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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첨단기술이 만났다

전통과 첨단기술이 만났다

▎G20 정상회의가 열렸던 서울 삼성동 코엑스 동관 로비에 설치된 ‘미디어 첨성대’.

▎G20 정상회의가 열렸던 서울 삼성동 코엑스 동관 로비에 설치된 ‘미디어 첨성대’.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던 G20 서울정상회의 기간 동안 특히 많은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은 미술 작품을 기억하시는지? 정상회의가 열린 서울 삼성동 코엑스(COEX) 동관 로비에 설치됐던 ‘미디어 첨성대’ 말이다. 첨성대 실물의 3분의 2 크기인 6m 높이로 1350여 장의 발광다이오드(LED) 화면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외국 기자단을 비롯한 참가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LED를 통해 한글, 문창살, 천마총 등 우리나라를 연상케 하는 다양한 이미지를 선보인 이 작품을 두고 전통적인 색채미와 현대적 조형미의 조화, 그리고 첨단 IT기술과 문화 예술적 역량이 융합된 작품이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이 작품을 제작한 류재하 경북대(미술학과) 교수는 “갇혀 있는 미술이 아니라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는 미술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디어 아트가 아닌 순수 서양미술을 전공한 그가 ‘미디어 첨성대’를 만든 이유는 “사람과 이어지는 예술”이라는 평소 지론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음악에서는 기쁨이나 슬픔 등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지만 그림으로는 이런 감정을 주는 데 한계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국내에 컴퓨터 산업이 태동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 우연히 친구를 통해 컴퓨터를 접한 이후 미술과 컴퓨터를 접목할 영상작업을 구상하게 됐다.”

그동안 시행착오와 좌절도 숱하게 겪었다. 그는 “생각만큼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며 “컴퓨터 프로그래밍 같은 생소한 분야를 따로 공부해야 했고 기술적인 지식의 한계도 극복해야 했다”고 그때를 돌이켰다.

류 교수가 자신의 설치미술에 처음 사용했던 소재는 LCD모니터였다. 하지만 야외에 설치하기에는 방수기능이나 밝기 조절에 어려움이 따랐다. 그러던 차 평소 구상해 왔던 작업에 날개를 달아줄 LED를 알게 됐고 작품에 응용하기에 이르렀다.

▎류재하 교수는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는 미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류재하 교수는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는 미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느 산업 전시회에 갔다가 엄청난 빛의 밝기와 색감을 가진 LED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바로 저거다 싶더라고요. 하지만 당시로서는 가격이 너무 비싸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속앓이만 하다가 언젠가 서울시로부터 예산을 받아 실행했던 한 설치 작업에서 LED 조형물을 처음으로 시도해 봤습니다.”

스스로 빛을 내는 LED는 야외에 설치해도 단연 돋보이고 사람들이 가장 또렷하게 인식할 수 있는 최적의 재료였다. 그는 “LCD와는 달리 LED는 정형화된 틀뿐 아니라 다양한 형체를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과도 차별화한 작품을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미디어 첨성대는 이런 ‘입체성’을 최대한 살려 조성한 작품이다. 전통적인 소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경주라는 역사도시의 상징인 첨성대를 과감히 작품 소재로 끌어들였다.

이 작품은 지난 6월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국제 LED 엑스포 2010’에서 첫선을 보였다. 당시 G20 정상회의를 준비하는 관계자들에게서 전시 제의를 받았고 이후 6개월간 보완 작업을 거쳐 완성됐다.

미디어 첨성대로 한국의 미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에 류 교수는 “우리의 전통이라고 해서 외국인이 무조건 좋아해주는 건 아니다”라며 “그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소재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외국인에게 신선함과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그가 덧붙였다.

그는 G20 정상회의 전시기간 내내 ‘미디어 첨성대’가 외국인들의 인기를 끌었던 데 고무된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외국인들이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고 주변에 둘러앉아 간단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반가웠다”고 그가 말했다. “그들은 예술작품을 어려워하지 않고 생활 속에서 예술을 즐기는 듯했다”고 그가 덧붙였다.

하지만 미디어 첨성대는 G20 정상회의가 끝난 뒤 철거되는 운명을 맞았다. 그는 “코엑스나 준비위원회가 직접 나서서 작품 설치와 유지를 위해 애써주셨는데 작품을 옮기는 데 비용을 지불할 개인이나 단체를 찾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미디어 첨성대를 뛰어넘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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