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 날릴 19m 포스코 '허공의 한숨'
1조원 날릴 19m 포스코 '허공의 한숨'
1조2000억원이 들어간, 그것도 거의 다 완공한 새 공장을 철거할 수 있을까? 언뜻 말도 안 되는 이 물음을 놓고 1년째 줄다리기를 하는 곳이 있다. 포스코가 2008년 8월 착공한 포항 신제강공장이다.
올 9월 완공 예정이던 공장은 언제 다 지어져 정상 가동될지 알 수 없다. 벌써 1년째 공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공사는 공정률 93%에서 완전 중단됐다.
최근 찾아간 포항 신제강공장 내부와 주변은 몇몇 공사 인력만 눈에 띄었고 한산했다. 공장 내부에는 자재가 흩어져 있었다. 주변에는 흔한 덤프트럭 한 대 다니지 않았다. 공장 상층부는 푸른색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고도제한에 걸린 ‘문제의 19m 부분’이다. 공장 관계자는 “그래도 내부공사는 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완전 중지됐다”고 말했다. 멀리서 보면 화려하고 장대한 새 공장은 포스코뿐 아니라 포항 지역 경제의 골칫덩어리가 됐다.
포스코가 의욕을 갖고 투자에 나선 신제강공장 논란은 한마디로 방만행정이 낳은 결과다. “1조원짜리 고철”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1조원짜리 고철?지난해 6월, 해군 6항공전단은 발칵 뒤집혔다. 이 부대가 관할하는 포항공항에서 2㎞ 남짓한 곳에 건립 중인 건축물이 고도제한을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상 건축물 높이가 66.4m로 제한된다. 포항공항은 군·민 겸용 공항이다.
당시 신제강공장은 골조 공사를 마친 상태였다. 높이는 85m였다. 고도 제한을 19m 정도 초과한 것. 해군 6전단은 자체 조사를 벌여 비행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신제강공장을 불법 건축물로 규정했다. 군은 포항시에 허가 취소 및 건물의 원상 회복을 요구했다. 군으로서는 당연한 조치다. 같은 해 8월 포항시는 공사 중지 처분을 내렸다. 단, 고도제한인 66m 아래 공사는 허용했다. 당시 60%였던 공정률이 그나마 93%까지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다. 제한에 걸린 66m 이상 상층부 집전시설은 이후로 손도 대지 못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인허가권을 가진 포항시 측은 “비행안전구역에 대한 규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선허가를 내줬다”며 실수를 인정했다. 하지만 이미 1조원 넘게 투자된 새 공장을 허물 수는 없는 일. 포스코와 포항시는 군에 공사가 재개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비행 안전에 이상이 없으면 완화 규정에 따라 건축허가가 가능하다’는 국방부 법률검토 의견서를 바탕으로 진정도 냈다.
군은 강경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전임 장관(당시 이상희 장관)이 명백한 법률위반 행위자이자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에 법대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행정대집행’ 얘기도 나왔다고 한다. 행정대집행은 행정법 의무를 이해하지 않을 경우 강제 집행하는 제도다. 관련법은 비행안전구역 내 불법 건축물은 퇴거 요구에 불응하면 강제로 철거하거나 이전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고도제한 완화를 요구하는 지역 여론이 거세자 국방부는 12월 해군 6전단에 재검토를 지시한다. “건축물 설계변경 여부와 새로운 기준을 적용해 허용할 수 있는 높이를 재산정하라”는 것이었다.
직후 군 합동조사단이 현장에 파견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당시 실사단이 포스코 측에 설계를 변경해 높이를 낮추거나 지하화하는 방안을 질의했지만 포스코 측이 제철 공정 특성상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결국 군은 ‘건축 허용 불가능’ 결론을 내렸다. 이후 군은 지역 여론과 국가경제를 감안해 사태 해결의 여지를 남겼다. 국방부는 지난 2월 국회 보고를 통해 비행안전영향 평가 후 건축 허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공은 국무총리실로 넘어갔다. 포항시가 국무총리실 산하 행정협의조정위원회에 행정 조정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8개 정부 부처 차관이 모인 조정위원회도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조정위원회 1차 회의는 부처 간 이견으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지난 8월 30일 열리기로 했던 2차 회의는 무기한 연기됐다.
막무가내 행정이 부른 비극악재도 한몫했다. 천안함 사태다. 정부와 군, 포스코 모두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된 마당에 신제강공장 문제를 공론화하거나 밀어붙이기 어려웠다. 포항공항은 대잠수함 초계기가 이륙하는 곳이다. 6·2 지방선거도 사태 해결을 차일피일 미루게 한 원인이 됐다. 안보와 경제 논리가 엇갈린 이 문제를 놓고 정부와 정치권은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포스코는 지난 8월 23일 시공사인 포스코건설에 공사 중지를 공식 통보했다.
의문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고도제한을 위반한 설계를 한 포스코건설이나 발주한 포스코 역시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상황을 이 지경까지 오게 한 원인은 무엇보다 포항시에 있다. 포항시는 공장 설립 허가를 내주면서 군과 협의하지 않았다. 기본을 어긴 것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포항시 측은 “고도제한 문제를 몰랐다”고 해명했다. 말이 되지 않는다. 신제강공장 입지와 포항공항과의 거리는 2㎞도 채 되지 않는다. 더욱이 비슷한 시기에 포항 소재 한 중소기업은 고도제한 때문에 공장 증설이 불허됐다.
