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성급 호텔들이 우리침대 쓰죠
7성급 호텔들이 우리침대 쓰죠
스웨덴의 럭셔리 침대 브랜드 덕시아나의 클라에스 융(62)회장 집 앞에는 자주 트럭이 왔다 갔다 한다. 새로운 침대가 나올 때마다 클라에스 회장 집에 새 침대가 배달되는 것이다. 아내는 침대가 자꾸 바뀌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새 침대에 먼저 누워 보는 게 행복하고, 반드시 챙겨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그는 고객에게도 꼭 누워 보고 침대를 고르라고 권한다. 내 몸에 꼭 맞는 편안한 침대를 찾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오가는 매장에서 침대에 눕기가 쉽지는 않다. 이 점을 고려해 11월 1일 덕시아나 서울 청담동 매장에서는 ‘스위트 슬립’룸을 열었다. 예약하면 혼자 이 방 침대에 누워 편안함을 체험할 수 있다.
클라에스 융 회장은 아들인 헨릭 융(37) 부회장과 함께 이날 청담동 리뉴얼 매장 오프닝 행사에 참석했다. 덕시아나 2015 컬렉션 론칭을 겸한 자리였다. 헨릭 융 부회장이 직접 침대를 분해해 내부 스프링 구조를 보여줬다. 기존 침대에 비해 세 배 이상 많은 연속식 코일 스프링을 써 구성한 복층 강철 스프링 구조는 덕시아나만의 특징이다. 일반 더블 침대에는 375~900개의 스프링이 쓰인다. 덕시아나의 더블 침대에는 1680~2400개의 스프링이 들어 있다.
대 이어 84년째 침대 제작덕시아나는 1926년 클라에스 회장의 할아버지인 에프라임 융이 설립했다. 그는 신체에 꼭 맞는 침대를 만들고자 매트리스 안에
스프링을 넣은 침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사람들이 쓰던 침대는 전체가 딱딱한 재질로 돼 있거나 그물처럼 부드러운 것이 대부분이었다. 아버지인 에릭 융에 이어 클라에스 회장은 38세이던 86년 회사를 물려받았다. 이후 덕시아나는 전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87년부터 스웨덴 말뫼, 영국 런던, 미국 LA에 소매점을 열었다. 지금은 유럽과 호주, 미주, 아시아에 130여 개 매장을 두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 스프링 제작에 힘을 기울였다. 그는 “우리가 꼭 해야 하고, 제일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다른 업체에 맡겼다”며 “전 세계 침대 업체 중 스프링을 제작하는 회사는 많지 않다”고 했다.
그는 세계 곳곳에 있던 30개 공장 중 대부분을 정리했다. 지금은 스웨덴에 두 곳만 남아 있다. 그가 회사를 물려받을 당시엔 판
매처 근처 공장이나 스프링이 아닌 다른 부분을 제작하는 공장은 대부분 필요가 없어졌다. 아버지인 에릭 융이 적극적으로 나섰던 가구 제작 부문도 거의 정리했다. 그는 “아버지 때에는 가구 제작이 필요했지만 상황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공장 문을 닫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근로자의 일자리가 걸린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클라에스 회장은 “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때를 놓치지 않고 즉각 대응해야 한다”며 “젊은 시절에는 결정해야 할 타이밍을 놓쳐 실수한 적이 많았다”고 했다.
현재 버즈 알아랍, LA 세타이 호텔 등 세계적 부호들과 CEO들이 찾는 호텔에서 덕시아나 침대를 쓴다. 덕시아나는 4세대 경영에 접어들었다. 클라에스 회장의 5남매 중 4명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전문 분야는 각각 다르다. 뉴욕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딸은 크리에이티브 부서에서 일한다. 헨릭 부회장은 해외 마케팅을 맡고 있다. 셈에 능한 둘째 아들은 재무 담당이다. 막내 아들은 스위스에서 호텔대학을 다니며 덕시아나의 호텔 경영을 준비한다.
클라에스 회장은 “각 분야에서 뛰어난 자식들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며 “나는 무척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자랑했다. 헨릭 부회장은 “아버지는 경영 참여를 강요하지 않았지만 기회를 열어뒀다”며 “현명한 방법이었다”고 밝혔다. 가업이 있는 집안 자식들은 종종 ‘다른 길’을 찾기도 한다. 헨릭 부회장도 그랬다. 미국에서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덕시아나 경영에 참여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공부하던 중 우연히 덕시아나 미국 지사에서 일하게 됐다. 흥미를 느낀 그는 4년 동안 미국 지역 매장을 관리했다. 여러 고객을 만나고 그들의 특성을 파악했다.
4년 후 학교로 돌아간 헨릭 부회장은 졸업 후 덕시아나를 택했다. 그는 “내 생각대로 일을 펼칠 수 있고, 형제들과 함께 덕시아나의 역사를 이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클라에스 회장은 자식들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지시하기보다 ‘이것만은 하지 마라’고 할 때가 많다. 그는 “경영 환경이 계속 바뀌니까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은 자식들의 몫”이라며 “선대에서 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조언한다”고 했다. 헨릭 부회장은 아버지에게 ‘여러 사람의 말에 휘둘리기보다 너의 직관을 믿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경력이나 나이 든 주변 사람이 더 나은 판단을 할 것이라고 넘겨짚지 말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자신의 판단에 자신감을 가지라는 의미였다.
이 말은 헨릭 부회장에게 큰 도움이 됐다. 한번은 많은 사람이 반대했던 인물을 주요 자리에 채용했다. 그는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가 업무를 훌륭하게 해낼 것이라고 믿었다”고 했다. 새 직원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뛰어난 성과를 냈다.
5 남매 중 4명 경영 참여헨릭 부회장은 전 세계 여러 파트너와 함께 일한다. 그는 이들과의 관계를 퍼즐 맞추기에 비유했다. 시장 확보, 고객 유치, 배달, 애프터서비스 등의 조각을 파트너들과 함께 맞춰야 그림이 완성된다는 말이다. 그중 덕시아나가 직접 관리하지 않는 조각도 많다. 적합한 파트너를 만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아버지처럼 그에게도 행운이 따랐다고 했다. 하지만 행운이 저절로 그를 찾지는 않았다. 헨릭 부회장은 “업무에 맞는 사람들을 찾고, 폭넓은 네트워크를 유지해 행운이 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주말이면 그는 두 살배기와 생후 두 달 된 아들 둘과 시간을 보낸다. 그는 “후손이 좀 더 수월하게 경영할 수 있도록 덕시아나의 토대를 닦고 싶다”고 말했다.
클라에스 회장은 지난 8월 중국 베이징에 덕시아나 호텔 5호 점을 열었다. 나머지 네 곳은 스웨덴에 있다. 객실이 50개를 넘지 않는 호텔에서는 덕시아나 침대만 쓴다.‘편안함’이 이 호텔들의 최대 자랑거리다. 클라에스 회장은 서울에도 호텔을 열 것이냐는 질문에 “이제 막 베이징에 문을 열고 숨을 돌렸다”며 “조금 더 기다려 달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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