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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 GIS 고수 ‘중원’ 노린다

3차원 GIS 고수 ‘중원’ 노린다

▎ 김인현 1967년 경북 경주 출생 대구대 조경학과 한양대 도시공학 박사과정 수료 1995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원 1998년~ 한국공간정보통신 대표

▎ 김인현 1967년 경북 경주 출생 대구대 조경학과 한양대 도시공학 박사과정 수료 1995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원 1998년~ 한국공간정보통신 대표

# 10년 이상 걸렸다. 뼈를 깎는 R&D(연구개발) 끝에 건물 내부의 작은 센서까지 확인할 수 있는 GIS(지리정보시스템) 구축에 성공했다. 세계 최초다. 개발업체는 국내 IT 중소기업 한국공간정보통신. 제품명은 3차원 IBS(빌딩관리시스템) 인트라맵이다.

이 시스템은 놀랍다. 모든 지형물을 3차원으로 구현한다. 상세하고 빠르다. 왜곡도 없다. 정밀한 3차원 시뮬레이션이 가능해 재난예방에 제격이다. 가령 대피로를 선택하면 3차원 영상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IBS 인트라맵은 스마트폰에서도 활용 가능하다. 한국공간정보통신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완료하고 내년 초 출시한다. 빌딩 관리팀은 물론 개인 소비자도 IBS 인트라맵을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회사 김인현(43) 대표는 “3D 제품은 많지만 우리의 3D 기술력은 다르다”며 “빌딩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100%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IBS 인트라맵은 한국공간정보통신의 자존심이자 미래 성장동력이다.

# 탄광이 무너진다면? 별 대책이 없다. 광부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지하세계를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무너진 탄광에서 69일 만에 살아 돌아온 칠레 광부 33인을 두고 ‘기적의 생환’이라 일컫지 않나. 탄광의 지하세계를 3차원으로 보여주는 시스템이 있다. 중국 정부는 탄광붕괴·가스유출 등을 방지하기 위해 이 시스템을 시범 운영한다. 이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업은? 이 역시 한국공간정보통신이다.

영화 아바타를 보았는가. 영화의 배경인 판도라 행성을 ‘3차원 공간정보 시스템’으로 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게 GIS다. 지리공간 데이터를 분석·가공해 교통·통신 분야에 활용하는 시스템이다. 내비게이션의 도로 화면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국공간정보통신은 세계 최고의 GIS 기술력을 가진 기업으로 손꼽힌다. 1999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인터넷 3D GIS 인트라맵’을 선보였고, ‘지하시설물 관리시스템(2000)’ ‘64비트 공간 GIS 엔진(2006)’ ‘3차원 지능형 IBS(2010)’ 등 세계 최초 제품을 줄줄이 개발·출시했다.

사명(社名)은 월등한 기술력에 비해 덜 알려졌다. 모르는 사람이 아직 많다. 하지만 이 회사가 보유한 시스템만 들으면 “아!”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버스 도착시간을 알려주는 서울시 BMS(버스정보시스템) 사업을 구축했다. 도로마다 이름을 붙이고, 건물에 번호를 부여하는 새 주소 사업의 데이터베이스도 만든다. 한국공간정보통신의 시스템이 활용되는 곳은 이 밖에도 많다. 원자력발전소 안전관리, 재난대응에 사용된다. 소방방재청, 경북·인천소방본부는 이 회사의 재난시스템을 구축했다. 위치추적 솔루션, 유비쿼터스 도시에도 활용된다. 고객은 행정안전부·국토해양부·부산시·국가정보원·한국교통연구원 등 정부·지방자치단체·민간기관 600곳에 달한다.



세계 최초로 불리는 기업지금은 최고 기술력을 가진 기업으로 명성을 쌓았지만 출발은 미약했다. 한국공간정보통신은 1998년 IMF 시절, 명예퇴직 위기에 몰렸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4명이 힘을 모아 설립했다. 김인현 대표는 “수년간 연구했던 GIS 기술이 사장되는 게 싫었다”며 “퇴직금을 툴툴 털어 회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창업한 지 2년 만인 2000년, 이 회사는 인트라맵 시리즈의 첫 작품 ‘인트라맵 2000’을 출시했다. 암흑을 방불케 했던 지하세계를 3차원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김 대표는 “1995년 대구 지하철 폭발사건을 보면서 GIS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해 연구를 시작했다”며 “인트라맵 2000은 미국에도 수출돼 큰 파장을 일으켰다”고 회상했다.

