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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tain Economy 두 개의 영 국 이야기

Britain Economy 두 개의 영 국 이야기



Time for a Royal Wedding... 왕실 결혼식은 코앞인데…


...While England is Royally Screwed. …극심한 긴축재정에 민심은 ‘부글부글’
지난해 12월 찰스와 커밀라 부부가 탄 자동차가 시위대의 공격을 받았다. 18세기 이후 영국인 시위대가 왕실 인사를 공격한 첫 사례다.

영국 언론은 4월 29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열리는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 중계방송을 전 세계에서 20억 명 이상이 시청하리라 내다봤다.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1이 이 결혼식 광경을 지켜보게 된다는 얘기다. 최근 영국에서는 행주와 머그컵 등 왕실의 경사를 기리는 기념품이 쏟아져 나왔고, 결혼식 당일은 국경일로 선포됐다. 그날 온종일 영국은 세계가 좋아하는 ‘로열 릴리퍼트(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이 영국에 남은 가장 큰 역할일까? 얼마 전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는 “영국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 남은 건 과거의 흔적일 뿐이다.” 아직 그렇게까지 말하기엔 이르지만(리비아에 발사된 미사일 중 일부는 영국군이 발사한 것이다) 영국인 중엔 그 발언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도 많을 듯하다. 현재 영국은 1920년대 이후 가장 극심한 긴축재정을 시행 중이다. 정부예산이 모든 부문에서 삭감됐고 올해 안에 공공부문 근로자 수십만 명이 해고될 전망이다. 또 인플레이션과 증세, 복지수당의 대폭 삭감으로 거의 모든 가정의 실질소득이 감소하리라 예상된다. 군사비행장부터 공공도서관까지 다양한 공공기관이 문을 닫거나 매각되는 실정이다. 그동안 몸집을 줄여 온 영국 해군은 마지막 남은 항공모함(HMS 아크 로열호)마저 경매에 내놓았다.

영국은 국가쇠퇴라는 개념에 익숙하다. ‘쇠퇴론(declinism)’은 영국역사 연구의 요점이 된 지 오래다(미국은 요즘 들어 이 개념을 배우는 중이다). 영국인이 국가의 능력을 믿지 못해 두려움을 품게 된 역사는 짧게 봐도 보어 전쟁(1899~1902년 영국과 당시 남아프리카 지역에 정착한 네덜란드계 보어족이 벌인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요즘 영국은 내가 평생 보아 온 어느 때보다도 불길한 예감으로 가득 차 있다. 1970~80년대는 영국의 최근 역사에서 바람직하지 못했던 시대로 자주 거론된다. 현재 연립정부를 포함한 정치 우파는 노조파업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지원으로 얼룩진 70년대를 “다시 돌아가선 안 될 시대”로 못 박는다. 한편 좌파는 마거릿 대처 총리가 공기업 민영화와 노조 무력화, 제조업 축소 등으로 영국의 탈산업화를 추진한 80년대를 그렇게 여긴다. 그러나 위의 두 시대에 일어난 사건들은 최근 은행 위기로 드러난 국가부채나 공공프로그램 축소를 통해 경제적 자신감을 회복하려는 현 정부의 정책만큼 영국의 자의식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진 않았다.

