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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부르는 가격할인의 딜레마

불황 부르는 가격할인의 딜레마

뉴욕 윌리엄슨에 위치한 모츠 사과주스 공장 근로자 300명은 현재 4개월째 농성 중이다. 모츠의 모회사 닥터 페퍼 스내플 그룹이 근로자에게 임금 합의안을 강요하면서 이들의 파업이 시작됐다. 높은 영업이익을 올렸던 이 그룹이 근로자 시급을 1.5달러 삭감하고 ‘지역 및 업계 평균 수준’과 맞추고자 퇴직 연금을 동결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불경기에 직격탄을 맞은 뉴욕 북부 근로자보다 모츠 직원들의 상황이 조금 더 낫다는 이유로 더 낮은 임금에 이전과 같은 양의 업무를 소화하라는 요구다.

경기가 회복 중인데도 직원을 쥐어짜는 회사는 모츠뿐이 아니다. 실업자와 구직자가 넘쳐나는 상황에선 고용주가 칼자루를 쥔다. 지난 한 해 동안 경제 전반에서 기업의 영업이익은 40% 가까이 증가했지만, 임금은 1.7% 상승에 그쳤다. 워싱턴에 있는 경제정책연구소는 2009년 2분기~2010년 2분기 남성 근로자의 급여가 1.3% 하락했다고 보고했다.

바야흐로 가격 할인의 시대가 찾아왔다. 성장률은 정체되고 유휴 시설은 넘쳐난다. 경제에 대한 기대가 꺾인 상황에서 노동력과 주택, 레스토랑 음식 등의 상품 구매자들은 자신이 어떤 가격을 제시해도 절박해진 판매자는 감지덕지 받아들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경제 전반에서 가격 할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위험한 악순환이 시작된다. 고용주가 근로자의 임금을 깎으면 근로자는 소비를 줄여야 하고 경제는 다시 침체된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가격 인하도 있긴 하다. 기술 변화와 글로벌 경쟁으로 불과 수년 전만 하더라도 당연시됐던 임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는 기업과 산업도 있다. 예컨대 네트워크 TV 기자나 부동산담보대출업 종사자, CDO 등의 금융 상품을 개발하는 금융 전문가, 주택 건설업자의 경우는 호황기 시절의 급여를 요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뉴욕주 올배니에 위치한 넬슨 A. 록펠러 정부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주정부의 세수는 11%나 줄었고, 어쩔 수 없이 이들은 세금 인상과 지출 삭감, 정리해고, 임금 인하에 나섰다.

그러나 바뀐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약삭빠른 사람도 많다. 주택 시장을 예로 들어 보자. 주택 시장의 거품이 절정에 달했던 2005년과 2006년,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매수자에게 판매자가 요구하는 가격을 순순히 주거나 웃돈을 얹어줄 각오도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매물이 넘쳐나고 은행의 압류자산 경매가 증가한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 매수자들은 일단 시장 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한 후 매도자가 이를 받아들이는지 여부를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판매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껏해야 거절뿐이다. 부동산 거래 호황기만 하더라도 판매자가 요구한 공식 가격과 실제 매매가 사이의 격차는 2%밖에 나지 않았지만, 2010년 2분기에는 상대적으로 주택 수요가 많은 뉴욕에서조차 그 격차가 9.1%로 벌어졌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바라는 가격 차이가 과거 어느 때보다 크다. 격차가 클수록 거래는 침체된다”고 뉴욕에 본사를 둔 부동산감정업체 밀러 새뮤얼의 조너선 밀러 CEO는 말했다.

물론 주택(또는 노동력, 자동차, 주식 등) 가격의 장기 침체를 점치는 구매자라면 당연히 시장 가격을 제대로 지불하고 물건을 구매할 용의가 없어진다. 이렇게 물가에 대한 비관과 우려는 가격할인 현상에 일조한다. 전 세계 경제가 힘차게 성장하던 수년 전만 하더라도 집값이 자고 나면 올라 있었고 유가는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았다. 이 때문에 인플레이션은 현실이었고 미래에 대한 실제적 위협이었다. 그러나 2010년 들어서 소비자물가지수가 제자리를 맴돌자 이번에는 디플레이션이 소비자와 투자자의 현실적 걱정이 됐다. 설문조사 결과나 채권시장 지수만 보더라도 인플레이션 우려는 지극히 낮아졌다.

