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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성과급제 반대, 지점 43곳 문닫아

노조 성과급제 반대, 지점 43곳 문닫아

7월 14일 SC제일은행 본점 앞에서 UNI 한국협의회와 SC제일은행 노조가 ‘SC제일은행 파업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SC제일은행 노사가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7월 15일 현재 파업 19일째다. 노조의 파업이 이어지면서 대체 인력으로 지점을 운영해 왔던 SC제일은행은 7월 11일부터 전체 392개 영업점 가운데 43개 지점의 문을 닫았다. SC제일은행 리처드 힐 행장은 7월 7일 노조 측이 파업 집회를 열고 있는 강원도 속초의 한 리조트를 찾아 2900여 명의 노조원 앞에서 짧은 연설을 한 뒤 노조 대표단과 5시간여의 마라톤 회의를 했지만 소득 없이 끝났다. 해결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자 7월 13일 노조원 500여 명은 서울로 올라와 강북 도심에서 거리 선전전을 벌였다. 이들은 종로, 명동, 광화문 일대에서 시민들에게 ‘대국민 호소문’을 나눠주며 파업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하루 뒤인 7월 14일에는 국제산별노조(UNI) 한국협의회와 함께 기자회견도 열었다.

이번 파업의 가장 큰 이유는 성과급제 도입이다. 지금의 호봉제를 폐지하고 성과급제를 도입하려는 회사 측과 이를 반대하는 노조 측이 맞서고 있다. 현재 SC금융지주 5개 계열사 중 SC제일은행에서만 성과급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SC제일은행 직원 중 90%에 이르는 제일은행 출신은 호봉제로 임금을 받는다. 은행 측은 이들을 대상으로 성과급제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회사 측은 성과를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고, 생산성도 높아져 직원과 회사가 윈-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직원 퇴출 수순 vs 윈-윈 대안노조의 입장은 다르다. 호봉제 폐지는 퇴출을 염두에 둔 수순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SC제일은행 김재율 노조위원장은 “사측에서 추진하는 성과급제를 보면 성과를 1~5등급으로 차등해 지급하는데 2년 연속 5등급을 받은 직원은 후선발령제에 따라 개별 영업을 해야 한다”며 “특히 영업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면 최고 45% 임금을 깎는 악의적 규정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SC금융지주 관계자는 손을 내저었다. 그는 “세계 전역의 스탠다드차타드그룹 지점 중 호봉제가 있는 곳은 한국뿐”이라며 “성과급제는 실적을 많이 낸 직원을 더욱 우대하겠다는 제도이지 퇴출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극적 타결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파업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노사 입장 차이가 워낙 커서다. 은행 측은 성과연봉제 도입이 이번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은 “행장은 성과급제 시행을 노조가 동의해 달라고만 주장했다”며 “지금은 실무자 교섭으로 넘어간 상황인데 성과급제 도입을 담보하지 않으면 임단협 타결을 못 하겠다는 게 은행 측 입장임을 감안하면 상황이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SC제일은행 고객은 계속 불편을 겪을 전망이다. 현재 SC제일은행은 통합운영 영업점과 일반 영업점으로 나눠 고객을 맞고 있다. 일반 영업점에서는 입출금과 같은 단순 업무만 볼 수 있다. 예·적금, 대출, 펀드 가입 등 창구 상담을 받으려면 통합운영 영업점으로 가야 한다. SC제일은행은 통합운영 영업점을 방문하는 고객에게 택시비를 주고 있다. 그러나 창구 업무가 가능한 점포에서도 고객이 한꺼번에 몰려 불만이 속출했다. 일부 고객은 대기 순번이 길어지자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서여의도 지점 영업중지로 여의도 중부지점을 찾은 김은숙(53)씨는 “은행이 자기 편한 대로 열고 닫고 하는 구멍가게냐”며 “앞으로 어떻게 은행을 믿고 거래할 수 있겠느냐”고 불평했다.

SC제일은행 리처드 힐 행장이 7월 7일 강원도 속초의 한 리조트를 찾아 2900여 명의 노조원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파업은 결국 은행의 영업력 약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SC제일은행 서울 중구 영업점의 한 직원은 “예·적금, 대출, 펀드 가입 등 핵심 업무도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어 은행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이어 “금융은 신뢰가 중요한데 기존 고객이 거래를 끊을지 몰라 다들 신경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KB투자증권 심현수 연구원은 “순이익 규모가 국내 시중은행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는 SC제일은행이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스스로 영업점 문을 닫은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SC제일은행 정혜란 차장은 “파업이 빨리 끝나는 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SC그룹 “세계에서 호봉제는 한국뿐”직원의 사기 저하 우려도 나오는 가운데 은행 이미지에 흠집을 내는 자중지란 움직임도 있다. 노조 측에서 집회 도중 전단지를 돌리며 이른바 SC의 ‘먹튀(먹고 튄다는 뜻)’ 행태와 고액 배당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SC는 제일은행을 인수한 후 지난 6년 동안 자산을 매각해 왔다.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SC제일은행은 2005년 포항합숙소를 시작으로 총 35건, 금액으로는 3003억원의 부동산을 매각했다. 2009년에는 영등포·성동·동교동·개포동·군자역·화곡역·분당중앙 지점 등이 갖고 있는 토지와 건물을 매각한 뒤 재임대하는 방식으로 자산을 처분했다. 현재 4000억원 규모의 잠실 롯데월드 맞은편의 전산센터도 매물로 내놓은 상태다.

영국 본사에 송금한 배당금도 논란거리다. 이 은행 노조는 “2009년 순이익 4300억원 중 2500억원, 2010년 순이익 3220억원 중 2000억원을 영국 본사에 배당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SC제일은행의 금융지주사인 한국SC금융지주는 영국 본사가 100% 지분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 SC제일은행 측은 “자산을 매각한 금액은 한국SC금융지주에 재투자됐다”고 해명했다.

이번 파업을 두고 은행권에서는 노사를 모두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은행 문제를 깔끔히 해결하지 못하고 노조에 질질 끌려 다니는 힐 행장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강원도 속초의 한 리조트를 통째로 빌려 단체생활을 하고 있는 노조에 대해서는 ‘휴양 파업’이라는 비난이 제기됐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 관계자는 “노조원 2900여 명이 앞으로 한 달 동안 ‘리조트 파업’을 벌일 경우 비용만 억 단위가 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희 기자 bob28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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