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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칼라 ‘개미족’의 눈물

화이트칼라 ‘개미족’의 눈물

중국 간쑤성(甘肅)성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난 궈일레이(26)는 대학을 졸업하고 베이징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한다. 언뜻 봐서는 현대 중국인의 성공사례로 여겨진다. 주급이 70달러가 넘으니 중국 기준으로 보면 돈도 꽤 버는 편이다. 하지만 그건 일이 있을 때 얘기다.

실직 상태인 그가 다시 일자리를 얻으려면 몇 개월이 걸릴지 모른다. 현재 그는 베이징 외곽의 악취 풍기는 빈민가 탕자링(唐家嶺)의 2.8평짜리 쪽방(월세 90달러)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산다. “학교 다닐 때는 ‘지식이 새로운 삶을 여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을 믿었다”고 궈는 말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고 난 뒤론 그 말을 반신반의하게 됐다.” 약 100만 명에 이르리라고 추정되는 궈와 같은 처지의 젊은이는 현재 중국에서 급속히 늘어나는 화이트칼라 하층계급이다. 1990년대 이후 중국 대학들은 입학생 수를 두 배로 늘렸다. 대졸자 일자리 시장의 규모를 훨씬 앞지르는 수준이다.

올해 중국 대학과 기술학교들은 대략 630만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대다수가 빈곤한 농촌에서 성장해 지방의 2~3류 대학을 나온 젊은이다. 그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면 부모 세대보다는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막상 대학을 졸업하고 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려 할 때는 큰 벽에 부닥치게 된다.

똑똑하고 활동적인 그들은 ‘보다 나은 삶’의 약속이 거짓이 아닐까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다. 요즘 중국에서는 이런 젊은이들을 ‘개미족(蟻族)’이라고 부른다.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와 가난한 생활조건, 아무리 노력해도 뜻한 대로 성취하기 힘든 상황을 빗댄 말이다.

“개미족은 야망이 큰 반면 실질적인 기술은 거의 없다”고 중국 런민(人民)대 사회학자 저우샤오정은 말했다. 심각한 사회불안을 야기할 가능성이 다분한 상황이다. 현재 제조업 분야에서 불안감이 고조된다. 공장의 파업 노동자들이 임금인상뿐 아니라 단체교섭을 위한 대표 선출권을 요구하고 나섰다.

중국 정권에 심각한 정치적 도전을 제기할 만한 요구다. 개미족 사이에서 고조되는 불만은 한층 더 위협적이다. 최근 중국 블루칼라의 임금은 치솟은 반면 화이트칼라의 임금은 사실상 줄어들었다. 대졸자 공급과잉 탓이다. 화이트칼라의 불만은 임금 삭감뿐이 아니다.

비현실적으로 낙관적 경향을 보이는 중국의 공식적인 노동 관련 통계에 따르면 졸업 후 일자리를 얻는 대졸자의 비율이 전체의 87%다. 다시 말해 중국 정부도 대졸자의 8분의 1이 일자리를 아예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또 일자리를 얻는다 해도 원하는 분야가 아닌 경우가 많다.

베이징의 개미족 약 3분의 1이 ‘개인업체의 판매사원’으로 고용된다. 엔지니어링 전공자들이 베이징의 컴퓨터 도매상에서 싸구려 전자제품 판매원으로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탕자링은 예전엔 인구 3000명 정도의 조용한 농촌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인구가 5만 명으로 급증했다.

젊은 불완전 취업자(자기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만한 직장이 아닌 자리에 취업한 근로자)들이 지저분하고 비좁은 골목의 쪽방으로 모여들었다. 베이징에만 이런 개미족 집단주거지가 여섯 군데나 된다. 저우는 사회불안을 야기할 잠재성으로 보면 개미족이 공장 근로자들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경고한다.

대졸자들은 지난 30년 동안 중국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농민공(農民工·농촌 출신 도시노동자)보다 미래에 대한 기대 수준이 훨씬 더 높다. “개미족은 교육 수준이 높고 외국어를 구사할 뿐 아니라 인터넷 지식도 풍부하다”고 저우는 말했다. “정부는 이런 특성이 문제의 씨앗이 될까 우려한다. 그들이 자신의 생활조건에 불만을 품고 운동을 시작한다면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와 같은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들 개미족이 본격적인 운동을 조직하는 조짐은 아직 없다. 하지만 그들은 배경과 목적이 비슷할 뿐 아니라 운동에 필요한 기술도 지녔다. 네이멍구대를 졸업한 뒤 탕자링에 거주하면서 몇 달 동안 일자리를 찾다가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안정적인 직장을 잡은 왕레이는 이렇게 말했다.

“탕자링 거주자들과 전우애 같은 동지의식을 느낀다. 탕자링에서 알게 된 친구들을 평생 만나면서 긴밀한 유대를 유지할 생각이다. 우리는 똑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은 중국 지도자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개미족이 매우 유동적이며 감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소작농이나 농민공 같은 농촌 출신의 다른 세력들과 합세해 운동을 벌인다면 통제가 매우 어렵게 된다.

개미족은 아직까지는 부자가 되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일례로 왕은 자신의 고향 출신으로는 최초로 소프트웨어 사업가가 되려는 꿈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하루에 세 시간씩 걸려 통근을 하며 월급 200달러에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한다. “도시에서 배울 것을 모두 배우기 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왕은 말했다.

“내 회사를 차리고 아파트를 사겠다.” 그는 현재의 상황으로 봐선 자신을 행운아라고 여긴다. 그의 대학 동창생과 이웃 몇몇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못해 월급 100달러 남짓을 받고 공장 경비원으로 일한다. “나는 공장 경비원으로 일하려고 부모님이 저축한 돈을 축내가면서 대학 교육을 받은 게 아니다”고 왕은 말했다.

하지만 개미족도 결국은 인내심을 잃게 될지 모른다. 중국 정부는 그럴 경우에 대비해 문제의 싹을 미리 잘라내려 한다. 당국은 2011년까지 탕자링의 기존 건물들을 완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다 쓰러져가는 건물들이 주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건물 사이사이로 어지럽게 얽힌 전기선들로 화재의 위험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6억 달러 규모의 재개발 사업을 위해 철거 작업이 시작됐다. 이 재개발 사업으로 합법적인 베이징 시민(개미족은 합법적 거주자가 아니다)들을 위한 저가의 임대주택이 들어서게 된다.

소형 버스들이 탕자링의 주민들을 베이징 교외의 다른 마을들로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그런 마을들에선 농부 출신의 주민들이 새로 이주하는 개미족에게 작은 방을 세놓는다. 탕자링에 거주하면서 LED(발광 다이오드) 칩 판매원 일자리를 구하는 장즈펑(24)은 “이미 많은 사람이 그 쪽으로 이주했다”고 말했다.

“그 곳의 방들은 창문이 없는 경우가 많아 여기보다 더 열악하다. 하지만 인터넷 속도는 더 빠르다. 인터넷 이용자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개미족은 적응력이 뛰어나다. 중국 지도자들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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