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찍고 글로벌 시장 ‘노크’
아시아 찍고 글로벌 시장 ‘노크’
1년6개월 동안 20회에 달하는 해외출장. 중동·동남아·유럽 등 35개국에서 71일간 체류. 2009년 3월 취임한 김중겸(60) 현대건설 대표의 해외출장 일지다. 단순 순방이 아니다. 글로벌 건설사, 해외 발주처와 만남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김 대표가 해외 강행군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다. 현대건설을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세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김 대표는 현대건설의 미래를 글로벌 시장에서 찾는다. 세계 시장이 미래 성장판이라는 생각이다. 이 구상은 빠르게 구체화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최근 인도 뉴델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홍콩 등에 영업지사장을 파견했다. 알제리와 카자흐스탄엔 신규 지사를 설립했다. 아울러 기존 시스템과 사업 구도에 ‘혁신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신속한 업무 처리를 위해 결재예약시스템, 전자결재시스템을 도입했다. 혁신에 가속도를 붙일 요량으로 기획예산실의 기능을 강화했다. 글로벌 전략에 실탄(자금)을 쏟아붓겠다는 계산이다.
흥미로운 점은 신입사원도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뽑는다는 것이다. 현대건설은 “세계인에게 감동을 줄 만한 제품을 만들려면 인문학 공부가 선행돼야 한다”는 김 대표의 지론에 따라 경영·경제학과 출신 위주의 채용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올해 신입사원 중 15%는 인문·사회학 전공자다. 신입사원 교육 커리큘럼도 국립중앙박물관·문화예술 공연 관람 등 인문학 중심으로 개편했다. 모두 글로벌 경영을 위한 포석이다.
김 대표의 ‘글로벌 전략’은 화려한 성과를 낳고 있다. 지난해 12월 400억 달러 규모의 UAE(아랍에미리트)원전을 수주한 것은 대표적 실적. 올 상반기엔 10조9015억원에 달하는 물량을 수주했다. 이 중 68%는 글로벌 시장에서 획득했다. 해외매출 비중도 2008년 34%에서 2009년 40%로 6%포인트 증가했다. 이런 추세라면 ‘해외수주 120억 달러’ 목표를 무리 없이 달성할 전망이다. 글로벌 불황에 따른 공사발주 지연 등 건설경기가 침체한 상황에서 이룬 성과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현대건설은 이미 세계적 건설 명가(名家) 반열에 이름을 올렸을지 모른다. 해외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의 유력 건설전문지 ENR이 지난 8월 발표한 ‘세계 225대 건설사 해외매출 순위(2009)’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23위(인터내셔널 부문)를 기록했다. 전년도보다 무려 29계단 뛰어올랐다. 국내 건설사 가운데 최고 순위다. 미국의 금융정보제공업체 다우존스가 선정하는 ‘DJSI(지속가능 경영지수) 월드’에선 세계 건설사 중 1위(2010)에 올랐다. DJSI는 기업의 경제·환경·사회적 성과 분석으로 지속가능성을 진단하는 글로벌 지표다.
하지만 김 대표의 사전엔 ‘방심’이란 단어가 없는 듯하다. “회사가 잘나갈 때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현대건설이 향후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라는 화두를 오늘도 던지는 것이다. 그는 “현대건설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노동집약적 시공 중심에서 벗어나 기획·설계·엔지니어링·구매·금융·시공까지 능숙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을 ‘토털 디벨로퍼’로 육성하는 것. 김 대표의 야심만만한 목표이자 진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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