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rter CEO] 주치의가 영상통화로 '운동량 더 늘리세요'
[smarter CEO] 주치의가 영상통화로 '운동량 더 늘리세요'
당뇨환자 A씨는 아침 6시에 일어나자마자 측정기를 꺼내 혈당을 체크했다. 공복 혈당 수치가 147. ‘요즘 회사일 때문에 무리를 했나’라는 생각이 든 순간 스마트폰이 울렸다. 당뇨를 전문적으로 상담해 주던 주치의였다. 의사는 영상통화를 통해 “공복 혈당이 계속 상승하고 있어 운동 강도를 높여야겠다”며 “당분간 식사 조절과 함께 추가적인 약물 투여도 고려해야 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필요한 운동량과 함께 권장 칼로리로 짜인 식단이 문자로 전송됐다. 문자를 확인한 후 동네 피트니스 센터로 향했다. 러닝 머신에 아이디를 입력하고 20분을 뛴 후 잠시 쉬는 틈에 다시 문자가 왔다. 아직 20분을 더 뛰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회사에 출근하자 호주와 싱가포르 전문의로부터 추가 소견서가 메일로 도착했다. 모두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 투여를 늘리는 데 찬성한다는 의견이었다. 알겠다는 메일을 보내자 곧 필요한 약이 오후에 도착한다는 내용과, 같이 복용해선 안 되는 약들의 리스트가 메일로 전송됐다.
한국IBM의 한진팔 차장은 “그동안 의사 중심이었던 국내 의료 시장이 첨단 IT 인프라를 통해 환자 중심으로 변해 가고 있다”며 “집과 병원은 물론 동네 헬스장과 약국 등에서 취합된 개인 건강 정보를 통해 원거리에서 분석·진단해 주는 ‘스마트 의료 솔루션’을 곧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근 국내 의료계의 화두가 언제 어디서나 진료 받을 수 있는 ‘U-헬스케어 서비스’다. 의료기관에 직접 가지 않고도 멀리 떨어진 의사와 연결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것. 미국에선 이미 원격진료 사이트를 이용하면 환자들이 안방에서 웹 카메라 등을 통해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전자 처방전을 수령한 뒤 인근 약국에서 약을 택배로 받을 수 있다.
그동안 국내에선 이런 서비스가 불가능했다. 환자와 의사 간 원격진료를 불법으로 규정한 현행 의료법 때문이다. 하지만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국회 통과 절차만 남겨두면서 국내 의료계가 바빠졌다. 이르면 상반기부터 원격진료 서비스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거센 변화의 바람에도 느긋한 병원이 있다. 바로 인천의 길병원이다. 한 차장은 “스마트 병원의 전초전인 U-헬스케어가 도입되면 보수적이었던 국내 병원들도 좀 더 IT 인프라 구축에 적극적이 될 것”이라며 “국내 의료기관 중에선 인천 길병원이 가장 잘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IBM과 바이오 복합단지 조성지난 8월 18일 오후 인천 송도의 국제자유도시. 가천길재단의 뇌과학연구소 건물 지하에 내려가자 바이오연구복합단지(BRC) 사무실이 등장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한편에 놓인 큼직한 칠판엔 IBM, GE, 시스코 등 글로벌 IT 회사들의 이름이 가득했다. BRC의 이언 대표는 “조만간 IBM과 길병원이 함께 세상을 놀라게 만들 ‘스마트 병원’을 선보일 것”이라며 입을 열었다.
가천길재단은 2009년 4월 IBM, 인천도시개발공사와 함께 BRC를 설립했다. 2013년까지 1조원을 유치해 송도국제도시 5·7공구에 국내 최대 규모의 바이오센터인 BRC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20만5793㎡(약 6만2253평)에 2011년 연구동을 시작으로 오피스 등이 차례로 완공될 예정이다.
