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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마우스 게 섰거라

미키마우스 게 섰거라

▎어린이용 3D 애니메이션 똑딱하우스의 팸플릿을 들고 있는 퍼니플럭스 정길훈 대표(가운데)와 직원들.

▎어린이용 3D 애니메이션 똑딱하우스의 팸플릿을 들고 있는 퍼니플럭스 정길훈 대표(가운데)와 직원들.

장소는 커다란 괘종시계 속. 나무인형 똑이와 딱이는 이 시계의 주인이다. 한 시간마다 종을 울리는 게 임무다. 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토끼 등 다른 캐릭터의 숱한 장난에도 똑이와 딱이는 끝내 종을 친다. 국내 중소 엔터테인먼트 업체 퍼니플럭스가 제작 중인 어린이용 3D 애니메이션 ‘똑딱하우스’의 내용이다.

똑딱하우스는 11분짜리 에피소드 52회로 이뤄진 시리즈다. 제작이 완료되는 2012년부터 미국·영국·프랑스 등 200여 개국에서 동시 방송된다. 국내 애니메이션 ‘뽀로로’의 130여 개국 방송기록을 단번에 깼다. 한국산(産) 애니메이션이 미국 안방에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시아에서도 최초다. 퍼니플럭스 정길훈(40) 대표는 “애니메이션 강국을 자처하는 일본이 못했던 일을 우리가 해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똑딱하우스가 전 세계에 방송될 수 있는 건 세계적 어린이 엔터테인먼트 채널 니켈로디언과 올 10월 계약한 덕분이다. 30년 역사의 니켈로디언은 MTV·파라마운트·드림웍스를 가진 글로벌 미디어그룹 바이어컴의 계열사다. 미국 어린이채널 중 시청률 1위다. 디즈니보다 점유율이 높다. 4억6000만의 시청 가구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폭발적 인기를 끈 ‘스폰지밥’과 ‘하이! 도라’를 방영한 곳이다. 흥미로운 점은 니켈로디언의 계약 방식이다. 이 회사는 똑딱하우스의 3분짜리 예고편만 보고 선(先)구입을 결정했다. 니켈로디언 역사상 처음이다.

무엇에 반한 걸까. 무엇보다 나무를 활용해 만든 캐릭터 똑이와 딱이가 시선을 끌었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에서 나무를 캐릭터화한 건 퍼니플럭스가 처음이다. ‘시계 속 세상’을 묘사한 흥미로운 시나리오와 나무 캐릭터를 (예고편에서) 정밀하게 표현한 3D 기술력도 한몫했다. 퍼니플럭스는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영화에서 사용하는 3D 멘탈레이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



니켈로디언과 계약해 55억원 매출 확보2009년 퍼니플럭스에 300만 달러를 투자한 세계 3대 방송제작·배급사 조디악의 캐런 버뮬런 이사는 이렇게 말했다. “퍼니플럭스와 니켈로디언의 계약은 정말 대단합니다. 예고편만 보고 미국 방송사가 구입을 결정한 건 12년 동안 애니메이션을 판매한 저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죠.” 조디악 매튜 프랭크 대표는 한술 더 떠 “니켈로디언과 맺은 계약은 환상적”이라고 평했다. 니켈로디언과 계약에 성공한 퍼니플럭스 똑딱하우스의 예상 수익은 괄목할 만하다. 이 계약으로 480만 달러(약 55억원)의 매출을 확보했다. 똑딱하우스의 제작이 완료되는 2012~2014년엔 930만 달러(약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전망이다. 조디악은 똑딱하우스로 2017년까지 1억 달러를 벌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퍼니플럭스는 업력 3년이 채 되지 않은 병아리 기업이다. 2007년 9월 창업한 이 회사의 직원 수는 20여 명. 컨셉트를 짜는 디자이너는 3명뿐이다. 3D 애니메이터는 5명, 3D 비주얼 아티스트도 7명에 불과하다. 글로벌 애니메이션 업체의 ‘50분의 1’ 병력이다. 이렇게 작은 기업이 ‘큰일’을 낼 수 있었던 배경엔 정길훈 대표의 오랜 노력이 숨어 있다. 정 대표는 12년 경력의 3D 전문가다. 1998년 TV유치원 하나둘셋의 방송 타이틀을 제작했고, 2000년엔 극장용 애니메이션 엘리시움을 기획했다. 이창동 감독이 연출한 오아시스(2002)의 CG(컴퓨터그래픽) 작업도 담당했다. SBS에서 방영한 창작 애니메이션 지-스쿼드(2006)도 제작했다.



