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Report] 월스트리트의 역습
[First Report] 월스트리트의 역습
대통령이 집무실에 앉아서 서명할 법안이 있고 백악관 정원 로즈 가든에 나가 기념 세리머니를 벌일 만한 법안이 있다. 그리고 너무나 중요해(적어도 대통령의 재선에 영향력을 줄 정도로)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더 공을 들여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법안도 있다. ‘도드-프랭크법’이 그런 경우다. 지난해 7월 백악관에서 몇 블록 떨어진 호화스러운 장소에서 벨벳 커튼을 배경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금융개혁 종합대책 말이다.
“법안 통과가 결코 쉽지 않았다”고 대공황 이후 가장 야심적인 금융 시스템 개혁법의 입법 과정을 지켜본 400명의 요인 앞에서 오바마가 말했다. “각종 막강한 이해집단과 변화를 저지하려고 작심한 당파성 강한 소수파의 격렬한 로비를 극복해야 했다.”
하지만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는지도 모른다. 법안이 통과된 뒤 그에 반대했던 ‘막강한 이해집단들’이 법의 발효를 막으려 안간힘을 쏟는다. 당초 규정한 대로 그 법은 대다수 새로운 규칙의 시행을 최소 12개월간 연기했다. 규제 당국자들에게 2319쪽에 이르는 법안의 세부규정을 마련할 시간을 벌어줄 목적에서다. 그러나 그 연기조치는 금융개혁법 무력화 방안을 모색하는 은행 등 기타 금융기관에도 기회를 줬다. “우리는 1라운드에서 패했다고 포기하지 않는다”고 미국독립지역은행연합회(ICBA)의 캠 파인 회장이 말했다. “의회의 생각은 늘 바뀌게 마련이다.” ICBA는 올해 첫 3개월 동안 그 법의 집행을 저지할 로비에 100만 달러를 지출했다.
그 법에서 가장 중요하면서 논란 많은 규정인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의 사례를 보자. 이 기구는 다음주 업무에 착수할 예정이지만 상원의 공화당 의원들은 이 기구가 대폭 축소되지 않는 한 누가 국장에 임명돼도 인준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도드-프랭크법에 있는 총 300개가량의 규정 가운데 태반이 적들의 공격을 받는다. 그 법의 적은 은행, 수표 현금화 회사, 자유시장을 지지하는 공화당 의원 등 부지기수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법안이 “1000번이나 칼질을 당해 죽음을 목전에 뒀다”고 바니 프랭크 하원의원이 낙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칼잡이들의 주요 동기와 도구는 대체로 돈이다. 도드-프랭크법이 시행될 경우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이 잃게 될 수백억 달러의 이익, 그리고 그들이 그 법을 무효화하려 쏟아붓는 어마어마한 금액 말이다. 공공청렴센터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0년 첫 3개월까지 업계가 로비스트에게 지불한 돈은 13억 달러였다. 금융개혁에 저항하는 850개 업체와 관련단체들의 지출을 합산해 얻은 수치다. 이들 업체 중 다수가 신설된 법을 저지하려는 로비에도 그 이상의 돈을 지출하고 있다.
예컨대 금융서비스원탁회의(FSR)는 올해 초 수 개월의 지출을 근거로 할 때 2011년 로비활동비 지출이 1000만 달러로 추산된다. 이는 미국의 최대 금융회사 대다수를 대표하는 그 사업자단체가 2010년 지출한 750만 달러를 크게 웃도는 액수다. 미국은행협회의 로비활동비는 2011년 1분기 통계에 기초할 때 지난해 지출액 750만 달러를 돌파하리라 예상된다. JP모건 체이스와 시티그룹은 지난해와 똑같이 로비 비용으로 각각 700만 달러와 500만 달러를 지출할 전망이다. 지난해 500만 달러를 썼던 웰스 파고 은행은 올해 1분기에만 190만 달러를 지출했다.
여기에는 은행과 사업자 단체가 금융개혁을 담당하는 관련 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은행계좌에 쏟아붓는 정치 후원금 수백만 달러는 포함되지 않는다. 특히 도드-프랭크법을 좌초시키려는 의원들이 그 수혜자다.
은행들이 도드-프랭크법에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비자보호국이 신설되면 모기지나 신용카드 판매방식까지 간섭하며 그들의 사업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시어머니가 하나 더 늘게 된다. 예컨대 새로운 법에선 융자기관과 투자자가 금융시장 붕괴 이전 몇 년 동안 해왔듯이 모기지를 패키지로 묶어 고객에게 판매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대다수 모기지 담보증권 중 최소 5%의 지분을 보유해야 한다. 최종 법안은 또한 소매유통업체의 직불카드 거래에 금융기관이 부과하는 수수료에도 한도를 설정한다. 은행으로선 큰 수익원이 잠식당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 법은 대형 은행이 파생상품과 상품 선물 같은 위험한 모험상품에 베팅할 때의 지분 비율을 제한한다. 최근 몇 년간 은행들은 그런 투자로 횡재에 가까운 수입을 올렸다.
