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없는 뉴욕의 디자이너 호텔
불황 없는 뉴욕의 디자이너 호텔
요즘 뉴욕에는 어느 거리 모퉁이에나 세탁소, 피자가게, 선술집, 지역 디자이너 호텔이 하나쯤은 있는 듯하다. 뉴욕엔 최소 50개 이상의 고급 호텔 체인을 포함해 수백 개의 호텔이 있다. 그렇다면 왜 지난 1년 새 이 도시에 갑자기 고급 디자이너 호텔 신축 붐이 일었을까? 뉴욕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아니던가?
새로운 명물로는 우선 세타이 핍스 애비뉴가 꼽힌다. 여러 달 동안 기대를 한껏 부풀리더니 드디어 11월 초에 문을 열었다. 최근 몇 년 새 모습을 드러낸 최대의 신축건물로 손꼽히는 이 객실 214개의 60층짜리 초고급 호텔에는 한 층을 통째 사용하는 오리가 스파, 줄리앙 파렐 헤어살롱이 있으며 고층에서 내려다보는 첼시와 미드타운의 전경이 눈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이 건물이 우뚝 솟아오르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렸다. 이탈리아 최고 부동산 재벌 다비데 비치가 6억7000만 달러에 인수계약을 체결한 시점은 월스트리트가 붕괴되기 한참 전인 2006년 8월이었다.
사실 뉴욕 호텔업계의 갑작스런 부흥은 현지 경제의 회복보다는 외국인의 눈에 비친 이 도시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말해준다. 눈 밝은 외국인 투자자뿐 아니라 외국인 여행자들이 뉴욕으로 몰려든다. 값싼 달러와 미드타운의 고층빌딩에서 소호(SoHo)지구의 세련된 부티크에 이르기까지 넘쳐나는 멋진 신축 호텔이 그들을 끌어들이는 요인이다. 프랑스인과 이탈리아인을 위시한 유럽인과 중국·인도·브라질의 신흥부호들이 뉴욕을 찾아 호화판 쇼핑여행과 흥청망청하는 주말파티를 즐긴다. 지난해 뉴욕은 올랜도를 제치고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로 올라섰다. 사교계 인사이자 호텔업자인 이반카 트럼프는 “뉴욕시가 호텔업 부활의 측면에서 미국의 다른 지역보다 뛰어난 실적을 올렸다”며 “출장여행과 외국인 관광객의 유입이 경기회복을 견인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그녀의 가족기업이 운영하는 뉴욕의 두 호텔도 실적이 나쁘지 않다. 새로 개장한 트럼프 인터내셔널의 객실 가동률은 15% 증가했으며 지난 4월 문을 연 세련된 스타일의 트럼프 소호도 개장 후 투숙객이 11% 증가했다.
지난 두 달 동안 뉴욕에서 가장 최근에 문을 연 화제의 호텔을 몇 군데 둘러보았다. 지난 9월 개장할 때 빌 클린턴 같은 유명인사가 참석한 채트월 등 몇몇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붕어빵 기계로 찍어낸 듯한 뉴욕의 아르데코풍 디자인을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10여 곳은 고급 호텔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출발점은 뉴욕권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근린주거지역으로 꼽히는 금융가였다. 물론 은행들이 빠져나간 이곳 밤거리 풍경은 아직도 지구종말 후의 ‘다들 어디로 갔지?’하는 느낌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 지역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 월스트리트에 디자이너 부티크들이 들어서고 배터리 파크 인근에 새로운 음식점이 여럿 문을 열었다. 세 곳의 신축 호텔이 지역 전체의 문화적 부흥을 선도한다. 안다즈 월스트리트와 W 다운타운은 기업처럼 썰렁한 느낌을 주는 분위기는 여전하지만 최신 스타일의 객실과 퇴근길 직장인이 즐겨 찾는 바를 자랑한다. 하지만 안다즈는 농장에서 요리 재료를 직송해오는 음식점이 딸려 있어 더 따뜻한 분위기를 풍긴다. 구세계의 남성다운 느낌이 더하면서 수사슴 머리장식이 벽에 걸린 곳을 찾는다면 골드 스트리트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재개장한 길드 홀이 괜찮다. 안다즈와 길드 홀은 이미 권위를 인정받는 디자이너 호텔 가이드인 키위 콜렉션에 추가됐다.
소호와 트라이베카(캐널 거리 아래쪽의 삼각지대) 인근에도 비슷하게 디자이너 호텔 붐이 인다. 트럼프 소호의 거대한 타워는 부티크와는 사뭇 거리가 멀지만 도시 전경을 내려다보는 전망만큼은 요즘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정육가공 지구(갠스보트 시장)의 더 스탠더드에 버금갈 정도로 좋다. 더 인간적인 교감을 체험하려면 소호의 제임스나 크로스비가 좋다. 둘 다 어느 정도는 자갈이 깔린 거리 덕분에 주택가 분위기가 느껴진다. 돈이 얼마나 들어도 상관없다면 스마이드 트라이베카의 사방으로 테라스가 있는 펜트하우스를 권한다(우스갯소리로 이곳의 옥외 라운지 구역에다 집값 비싼 웨스트 빌리지의 일반 스튜디오를 옮겨 놓아도 괜찮겠다고 말할 정도다).
미드타운은 타임스 광장이 한복판에 자리 잡아선지 전통적으로 디자이너 호텔이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그러나 몇 블록만 벗어나면 괜찮은 대안이 여럿 눈에 띈다. 세타이 외에도 헤럴드 광장 근처에 있는 에벤티가 눈길을 끈다. 이 야심적인 호텔-주거 복합단지는 1층의 현대적인 푸드 코트를 고급스럽게 개조해 고객이 주문하는 첨단 스탠드를 설치했다. 동쪽으로 몇 블록 더 가면 갠스보트 파크 애비뉴가 있다. W 다운타운의 지점 같은 느낌을 주지만 객실이 훨씬 더 크다는 점이 다르다. 실제로 실외까지 뻗어 나온 온수 풀장과 옥상 3단 데크 등 이 호텔의 모든 시설이 점보 사이즈다(갠스보트는 정육시장 지구에 위치해 혼잡하지만 옥상 라운지는 한적한 편이다).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디자이너 호텔로는 서리가 최상의 사치를 가장 소박한 형태로 구현한다. 부티크·고급 호텔 전문 사이트 ‘미스터&미세스 스미스’에 등록된 이 호텔은 스웨덴제 덕시아나 매트리스, 스페라 침구, 세계적인 스타 요리사 대니얼 불러드가 준비한 만찬을 객실로 배달해주는 서비스 등 더 고급스런 면모를 자랑한다. 모험가로 더 유명한 기업인 리처드 브랜슨(프레지덴셜 스위트에서 인터뷰했다)과 할리우드 스타 빈스 본(체크아웃 중이었다) 같은 유명인사가 서리를 선택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이들 업계에선 불황은 아득한 먼 옛날의 기억처럼 느껴진다. 블랙 타이의 복식(服飾)을 중시하는 플라자 호텔은 최근 무려 4억 달러를 들여 재단장하면서 유명한 오크 룸을 댄스 클럽 라 바가텔로 바꾸었다. 고객들이 토요일 아침 겸 점심으로 동 페리뇽과 뷰브 클리코 샴페인을 한없이 권커니 잣거니 하며 얼큰하게 취하는 곳이다. 뉴욕이라고 해도 어디에나 모든 게 다 똑같지는 않은 모양이다.
번역·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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