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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ry, Steve Jobs?

Sorry, Steve Jobs?

▎삼성전자가 6월 2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안드로이드폰 ‘갤럭시S’의 글로벌 론칭 행사를 열었다.

▎삼성전자가 6월 2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안드로이드폰 ‘갤럭시S’의 글로벌 론칭 행사를 열었다.



지난해 11월 말 국내에 출시된 아이폰이 불과 열흘 만에 10만대나 판매되는 등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자 가장 당황한 쪽은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였다. 단순히 아이폰 돌풍이 예상밖으로 거셌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이폰은 2007년 6월 미국에서 출시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끈 당대의 아이콘이었다. 상대적으로 출시가 지연된 한국시장의 경우 늦어진 시간만큼이나 대기수요가 응축돼 있던 상황이었다.

삼성을 곤혹스럽게 한 것은 아이폰의 판매량이 아니라 ‘그동안 삼성은 뭘 했느냐’는 외부의 따가운 시선이었다. 애플이 아이폰을 앞세워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해 가는 동안 도대체무엇을 생각하고 준비했느냐는 질책이었다.이 같은 분위기는애플을 세계 최고의 혁신기업으로 끌어올렸지만 삼성은 과거의성공신화에 안주하는 기업이라는 이분법으로까지 몰고 갔다.삼성은 기존의 하드웨어 전략에 골몰한 나머지 소프트웨어와콘텐트를 중심으로 하는 미래 전략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에 이렇다 할 만한 비전이나 대응전략도 선뜻 내놓지 못했다.

급기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까지 나서 “아이폰 같은 혁신적 디바이스가 한국에서 먼저 나오지 않은 것은 큰 유감”이라며삼성전자의 판단착오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일까지 생겨났다.글로벌 휴대전화 시장에서 1위 노키아를 턱밑까지 추격하며 점유율을 넓혀 가던 삼성으로선 뼈아픈 일격이 아닐 수 없었다.여기에다 삼성과 LG의 프리미엄 제품은 해외시장에서 아이폰에 밀려 수익성이 급전직하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 될수록, 주변 시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한국 업체들은 탁월한 성능에 세련된 디자인을 입혀 내놓은 프리미엄 폰들에 연전연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이건희 회장 복귀로 스피드 경영 재점화삼성의 당혹감은 극에 달했다. 부품과 세트의 공존이라는, 절묘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당분간 적수가 없을 것이라는자신감도 자취를 감췄다. 올 1분기에 달성했던 사상 최대 영업이익도 스마트폰 전략 부재에 대한 우려로 빛이 바랬다. 삼성내부는 뒤숭숭했다. 젊은 직원들은 회사 몰래 아이폰을 사용하며 애플이 네트워킹해 놓은 애플리임원들사이에서는 애플의 애플리케이션 전략을 그대로 따라갈 것이냐, 아니면 또 다른 차별화 전략이 필요할 것이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거듭됐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시점과 맞물렸다. 이 회장의 전격적 복귀에 스마트폰 전략의 혼란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인지는확인할 길이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회장이 엄청난 위기감을 갖고 경영일선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그의 복귀 일성은 “10년 안에 삼성이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였다. 글로벌 IT시장에서 애플의 비약적 질주가 없었더라면 이 같은 위기감은 엄살(?)이나 복귀를 위한 명분으로치부됐을 터였다.이 회장은 빠른 속도로 휴대전화 사업전략을 재정비해 나갔다. 우선 삼성이 내부 자원을 총동원해 애플 아이폰과 ‘똑같은’기기를 만들 수 있느냐를 점검해볼 것을 지시했다. 이어 국내외시장을 통틀어 소프트웨어 및 콘텐트 인력 3000명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삼성 조직은 특유의 기동성을 살려 기민하게움직였다. 곳곳에서 전문인력들을 영입하고 운영체제(OS)를 비롯한 휴대전화의 기본적 구동규칙과 얼개를 짜나갔다. ‘바다’라는 독자 OS가 있긴 했지만 전 세계 소비자를 상대로 규모의 경제효과를 구현하기 위해선 범용성이 강한 구글의 OS(안드로이드)탑재가 적격이라는 판단이 섰다.



갤럭시S는 반애플 진영의 선봉장그로부터 2개월여가 지난 6월 8일 삼성이 야심 차게 내놓은 갤럭시S가 일반에 공개됐다.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잡스가 아이폰4를 발표하던 날짜에 정확하게 맞춘 시점이었다. 노키아도 손을 놓고 있던 천하의 애플을 상대로 ‘한번 붙어 보자’며 선전포고했다.

하지만 전 세계의 이목은 갤럭시S가 아니라 아이폰4에 쏠렸다. 행사장에는 전날 오후 10시부터 중계차들이 몰려들었고, 많은 매체가 발표 과정을 인터넷으로 생중계(라이브 블로깅)했다.잡스가 내놓은 아이폰4는 아이폰3의 약점으로 지적된 멀티태스킹(동시작업)을 가능하게 했고 배터리 수명도 늘렸다. 화질도 4배나 선명해졌다.갤럭시S 발표장은 한국 언론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무대에 올라선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 하성민 SK텔레콤 사장, 앤디 루빈구글 부사장 등 ‘반(反)애플 동맹’ 3사 대표들의 표정엔 자신감이가득했다.

