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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반에 담긴 수수께끼 푼다

태반에 담긴 수수께끼 푼다

매년 태어나는 조산아가 1290만 명에 이른다. 세계 전체 신생아 중 약 10%다. 조산아란 재태(在胎) 기간 37주 미만인 경우를 말한다. 의사들과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조산의 원인을 밝히고 예방하려 애썼다. 그런데도 지난 30년간 조산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미국에서만 조산 증가율이 1980년 이후 40%다. 다행히도 의학의 눈부신 발전 덕분에 조산아의 생존율은 계속 높아진다. 하지만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생존하는 조산아가 성장하면서 신경학적 문제와 발달장애를 겪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조산의 원인 중 몇가지는 명백하다. 여성의 출산 시기가 점점 늦어진다(나이가 많을수록 조산 위험이 높다). 시험관 수정이 늘어난다(다생아를 출산할 가능성이 크다). 의사들이 태아 곤란증(fetal distress)의 첫 조짐에 제왕절개술을 택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 여성들에게서도 조산이 갈수록 흔해진다. 양수가 너무 일찍 터져 아기가 완전히 발육하기 전에 분만 진통이 시작된다. 의사들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예방해야 할지 아직 모른다. 스탠퍼드대 메디컬 센터의 출산 전후 전문 병리학자 에이미 매케니는 “조산은 광범위하고 활발한 연구 분야지만 별 진전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건강한 아기 출산을 목표로 하는 자선단체 ‘마치 오브 다임스(March of Dimes)’가 7500만 달러를 투입해 대대적인 홍보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조산이 약간 줄어들었다(2006년 신생아의 12.8%에서 2008년 12.3%로). 대부분은 임신부에게 금연을 설득하고 의사들에게 최악의 상황이 아닌 경우엔 제왕절개술을 피하도록 촉구한 결과다.

하지만 다른 노력들은 완전히 실패했다. 밴더빌트대의 신생아학자 루이스 머글리아는 “조기 진통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데 추천되는 가장 흔한 조치들이 거의 효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지난 2000년 의사들은 특정 박테리아 감염이 조산 가능성을 높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그런 감염을 항생제로 치료해도 조기 분만의 위험이 줄어들지 않았고, 아기의 예후가 개선되지도 않았다. 마찬가지로 2001년 발표된 몇몇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임신 중기(13~28주)에 자궁경관의 길이가 25mm 미만으로 줄어들면 조산 가능성이 3배 높아졌다. 그러나 자궁경관 길이의 단축을 막는 원주봉합술도 거의 효과가 없었다. 유전적 요인을 시사하는 단서도 있다. 예를 들면 가족력이 중요하고 특정 인종에서 높게 나타난다. 하지만 조산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조산아의 생존율은 크게 높아졌다. 1940년만 해도 예정보다 너무 일찍, 또는 체중이 표준에 크게 미달한 채 태어난 아기들은 ‘사산아’로 분류됐다. 지금은 조산아를 살리는 데 병동 전체가 할애된다. 그 결과 가장 연약한 신생아라도 생존 확률이 크게 높아졌다(미국의 경우 그 일에 소요되는 연간 의료비가 260억 달러에 이른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은 거대한 기계 자궁이다. 조산아를 외부 세계에서 보호하는 수많은 장치가동원된다. 인큐베이터로 병원균을 막아주고, 여러 기계와 약으로 아기가 건강해질 때까지 체온을 조절해주고 연약한 폐를 인위적으로 작동시킨다. 그 결과 현재 미국에서 태어나는 조산아의 80~98%가 생존한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병원이라고 해도 어머니의 자궁을 완벽하게 재현하진 못한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살아남은 조산아는 성장하면서 발달장애를 겪는 경우가 많다. 주의력 결핍·과잉행동 장애(ADHD) 같은 행동 문제부터 정신지체, 뇌성마비, 자폐증 등 더욱 심각한 증상까지 다양하다. 신경학적인 손상은 즉시 식별되는 폐나 심장 문제와 달리 대개 수년 뒤에 증상이 나타난다. 캘리포니아주 패커드 어린이병원의 신생아학자 애너 펜은 “조산아를 점점 많이 분만시키고 그들의 목숨도 더 많이 구하지만 신경학적인 문제의 개선은 별 진전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조건을 변화시키려면 먼저 무엇이 태아의 뇌 발달을 이끄는지 알아야 한다. 펜과 동료들은 태반에 기대를 건다. 태아의 일부를 감싸는 두꺼운 세포층을 말한다.

