 8000억원 상당의 수입 대체 효과와 무역수지 개선 등에 기여하게 된다. 동부제철이 지난해 11월부터 당진공장에서 전기로를 본격 가동하게 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로써 동부제철은 쇳물에서부터 열연강판, 냉연강판을 생산하는 일관제철 사업에 진출하게 됐다.
동부제철의 일관제철 설비는 고로 방식이 아닌 전기로 방식이지만 냉연강판 전문업체가 쇳물 시장에 진출한 것은 철강업계에서 보기 드문 예다.
도전이자 기회 직면한 포스코동부제철은 당진공장 가동률을 100%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올해 생산 목표인 250만t을 달성하겠다는 것. 현재 가동률은 90% 수준이다. 동부제철 당진공장은 연산 300만t 열연강판을 생산할 수 있어 단일 전기로 공장으론 세계 최대 규모다.
유진투자증권의 철강 담당 김경중 애널리스트는 “그간 글로벌 철강업계가 기업 M&A 등으로 변화의 소용돌이를 겪은 반면 국내 시장은 상대적으로 무풍지대에 놓여 있었다”며 현대제철의 고로사업 진출 등으로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이어 “이런 시장 환경에서 특히 포스코의 역할이 주목된다”고 덧붙였다.
시장 지배력을 잃은 포스코가 다각적인 변화를 시도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포스코가 최근 조직 개편을 단행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포스코는 2월 말 기존 1실 5부문 체제의 조직을 전략기획 총괄 등 3총괄 3부문으로 대폭 개편했다. 사실상 그룹체계로 전환해 23개 계열사 중심으로 그룹 전체를 컨트롤할 전략기획 담당 조직을 신설한 것이다.
이상춘 포스코 홍보팀장은 “조직 통합으로 생산과 마케팅 간 의사소통이 원활해져 고객의 목소리가 제품에 반영되는 속도가 빨라졌다”고 전했다. 포스코는 그동안 독점적 시장 지배력을 내세워 국내 고객에게 ‘갑’으로 통해왔다. 독보적인 사업 능력을 앞세워 고객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이 내부 감사에서 지적되기도 했다.
포스코 안팎에서는 조직 개편 이후 마케팅 담당 직원뿐만 아니라 생산 담당자까지도 고객 지향적 마인드를 갖추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포스코가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도 본격적인 경쟁 구도로 접어드는 국내 시장을 의식한 것으로 분석된다. 포스코는 올 5월 말까지 카이로 사무소와 동서남아 판매 법인을 신설해 수출 시장의 경쟁력을 더욱 높일 계획이다.
또 포스코는 이미 ‘제품 생산은 시장 근처에서’라는 현지화 전략을 펼치며 현재 12개국에 41개의 철강 가공 센터를 운영 중이다. 김경중 애널리스트는 “국내 철강 시장 환경 변화는 포스코로서는 도전이자 기회”라면서 “국내 철강업계의 맏형 격인 포스코가 국내 철강 산업의 경쟁력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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