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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꽃 유통 혁신 해법은 직거래

농산물·꽃 유통 혁신 해법은 직거래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가 또 다른 혁신책을 꺼냈다. 이번에 그가 뽑은 카드는 유통 혁신. 애플 앱스토어를 활용해 낡은 소프트웨어 유통구조를 바꾸겠다는 계산이다. 애플은 최근 ‘맥컴퓨터로의 복귀’ 행사를 열었다. 노트북인 맥북과 운영체제·소프트웨어의 새 모델을 공개했다.

정작 흥미를 끈 건 잡스의 말이었다. “맥북으로 새로운 PC 유통 생태계를 만들겠다.”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사용자에게 (소프트웨어를) 직접 판매하는 앱스토어 방식을 맥북 등 PC에 도입하겠다는 포부. 한마디로 소프트웨어 중간 판매상을 없애겠다는 선전포고였다.

애플의 새 맥북 모델엔 그래서 DVD 플레이어 기능이 없다. CD 또는 DVD에 담겨 판매·유통되는 불법 소프트웨어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맥북으로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하려면 맥용 앱스토어를 이용해야 한다. 이 유통 모델은 개발자·소비자에게 모두 좋다. 불법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중간상의 설 자리를 없애기 때문이다. 경제 전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를 10%만 줄여도 1조7000억원의 경제성장 효과가 발생한다. 잡스가 유통 혁신 카드를 뽑아든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제품이 소비자에게 전달될 때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 분배되는 활동. 유통(流通)의 사전적 의미다. 지금의 유통 단계는 복잡하다. 대량 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다양한 유통 채널이 생겼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유통 단계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유통 경비가 날로 증가하고, 생산자·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잡스가 지적한 다단계 소프트웨어 유통처럼 말이다. 유통의 숨은 독(毒)이다.

다단계 유통구조의 문제를 쉽게 볼 수 있는 분야는 농산물이다. 최근 배추대란에 농민과 소비자가 홍역을 앓았다. 배추 한 통이 1만5000원까지 폭등했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는 기상이변을 이유로 꼽았다. 들쭉날쭉한 날씨 탓에 배추 출하량이 감소해 배추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는 얘기다. 낡은 유통 시스템을 꼬집은 전문가도 적지 않았다. 농산물이 여러 유통 단계를 거치면서 관련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것이다. 실제 소비자의 농산물 구입액은 2004년 52조3161억원에서 2008년 61조7414억원으로 18% 늘었지만 농민의 수익비율은 같은 기간 59%에서 56%로 3%포인트 줄었다. 늘어난 유통비용 때문에 농산물이 많이 팔렸음에도 농민 수입은 감소한 것이다.



학사농장 유통 혁신으로 실적 고공행진배추 등 농산물은 농민~산지 수집상~도매시장 경매~중간 도매상~소매상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단계가 너무 많다. 유통구조를 바꾸면 농민·소비자 모두에게 이득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이게 쉽지 않다. 무엇보다 대량 물량을 확보할 만한 도매상이 부족하다. 국내엔 대형 농산물 유통센터가 10곳밖에 없다. 지역 단위로 대형 유통센터가 있는 미국·네덜란드·일본과 다르다. 대규모 도매상이 생겨도 문제가 남는다. 농산물이 다 팔리지 않으면 도매상이 책임져야 한다. 누가 그러겠는가. 정부·농협이 농산물 유통 개선을 위해 해마다 수조원을 쏟아부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건 이런 이유다.

대안은 없을까. 여기 해법을 제시하는 곳이 있다. 기존 유통구조를 깨뜨려 성장 가도를 질주하는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 생산·유통업체 학사농장이다. 이 농장은 대파·배추·무 등 15개 품목의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을 판매한다. 소규모 물량을 취급하는 건 아니다. 강원·전북·전남·제주도에 있는 농가 50여 곳과 계약을 맺고 대규모 농산물을 거래한다.

다른 유통 채널은 없다. 유통 단계는 딱 두 개뿐이다. 재고가 남아도 걱정 없다. 학사농장은 가공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농산물을 이용해 주스·과자 등 가공식품을 만든다. 유기농 농산물 전문식당도 운영한다. 이 농장의 연 매출액은 40억원가량. 유기농 농산물 취급점은 7곳에 달한다. 학사농장만 이득을 보는 게 아니다. 농가는 새 유통 시스템 덕분에 많은 농산물을 제값에 공급할 수 있다. 학사농장 강용 대표는 “영세한 농가를 묶는 방법으로 복잡한 유통구조를 없앴다”며 “유통 단계가 적은 덕분에 농가는 안정적 수입을 올리고, 소비자는 보다 싼값에 농산물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유통구조를 깨뜨린 기업은 또 있다. 인터넷 꽃시장이다. 꽃은 산지~도매상~소매상~소비자 등 복잡한 단계를 거쳐 유통된다. 소매점은 주문만 받고 30~40%가량의 마진을 챙긴다. 소비자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소매점을 없애기도 어렵다. 화훼업계의 나쁜 유통구조를 뻔히 알면서도 혁신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대안은 도매상이 만들었다. 인터넷 꽃시장 김규남 회장은 올 3월 많은 꽃 도매상과 힘을 합쳐 ‘인터넷 꽃 몰’을 열었다. 생산자~도매상~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웹 시장이다. 소매상을 없애 유통구조를 한 단계 줄였다. 소매상을 어떻게 배제했을까.



인터넷 꽃시장 “소비자가 곧 소매상”해법은 ‘몰’에 있다. 소비자 A씨가 인터넷 꽃 몰을 무료 개설하면 A씨는 소매상이 된다. 스스로 꽃을 구입해도 소매점의 통상적 마진 35%의 10%를 돌려받는다. 10만원짜리 꽃다발을 8만9500원에 살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사람에게 꽃을 팔아도 마찬가지다. 효과는 괜찮다. 인터넷 꽃시장을 통해 몰을 개설한 소비자는 싼값에 싱싱한 꽃을 구입·판매하고, 생산자는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다. 유통 단계를 줄인 덕이다. 인터넷 꽃시장에선 현재 1500여 개 몰이 운영 중이다. 유통을 혁신하면 기업은 성장 날개를 단다. 방법은 다르지만 기존 유통 시스템을 바꿔 시장을 장악한 기업도 많다. 전자제품 전문점 하이마트와 아웃도어 쇼핑몰 오케이아웃도어닷컴은 신(新)유통책 ‘킬러 콘텐트 전략을 내세워 업계 1위에 우뚝 섰다. 반대로 유통 때문에 침체의 길에 빠질 수도 있다. 오케이아웃도어닷컴 장성덕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유통은 과학이다.” 소프트웨어 유통구조에 메스를 들이댄 스티브 잡스도 같은 생각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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