글로벌 완구업체와 캐릭터 상품 계약업계에서 나름 잘나갔지만 그는 성에 차지 않았다. 회사 고위층과 투자자의 입김에 따라 제작방향·컨셉트가 수시로 바뀌는 현실이 못마땅했다. 창작을 하고 싶어 창업을 결심했다. 사재 1억원을 툴툴 털어 자본금을 마련했다. 둥지를 튼 사무실의 규모는 33㎡가 되지 않았다. 창작을 원했으니 배는 고파도 됐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찾아야 했다. 독특한 뭔가가 없으면 창업은 하나 마나였다. 발품을 팔았다. 어린이 제품을 파는 곳이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갔다. 그때 뇌리를 스친 게 있었으니, 바로 나무다.

“어느 날 백화점에 갔는데 어린이 제품 중 나무 소재가 많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나무를 이용한 캐릭터는 따로 없었죠.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아! 나무 캐릭터를 만들면 되겠구나’라고요.” 정 대표의 회상이다. 나무 캐릭터 똑이와 딱이는 그렇게 탄생했다. 정 대표는 애니메이션의 주요 고객이 어린이라는 점을 감안해 ‘시계 속’을 무대로 삼았다. 취학 전 어린이가 시간의 반복성·규칙성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메시지도 담았다.

짧은 예고편을 만들 땐 최고 기술자가 참여했다. 야후코리아 캐릭터 공모전에서 ‘놀이쟁이 퍼니멀스’로 1위를 차지한 퍼니플럭스 김종현 제작실장이 제작을 총지휘했다. 12년에 달하는 제작 경험을 가진 그는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손꼽히는 베테랑이다. 미국 카네기멜런대의 VFX(시각효과) 과정을 이수했다. 3D 전문가 정우승 팀장은 예고편의 영상작업을 감독했고, 순수미술을 전공한 이재희 팀장과 서순철 대리가 여기에 아름다운 색감을 입혔다. 아티스트적 감각과 프로그래머 역량을 겸비한 독일인 번트 피터워스도 참여했다. 정 대표는 “수많은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경험을 가진 똑딱하우스는 창조적 마인드와 높은 기술력을 겸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고편의 반응은 뜨거웠다. 정 대표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2008년 여름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실시한 ‘글로벌 프로젝트’ 심사에서 1등을 차지해 7억원을 지원 받았다. 애니메이션을 실사처럼 연출한 3D 기술력과 화려한 색감이 일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 대표는 일단 만족했다. 7억원으로 보다 작품성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심사위원에게 퍼니플럭스의 가능성을 들은 다국적 방송제작·배급사 조디악이 다가온 것이다. 영국 어린이 애니메이션 업계의 대부로 불리는 조디악 나이젤 이사는 정 대표에게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작품을 기획했나”라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나이젤 이사는 BBC의 어린이 채널 CBBC를 설립한 이다.

매튜 프랭크 대표도 “똑딱하우스는 어린이 애니메이션 시장을 평정할 만한 창의적인 작품”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곧장 계약이 체결됐고,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다. 똑딱하우스가 전 세계에 방영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정 대표는 “밤샘 작업이 많아 지칠 때도 있지만 국가대표 애니메이션 업체라는 자부심으로 버티고 있다”며 “2년 후 전 세계에 똑딱하우스가 방영되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발돋움한 퍼니플럭스의 목표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똑이와 딱이를 전 세계 어린이가 사랑하는 ‘미키마우스’와 ‘토마스 기차’처럼 인기 캐릭터로 만드는 게 꿈이다.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르면 10월 말 글로벌 완구업체 마텔의 계열사 피셔프라이스와 완구 계약을 한다. 똑딱하우스가 방영되는 2012년에 맞춰 ‘똑이’ ‘딱이’ 캐릭터 상품이 나올 예정이다.

정 대표는 소수 정예부대 퍼니플럭스를 이끌고 빛나는 대승을 일궜다. “창작을 위해 창업을 택한 게 주효했다”고 그는 말했다. 언젠가 미키마우스·토마스 기차를 뛰어넘는 한국산 캐릭터가 나올지 모르겠다. 이름을 기억해도 좋을 성싶다. 똑이와 딱이다.

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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