고대 사람들은 자궁 속을 탐구할 과학적 수단은 없었지만 적어도 태반의 중요성은 확실히 인식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태반의 신비한 힘을 믿고 왕의 태를 숭배했다. 파라오의 생전에 그의 태반을 보존하고 보호했다가 그가 죽으면 함께 묻었다. 지금도 세계 도처의 여러 종교 집단에서 태반 매장 의식을 행한다.

그러나 현대 의학 시대의 대부분 동안 태반은 거의 무시됐다. 의사들은 태반이 태아를 여러 잠재적인 위협에서 보호하고, 어머니와 태아 사이에서 산소와 이산화탄소 같은 몇 가지 기본 화학물질을 순환시키는 능력은 인지했지만 어머니와 태아 둘 다와 상호작용하는 중요한 장기의 하나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도 대다수 의사는 산모의 자궁에서 추출되는 불그레 푸르죽죽한 원반 모양의 태반을 즉시 소각용 폐기물 통에 내던진다.

하지만 최근 들어 태반이 중요한 장기의 하나이며, 아주 복잡한 기능을 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유전자는 전부 태아와 같지만 어머니의 혈관과 복잡하게 엉켜 어머니와 태아 간의 끊임없는 화학적 대화를 가능케 해준다. 이런 대화가 태아를 충분히 발달한 아기로 발달시키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태반을 통해 어머니와 태아 사이에 영양소, 가스, 수백 가지 호르몬이 오간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바로 그 대화 속에 신경발달에 필요한 중요한 이정표가 들어 있다. 태반은 광범위한 화학물질을 만들어내 태아에 공급한다. 그 물질이 태아의 혈액과 뇌의 장벽을 오가며 잇따른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그 결과는 수년이 지나야 완전히 나타난다.

펜과 동료들은 그 대화를 중단시키면 뇌의 발달이 지장을 받는다고 믿는다. “뇌발달의 방향을 알려주는 태반의 이정표가 없으면 발달이 저해된다”고 펜이 말했다. “어떤 방향의 길을 잃었는지 정확히 안다면 똑같은 지도를 만들어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릴 가능성이 있다고 우리는 판단했다.”

펜의 팀은 유전자를 변형시킨 생쥐를 사용해 한번에 하나씩 호르몬 유전자의 발현을 중지시킨다. 신경 발달에 어느 유전자가 가장 큰 영향을 주는지 확인하려는 절차다. 또 조산아와 일반 아기의 혈액과 척수액을 수집해 호르몬 구성을 비교한다.

지금까지 두 가지 화학물질이 잠재적 주범으로 지목됐다. 신경세포의 성장을 촉진하는 프로게스테론(황체호르몬)과 태아의 신경세포가 과민해져 고사하는 경우를 방지해주는 옥시토신이다. 둘 다 임신 말기에 가장 많이 분비된다. 몇 주 일찍 태어나면 이 중요한 호르몬을 충분히 제공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정서적 애착과 모성행동을 유발하는 역할 때문에 ‘사랑의 호르몬’으로 알려진 옥시토신은 자폐증과도 관련이 있다. 옥시토신 분비가 적은 어린이는 사회적, 행동적 어려움을 겪는다. 자폐증 어린이들은 옥시토신 신호전달 경로가 손상된 경우가 많다.

자폐증과 조기 진통의 연결성은 다른 요인으로도 확인된다. 자폐증과 조산에 따른 최악의 발달 장애는 두 경우 모두 남아에게서 두 배 이상으로 나타난다. 지난해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임신 기간 27주 미만에 태어난 아이가 자폐증에 걸릴 확률이 두 배였다. 펜과 동료들은 자폐증을 가진 두 살짜리와 조산아로 자폐증이 없는 두 살짜리 아기들의 옥시토신 수준을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한다. “두 그룹의 호르몬 특징이 비슷한지 확인하고 싶다”고 펜이 말했다. “만약 비슷하다면 자폐증과 조산 둘 다 특유의 태반 기능장애로 일어났다는 점이 확인된다.”

펜은 태아의 뇌발달에 필수적인 호르몬이 정확히 무엇인지 확인한다면 조산아의 혈액 속에서 그 호르몬의 수치를 측정해 신속히 부족한 호르몬을 채워 신경학적 장애를 막을지 모른다고 기대한다. 그 단계까지 가려면 더 많은 태반 연구가 필요하다. 펜의 팀은 대규모 태반 저장소를 구축하려 한다. 암 연구자들이 공유하는 종양 저장소 같은 곳을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뇌발달의 가장 소중한 단서를 담은 태반이 계속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번역·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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