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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eme sports - 중년 남성들 극한 스포츠에 푹 빠졌다

extreme sports - 중년 남성들 극한 스포츠에 푹 빠졌다

▎지난해 7월 서해 격렬비열도를 항해 중인 허영만 화백을 비롯한 집단가출호 대원들.

▎지난해 7월 서해 격렬비열도를 항해 중인 허영만 화백을 비롯한 집단가출호 대원들.



지난 18일 오전 10시 통일로에서 가까운 삼송역 부근. 머리에서 발끝까지 산악자전거용 옷차림으로 무장한 중년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제일 날렵해 보이는 사람은 만화 식객으로 유명한 62세의 허영만 화백이다. 등산으로 다져진 강단 있는 몸매였다. 뒤이어 나타난 정상욱(55) 노스페이스 상무는 헬멧과 고글에 산악자전거용 신발까지 갖췄지만 저 몸으로 과연 가능할까 싶게 풍성한 몸매였다. 허 화백을 주축으로 모인 이들 일곱 명은 2003년 백두대간 32구간을 함께 종주하며 결성한 ‘침낭과 막걸리’(산악인 박영석, 사진작가 이정식, 목수 겸 칼럼니스트 송철웅, 고층빌딩 유리창닦이 임대식 외 20여명)의 회원들이다. 백두대간에서 하늘을 이불 삼아 비바크(무텐트 야영)를 하고 막걸리를 즐기던 인연을 이어가며 해마다 ‘일’을 벌인다. 올해는 산악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할 계획이다. 오늘은 준비운동차 대 여섯 시간 고양과 양주 일대의 야산을 돌 작정이다.




허 화백은 얼마 전 바다 위에서 자신의 62번째 생일을 맞았다. 그가 13명의 동료와 함께 무동력 세일링 요트를 이용해 한반도 근해 바닷길(총 3075km를 항해했다)을 누비던 때였다. “지난해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쉬던 차에 새로운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라 술자리에서 제안했다”고 그가 말했다. “백두대간 산길을 종주했으니 이번엔 바닷길로 한반도를 돌아보고 싶었어요. 주위에선 요트여행이 호사스럽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무동력 요트를 타고 바람에만 의존해 항해를 했던 터라 모질게 고생했어요.” 실제로 항해 도중 위험천만한 상황과 수차례 맞닥뜨렸다. “독도 부근에서는 앞을 분간하기 힘든 한밤중에 거센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힐 뻔했다”고 그가 말했다. “정말 죽는구나 생각할 정도로 아찔한 순간이었지요.” 서둘러 돛을 내리려 했지만 고장이 나는 바람에 칼로 로프를 끊어 위기의 순간을 넘겼다.




선장인 허 화백을 포함해 ‘집단가출호’에 승선한 중년남성 14인은 경기도 화성시 전곡항에서 시작해 남해의 마라도와 욕지도를 거쳐 동해 삼척항까지 동행했다. 대원들 중에는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거센 파도에 이가 부러지고 손에 큰 상처를 입은 이들도 있었다. 허 화백에게 가장 기억에 남았던 뱃길은 어디였을까? “삼척항에서 울릉도, 독도를 돌아오는 길은 43시간의 험난한 항해였어요. 울릉도·독도는 여객선을 타면 3시간이면 다녀오지만 무려 14시간 동안이나 파도와 사투를 벌여야 했어요. 춥고, 배고프고, 거기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동료와 함께 고생하면서 바다와 싸워 이겨냈다는 점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1년 동안 12차례 항해에 나서면서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허 화백과 동행했던 정 상무가 말했다. 그는 “평균 1박 2일로 29시간씩 항해를 하다 보니 팔뚝 힘이 좋아지고 인내력에도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북서풍 11노트(초속 약 6미터)에 몸을 싣고 한반도 주변 바다를 일주한 그들의 탐험여행은 지난 5월 무사히 끝났다. 생사를 넘나드는 여행이 끝난 지 불과 몇 개월이 지났지만 그들은 다시 몸이 근질근질했나 보다. 산악자전거 전국 일주를 생각해 냈으니 말이다.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에서 번지점프를 하고 싶다.” “코스타리카 해안에서 카이트보딩을 해보고 싶다.”




