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피로 물든 손은 유산 받을 수 없다
[Law] 피로 물든 손은 유산 받을 수 없다
대기업의 중견사원으로 근무하던 김모 부장이 불행하게도 택시사고로 사망했다. 외아들인 그는 부모님을 모시고 있었다. 그의 처는 늦둥이를 가진 상태였다. 김 부장이 사망한 뒤 한 달 만에 그의 처는 당시 5개월 된 아기를 낙태했다. 김 부장의 부모와 처는 택시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이 사건에서 쟁점은 사망한 남편(피상속인)의 자식을 낙태한 처에게 상속인의 자격이 있느냐 하는 문제다. 민법상 상속에서 태아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 이 경우 태아는 그의 처와 같은 순위의 상속인이 된다. 자신과 순위가 같은 상속인을 고의로 살해한 경우에는 상속 자격을 박탈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김 부장의 처에게 상속 자격이 있다고 봤다. 법정상속분에 따라 김 부장의 처에게 7분의 3, 김 부장의 부모에게 각각 7분의 2의 상속을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상속결격제도를 둔 취지는 상속을 원인으로 한 재산취득 질서의 파괴 또는 이를 위태롭게 하는 자에 대한 민사적 제재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상속결격자라고 하기 위해선 민법 제1004조 제1항 제1조 ‘고의로 상속의 선순위자나 동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한 자’라는 규정에서 말하는 고의 안에는 적어도 그 범행으로 말미암아 상속에 유리하게 된다는 인식도 함께 있어야 한다.
‘상속에 유리하다는 인식’은 필요하지 않아이 사건에서 김 부장의 처는 남편의 사망에 따른 정신적 충격과 신체적 쇠약 때문에 고민했다. 특히 남편이 사망한 후 아이를 낳으면 결손가정에서 어렵게 키워야 된다는 우려 때문에 결국 낙태를 결정한 사실이 인정된다. 또 낙태를 함으로써 망인의 부모와 공동상속인이 되어 그 상속분은 7분의 3(=35분의 15)이 된다. 만일 낙태를 하지 않았다면 태아와 공동상속인으로서 그 상속분은 5분의 3(=35분의 21)이 되어 오히려 낙태에 따라 35분의 6이 줄어든다. 결국 낙태죄를 범한 이유는 그 범행에 따라 자신이 재산상속에 유리하게 된다는 인식 없이 오로지 태어날 아기의 장래에 대한 우려 등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김 부장의 처가 상속결격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등법원 판결에 대해 김 부장의 부모가 상고했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김 부장의 처가 상속결격자에 해당된다고 판시하고 상속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민법은 태아의 상속 순위에 관해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보고 있으므로 태아가 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경우에 그를 낙태하면 상속결격 사유에 해당한다. 상속결격 사유로 ‘살해의 고의’ 이외에 ‘상속에 유리하다는 인식’을 필요로 하는지 여부를 보자. 민법에서는 고의로 살해하면 상속결격자에 해당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상속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까지는 규정하지 않고 있다.
민법은 ‘피상속인 또는 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자’ 이외에 직계존속도 피해자에 포함하고 있다. 직계존속은 가해자보다도 상속순위가 후순위일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민법이 굳이 직계존속을 살해한 경우에도 그 가해자를 상속결격자에 해당한다고 규정한 이유는 상속결격 요건으로서 ‘살해의 고의’ 이외에 ‘상속에 유리하다는 인식’을 요구하지 아니한다는 데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살해의 고의 이외에 상속에 유리하다는 인식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상속결격이란 민법이 규정하는 상속순위자가 일정한 부도덕적 행위나 상속에 관한 유언의 방해행위를 했을 경우에 그 상속자격을 박탈하는 민법상의 제도다. 상속결격자, 즉 자격 없는 상속인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민법 규정은 다음과 같다.
민법 제1004조(상속인의 결격 사유)
(제1호)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 그 배우자 또는 상속의 선순위자나 동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한 자.
(제2호)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과 그 배우자에게 상해를 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자.
민법 제1000조(상속의 순위)
(제1항 제1호)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제1항 제2호) 피상속인의 직계존속.
(제3항) 태아는 상속순위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
민법 제1003조(배우자의 상속순위)
피상속인의 배우자는 피상속인의 직계비속과 직계존속이 있는 경우에는 그 상속인과 동순위로 공동상속인이 되고, 그 상속인이 없는 때에는 단독상속인이 된다.
그렇다면 남편이 살아있을 때 낙태는 어떨까. 상속결격자가 되려면 낙태가 남편의 사망 이후에 이뤄져야 한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 낙태한 경우 그 태아는 앞으로 상속할 지위에 있을 자일 뿐, 사망 당시 포태(胞胎)되어 있는 태아로서 상속의 선순위자 또는 동순위자는 아니다. 남편 사망 후 따져보니까 처가 낙태하지 않았더라면 그 태아가 상속의 선순위자 또는 동순위자가 될 상황이었다고 해서 그 낙태행위를 결격 사유의 원인으로 본다는 것은 민법의 취지에 반하는 확장 해석이 된다. 따라서 상속 개시 전의 낙태는 낙태와 피상속인의 사망 간의 시간적 간격이 아무리 근접되어 있더라도 형법상의 낙태죄를 구성할지언정 민법상의 상속결격 여부와는 무관한 것이다.
상속인과 피상속인의 기본 질서가 중요상속이란 피상속인과 상속인 간의 기본적 상속질서다. 밀접한 혈연, 정신적·인격적 결합, 한 집안이라는 연대의식과 신뢰 등 정신적 협동관계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재산 승계의 윤리적·경제적 협동관계로 이루어진 질서다. 이 질서는 형법에 의해서도 보장되고 있다. 민법에서도 누군가 특히 상속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기본적 상속질서가 왜곡되는 것을 막고 이를 침해한 자에게 상속권이 인정되는 것을 방지하지 위한 제도를 두고 있다. 그러한 행위를 한 자는 원칙적으로 상속자격자임에도 상속결격자로 보아 상속권을 법률상 당연히 박탈한다는 것이다.
‘피로 물든 손은 유산(遺産)을 받을 수 없다(Die blutige Hand nimmt kein Erbe).’ 상속결격제도의 법철학적 배경이 되는 게르만법의 윤리관념을 보여주는 법언이다. 현재까지 많은 나라에서 상속결격제도의 존재이유로 자리 잡고 있는 이 법언은 상속에 있어서 기본윤리의 준수를 요구하는 정당성을 제공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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