신 사장은 “삼성의 20년 휴대전화 사업 역량이 녹아들어간 스마트폰”이라며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말했다. 삼성은 스펙만큼은 어떤 폰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갤럭시S는 두께가 9.9㎜에 불과하고 4인치 수퍼 아몰레드를탑재했다. 웬만한 애플리케이션은 기본으로 탑재했다. 추가로필요한 앱은 안드로이드마켓 T스토어, 삼성 앱스토어 등에서살 수 있도록 했다.

삼성은 갤럭시S 출시와 동시에 전 세계 120개에 달하는 이동통신사와 판매 계약을 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석 달여의 짧은

시간임에도 실로 대담하면서도 전격적인 마케팅 능력을 보여줬다는 평이다. 신 사장은 이들 통신사와 함께 매월 100만 대 이상

을 판매하겠다고 장담했다. 7월 16일엔 스마트폰의 본고장이자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 입성했다. 갤럭시S는 미국에서 이동통

신사 T-Mobile을 통해 ‘바이브런트(Vibrant)’라는 이름으로 본격 판매되기 시작했다.

▎애플 최고 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7월 1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본사에서 아이폰4의 수신 이상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애플 최고 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7월 1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본사에서 아이폰4의 수신 이상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한국에서 하루 2만 대꼴로 무섭게 팔려 나가는 갤럭시S는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시넷과 GSM아레나 등 전 세계 IT 관 갤럭시S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휴대전화” “현존 최고의 모바일 디스플레이를 갖춘 안드로이드 진영의 리더”라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미 미국 버라이즌과 영국 보다폰, 프랑스 오렌지, 독일 도이체텔레콤, 일본NTT도코모 등 각국 대표 통 갤럭시S를 100만 대이상 선주문했다.

독일 최대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갤럭시S는 아이폰 킬러’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삼성의 갤럭시S가 애플에 두려움이란 감정 가르쳐주고 있다”며 “스티브는 조심해야 할 것(Steve,pass auf!)”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고화질(HD)급 사진과 동영상 촬영 기능을 갖춘 갤럭시S는 안드로이드 진영에 새로운레퍼런스가 되고 있다”며 “애플 팬이라 할지라도 400유로(62만원) 정 최신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갤럭시S의 가치에 대해선 생각을 달리해 봐야 할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한마디로 삼성전자의 2 휴대전화 역량의 결정체인 데다 최고 수준의 사양과 최신 플랫폼을 탑재한 만큼 안드로이드폰의 대표주자로서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아이폰4 비틀대지만 방심은 금물상황이 이렇게 되자 아이폰의 거침없는 질주에 움츠러들었던 안드로이드 진영은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었다”며 잔뜩 고무돼 있다. 그동안 안드로이드 진영을 괴롭혔던 가장 큰 문제는 아이폰 같은 ‘킬러 디바이스’의 부재였다. 그렇다 보니 좋은 플랫폼

을 갖고도 디바이스를 중심으로 한 IT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애를 먹어왔다. 만약 아이폰을 능가할 히트 모델을 내놓지 못한다

면 안드로이드 진영에 모여 있는 개발자들이 이탈할 공산이 크고, 그것이 휴대전화 판매 정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

이 크다는 우려감도 팽배했다.

이런 측면에서 갤럭시S는 ‘타도 애플’의 선봉장 역할을 해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애플의 아

이폰4가 데스그립(수신율 저하)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어서 갤럭시S의 탁월한 성능은 상대적으로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

스티브 잡스는 7월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안테나 수신 불량결함이 제기된 아이폰4를 사용하는 모든 소비자에게 보호 케이스를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미 케이스를 구매한 고객에게는 구입비를 돌려주기로 했다. 잡스는 이 같은 조치에 만

족하지 못하는 고객에겐 앞으로 30일 내에 환불해 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잡스가 문제를 해결하는 타이밍을 놓친데다 제품 하자에 대해서도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여 많은 소비자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고 꼬집는다. 최근에는 선임 안테나 기술자들이 초기 설계 단계에 수신 불량 가능성을

제기했던 것으로 알려져 도덕성 문제까지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300만 대 이상 팔려 나간 아이폰4가 갤럭시S에 쉽사리 최고 자리를 내줄 것으로 보는 것은 섣

부른 관측이다. 애플은 여전히 중천에 이글거리는 태양이고, 삼성은 이제 막 뜨는 해다. 안드로이드 진영의 선봉장이라고는 하

지만 구글과 삼성의 이해관계가 언제까지 일치될 수 있을지도 단언할 수 없다. 디바이스의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하는 내수시장

도 미국에 비해 너무 작다.

과거 저 멀리 앞서 나가던 도시바·소니·파나소닉을 차례로 따라잡았던 삼성의 역량을 떠올려 보면 갤럭시S의 성공 가능성을 크게 점쳐 볼 수 있지만 문제는 언젠가 스마트폰 시장도 블루오션이 아니라 과열경쟁이 빚어지는 레드오션으로 변할 것이라

는 점이다. 이미 LG전자, 모토로라 등 전통의 강자들뿐만 아니라 팬택까지 이 시장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애플이 그동안 보

여준 혁신에 비춰볼 때 스마트폰 경쟁의 끝 무렵에 아이폰을 능가하는 또 다른 킬러 디바이스를 내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

다. 전쟁은 이제 막 총성을 울렸을 뿐이다. 세상의 흐름에 뒤처지는 자가 경쟁에서 탈락하는 시대는 지났다. 세상을 선도하지

못하면 지는 시대다. 애플도, 삼성도 예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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