2008~2009년 큰 고통을 안겨줬던 불경기의 기억 또한 소비자가 맹목적으로 가격 할인을 요구하게 만드는 원인이 됐다. 할인판매를 마다할 소비자야 없겠지만, 지금은 할인판매가 거래의 기본 조건이 돼버렸다. 은퇴한 노인들의 취미에 불과했던 쿠폰 모으기는 이제 첨단기술을 이용한 소셜 미디어의 한 형태가 됐다. 2008년 11월 처음 모습을 드러낸 그룹폰(그룹+쿠폰)이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이 그 좋은 예다. 시카고에 본사를 둔 그룹폰은 매일 특정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특정 업체의 치아 미백제, 피자, 청바지 등을 싸게 파는 단체 e-메일 쿠폰을 보낸다. 그러나 쿠폰을 받으려면 쿠폰을 사용할 사람이 판매업체가 요구한 수만큼 모여야 한다. “지방 브랜드나 영세업체 물건을 온라인 상거래로 파는 방식”이라고 그룹폰의 설립자이자 CEO인 앤드루 메이슨은 말했다. 메이슨은 과거 쿠폰 마케팅이 부유층 단골 고객을 끌어들이기에 적절치 않다는 이유로 괄시받았지만, 최근에는 여피족도 할인 구매에 동참하면서 이를 적절히 이용한 그룹폰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우리 쿠폰을 사용하는 사람은 모든 기업이 집중 공략 대상으로 삼는 21~35세의 소비자다. 70%가 여성이고 소득 수준도 높다”고 메이슨은 말했다(그룹폰은 판매 수입을 쿠폰 제공 업체와 배분한다) .

음료업체 모츠의 경영진이나 멋진 청바지를 싸게 사고 싶은 시카고의 패셔니스타에게 가격 할인은 매우 합리적인 방식이다. 임금 삭감은 회사의 재무 상태를 개선하고, 할인판매에 대한 열광은 알뜰 구매로 소비자의 낭비를 막는다. 그러나 가격 할인이 경제 전반에 퍼지게 된다면 그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 모두가 돈을 아끼면 모두가 가난해진다. 저축이 증가하면 수요가 자취를 감추기 때문이다. 가격 할인에도 같은 모순이 존재한다. 자신의 자금상황을 개선하겠다고 모두가 싼 가격을 요구하고 원래 가격을 지불하지 않으면, 결국 모두가 피해를 본다.

가장 위험한 분야는 바로 근로자 임금이다. 지난 2년간 고용주들은 직원 임금과 보너스를 삭감해 왔다. 높은 수익을 낸 기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놓고 이제 와선 왜 매출이 늘지 않느냐며 의아해한다. 당연한 결과 아닌가? 자신의 직원들에게 돈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 이들은 지출을 줄이거나 더 싼 물건을 구매하고, 판매자에게 더 낮은 가격을 요구하게 된다. 1914년 헨리 포드는 실적이 좋은 자동차 공장 근로자들에게 5달러를 일당으로 지급했다. 지역의 시장 가격이나 업계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었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게 해야 근로자의 노조 가입을 막고 인재유출을 막는다고 믿었으며, 임금 인상이 종국에는 포드에도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공장 직원들에게 임금을 두둑이 지불하면 이들이 곧 포드 자동차의 구매자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파업이 계속되는 모츠 공장의 경영진은 포드의 경영원칙을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불필요하게 임금을 삭감하면 근로자, 나아가 이들의 이웃은 동네 수퍼마켓에서 모츠 사과주스를 살 경제적 여유가 없어진다. 결국엔 저렴한 브랜드로 바꾸거나 물을 마시거나 가격을 대폭 할인한 쿠폰이 있을 때만 모츠 주스를 구매할지도 모른다. 그럼 손해를 보는 건 바로 모츠다. 어제의 가해자가 오늘의 피해자가 되는 셈이다.

번역·우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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