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적 투자로 ‘빅3’ 노린다
공격적 투자로 ‘빅3’ 노린다
지난해 2월 정준양 회장이 포스코의 새 수장에 올랐을 때 포스코는 위기였다. 이구택 전 회장의 사퇴에 따른 외압 논란으로 포스코 안팎은 어수선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세계 철강시장은 불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정준양호는 비상등을 켜고 출발했다.
취임 후 정 회장이 내린 첫 조치는 감산. 포스코 40년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취임 일성은 비장했다. “생존은 의미 없고 생존 이후 경쟁력을 갖추는 데 힘쓰겠다.”
그로부터 1년9개월이 지났다. 포스코는 이미 비상등을 뗐다. 대신 강력한 추진기를 달았다. 추진체는 ‘과감한 투자’고 지향점은 ‘글로벌 포스코’다.
거침없는 투자 행보포스코는 요즘 정준양 회장 지시로 2008년 창립 40주년 때 내놓은 ‘비전 2018’을 수정하고 있다. ‘비전 2018’은 2018년 매출 100조원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포스코가 밝힌 올해 예상 매출은 33조원이다. 포스코는 ‘비전 2018’을 ‘비전 2020’으로 바꿔 12월 중 발표할 예정이다. 알려진 바로는, 목표는 2020년 매출 200조원 달성이다. 포스코와 현재 계열사만의 성장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목표일지 모른다. 막대한 설비 및 신사업 투자, 대형 M&A(인수합병)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무모한 비전인가? 포스코의 행보를 보면 확실한 자신감이 깔려 있는 듯하다. 철강시장 불황 여파 속에서 포스코는 끊임없이 글로벌 철강기업으로 기반을 다져왔다. 2008~2009년 세계 철강회사가 적자를 내거나 수익 감소를 겪는 상황에서 포스코는 꾸준히 10%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올렸다. 철강전문 분석기관인 WSD(월드 스틸 다이내믹스)가 지난 4월 세계 32곳의 철강회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경쟁력 평가에서 포스코는 1위에 올랐다. 5년 만의 1위 탈환이다.
실제로 포스코의 행보는 거침없다. 올해 내내 이어진 해외 투자와 향후 투자 계획의 퍼즐을 맞춰 보면 ‘글로벌 포스코’라는 큰 그림이 선명해진다. 의사결정은 신속하고 투자는 더없이 과감하다.
포스코는 11월 중순 국내외 공장 증설 계획을 발표했다. 1조6000억원을 투자해 광양제철소에 330만t의 열연공장을 증설하고 인도에는 180만t 규모의 냉연공장을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국내 기업의 진출이 활발한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빌레바가드 산업단지에 건설할 냉연공장은 내년 11월 착공해 2013년 말 준공할 계획이다. 이곳에서는 자동차 강판으로 쓰이는 고급 냉연강판을 주로 생산한다는 것이 포스코의 설명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인도의 냉연제품 수요는 2018년까지 연간 13% 정도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자동차용 강판은 2015년 85만t, 2018년에는 178만t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글로벌 철강벨트 추진앞서 포스코는 지난 3월 인도 마하라슈트라주에 자동차용 고급 소재인 연속아연도금 공장을 착공했다. 이로써 포스코는 인도 타타스틸과 합작해 2012년까지 인도에 냉연강판 공장을 설립하기로 한 신일본제철, 인도JSW스틸과의 합작으로 자동차용 철강제품 생산에 나선 일본JFE스틸 등 일본 철강사와 일대 격전을 벌일 전망이다.
지난 10월에는 인도네시아에 600만t 규모의 제철소를 건설하기 위한 부지 조성에 착공했다. 포스코가 동남아시아에 처음 세우는 일관제철소다. 투자 방식은 독특하다. 포스코가 부지 매입부터 인프라, 생산설비 구축을 모두 맡는 ‘그린필드’ 방식이 아니라 현지 합작사가 보유한 도로, 철도, 항만, 전력 등 기존 인프라를 활용하는 ‘브라운 필드’ 방식이다. 초기 투자비는 적게 들고, 공장은 더 빨리 가동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포스코는 인도네시아 철강회사인 크라카타우스틸과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포스코가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이유는 이 나라의 자원과 미래 시장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포스코 측은 “인도네시아는 철광석과 석탄 잠재 매장량이 많아 원료 수급이 원활하고 주변 국가의 철강 수요산업도 급성장하고 있어 시장 전망이 밝다”고 말했다.
