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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대기업 왜 상조 시장 기웃거리나

WHY? 대기업 왜 상조 시장 기웃거리나

‘출범 9개월 만에 목표 고객 3만 명 돌파’. 올 1월 설립된 한국교원공제회 상조회사 The-K라이프 ‘예다함’이 돌풍을 일으킨다. ‘안전하고 신뢰할 만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가입자가 날로 증가한다. 그럴 만하다. 일단 규모가 크다. 자본금이 500억원에 달한다. 자본금 1억원 미만의 상조업체가 60%가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규모다.

운영방식도 다르다. 기존 상조업체는 대부분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운영된다. 인력은 물론 차량까지 아웃소싱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다함 직원은 100% 정규직이다. 의전팀은 50명, 장례지도사는 46명이다. 장례 버스(8대), 리무진(8대)도 확보하고 있다. 직원 관리 또한 철저하다. 직원이 노잣돈 등 부당한 요구를 하면 100% 환불하거나 무료 장례 서비스를 제공한다. 해당 직원은 퇴사 조치한다. ‘서민의 쌈짓돈을 제 마음대로 사용한다’고 비판 받는 상조업계에 새 바람이 부는 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본력 있는 기업·집단(이하 대기업)이 상조업계에 눈독을 들인다. 사업을 시작한 예다함을 비롯해 농협, 삼성그룹 계열사 에스원, 대우조선해양상조가 대표적이다. 대기업은 왜 상조업에 진출하려는 걸까. 비리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상조업계 아니던가. 섣불리 발을 담갔다가 기업 이미지가 훼손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역설적이지만 답은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서민을 농락하던 상조업체를 제도권에 포함하려는 움직임이 강하다. 규제는 이미 시작됐다. 9월 18일 상조업을 규율하는 할부거래법이 시행됐다. 등록제 도입, 3억원 이상 자본금 확보, 고객 선수금의 50% 은행 예치·지급보증, 보증보험·공제조합 가입 등이 골자다.



정부 규제로 부실업체 퇴출된다이 법의 시행으로 상조업계엔 큰 변화가 일 전망이다. 자본금 규모가 3억원 미만이면 영업을 할 수 없다. 대부분의 상조업체가 생사의 갈림길에 놓일 수밖에 없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2008년 기준)에 따르면 전국 281개 상조업체 중 84%의 자본금이 3억원 미만이다. 자본금 1억원 미만 업체는 63%에 달했다. 자본잠식에 빠진 곳도 많다.

이코노미스트가 총자산 100억원 이상인 상조업체 15곳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절반이 넘는 8곳이 자본잠식 상태였다. 이 가운데 2009년 흑자를 올린 업체는 3곳에 그쳤다. 규모가 큰 상조업체가 이 정도라면 영세업체의 경영사정은 더 심각할 게 뻔하다. 많은 상조회사가 폐업하거나 M&A(인수합병)되는 등 상조업계 질서가 재편될 가능성이 커진 이유다. 반대로 말하면 혼탁했던 상조업계가 정화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대기업은 두 가지 명분을 얻었다. 상조업계의 긍정적 변화가 그 하나다. 상조업이 제도권에 들어오면 더 이상 ‘법망 밖에서 서민의 돈을 뒷주머니에 챙긴다’는 편견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대기업으로선 기업 이미지 훼손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둘째는 구조조정이다. 부실 상조업체가 정리되면 그곳에 가입했던 고객은 돈을 떼일 우려가 크다. 대기업이 이들을 승계하면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대기업이 상조업계 진출을 모색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이유는 또 있다. 상조시장의 성장 가능성이다. 올 11월 현재 상조업체 가입자 수는 275만 명이다. 전국 가구 수(4인 기준)가 1700만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가입자는 최소 4배가량 증가할 수 있다. 일본 사례를 봐도 그렇다. 일본 상조업체 가입률은 60%를 웃돈다. 우리나라는 13~15% 수준이다. 이 역시 4배 성장을 예고한다. 상조업계 규모를 5조원이라고 추정했을 때 최소 20조원 시장이 열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다. The-K라이프 박만수 전무는 “상조업계의 잠재적 수요층이 (시장이 정화돼) 가입하기 시작하면 800만~1000만 고객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기업의 경쟁상대가 많은 것도 아니다. 웬만한 자금력이 없으면 상조업계엔 뛰어들기 어렵다. 상조업은 사실 초기 투자금이 많이 필요하다. 단돈 5000만원으로 간판을 걸 수 있는 그런 사업이 아니다. 지금껏 그럴 수 있었던 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됐기 때문이다. 박만수 전무는 상조업을 장치산업이라고 했다. “정상적으로 전국 서비스를 하려면 인력은 물론 물류·전산시스템이 필요하다. 웬만한 중견기업이 아니면 상조업체를 운영하기 어렵다.”

일부에선 이를 두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무드를 깨는 행위라고 꼬집는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시장인 상조업에 굳이 진출할 필요가 있느냐는 거다. 하지만 이 역시 비판 받긴 마찬가지다. 현실을 외면한 주장이라는 이유다. 설득력이 있다. 상조업계는 무풍지대였다. 관련 법규도, 주무기관도 없었다. 허가 요건도 따로 없었다. 그래서 부실업체가 양산됐고, 불법·편법 운영이 난무했다. 상조업체에 대한 소비자의 원성은 해마다 커졌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상조업체 관련 불만상담 건수는 2004년 91건에서 2009년 2446건으로 27배가 됐다. 오죽하면 업계 1~3위 상조업체 경영자가 모두 비리 혐의로 구속되거나 징역을 선고 받았을까. 이런 망신도, 진풍경도 없다.



대우조선해양·에스원 물밑 준비덕을 쌓지 못하면 뭐든 망한다. 많은 상조업체는 그간 법의 사각지대에서 부덕을 쌓았다. 이게 문제였다. 스스로 저지른 반칙이 화를 자초했다. 이젠 그럴 수 없다. 상조업계에도 ‘룰’이 생겼다. 이전처럼 불법·편법을 자행했다간 철퇴를 맞을 것이다. 게다가 대기업이 진출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물론 아직 구체적 움직임은 없다. 2008년 12월 설립된 대우조선해양상조는 2년째 사업을 개시하지 않았다.

지난 3월 19일 ‘분묘 분양·장례서비스업’ ‘노인복지시설 운영 및 관련 서비스업’을 사업에 추가한 에스원도 미동조차 없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상조업을 언제, 어떻게 시작할지 (우리는) 모른다”고 말했다. 에스원 관계자는 “상조업에 대해 아직 결정된 건 없다”며 구체적 언급을 꺼렸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힘들다. 상조업 포기가 아니라 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침묵은 곧 시기 조율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서영채 사무관은 “할부거래법 시행으로 상조업계에 변화의 물결이 몰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박 전무는 “대기업이 진출하면 상조업계의 산업화가 시작될 것”이라며 (대기업끼리 경쟁하면) 소비자 만족도 역시 크게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렇다. 음침했던 상조업계에 서서히 볕이 든다. 환골탈태의 첫 표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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