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은 혁신의 어머니
불편은 혁신의 어머니
▎출근길 버스중앙차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한 여학생은 이런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양문형 버스를 제안했다.
창조경영의 시작은 구성원들의 전뇌를 활성화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이해하려면 창조의 실마리를 푸는 곳을 알아야 한다. 창조는 결코 멀리서 시작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사는 생활공간이 창조의 시작이다.
한 여학생의 양문 버스 아이디어LG생활과학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아이디어 공모전을 실시했다. 과천중학교에 다니는 한 여학생이 대상을 받았다. 중앙차로로 운행하는 버스의 출입문을 개선하자는 아이디어였다. 버스 중앙차로제가 시행되면서 버스는 도로 가운데 두 차로를 이용한다. 버스를 타는 문은 우측에 있다. 승강장은 양쪽에 각기 만들어져 있다. 문제는 한편에서 버스를 내려 반대편의 버스를 갈아타려면 일이 복잡해진다는 점이다. 일단 자신이 내린 승강장 쪽의 길을 건너야 한다. 그런 후 길을 건너 반대편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신호를 기다려 타고자 하는 승강장으로 다시 건너야 한다.
이 여학생은 버스의 문을 좌우 양쪽으로 내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 생각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단순히 사람들의 불편함을 줄여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렇게 되면 두 개의 승강장이 필요 없다.
현재 방식은 중앙 버스차로 2개, 승강장을 위한 차로 2개, 총 4개가 필요하다. 그런데 버스의 문을 양쪽으로 내면 3개면 충분하다. 가운데에 통합 승강장을 두면 된다. 버스의 문이 양쪽으로 나 있으니 버스를 타는 데도 지장이 없다. 그 효과는 엄청나다. 버스 중앙차로 때문에 많은 시민이 교통이 막히는 불편을 겪는 마당에 차로 하나를 돌려주는 것만으로도 차량 흐름은 크게 개선될 것이다. 이 여학생이 이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버스 중앙차로 때문에 자신의 생활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기업의 창조도 마찬가지다. 그 시작은 구성원 자신이나 동료 또는 고객이 살아가는 생활공간에서 출발한다. 생활공간에서 창조를 이끌어 내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생활공간 속의 문제를 인식하는 방법이다. 버스의 문을 양쪽에 내자는 여학생의 예가 여기에 해당한다. 생활공간은 문제로 뒤덮인 공간이다. 시리얼로 유명한 켈로그는 초등학교를 간신히 마친 윌 키스 켈로그에 의해 설립된 회사다. 그는 미시간주에 있는 한 병원에서 25년 동안 잡일과 입원환자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일을 했다. 어느 날 그는 소화기 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서 병원이 제공하는 빵을 먹으면 속이 불편하다는 불평을 들었다. 켈로그는 빵 속에 있는 이스트가 부작용을 일으켜서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이스트가 없는 곡물로 빵 대용품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것이 오늘날의 시리얼이다.
버스 양쪽에 출입문을 내자는 소녀와 켈로그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과 주위 사람이 살아가는 생활공간을 통해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창조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생활공간 = 문제공간’임을 알면 창조에 이르기 쉽다.
이런 방식을 조금 더 응용하면 스티브 잡스의 방법에 이른다. 그가 아이폰을 만들게 된 이유를 살펴보면 기존 스마트폰에 대한 불
만에서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세상에는 스마트폰의 정형으로 알려진 ‘블랙베리’가 있었다. 하지만 잡스는 이 기계가 기껏해야 전화와 메모장, 그리고 e-메일을 검색할 수 있는 수준으로 사람들의 생활공간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다.
길을 잃어도 블랙베리는 아무런 해결책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생활공간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폰을 만들자고 한 것이 아이폰이다. 아이폰은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을 통해 생활공간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척척 해결해준다. 길을 찾아주고 날씨를 알려주며 음악을 연주하고 지하철도 쉽게 타게 해준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열광했다.
둘째 방식은 생활공간에서 찾아낸 해결책을 가져다 쓰는 것이다. 좋은 예가 있다. 쓰촨성의 한 농부가 하이얼이 만든 세탁기가 고장 났다고 신고했다. 수리 기사가 가서 보니 세탁기 안에는 붉은 흙이 잔뜩 있었다. 세탁기로 고구마를 씻었던 탓이다. 담당 기사는 이 사실을 본사에 즉시 알렸다. 그래서 나온 것이 채소를 씻는 세탁기다. 소비자는 때로는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스스로 해답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을 포착하면 창조가 일어난다. ‘생활공간 = 지식공간’인 셈이다.
소지자의 생활공간을 파고들어라셋째 방식은 자신이나 타인의 생활공간 속으로 들어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방식이다. 한국후지필름에 근무하는 한 여직원이 다 죽어가는 즉석카메라의 매출을 살려냈다. 그 여직원은 팔리지도 않는 ‘인스탁스’라는 즉석카메라를 팔아보라는 책임을 맡게 됐다. 광고를 열심히 한다고 매출이 오를 제품이 아니었다. 고민하던 이 직원은 문구를 사기 위해 광화문의 한 대형서점에 들렀다.
자기 또래의 20대 여성들이 각종 캐릭터 상품을 둘러보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디어가 섬광처럼 스쳤다. 젊은 사람들이 아기자기하고 예쁜 문구를 고르는 것을 본 순간 인스탁스도 예쁘게 만들어 젊은 사람들의 손을 타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까지 인스탁스는 카메라라는 이유로 전자제품 매장에 진열했다.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의 기세에 눌려 이 카메라는 고객들로부터 외면 받았다. 유통망에 문제가 있었다. 곧바로 인스탁스와 필름,건전지를 패키지로 묶고 외관은 헬로키티와 미키마우스 등 앙증맞은 캐릭터로 장식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6년 46만 대 에 그쳤던 판매량이 2010년에는 10개월 만에 120만 대로 증가했다.
이 직원의 창조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고객들의 생활공간 속으로 들어간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전에는 이 제품을 사는 사람이 20~30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들의 생활공간과 동떨어진 곳에서 제품을 판매했다. 생활공간을 기회공간으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생활공간이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자신의 생활공간을 일상의 공간으로만 활용한다. 습관대로 살아가는 후뇌 의존적인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창조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타인의 생활공간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인식하고 여기서 얻어진 정보를 정리하고 활용하는 습성이 있어야 한다. 이런 역할을 전뇌가 한다. 전뇌를 쓰면 생활공간은 문제공간, 지식공간, 기회공간으로 전환될 수 있다. 이런 전환이 창조의 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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