찰스 왕세자와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결혼식을 올린 30년 전의 영국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즉위한 1953년과 비교할 때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난 당시 기자로서 이 결혼식을 보도했다. 버킹엄궁에서 세인트폴 성당에 이르는 왕실 결혼식 루트 주변에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구경하기 좋은 자리를 며칠 전부터 잡아놓고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순수한 애국심으로 그 자리에 모였다(당시 런던 주민 중엔 소수민족이 상당수를 차지했지만 결혼식에 몰린 군중 대다수는 백인이었다). 그 광경은 시대착오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제작된 일링 코미디(1950년대 영국 일링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코미디 시리즈)나 런던 대공습 관련 영화에 나오는 서민들을 연상케 했다. 런던 근교나 시골에서 나라의 경사를 축하하려고 나들이에 나선 이들은 머리에 파티용 종이 모자를 쓰고 기분 좋게 술에 취해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당시 영국인이 왕실과 관련된 많은 사항을 당연시하고 앞으로도 영원 불변하리라고 믿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일례로 당시에는 찰스와 다이애나가 왕실전용 열차를 타고 신혼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이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선원 220명과 군 장교 20명이 승선한 왕실전용 요트 브리타니아호를 타고 지중해 곳곳을 누비며 신혼여행을 즐긴다(승객이라곤 그 두 사람뿐이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였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왕실의 그런 위엄과 사치는 자취를 감췄다. 왕실 요트는 이제 박물관이 됐고 왕실전용 열차도 사용되는 일이 거의 없다. 실생활의 각 방면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많이 생겼다. 찰스가 다이애나와 결혼하던 당시만 해도 영국 광업계에 고용된 광부 수가 250만 명에 달했다. 조선소에선 여전히 배를 만들었고, 강철과 자동차, 제과, 의류, 맥주 공장의 생산도 여전했다. 하지만 현재 영국의 광업과 조선업, 섬유산업은 거의 사라졌다. 남아 있는 업체들도 거의 외국 기업의 소유다. 왕실 요트가 사라진 건 문제도 아니다. 요즘 영국에서 팔리는 초코바는 전부 스위스나 미국에서 수입한 제품이다. 또 런던의 수도 공급업체는 독일 소유이며 전기 공급업체는 프랑스 소유다. 현재 영국 철강공장들의 운명은 뭄바이와 방콕에 있는 본사의 결정에 달렸다. 1981년에 누가 이런 상황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1981년을 영국의 황금기로 묘사해선 안 된다. 다이애나는 교회종이 울리고 축포가 울리는 가운데 유리 마차를 타고 결혼식장까지 갔다. 그러나 당시 영국에서는 사회적 분열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이 결혼식은 영국 국민이 그런 현실에서 잠시 눈을 돌려 마음을 달랠 만한 행사였다. 그해 여름 북아일랜드에서는 아일랜드공화국군(IRA) 수감자들이 단식투쟁으로 죽어 갔다. 또 런던의 브릭스턴 지역과 리버풀의 톡스테스 지역 등 도시 빈민가에서는 흑인 폭동이 확산됐다. 실업률도 계속 상승해 결혼식이 끝난 지 15개월도 지나지 않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수준인 12.9%에 이르렀다. 그 뒤로 1987년까지 11%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당시 대처 총리의 지지율은 형편없었지만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가까스로 민심을 되찾았다. 1983년엔 제조업 기반이 거의 붕괴돼 영국은 처음으로 상품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입장이 바뀌었다.

몇몇 측면에서는 당시와 지금의 영국 상황이 놀랍도록 일치한다. 현재 영국에서 실업수당으로 살아가는 인구가 250만 명인데 찰스와 다이애나가 결혼하던 그 시절과 같은 수치다. 그리고 그때처럼 지금도 그 수치는 계속 상승 중이다. 하지만 요즘은 전망이 더 좋지 않다. 1980년대엔 북해산 석유가 영국 경제에 크게 기여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석유 관련 세금이 영국 세수의 10분의 1을 차지해 비교적 넉넉한 복지수당을 지급하는 데 도움을 줬다. 1990년대 들어서는 대처의 금융 규제완화로 런던은 뉴욕과 어깨를 견주며(어떤 측면에선 오히려 뉴욕을 능가하는) 세계 금융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석유 생산량엔 한계가 있다. 신용대출도 마찬가지다. 북해산 석유는 생산량의 정점을 지난 지 오래다. 또 요즘 런던의 은행과 금융회사들이 회복세를 보이긴 하지만 엄청난 공적자금의 투여로 간신히 구제받은 그 기관들이 장차 국가번영의 주축이 되리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 두 세대 동안 영국 정치인들이 무시해 온 구식 사고가 다시 주목을 끌기 시작한다. 제조업 기반의 수출 위주로 경제를 재편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은 지난달 예산안 관련 연설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영국이 앞으로 전진하려면 ‘영국에서 제조된’ ‘영국에서 창조된’ ‘영국에서 디자인된’ ‘영국에서 발명된’이란 말을 되살려야 합니다. 제조업체가 영국의 위상을 드높이도록 해야 합니다.” 기업세가 인하됐고 세금이 낮은 소수의 ‘기업특구’가 생겨나고 견습제도가 마련됐다. 하지만 그 외에 구체적인 계획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정부는 공공부문이 위축되면 민간기업이 그 틈새에 활력을 불어넣으리라는 단순한 믿음에 기대를 거는 듯하다. 공공부문이 일자리의 40%를 차지하는 북부 탈산업화 지역에선 확실히 그런 틈새가 많이 생길 듯하다.

