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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문화공간] 작가 지원하며 문화 인큐베이팅

[기업 문화공간] 작가 지원하며 문화 인큐베이팅

두산아트센터의 외부 전경.

두산아트센터 입구에 들어서면 바닥에 놓인 피아노 모양 설치물이 관객을 먼저 반긴다. 건반에 발을 올려놓으니 음이 울린다. 장난스럽게 도, 레, 미를 차례로 눌러보는 시민들의 표정에서 즐거움이 느껴진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곳곳에서 깜찍한 모습의 조형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온몸이 새빨갛게 칠해진 거인 모습의 조형물, 두 다리를 들고 익살스럽게 웃고 있는 두 마리의 돼지 조형물과 곳곳에 놓인 테디 베어 인형까지 하나하나 시선을 사로잡는다.

두산아트센터는 두산그룹 메세나 활동(기업이 문화예술에 자금이나 시설을 지원하는 활동)의 중심기지다. 종로구 연지동에 자리한 연강빌딩 1층과 지하 1층에 있다. 이곳은 1978년 설립된 ‘연강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다양한 문화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금의 구색을 갖춘 것은 2007년 리노베이션 이후다. 이전 소극장 연강홀을 중형 극장으로 확장하고,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상연하는 스페이스111과 전시공간 두산갤러리를 새로 지었다. ‘두산아트센터’라는 이름이 그때 붙었다.



창의적·실험적 작품 산실5년째에 접어든 지금, 두산아트센터는 시민들에게 ‘재미있는 공연’과 ‘볼 만한 전시’를 소개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두산아트센터의 박찬종 매니저는 “대중이 질 좋은 예술을 접하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탄탄한 프로그램을 채워 나가기 위해 힘쓴다”고 말한다. 초기 시설투자에만 힘을 쏟고 운영에는 안일한 태도를 보이는 여타 기업 문화공간과 다른 점이다.

공연장인 연강홀과 스페이스111은 규모와 성격 면에서 매우 다르다. 연강홀은 뮤지컬 전문 극장으로서 그동안 화려한 ‘스타 캐스팅’이 돋보이는 대중성 있는 뮤지컬을 다수 선보였다. 이영자·혜은이 등이 출연한 ‘메노포즈’, 젊은 소리꾼 이자람과 JK 김동욱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뮤지컬 ‘서편제’, 브로드웨이 흥행작의 국내 초연작 ‘스프링 어웨이크닝’ 등이 대표적이다. 대체로 흥행성적도 좋은 편이다.

소극장인 스페이스111에서는 보다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많이 만나 볼 수 있다. 연강홀 공연은 주로 대형 기획사가 제작한 공연을 대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반면, 이곳 공연의 70~80%는 두산아트센터에서 직접 제작을 지원한다. 창작자들이 상업성을 떠나 자유로운 시도를 펼쳐 보일 수 있도록 보조한다는 것이다.

매년 상반기에는 우리 사회에 화두를 던지는 시리즈를 기획한다. 올해의 키워드는 ‘경계인’이다. 현재 팀 크라우치 원작, 김동현 연출의 ‘디 오써(The Author)’가 상연되고 있다. ‘경계인’이라는 키워드에 어울리게 이 공연엔 관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없다. 배우들이 관객과 섞여서 연기를 하며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파격적인 설정도 있다.

창작자들과 관객이 보다 가깝게 만날 수 있는 ‘두산아트랩’도 진행된다. 이 프로그램은 완성되기 전 단계의 작품을 상연해 보는, 말 그대로 ‘실험’의 장이다. 관객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만날 수 있고, 창작자들은 관객의 반응을 미리 점쳐보고 피드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두산갤러리에선 요즘 떠오르는 신진, 중진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사진, 회화,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전시된다. 이 갤러리엔 입장료가 없다. 대중이 부담을 덜고 미술을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자 한다. 백화점 쇼윈도처럼 건물 외부에 윈도갤러리를 마련해 지나가는 시민들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두산갤러리는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전 세계에서 온 작가가 모여 있는 뉴욕의 첼시에도 근거지를 두고 있다. 두산갤러리 뉴욕은 국내 최초로 뉴욕 주정부와 교육청의 정식 인가를 받고 설립됐다. 매년 10회 정도 국내의 유망 작가를 선정해 전시를 연다. 이는 아직 주변부에 머물고 있는 한국 미술을 과감히 세계의 중심부로 끌어들인 시도로 평가 받는다.



유망 작가 뉴욕 활동 도와뉴욕 갤러리 옆에는 국내 작가들이 머물고 있는 공간이 있다. 두산이 운영하는 두산레지던시 뉴욕이다. 국내 작가를 초청해 작업실과 아파트를 제공한다. 현대미술의 최전선에서 국제적 작가들과 경쟁하며 작품활동도 하고 전시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다. 올해는 김기라, 민성식, 박윤영 세 명의 작가가 선정됐다.

두산아트센터의 모토는 ‘아트 인큐베이팅(art incubating)’. ‘마이너’로 분류될 수 있는 젊은 창작자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쏟고 또 그들을 발굴해 육성하려는 것이다. 두산그룹의 캐치프레이즈인 ‘사람이 미래다’를 연상케 하는 부분이다.

9월 선보일 ‘프로젝트 빅보이’는 이러한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매년 8월 홍대를 중심으로 열리는 국내 최대 공연예술 축제인 프린지페스티벌을 주최하는 서울프린지네트워크와 공동으로 진행한다. 후보작 중 세 편을 선정해 무대에 올린다. 한 번 인연을 맺은 창작자들은 이후에도 다른 기획과 연계해 꾸준히 파트너십을 이어간다.

지난해엔 두산연강예술상이 처음 시작됐다. 공연과 미술 부문에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만 40세 이하 대한민국 국적의 예술가에게 수여된다. 공연 부문에 한 명, 미술 부문에 세 명을 선정한다. 미술 부문에 선정된 사람들은 두산레지던시 뉴욕에 입주할 자격을 얻는 등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 받는다.

두산아트센터는 정공법을 택해 문화에 접근했다. 문화적 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분야의 수요와 공급 모두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공급에선 공연과 미술 창작자, 수요에선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을 주 타깃으로 삼는다. 이 타깃은 일반적으로 문화를 가장 많이 향유하는 계층과 일치한다. 가장 많은 영양분이 필요한 뿌리 부분을 키우는 데 집중하겠다는 심산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문화의 ‘경계’에 있는 관객을 끌어들이는 일이다. 어린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중장년층 대상의 프로그램 등이 확충될 필요가 있다. 국제적 활동뿐 아니라 지방의 사정도 돌봐야 한다.

지난 3월 두산아트센터의 ‘천변카바레’는 1960~70년대 인기를 얻었던 대중가요와 당시의 스타 배호를 컨셉트로 한 연극으로 중장년층을 극장으로 불러들인 계기가 됐다. 앞으로 두산아트센터의 저력은 이처럼 보다 다양한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획에서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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