또한 포스코는 지난 7월 브라질 발레와 동국제강이 추진해온 브라질 제철소 사업에 지분 참여 방식으로 투자를 결정했다. 브라질 북동부 지역에 300만t 규모의 슬라브를 생산하는 제철소를 건설하는 이 프로젝트는 2014년 완결된 예정이다. 포스코 측은 “포스코건설과 함께 지난해 연말부터 약 6개월 동안 타당성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이어 “사업 자체의 수익성뿐 아니라 미주 지역의 철강사업에 안정적 소재 공급기지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투자한 것”이라고 전했다. 빠르게 성장 중인 브라질 시장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는 전략도 작용했다. 발레는 세계 최대 철광석 공급회사다.
중국 시장 역시 포스코가 공을 들이는 곳이다. 포스코는 내년 2분기에 중국 광둥성 순던시에 연산 45만t 규모의 CGL 공장을 착공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현재 부지 조성 작업이 진행 중이다. 포스코는 “지난 7월 이사회에서 사업 승인 결정을 내렸고 지난 10월 중국 정부의 사업 비준을 취득했다”고 밝혔다. 이 공장은 포스코의 현지법인인 광둥순덕포항과 광둥성 정부가 합작하는 형태로 건설된다. 경영권은 포스코가 갖는다.
포스코의 이번 투자 계획은 급속도로 성장하는 중국 자동차 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포스코는 “중국 자동차 시장이 확대되는 추세고 2020년에는 5000만 대까지 생산 규모가 성장할 것으로 예상돼 시장을 선점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7월에는 중국 지린성 정부와 포괄적 사업 협력을 맺었다. 이 프로젝트는 철강, 자동차, 건설, 토목, 첨단산업 등 5개 부문에 걸쳐 포스코와 지린성 정부가 합작사업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포스코는 “중국 지방정부와 단일기업이 이런 포괄적 협약을 맺은 것은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이 프로젝트는 지린성이 포스코에 요청하면서 이뤄졌다. 포스코가 한국의 국가개발 계획을 추진한 경험이 많고 철강을 비롯한 다양한 산업군을 가지고 있어 최적의 파트너라는 이유였다.
대우인터내셔널 첨병 역할지린성 프로젝트는 ‘글로벌 철강벨트’를 꿈꾸는 포스코에 의미 있는 사업이다. 포스코는 “이번 지린성과의 합작을 계기로 동북 3성 내 철강업을 중심으로 시장 지배력을 확보해 몽골, 극동, 만주지역의 물류 루트를 구축할 것”이라며 “철강과 비철강 분야의 균형적 포트폴리오를 통해 안정적 수익원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철강 외에 비철강 분야 매출 확대를 노리는 포스코의 전략과 맞아떨어진다는 얘기다. 이 밖에 포스코는 장자강 지역에 스테인리스 일관생산설비를 가동 중이며 2013년까지 생산량을 100t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내년 4월 가동을 목표로 연산 23만t 규모의 냉연설비도 증설하고 있다. 중국 전역에 16개 철강가공센터를 운영 중인 포스코는 원료 자급률을 확대하기 위해 투자를 늘려 현재 20%인 중국 내 원료 자급률을 2014년까지 50%로 끌어올린다는 방침도 세웠다.
해외 생산기지 확대 못지않게 포스코가 주력하는 것이 해외 마케팅과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이다. 포스코는 올 들어서만 중국, 미국, 베트남, 태국 등에 가공센터나 판매 거점을 만들었다. 포스코는 현재 전 세계 46곳에 철강가공센터를 운영한다. 중국이 16개로 가장 많고 동남아시아가 11개다. 일본과 인도는 각각 6개, 5개다. 미주는 5개, 유럽은 3개다. 포스코는 2018년까지 해외가공센터를 60개 이상 늘릴 계획이다.