하지만 이 법은 대다수 미국인에게 상당히 인기가 있다. 지난해 가을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 법안의 통과가 잘된 일이라는 응답자가 61%였으며 자신을 공화당원이라고 밝힌 사람의 42%도 같은 답변을 했다. 이들의 지지는 은행과 의회 내 그들 동조세력의 일을 복잡하게 만든다. 공화당 대선 후보 미셸 바크먼은 올해 초 도드-프랭크법을 무효화하려는 법안을 내놓았지만 하원의 공화당 지도부가 승인은커녕 설명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대신 공화당원들은 도드-프랭크법을 폐기하기보다 껍데기만 남도록 속을 갉아먹는 일련의 조치를 지지했다. “그들은 그 법안을 무효화하려 하지만 바크먼 의원이 생각하는 방법보다는 더 미묘한 방식을 원한다”고 프랭크가 말했다(그는 자신의 그 이념적 라이벌을 가리켜 “하원의 공화당 의원 240명 중 그녀는 존경 받는 인물 230명 안에도 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공화당원들은 바크먼의 뒤를 따르기보다 “은밀히 그 법안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쪽을 택했다”고 프랭크가 말했다.
일례로 도드-프랭크법은 경제위기의 주범인 600조 달러에 달하는 파생상품 시장의 전면적인 쇄신을 촉구한다. 공화당 측은 하원에서 다수의석을 차지한 뒤 그 법에 따라 파생상품 감독 업무를 맡은 기관들의 예산을 삭감하려 했다. 그 방법이 통하지 않자 파생상품 관련 개혁의 실행을 가능한 한 오래, 적어도 2012년 10월까지 늦추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법의 집행을 약간 늦추면 새 의회 또는 새 정부가 금융산업의 고삐를 좀 더 느슨하게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또는 엘리자베스 워런을 향한 공격의 예를 보자. 그 하버드 로스쿨 교수가 2007년 소비자보호국 구상을 처음 제안했다. 그 뒤로 금융개혁에 대한 보수파의 분노가 그녀에게 집중됐다. 미치 매코넬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NBC의 대담 프로그램(Meet the Press)에서 워런을 “미국의 금융 시스템에 심각한 위협이 될지 모르는” 기구의 창설에 광분하는 몽상가로 묘사했다.
“한 가정을 도와 보기도 전에 누가 왜 그 소비자 기구를 무력화하려는가?”고 워런이 뉴스위크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물었다. 그 질문의 답은 자신들에게 전혀 득될 게 없다고 보는 대형은행뿐 아니라 막강한 소비자보호국이 신설되면 가장 큰 손해를 보게 될 제도권 밖의 대부업체들에도 있다는 사실을 워런도 물론 잘 안다. 수표 현금화 업자, 전당포 업자, 그리고 직장인 소액 대출업자(직장인의 월급을 담보로 고리 자금을 빌려준다) 등이 이에 해당된다.
자신이 구상한 소비자보호국이 상당한 지지를 얻는다는 이유로 정치판에서 자신이 동네북이 됐다는 사실도 그녀는 익히 안다. 공화당원들이 워런을 흠집 내고 그녀의 구상(그리고 나아가 금융개혁 전체)에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면 잠재적으로 훨씬 더 큰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있다. 오바마의 재선 가도에서 가장 튼튼한 버팀목 하나가 흔들리게 될지도 모른다.
애당초 도드-프랭크 법안 통과가 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금융서비스 업계는 경제위기로 큰 타격을 입었다. 따라서 금융기관의 정치자금 지출을 감시하는 단체들에 따르면 은행의 로비자금과 정치 후원금 지출이 줄었다. 하지만 어느 모로 보나 그런 감소는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2009년 개혁이 위협으로 떠오르자 은행들은 곧바로 다시 지출을 늘렸다. 때마침 그들의 수중에 현금도 넉넉했다. 연방 구제금융 덕분이었다.
예컨대 OpenSecrets.org에 따르면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으로 2500만 달러를 받은 JP모건은 2009~2010년 선거기간 중 로비자금으로 1400만 달러를 지출했다. 구제금융으로 100억 달러를 받은 골드먼삭스는 700만 달러를 썼다.
공공청렴센터에 따르면 어림잡아 3000명의 로비스트가 도드-프랭크법을 둘러싼 싸움에 뛰어들었다. 의원 한 명 당 다섯 명이 넘는 숫자다. 그러나 은행을 향한 국민의 분노가 불타오르면서 도드-프랭크 법안은 오히려 더 강화됐다. 일례로 소비자보호국은 당초 제한적인 규칙제정권을 지닌 5인 위원회로 구상됐다. 하지만 의회는 막판에 광범위한 권한을 가진 지도자가 이끄는 막강한 독립기구를 창설했다.
