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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엔 내 얼굴 책임지고 싶었다

서른엔 내 얼굴 책임지고 싶었다

링컨은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서른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리라’-고교 시절 링컨 미 대통령의 자서전을 읽고서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이 한 결심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세가 기울어 중학교를 중퇴했고, 전자제품 기술자로 일하다 검정고시를 쳐 일반계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여전히 경제적으로 쪼들렸지만 ‘나 그렇게 못난 놈 아니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절박했던 시절 읽은 링컨 대통령의 자서전에서 ‘40세가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40대 얼굴 책임론을 접했습니다. 빨리 뭔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이 이야기를 30세 책임론으로 수정했죠.”

국내 벤처기업 1호 비트컴퓨터를 창업한 조현정(53) 회장을 바꿔놓은 한 문장은 링컨의 40대 얼굴 책임론을 수정한 30세 책임론이다. 검정고시는 시험 83일을 앞두고 독학을 했다. 한여름단열도 안 되는 블록 벽돌집 골방에서 헌책방서 구한 교재에 매달렸다. 엉덩이가 짓물러 방바닥에 앉을 수가 없었다. 베개 위에앉아 엉덩이를 바닥에서 떨어뜨렸다. 그렇게 공부해 서울 용문고에 들어갔고 졸업 후 인하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3학년 때 비트를 창업한 그는 이립(而立)을 갓 넘긴 나이에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 1면에 한국에서 기술 기업 붐을 일으킨 청년 사장(boy president)으로 대서특필됐다. 서른에 세계적인 언론으로부터 난사람이라는 공인을 받은 셈이다.

창업 당시 시간이 소중했던 그는 24시간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찾다가 서울 청량리 맘모스호텔에 방을 잡았다. 여기서 그는 직원 두 명과 하루 17시간씩 일했다. 사업은 잘됐고, 생활이 나아지자 얼굴이 망가질 일도 없었다.



촌음을 아껴 최고 전문가 되다30세에 얼굴에 책임을 지겠다는 전략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는 대학 시절 세 가지 전술을 고안해 냈다. 평생 몸담을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고, 그러기 위해 주어진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는 한편 그렇게 치열하게 살더라도 도덕성을 잃지 않겠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대학 때 이미 일류 기술자 소리를 들었지만 원 오브 뎀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로서는 전인미답이었던 소프트웨어 분야를 선택했죠. 일주일이면 하루 반의 시간을 교회 생활에 할애하는 것이 아까워 그 후로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신을 부정한 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20대에제 시간을 축내던 낭비 요소를 다 제거했어요. 아침 일찍 교직원 통근버스를 타고학교에 갔고, 밤늦게 다시 통근버스에 올랐습니다. 창업 후엔 세금을 제대로 내기위해 고객인 의사들의 반발을 무릅쓰고예외 없이 세금계산서를 발행했어요.”

그는 일찍이 의료정보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했다. 당시만 해도 환자의 80%이상이 일반 환자였고 병원에서는 진료비를 현금으로 받았다. 의사들의 소득이노출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일부 의사는비트의 프로그램을 내장한 컴퓨터를 구입하면서 세금계산서 받기를 꺼렸다.

조회장은 “그 시절 세금계산서를 안 끊었다면 컴퓨터 몇 대는 더 팔았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렇게 자기 시간을 확보하려 애썼지만 군복무는 한쪽 귀가 안 들리는데도 우겨서 했다. 미 카네기멜런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장남도 귀국해 군복무를 마쳤고, 시력이 나빠 공익 판정을 받은 차남은 눈 수술 후 현역 판정을 받고서 오는 8월 입대한다. 그로서는 도덕성을 지키기 위한 결정들이었다. 그는 큰아들이 2년의 공백을 딛고 복학한 후 우등생이 됐다고 털어놨다.

“군대 가기 전엔 우등생 아니었습니다. 흔히 한창 공부할 나이에 생기는 공백 때문에 군에 가기를 꺼리는데 그 공백이 마이너스인 것만은 아니에요. 과거 제가 군대를 간 것이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입대를 권하지 않았겠죠. 미국 영주권도 있는 애들인데요.”

영주권자를 자원 입대시키고 공익감을 현역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아버지도 대단하지만 이런 부모의 요구를 수용하는 자식들도 예사롭지 않다.

“아버지가 평생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니까 순종하는 거죠.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대로 근면성실하고,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전문가로 평가 받는다면 사실 자식들이 따르지 않을 이유도 없습니다.”

그는 서른 이후 10년 주기로 삶의 목표를 설정했다. 30대엔 다른 사람들과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비트교육센터를 만든 목적 중 하나도 조현정 한 사람 대 n이 아니라 n 대 n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13만 명에 이르는국내 소프트웨어 개발자 중 비트교육센터 출신이 8100명을 넘는다. 이들은 평생 취업률 100%다.

그는 국부 창출에 대한 비트교육센터 출신 개발자들의 기여도를 1조8000억원 규모로 추산했다. 40대엔 상생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에 주력했다. 그 일환으로 장학재단을 만들고 모교에 건물도 지어 기증했다. 50대에 들어선 후로는 멘토링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청년들의 멘토로서 스펙 관리에 매달리는 요즘 젊은 세대가 안타깝다.

“스펙 관리보다 스킬 연마에 힘써야 합니다. 기업들이 스펙 보고 사람 뽑는 것 아닙니다. 스펙 좋다고 프로그램 잘 짜는 거 아니잖아요? 무엇보다 학점, 토익 등 스펙을 높이는 데는 꼬박 4년이 걸리지만 스킬은 1년만 열심히 하면 쌓을 수 있어요. 지금 취업난이 심각하지만 소프트웨어 분야는 구인난을 겪고 있습니다.

논어에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이야기는 인문학이 학문의 중심이던 2500년 전에 통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 말에서 ‘습’을 ‘용(用)’으로 바꿔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쓰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로 패러디합니다. 지금은 이공계가 득세하는 실용사회예요. 스펙 경쟁을 포기하고 스킬을 높이면 우리 사회의 실업률을 절반 수준으로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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