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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休] '가족여행 가도 하루는 내 자신을 위해 쓰죠'

[CEO의 休] '가족여행 가도 하루는 내 자신을 위해 쓰죠'

클라렌스 청 지사장이 집무실에서 여행을 떠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누구나 여행을 꿈꾼다. 일상으로부터 탈출이다. 새로운 곳에 가면 자신도 새로워질 것이라는 상상을 한번쯤은 해 봤을 거다. 언제부터인가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여행 서적 한두 권 쯤은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여행작가를 꿈꾸거나 실제로 그 꿈을 이룬 이들도 있다. 여행은 이렇게 흔한 취미기도 하다. 하지만 여행의 훌륭한 점은 사람마다 각기 다른 여행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여행법을 알게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걸음걸이나 미묘한 표정을 알아채는 것만큼 개인적인 순간이다.



안목 키우는 남다른 여행법클라렌스 청(44) 캐세이패시픽항공 한국지사장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12월 홍콩 여행에서였다. 정확히는 출장이다. 캐세이패시픽 신상품 소개 행사장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훌쩍 큰 키와 웃는 얼굴. 그의 첫인상이었다. 청 지사장은 “다음엔 한국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1월 중순 그를 서울역 인근 캐세이패시픽 한국지사에서 다시 만났다. 항공사 지사장답게 그의 취미도 여행이다. 그리 많은 나라를 다닌 것은 아니다. 20개국 남짓, 그것도 캐세이패시픽 입사가 결정된 후에야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첫 해외여행지는 미국이었는데 살인적인 일정이었습니다. 경유만 세 번 했는데, 한번은 어떤 동남아시아 국적기가 야간에 공항에 도착하자 승무원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더라고요. 안전하게 도착한 게 축하할 일인지 정말 황당했습니다. 그래도 재미있었습니다.”

청 지사장의 첫 번째 해외여행은 객관적으로는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랜드 캐니언으로 렌터카를 몰고 가던 중 차가 대파되는 사고도 경험했다. 당연히 첫 미국 여행을 최악의 여행지로 꼽을 줄 알았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그랜드 캐니언 골짜기에서 본 숨막히게 아름다운 경관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10년 정도 지나 두 번이나 같은 곳을 갔지만 편의시설이 늘어난 만큼 자연은 어쩔 수 없이 훼손되더군요.”

물론 그도 자신만의 여행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평소대로 짐을 챙겨와 달라고 주문했다. 트렁크에서 눈에 띈 것은 두꺼운 책 몇 권이었다. 여행 서적이 아니었다. 건축, 디자인 관련 전문서적이다. 짐을 최대한 줄이느라 난리인 우리와 무엇이 다를지 궁금했다.

“아홉 살 딸과 세 식구가 여행 가게 되면 아무래도 아이 위주로 스케줄을 짜게 됩니다. 저는 가족여행을 가도 반드시 하루 정도는 저만을 위한 시간을 냅니다. 어떤 때는 박물관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평범한 도시 뒷골목이 되기도 하죠.”

그는 지난해 8월 한국지사장이 됐다. 한국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 가족과 함께 독일을 찾았다. 청 지사장 가족의 가장 중요한 관광지는 오래된 성이었다. 청 사장은 늘 그렇듯 한나절은 자신을 위해 썼다. 그가 찾은 곳은 뮌헨의 자동차 박물관 ‘BMW월드’였다. 그가 자동차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청 사장은 “이 박물관은 건축 양식이 무척 특별하다”고 말했다. 당연히 그는 이 탑과 같은 형태의 박물관 건축미를 감상하기 위해 두꺼운 책 한 권을 들고 갔다.

그는 순수예술보다 목적을 가지고 설계된 디자인과 건축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항공사라는 특별한 직장에서 근무한 것도 그의 여행 취미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건축물을 눈앞에 보면서 이를 분석한 전문서적을 펼쳐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청 사장은 “기계, 건축, 디자인의 공통점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며 “작업자의 상상력이 작품에 투영돼 가는 과정을 읽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지 그 자체라고 했다. 청 지사장은 “그랜드 캐니언이 있고, 나이애가라 폭포가 있는데 더 무엇이 필요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목적지’에는 당연하게도 그곳에 사는 사람이 포함돼 있다. 그만의 또 다른 특별한 여행법은 관찰이다. “카페나 도심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무심히 지켜봅니다. 한참 보고 있으면 아, 저이가 이렇게 말을 하겠구나 하고 나름대로 상상해 보죠. 한번 해 보시죠. 예상 외로 무척 즐겁습니다.”

그가 가장 특별한 여행지로 꼽은 곳은 이스라엘과 독일이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는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인간의 잔혹함이 배어 있는 곳이라고 했다. 독일에서는 동독과 서독을 가르던 장벽이 무너진 곳에 있는 장벽 박물관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역사적 경험, 건축, 사람 모든 것이 융합된 공간이다.



CEO 휴식과 여행은 큰 그림 보는 기회여행을 다닌다고 일이 완전히 잊혀진다면 CEO가 아니다. 그도 노력은 하지만 가끔씩 경유하면서 타는 경쟁사의 비행기, 좌석, 승무원의 서비스를 눈여겨본다. 하지만 따로 메모해두지는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CEO의 휴식, CEO의 여행은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CEO가 휴식을 취할 때, 그러니까 제 경우에 여행을 떠날 때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추억 하나 남기자고 떠나는 여행은 아니죠. 일상에서 빠져나와 보면 큰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현지 사람을 지켜보는 것도 다시 돌아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좋은 영향을 끼치죠.”

청 지사장은 “자연 앞에 서면 내가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 성찰해 볼 수 있다”며 “그 후에야 다른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 지사장은 연간 정기휴가가 29일이다. 실제로 며칠이나 휴가를 내느냐고 묻자 의아한 듯 말했다.

“나와 가족, 그리고 회사 일에 도움이 되는 게 휴식입니다. 일상을 떠나 보지 않고는 일상의 소중함을 알 수 없죠.”

한마디로 다 쓴다는 얘기였고,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지나치는 캐세이패시픽 직원이 부러워졌다.

한정연 기자 ja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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