그러나 1981년과 지금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경제적 측면이 아니라 사회적 측면에 있다. 찰스와 다이애나의 결혼 행렬에 환호를 보낸 군중 개개인의 인생은 어땠을까? 남자들은 전쟁에 나가 싸웠고, 여자들은 배급 식량에 의존하는 시절을 견뎌냈다. 그들 모두 국가에 복종하고 자신의 의무를 다한다는 사명감이 투철했으며 그런 정신을 자녀에게 물려줬다. 한 나라의 ‘국민성’을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겠지만 그때 이후 영국인의 태도가 달라진 건 확실하다. 영국인은 신경이 더 날카로워졌고, 분노의 감정이 더 커졌으며, 국가기관을 덜 존경하게 됐다. 공손하고 예의 바른 태도도 훨씬 덜해졌고, 아프가니스탄에서 팔다리가 절단되는 부상을 입고 귀향한 병사들의 경우를 제외하면 극기심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 왕실 결혼식에서 시민소요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생각은 지나친 걱정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우려를 아주 지우기는 어렵다. 지난해 12월 찰스 왕세자와 커밀라 부부가 자동차를 타고 가던 중 시위대의 공격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차 안에 있던 그들 부부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었다. 그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 호주에서는 공화당원들이 입헌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시끌벅적한 시위를 벌인다(사실상 영연방에서 탈퇴하겠다는 의사 표시다). 하지만 왕실 인사가 영국인 시위대의 공격을 받은 사례는 18세기 이후 처음이다. 그 사진에서 느껴졌던 변화의 조짐이 지난 3월 말 다시 감지됐다. 런던 웨스트엔드에 운집한 25만 명의 시민이 공공지출 삭감에 반대하는 평화적 시위를 벌인 끝에 난동을 부린 약 150명의 젊은이(이들은 언론에서 갱, 무뢰한, 무정부주의자 등 다양한 용어로 불렸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이들 대다수는 얼굴에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포르셰 자동차 전시장의 유리창이 산산조각 났고, 리츠 호텔 건물은 페인트 세례를 받았다. 이들은 포트넘&메이슨 백화점을 점거하고 연좌농성을 벌였다[하지만 백화점 측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얼그레이 홍차와 젠틀맨스 렐리시(앤초비 스프레드) 등 상품들은 무사했다].

왕실 결혼식에서 유사한 소동 발생을 막는 데 신경을 곤두세우는 런던 경찰은 “테러를 포함한 모든 위협에 철저히 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에는 이런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영국 국민이 유난히 냉철하고 극기심이 투철해서 다음 선거가 있는 2015년까지 불굴의 정신으로 고통을 참아가며 사회평화와 균형예산의 영광된 고지를 점령하리라고 가정하는 건 무0분별한 행동이다.” 다시 말해 영국도 그리스(정부의 긴축안 발표에 폭동이 확산됐다)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필자는 영국의 저널리스트로 ‘한때 대영제국으로 알려졌던 나라(The Country Formerly Known as Great Britain)’의 저자다.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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