포항시 관계자는 “포스코가 방위산업체고 설계자의 법적 검토 자체도 비행안전 구역에 저촉된다는 의견이 없었기 때문에 최종 승인을 하면서 그 부분에 대해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다. 군사시설 보호법 10조 5항이다. 국방부는 지난해 9월 군사기지 및 시설보호법상 고도제한 완화 규정을 시행했다. 관할 부대장이 비행 안전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기지별 특수성을 고려해 표면 높이 이상인 건축물의 건축을 허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10조 5항이 없다면 이 건물은 당연히 철거돼야 하지만 다행히 완화조항이 발효됐기 때문에 구제방안이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터무니없는 얘기다. 이 조항은 9월 22일부터 시행됐다. 신제강공장은 앞서 8월에 착공했다. 인허가는 훨씬 전이다. 한마디로 포항시청 실무진이 법의 소급적용을 알아서 판단한 ‘막무가내 행정’을 했다는 얘기다. 신제강공장을 비롯한 후속 투자가 4조원을 넘는 대형 프로젝트를 서둘러 유치하려는 욕심이 화를 불렀다. 피해는 포스코와 포항 지역 중소기업과 근로자 몫이다.
이 문제와 관련, 포항시 공무원들은 ‘응분의 책임’을 졌을까? 포항시 관계자는 “담당 공무원들이 징계를 받았다”고 말했다. 취재 결과 시쳇말로 솜방망이 징계다. 인허가 담당자는 감봉 3개월, 바로 위 계장은 감봉 1개월, 담당 과장은 견책을 받았다. 감사원이 지난 12월 포항시에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현재까지 감사 결과가 발표된 것은 없다. 감사원 관계자는 “감사가 진행 중인지 여부는 알려 줄 수 없다”고 말했다. 포항시 관계자는 “작년 말에 자료 제출 후 따로 감사가 진행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포스코 관계자는 “공사가 조속히 재개되길 기다릴 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신제강공장은 완공과 함께 폐쇄 예정인 제1 제강공장의 세 배 규모다. 포스코는 신제강공장을 착공하면서 “조강생산량이 1560만t에서 1760만t으로 원가 경쟁력도 대폭 향상될 것”이라며 “2010년 이후 신제강공장의 영업이익이 연간 4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신제강공장 자체도 문제지만 후속 투자 계획도 줄줄이 연기될 판이다. 포스코 측은 “신제강공장 준공에 맞춰 추진하려 했던 파이넥스 3호기와 4선재 공장 건설 등 후속 투자 계획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파이넥스 3공장을 2012년 10월까지 건설할 계획이었다. 파이넥스는 포스코가 자체 개발한 차세대 제철기술이다.
포스코, '비행안전 문제 없다'지역 경제도 타격이 크다. 우선 공장에 투입됐던 수천 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기회손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포스코와 포항시에 따르면 연간 4000억원 정도로 예상되는 납품이 지연되면서 120여 개의 설비업체, 60여 곳의 시공사가 부도위기에 몰려있다고 분석했다.
지역 여론은 험악하다. 지난해 연말부터 지역 경제단체, 시민단체는 줄곧 고도완화를 골자로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최근에는 전국플랜트건설노조 포항지부 조합원 1100명이 서울 국방부 앞에서 상경 시위를 했고 포항청년연대 등 시민단체도 포스코 신제강공장 완공을 위한 52만 포항시민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포스코는 지난 8일 “신제강공장으로 일자리를 잃은 건설근로자 900여 명을 포항제철소 내 타 공사 현장에 투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해결의 실마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군은 포항공항을 인근 양양공항으로 이전하는 대신 비용을 포스코가 내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이 정도면 포스코도 받아들일 수 있는 해법이다. 완공을 앞둔 공장을 철거하는 것보다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이 역시 쉬운 문제는 아니다. 포항공항의 이전을 반대하는 지역 여론도 만만치 않다.
상황은 새 국면을 맞았다. 국무총리실은 지난 8월 25일 자체적으로 항공운항협회에 관련 비행 안전 관련 용역을 발주했다. 앞서 포스코는 두 차례에 걸쳐 비행안전평가원에 ‘포항공항 비행 안전 시뮬레이션’ 용역을 맡겼다. 포스코가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1~2차 용역 모두 공장이 포항공항의 비행 안전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국무총리실과 국방부는 객관성이 없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정부가 발주한 용역 결과는 늦어도 한 달 내에는 나올 것이라고 한다. 길은 두 가지다. 비행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앞서 밝힌 ‘고도제한 완화조항’을 소급 적용해 공장 설립을 마무리할 수 있다. 문제는 반대일 경우다. 그럴 경우 공장을 헐거나 공항을 옮겨야 한다. 현지 분위기는 “1조2000억원이나 들인 새 공장을 철거할 일은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것”이라는 게 대세지만 관가에 부는 개념도 불명확한 ‘공정 사회 압박’이 의외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읽힌다. 만약 신제강공장 철거 결정이 나면 포스코는 추가 비용만 2000억원을 더 들여 애써 지은 공장을 허물어야 한다.
이와 관련, 포항이 지역구(포항 남·울릉)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법대로 하면 취소가 맞다”면서도 “허가와 시행 과정이 잘못됐지만 포스코는 국가산업의 주요 원료를 공급하는 곳이기 때문에 국방과 민항기 운항에 방해되지 않고 원료 수급에도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정부가 고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 내 입장 조율이 어느 정도 진척됐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너무 늦기는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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