BRC는 설립 초기부터 주목을 받았다. 세계 각국의 국가의료정보화 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IBM이 이 사업에 지분(5%)을 투자한 것은 물론 200억원 규모의 장기 차관까지 도입했기 때문. IBM은 BRC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비즈니스 컨설팅과 아울러 IT 인프라도 도맡기로 했다. 한 차장은 “IBM에선 이미 왓슨연구소, 알마덴연구소, 이스라엘 연구소, 중국 연구소, 한국 IBM의 유비쿼터스컴퓨팅연구소 등이 모두 BRC 조성사업에 동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가천길재단과 IBM은 BRC를 통해 U-헬스케어부터 생물정보학, 의약 나노화학 분야 연구개발을 2015년까지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신약과 의료기기, 첨단 의료서비스 등을 개발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이미 U-헬스케어와 신약개발 등 여러 분야에서 가시적인 결과를 냈다”고 말했다. U-헬스케어 분야의 경우 환자의 건강 정보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포털 구축이 완성 단계에 있다. 한 차장은 “내부적으로 반응이 좋다”며 “IT 솔루션으로 상용화도 가능하다”고 기대했다. IBM은 이미 스페인 8개 종합병원을 비롯해 470개 클리닉과 홈케어 서비스 제공자들이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이용해 언제 어디서든 질병 진단이 가능한 ‘스마트 의료 시스템’을 구축해 호평을 받고 있다. 한 차장은 “IBM이 글로벌 무대에서 축적한 비즈니스와 R&D 역량을 BRC를 통해 구현해 국내 헬스케어 분야의 성장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비쿼터스 병원으로 이미 변신BRC를 이끌고 있는 이 대표는 국내 신경의학 분야의 알아주는 전문가. 현재 길병원의 신경외과 부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업계에선 IT 전문가로도 명성이 높다. 2003년부터 길병원의 유비쿼터스 병원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해 왔다. 국내 병원 중 앞서 전사적 자원관리(ERP)를 도입해 화제를 모았다.
이 대표는 “병원 자체가 보수적이다 보니 처음 유비쿼터스 병원 프로젝트를 기획했을 때 내부 반발이 거셌다”며 “정보화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병원도 경쟁력이 없다고 설득한 끝에 추진할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ERP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후엔 국내 병원업계의 ‘ERP 전도사’가 됐다. 그는 “처음엔 ERP가 ‘이거 알면 피 본다’의 약자라며 비웃는 사람이 많았다”며 “하지만 우리가 성공적으로 구축하자 다른 병원에서 ERP 강의를 해달라는 주문이 밀려들었다”며 웃었다. 그는 “의료시장이 개방되고 있는 추세에서 해외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선 병원의 경영과 업무 프로세스를 국제 기준에 맞게 투명하게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길병원은 80년대부터 IT에 대한 포용력이 남달랐다. 80년대 중반 전산 시스템을 도입해 국내 대형 병원의 전산인력 중 길병원 출신이 어디에나 있다. 이 대표는 “IT 솔루션을 파는 영업사원들이 더 이상 팔 데가 없을 때 찾는 곳이 병원”이라며 “하지만 길병원은 이사장 주도로 IT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남들보다 훨씬 빨랐다”고 말했다.
길병원은 국내 병원 중 최초로 바코드로 인식하는 고객 전자카드를 선보였다. 의사가 컴퓨터로 처방전을 입력한 것도 처음이었다. 무선랜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2000년대 초 길병원 병동에선 의사들이 회진할 때 노트북을 들고 다녔다. 진찰 결과를 노트북에 입력하고 동시에 무선랜을 이용해 중앙 PC로 전송했던 것. 이 대표에 따르면 항상 업계 최초로 정보화 시스템을 도입하며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컴퓨터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80년대 후반 업무를 모두 컴퓨터로 처리하다 보니 직원들의 거부감이 높았어요. 그래서 직원 단합 체육대회에서 장애물달리기 경주의 장애물로 PC를 놓고, 경품으로 마우스를 주기도 했어요. 직원들이 컴퓨터와 좀 더 친해질 수 있도록 온갖 아이디어를 짜냈죠”
의사 아닌 고객 중심의 ‘스마트 병원’이 대표가 꿈꾸는 BRC는 단순한 연구단지 이상이다. 연구소와 기업, 그리고 병원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도움을 주고받는 생태계형 바이오클러스터라는 것. 그는 “몇 년 전 미국 휴스턴 MD앤더슨 병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바이오클러스터를 보고 이제 병원도 IT가 없으면 안 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며 “BRC의 경우 자족할 수 있는 생태계로 구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BRC를 통해 개발된 각종 서비스와 솔루션이 구현된 ‘스마트 병원’은 단순히 환자들이 찾아오는 곳이 아니다. 이 대표는 “미래의 병원은 거대한 물류센터처럼 의사들이 대기하면서 컴퓨터나 휴대전화 화면을 통해 전 세계 고객을 만나는 곳이 될 것”이라며 “필요하면 직접 고객을 찾아가기 때문에 병원 규모도 의미가 없어질지 모른다”고 내다봤다.
스마트 병원 고객은 환자만이 아니다. 한 차장은 “스마트 병원에선 건강 정보를 미리 분석해 질병을 예측하기 때문에 일반인이 주 고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료 서비스의 국경도 허물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 대표는 “시장 개방으로 전 세계 병원 간 제휴가 늘면서 한국 고객들은 국내 의사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세계적인 전문의로부터 조언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개방을 앞둔 의료시장에서 IT 인프라 기반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며 “남들보다 더 빠르게 IT 인프라를 활용해 급변하는 의료시장에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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