요즘 중·장년층 남자들의 ‘버킷 리스트(bucket list: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의 목록)’에는 각종 모험여행과 함께 극한 스포츠(extreme sports)들이 쉽게 눈에 띈다. 우리 주변에서도 나이를 먹으면서 자신의 몸의 한계를 시험하듯 모험여행과 극한 스포츠를 즐기며 자신감을 되찾으려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김인수(53)씨는 항공스포츠 중 가장 난이도가 높다고 알려진 스카이다이빙을 11년째 즐긴다. 김씨는 최근 이 위험천만한(?) 스포츠에 고등학생인 아들까지도 끌어들였다. 서울 메트로에서 27년째 일해온 김씨는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그는 “장애를 극복하고 생활에서 자신감을 찾는 데도 이 운동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긍정적인 생각이 몸이 배다 보니 지하철 승무원으로서 고객을 만나는 태도도 바뀌었단다. 스카이다이빙 전도사로 동호회를 이끄는 김씨는 “안전수칙만 제대로 지킨다면 이보다 더 안전한 스포츠도 없다”고 말했다. 최근 중장년층 동호인이 급속도로 늘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200여 명 회원 가운데 50~60대가 절반이 넘는다고 한다.

▎(왼쪽부터) 스카이다이빙을 즐기는 김인수씨(왼쪽), 여름 스포츠로 각광 받고 있는 패러글라이딩, 암벽등반 동호회 더탑의 유석재 강사.

▎(왼쪽부터) 스카이다이빙을 즐기는 김인수씨(왼쪽), 여름 스포츠로 각광 받고 있는 패러글라이딩, 암벽등반 동호회 더탑의 유석재 강사.



이광신(54)씨는 7년 전 사업차 동남아를 방문했다가 카이트보딩을 처음 알게 됐다. 카이트보딩은 자연바람을 이용한 운동이어서 윈드서핑과 비슷하다. 하지만 보드 길이가 짧아서 카이트(연)를 다루기가 더욱 힘들다. “두 다리와 두 팔에 온 힘을 실어야 하는 전신운동이기 때문에 활동적인 중년 남성들에게 좋다”고 이씨가 말했다. 그에 따르면 카이트보딩협회 600여 명 회원의 40% 이상이 40대 이상 중·장년 남성들이다.


패러글라이딩의 경우는 TV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서 김성민을 비롯한 연예인들의 도전이 방영되면서 일반 동호인들이 크게 늘었다. 패러글라이딩, 행글라이딩 강습가인 날개클럽 대표 윤청(50)씨는 “토요일, 일요일 남양주에서 지상교육과 비행연습을 하는데 50대 이상 중년층의 참가율이 매우 높다”며 “지난주엔 50대 커플이 세 쌍 찾아왔다”고 말했다.




극한스포츠가 남성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잠실의 스포츠클라이밍 암벽등반장에는 40~50대 여성들의 기합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주말에는 실내 암벽등반을 하려고 지방에서 이곳까지 원정 연습을 오는 사람도 있다. 스포츠클라이밍은 체력소모가 크고 다소 위험하지만 주 연령층이 40~50대라고 한다. 실내에서 배워 주말에는 동호회원들과 함께 실제 암벽등반을 나간다. “힘이 들고 위험한 스포츠이기 때문에 짜릿함과 보람도 크다”고 더탑의 클라이밍 강사 강세원씨가 말했다. “클라이밍은 전신운동이 필요한 운동이기 때문에 허리, 배 등 근력이 강화돼 중년 나이에 특히 좋다”고 그가 덧붙였다.




레저와 스포츠를 즐기는 중·장년층이 늘어남에 따라 유통업계도 관련 레저스포츠 상품을 내놓기에 바쁘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60대 이상 고객들의 레저스포츠 상품구매 건수가 2~3년 전에 비해 갑절 이상 늘었다고 한다. 특히 60대 이상 노년층의 구매 증가세는 더욱 두드러져 암벽등산화와 등산재킷 등 아웃도어용품 판매가 200%가량 늘었다. 60대 이상 고객 비중은 전체 8.4%이지만 1인당 구매액은 매년 230% 이상 증가했다.




북한산 인수봉 암벽등반을 자주 한다는 이정임(41)씨는 “암벽에 매달려 있는 분들이 대부분 50~60대 나이의 장년·노년층이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원정 온 한 노년 암벽가와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장년층들이 함께 암벽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나도 자신감을 얻었다”고 이씨는 말했다. 젊고 활력 넘치는 OPAL족(Old People with active Life)들이 있어 올여름은 더욱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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