요즘 로비스트의 화력을 찾는 수요가 계속 늘어 간다. 워싱턴의 이른바 ‘구치 협곡’(Gucci Gulch, 로비스트의 명품 애호를 빗대 업계 전체를 일컫는 말)은 미국에서 보기 드물게 높은 고용증가율을 보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고 금융서비스원탁회의의 정부업무 책임자 스캇 탤벗이 말했다. 지난해 7월 도드-프랭크 법안의 서명은 금융개혁 논쟁에서 ‘하프타임’이었다는 말이다. 이제 개혁 반대파들은 두 개의 전선에서 싸워야 한다. 선출직 공무원들을 상대로 결정을 재고하도록 설득하는 한편 도드-프랭크법의 집행 책임을 맡은 규제당국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다.
“모두가 인력을 충원한다”고 탤벗이 말했다. 클라크 리틀&게둘딕도 그런 회사 중의 하나다. 탤벗이 이끄는 단체와 골드먼삭스, 마스터카드, 미국은행협회 등이 이들의 고객이다. 클라크 리틀은 비교적 소기업이지만 지난해 190만 달러의 로비 수수료 수입을 올렸다. 올해에는 그 액수가 330만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물론 도드-프랭크법을 둘러싼 싸움에 뛰어든 로비스트가 모두 기업계 쪽은 아니다. 트래비스 플렁켓은 미국소비자연맹을 대표하는 유일한 등록 로비스트다. 에드 미어즈윈스키는 도드-프랭크법을 지키려는 진보성향 단체 미국공익리서치그룹(PIRG)의 로비스트다. “2010년 상대편의 지출액이 적어도 우리의 100배는 될 듯하다”고 미어즈윈스키가 말했다. PIRG를 포함한 단체 연합은 도드-프랭크법을 둘러싼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 200만 달러 안팎을 지출했다. 하지만 그만한 지출을 지속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틀림없이 지금은 지출액 격차가 200배 가까이로 벌어졌을 듯하다.”
언젠가는 도드-프랭크법이 소비자에게 유익하다는 사실이 알려질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주로 워싱턴 DC의 로비스트, 그리고 상당수 공화당원 특히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위원들의 정치 후원금 주머니만 두둑하게 불려줬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은 예전부터 금융업을 감독하는 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후원해 왔다. 그러나 은행들이 도드-프랭크법 저지 투쟁에 큰돈을 쏟아붓는 시점이라서 의원들로선 금융서비스 위원회가 크게 한몫 챙기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 비영리 리서치 단체 선라이트 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금융서비스위원회 의장에 오른 스펜서 배커스(앨라배마·공화당) 의원이 받은 정치 후원금 중 70%가량이 2011년 1분기 금융서비스 업계의 기부금이다. 전임 의장인 바니 프랭크가 금융서비스 업계로부터 받은 후원금 비중은 전체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초선의원들도 혜택을 본다. 선라이트 재단에 따르면 올해 첫 3개월 동안 그 위원회의 공화당 초선의원 10명 중 7명은 합법적인 정치 후원금의 40% 이상을 금융서비스 업계로부터 받았다.
그중 한 명인 션 더피 의원(위스컨신)은 임기의 첫 3개월 동안 20만 달러가 넘는 정치자금을 조달했다. 더피는 워싱턴 정가에 발을 들여놓을 때는 금융에 거의 문외한이었다. 그는 지난 4월 워소 데일리 헤럴드 신문과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를 토로했다. “내가 잘 모르는 몇몇 문제, 금융·주택·보험 분야의 현안을 파악하는 일이다. 평생 다뤄본 적이 없는 문제다.” 같은 달 더피는 도드-프랭크법을 물타기 또는 지연시키려는 일련의 법안 중 하나를 지지했다. 검사 출신으로 한때 MTV 리얼리티 프로그램(The Real World-Boston, 모르는 남녀가 몇 개월 동안 함께 생활한다)에 출연했던 더피는 소비자보호국을 “권위주의적 구조”를 가진 “불한당 기구”로 묘사했다. 금융개혁법과 관련해 더피 의원이 우려하는 문제는 그의 지역구에 소재한 지역 은행과 신용조합을 옭아매는 “거추장스러운 규제”라고 그 하원의원의 한 대변인이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도드-프랭크 법안에 서명한 뒤 “이제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비영리 미디어 센터인 네이션 인스티튜트(Nation institute)의 조사 기금(Investigative Fund)이 리서치를 지원했다. 번역 차진우]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애플의 中 사랑?…팀 쿡, 올해만 세 번 방중
2 “네타냐후, 헤즈볼라와 휴전 ‘원칙적’ 승인”
3“무죄판결에도 무거운 책임감”…떨리는 목소리로 전한 이재용 최후진술은
4中 “엔비디아 중국에서 뿌리내리길”…美 반도체 규제 속 협력 강조
5충격의 중국 증시…‘5대 빅테크’ 시총 한 주 만에 57조원 증발
6이재용 ‘부당합병’ 2심도 징역 5년 구형…삼성 공식입장 ‘無’
7격화하는 한미사이언스 경영권 갈등…예화랑 계약 두고 형제·모녀 충돌
8“이번엔 진짜다”…24년 만에 예금자보호 1억원 상향 가닥
9로앤굿, 국내 최초 소송금융 세미나 ‘엘피나’ 성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