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퇴직금 명목의 `월급+α` 법 효력 없다
[Law] 퇴직금 명목의 `월급+α` 법 효력 없다
건설업을 하는 장모 사장은 싱글 골퍼인 데다 매너 좋고 배려심도 많다. 담배만 끊으면 완벽한 남편이 될 거라는 부인의 말에 남은 담뱃갑을 구겨서 버린 멋진 사나이다. 죽을 때까지 골프만 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에 골프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 걷고 휘두를 만큼 건강해야 하고, 그린피 내고 저녁 먹는 데 지장 없을 만큼 돈이 있어야 하고, 언제라도 부르면 골프채 메고 달려올 친구 셋이 있어야 하는 게 골프인데, 뭘 더 바라느냐는 대답에 그냥 웃고 말았다.
오래전부터 직원 50여 명을 두고 단종면허를 가진 건설회사를 경영하던 그 친구에게 벌어진 일이다. 직원 이직률이 높아 퇴직금을 한꺼번에 지급해야 하는 부담을 덜어 보고자 직원들과 약정을 맺고 매년 연말에 한 달분의 월급을 퇴직금으로 지급해 왔다. 그런데도 연중 수시로 그만두는 직원이 있어 그때마다 복잡한 계산을 해야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퇴직금을 매달 월급에 붙여 미리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꾸자고 했더니 직원들도 찬성해 얼마 전부터 그런 방법으로 퇴직금을 지급했다.
직원들이 찬성해도 법적으론 무효 5년 남짓 착실하게 근무하던 박 과장이 개인 사정으로 퇴사했다. 두어 달 뒤 찾아온 박 과장을 반갑게 맞았던 장 사장은 참으로 어이없는 말을 들었다. 이미 다 지급한 것으로 생각했던 퇴직금을 또 달라는 요구였다. 거절하자 결국은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으로 고소를 당해 조사 받기에 이르렀다. 화가 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한 장 사장은 세상에 무슨 이런 일이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퇴직금 제도는 퇴직한 근로자의 생활을 담보하는 의미가 있다. 퇴직금은 직장 다니면서 모으는 목돈이다. 1997년 근로기준법 개정 때 도입한 중간정산 제도로 이 같은 퇴직금의 성격은 많이 희석됐다. 최근 연봉제를 도입하는 회사가 많이 늘고 있다. 연봉제를 실시하는 회사에서는 퇴직금을 중간정산해 당해 연도 말 또는 다음 연도 초에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의 변형 형태도 도입하고 있다. 사용자와 근로자 쌍방의 합의가 이뤄진 상황이라면 법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유효하고도 유익한 방법이 될 것이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서도 사용자는 근로자의 요구가 있는 경우 근로자가 퇴직하기 전에 당해 근로자가 계속 근로한 기간에 대한 퇴직금을 미리 정산해 지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방안으로 장 사장이 말하는 방식, 즉 퇴직금의 중간정산금을 월별 분할해 지급하는 형태를 취하는 회사도 있다. 이른바 퇴직금 분할지급 약정을 맺고 퇴직금을 월별 분할해 매달 지급하는 경우 그것이 퇴직금으로서 효력을 가질까.
우선 퇴직금 분할지급 약정에 따라 퇴직금 명목으로 매달 지급한 돈은 퇴직금으로서 효력이 있는가. 대법원은 퇴직금 분할지급 약정은 법에서 정하는 퇴직금 중간정산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아닌 한 최종 퇴직 때 발생하는 퇴직금 청구권을 근로자가 사전에 포기하는 것으로 법규에 위배돼 무효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퇴직금 명목의 돈을 매월 지급하는 월급이나 매일 지급하는 일당 속에 더해 지급했다 하더라도 퇴직금 지급으로서 효력이 없게 된다.
둘째, 대법원 판례와 같이 퇴직금 분할지급 약정에 따라 지급된 돈이 퇴직금이 아니라면 그것은 임금에 해당될까, 아니면 원인 없이 지급된 근로자의 부당이득에 해당될까. 부당이득이라면 반환청구를 할 수 있을까. 대법원은 이 점에 관해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명확히 판단했다. 퇴직금 분할지급 약정에 따라 지급된 돈이 퇴직금 지급으로서 효력이 없다고 해서 그걸 근로기준법상 ‘근로의 대가로 지급하는 임금’ 에 해당한다고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결국 사용자는 법률상 원인 없이 근로자에게 퇴직금 명목의 돈을 지급함으로써 그만큼 손해를 본 셈이다. 반면 근로자는 같은 금액 상당의 이익을 얻은 셈이 되므로 이는 부당이득이 되고, 근로자는 수령한 퇴직금 명목의 돈을 부당이득으로 사용자에게 반환해야 한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는 것이다.
셋째, 사용자가 이미 지급한 퇴직금 명목의 돈은 부당이득으로 반환 받아야 한다면 근로자의 봉급 또는 퇴직금에서 상계할 수 있을까? 근로기준법은 임금을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해 가지는 채권으로서 근로자의 임금채권과 상계하지 못하는 게 원칙이다. 경제적·사회적 종속관계에 있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다. 근로자가 받을 퇴직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만 계산착오 등으로 임금을 초과 지급한 경우 초과 지급한 시기와 상계권 행사의 시기가 근접해 있고, 나아가 근로자의 경제생활 안정을 해할 염려가 없는 때는 다르다. 사용자는 초과 지급한 임금의 반환청구권을 자동채권으로 근로자의 임금채권이나 퇴직금채권과 상계할 수 있다. 이런 법리는 퇴직금 분할지급 약정에 따라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미리 지급한 퇴직금이 무효로 되어 부당이득 반환채권으로 바뀌게 된 경우 이를 자동채권으로 해서 근로자의 퇴직금 채권과 상계하는 때에도 적용된다.
넷째, 상계할 수 있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민사집행법은 근로자인 채무자의 생활보장이라는 공익적, 사회정책적 이유에서 ‘퇴직금 그 밖에 이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급여채권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압류금지채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민법에서는 압류금지채권의 채무자는 상계로 채권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퇴직금 명목으로 지급한 돈에 해당하는 부당이득 반환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해서 근로자의 퇴직금채권을 상계하는 건 퇴직금채권의 2분의 1까지만 가능하다.
형사처벌 받을 수도다섯째, 처음 본 사례와 같은 경우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상의 금품청산 의무 위반죄를 인정해 사용자를 형사처벌할 수 있을까? 매월 지급하는 월급이나 매일 지급하는 일당 속에 퇴직금이란 명목으로 일정한 돈을 지급했다 해도 그건 관련법상 퇴직금 지급으로서 효력이 없다. 법원은 그런 경우 대부분 금품청산 의무 위반죄를 인정하고 있다. 매월 임금 지급에 퇴직금을 포함한다는, 무효인 약정이 존재한다는 사정만으로 사용자가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다.
결국 장 사장에게 관련 법규와 그에 관한 법원의 해석을 설명한 후 퇴직한 직원과 합의해 원만히 해결하는 게 좋겠다고 권유했다. 얼마 후 장 사장은 퇴직한 직원과 합의했고 형사사건도 잘 처리했다고 했다. 지금은 직원들과 합의해 퇴직연금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근로관계법과 이를 해석하는 법원은 구체적 사안에서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 보호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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