한국공간정보통신의 진가가 국제적으로 알려진 건 2000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제3차 ASEM(아시아·유럽 정상회의)이었다. GIS를 활용한 위치추적 솔루션으로 글로벌 IT기업을 화들짝 놀라게 했다. 오차범위가 5m에 불과했으니 그럴 만했다. 2000년 이후에도 앞서가는 기술력을 무기로 국내외 시장을 흔들었다.

2002년 국가지리정보유통체계, 2004년 토지종합정보망을 구축했다. 반도체 종합재해관리 3차원 GIS 시스템(2005)·건설교통재난정보체계(2006)·국토해양재난 종합상황관리시스템(2008)도 만들었다. 삼성전자·현대중공업 등 국내 대기업의 3D 시설물관리시스템도 설치했다. 2006년엔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GIS 시장을 활짝 열었고, 중국 진출도 성공했다. 현재 몽골에서 GIS 관련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사고·범죄·재난에 실시간 대응해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게 목적이다.

기술력만 빼어난 게 아니다. 각종 국내외 인증도 받았다. 2000년 ISO9001을 획득했고, 전사CMM1 레벨3(2006)·굿소프트웨어 인증(2009)을 받았다. CMMI 레벨3는 눈부신 성과다. 글로벌 IT 기업 중 50번째로 획득했다. 국내 IT기업으로선 최초다. CMMI는 소프트웨어 및 IT시스템을 개발하는 조직의 생산성과 품질 향상을 위해 제시되는 모델이다. 5개 등급이 있고, 최고 등급 레벨5를 획득한 국내 기업은 삼성SDS·LG CNS 등 10여 곳에 불과하다.



기술력만큼 마케팅도 중요한국공간정보통신은 GIS 무림의 고수다. 하지만 중원 진출엔 실패했다. 아직 재야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미미한 실적 탓이다. 2007년 매출 152억원을 기록한 후 3년째 제자리걸음 중이다. 올 매출은 130억원으로 전망된다. 영업이익은 여전히 적자다. 김 대표가 최근 ‘특단의 결단’을 내린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엔지니어 특유의 자존심을 접었다. “기술력만 있으면 실적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으로 봤어요. 제가 틀렸죠. 2011년부턴 마케팅에도 힘을 쏟을 계획입니다.”

그는 “실적을 내야 중원에 진출할 수 있고, 그래야 진짜 무림고수”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12월 1일부로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내려왔다. CEO를 새로 임명하고 CTO 직을 신설했다. 자신은 ‘대표’로서 회사 알리기에 전념하기로 했다. 회사 컨셉트도 완전히 바꿨다. 한국공간정보통신의 목표는 ‘글로벌 최고 기업’이었다. 이젠 아니다. 글로벌 기업의 성실한 파트너가 되겠다는 게 목표다. “GIS 사업으론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요. 가령 우리가 제아무리 뛰어난 지도 관련 시스템을 만들어도 내비게이션 업체가 없으면 무용지물이잖아요. 이들 기업을 잘 지원할 수 있는 솔루션을 공급하는 게 향후 과제입니다.” 실속 없는 주연보단 개성 있는 조연이 되겠다는 것이다.

2011년 신묘년. 한국공간정보통신은 이전과 다른 해를 맞을 것이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 절차탁마(切磋琢磨·학문,덕행을 갈고닦음)의 시기였다면 이젠 대중에게 능력을 인정받을 때”라며 “우리가 얼마나 기술력 있는 기업인지 널리 알려 합당한 평가를 받겠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변하겠다는, 아니 변해야 산다는 얘기다. 그가 엔지니어 자존심을 접고 마케팅 전선에 직접 뛰어든 까닭이다. 하지만 비관하지도, 낙담하지도 않는다. “부정(否定)이 역사를 바꾼 일은 없다”는 게 그의 신조. 난관을 돌파하는 힘은 언제나 ‘긍정’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긍정의 힘으로 미래를 바꾸겠다는 자신감이자 포부다. 그에겐 미래의 주역 ‘차세대 CEO’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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