지난 9월 인수 절차를 마친 대우인터내셔널은 글로벌 포스코를 위한 첨병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인수 전에도 포스코 철강제품 수출의 20% 정도를 담당했던 대우인터내셔널의 촘촘한 세계 거점(106곳)을 활용해 철강재 수출 지역을 다원화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세계 15곳의 에너지·광물 개발광구 지분이 있는 대우인터내셔널을 활용해 사업구조를 철강 중심에서 소재·자원 분야로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포스코 측은 “대우인터내셔널이 그동안 축적해온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중동, 아프리카 등 미개척 시장을 중심으로 글로벌 판매채널을 확고히 구축하고 해외 자원개발 노하우를 통해 포스코의 원료 확보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마그네슘, 리튬, 티타늄, 지르코늄 등 희소 금속을 적극 확보해 포스코가 글로벌 종합 소재 공급사로서 위상을 확고히 하는 데 기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글로벌 마케팅 강화
11월 17일 포스코가 인천 송도 R&D센터에서 전 세계 고객 430여 개사를 초청해 연 행사는 ‘포스코의 지향점’을 알 수 있는 자리였다. 행사명은 ‘포스코 글로벌 EVI포럼 2010’. 도요타, 소니, 엑손모빌, 캐터필러 등 글로벌 고객사가 참여한 이 행사에서 포스코는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발표했다. 원래 ‘EVI(Early Vendor Involvement)’는 자동차 회사가 신차 개발 초기 단계에 부품 공급사를 참여시켜 품질 개선과 원가 절감을 도모하는 활동이다. 포스코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전 사업에 걸쳐 고객사뿐 아니라 고객의 고객까지 참여해 제품과 기술개발을 먼저 제안하는 ‘포스코형 EVI(Expanded Value Initiative for Customer)’다.
포스코 측은 “가전, 조선, 에너지, 건설, 중장비 등 전 사업 고객사를 대상으로 EVI 활동을 하는 것은 포스코가 처음”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11월 4일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준공한 ‘포스코 글로벌 R&D센터’ 역시 이 회사의 글로벌이 그냥 말잔치가 아님을 확인시켜 준다. 착공 27개월 만에 준공된 글로벌R&D센터의 의의를 정준양 회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남보다 한발 앞선 창조적 기술 우위의 확보 없이는 세계 경쟁에서의 승리도,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성장도 불가능하다. 동북아 관문인 송도에서 글로벌 철강기업으로서 미래기술 경쟁력을 선도해 나가겠다.”
포스코의 과감한 투자에 대해 공급 과잉과 경쟁 심화에 따른 수익률 악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세계 10대 철강사 중 8개사가 포진한 한·중·일의 증설 경쟁으로 철강 수급의 균형이 깨지는 것을 우려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지난 10월 말 7억 달러의 글로벌 달러본드를 발행하는 등 투자를 위해 차입을 늘리는 포스코의 재무제표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포스코의 부채비율은 2005년 24%에서 2008년 33.3%, 올 3분기 현재 34.6%로 늘었다. 자산을 차입금으로 나눈 차입금 의존도 역시 2006년 5.8%에서 올 3분기 17.2%로 증가했다. 주요국의 경기회복 지연에 따른 철강시장의 성장 둔화나 조선, 건설 등 전방산업 회복이 늦어지면서 공급 과잉 가능성도 포스코를 둘러싼 리스크다.
하지만 이런 리스크는 늘 존재했다. 역으로 보면 이런 리스크 때문에 포스코의 과감한 투자를 동반한 글로벌 전략은 의미와 무게를 갖는다. 포스코경영연구소에 따르면 물류가격 하락과 FTA(자유무역협정)로 한국과 중국, 일본 철강시장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될 전망이다. 철강제품의 무관세가 더 확대되면 동아시아 역내의 철강 판매 경쟁은 갈수록 심화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 연구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국 철강산업은 경쟁환경 악화로 역내 수출 확대 전략의 제약, 국내 경쟁 심화, 동남아 철강시장에서의 입지 약화 등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며 “선제 대응이 미흡할 경우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내수시장을 지키면서 해외시장을 선점하는 것은 포스코에는 사활이 걸린 일과 다름없다. 내수와 수출 비중이 6.5 대 3.5 정도고 중국과 일본, 동남아 지역 수출 비중이 큰 포스코로서는 더욱 그렇다.
물론 포스코에 글로벌은 단순히 해외시장 확대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정준양 회장이 말하는 글로벌 초일류 기업은 사회적 책임, 노사문화, 직원윤리, 인재 육성 등 모든 분야에서 ‘글로벌한’ 포스코를 뜻한다. 최종태 포스코 사장이 ‘통섭형 인재’를 강조하는 것 역시 철강을 넘어 종합 소재·자원 그룹으로의 도약을 꾀하는 큰 그림에서 나온 말이다.
그동안 포스코 임직원은 ‘생존경영’ ‘위기의식’ ‘도전정신’ ‘혁신과 R&D’ ‘공격경영’ ‘기술선도’ ‘포스코 3.0’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이는 불확실한 경영환경에서 포스코 경영진이 선택한 비수다. 그 비수를 품고 포스코 임직원이 뛴다. 우리는 10년 후 매출 200조원, 세계 빅3의 글로벌 포스코를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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