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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에 빠진 강신호 회장

고민에 빠진 강신호 회장


정부 “박카스 수퍼에 공급하라” 압박 동아제약 “일반음료 취급 받고 가격 통제 안 된다” 우려
박카스의 수퍼·편의점 판매 결정을 두고 고민하고 있는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

7월 19일 보건복지부는 박카스, 마데카솔, 안티푸라민 등 일반 의약품에서 의약외품 전환을 앞둔 48개 제품을 생산하는 제약회사 임원을 불러 모았다. 이튿날인 20일부터 일반 의약품에서 의약외품으로 전환돼 수퍼마켓에서도 팔릴 수 있도록 조치한 품목이 원활하게 공급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당부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동아제약을 비롯해 16개 제약사 임원이 참석했다. 손건익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 자리에서 “의약외품으로 확정고시된 제품을 국민이 수퍼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해당 의약품을 차질 없이 공급해 달라”고 말했다. 복지부의 이 같은 요청은 일반 의약품을 의약외품으로 분류해 수퍼 판매의 길을 열어줬는데도 제약사가 약국에서만 팔면 일반 의약품을 의약외품으로 전환한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정부로서는 의약외품으로 전환된 제품이 수퍼마켓에 깔려야 정책 홍보효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복지부는 의약외품 판매와 관련해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제시했다. 당근은 의약외품 전환 결정 전에 생산돼 라벨에 ‘일반 의약품’ 표시가 그대로 있더라도 수퍼에 유통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채찍은 일반 의약품에서 의약외품으로 전환이 결정된 제품은 의약품으로 오인되지 않도록 광고 문안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한 것이다. 이건 다분히 동아제약의 박카스를 의식해 내린 결정으로 풀이된다. 최근 동아제약은 ‘진짜 피로회복제는 약국에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사용한 광고로 박카스의 매출이 늘어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복지부는 동아제약이 이 광고문구를 계속 사용할 경우 행정처분을 내린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박카스의 수퍼 판매에 주목하는 이유는 박카스의 상징성 때문이다. 이번에 의약외품으로 전환된 48개 품목의 연간 매출은 총 1400억원 정도다. 이 가운데 박카스 매출이 1300억원 수준이다.



복지부의 수퍼판매 요청 사실상 거부 당연히 동아제약이 박카스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관심이 모아졌다. 일부 제약사는 정부 정책대로 의약외품으로 전환된 제품을 수퍼마켓에서 유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동아제약은 현실적으로 생산이 어렵다는 이유를 대며 사실상 거부했다. 제약사에 가장 힘이 센 주무기관인 복지부의 요청을 뿌리친 것이다.

동아제약에 따르면 박카스를 생산하는 천안공장의 연간 생산물량은 3억6000만 병 정도다. 지난해 동아제약은 3억5000만 병의 박카스를 팔았다. 동아제약 관계자는 “현재 생산설비 수준으로서는 약국에만 박카스를 납품하기도 빡빡한 상황”이라며 “특히 여름은 박카스 판매의 성수기라 재고 물량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동아제약이 정부의 박카스 수퍼 판매 요청을 거절했지만 지금도 약국이 아닌 곳에서 박카스를 살 수 있긴 하다. 박카스는 일반 의약품으로 분류되던 때에도 종종 수퍼마켓이나 찜질방에서 팔렸다. 소매상들이 약국에서 박카스를 사다 팔거나 유통 과정에서 유출돼 소매점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동아제약의 공식적인 판매 정책과는 무관하다.

일부에서는 동아제약이 정부나 약사의 눈치를 보고 있어 박카스 수퍼마켓 판매를 주저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사실은 좀 다르다. 지난해 동아제약 의약품 매출 7030억원 가운데 전문약 매출은 4813억원으로 68%에 이른다. 매출 규모가 절대적인 전문약의 처방권은 의사가 쥐고 있다. 약사가 반발하더라도 큰 손실로 이어지진 않는다. 동아제약의 일반약 매출은 2217억원으로 의약품 매출의 32% 수준이었다. 일반약 매출의 절반 이상은 지난해 1283억원의 매출을 올린 박카스였다. 게다가 약사의 반발로 약국의 박카스 매출이 떨어지더라도 수퍼 판매로 만회할 여지가 많다.

동아제약의 진짜 고민은 따로 있다. 피로회복약이라는 이미지가 희석되고 유통 가격이 붕괴돼 50년 신화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박카스, 마데카솔, 안티푸라민 등 48개 일반 의약품이 의약외품으로 전환돼 7월 21일부터 편의점이나 수퍼마켓에서 이들 제품을 팔 수 있다. 사진은 7월 20일 서울시내 수퍼마켓에 진열된 박카스. 동아제약이 식 경로로 유통한 제품은 아니다.



일본 리포비탄의 전철 밟을까 우려동아제약은 일본판 박카스인 다이쇼제약의 ‘리포비탄’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리포비탄은 박카스와 유사한 자양강장제다. 리포비탄도 박카스처럼 약국을 통해서만 유통되다가 1999년 의약외품으로 분류돼 수퍼마켓에서 판매됐다. 처음에는 유통망 확대 효과를 톡톡히 봤다. 2000년에는 발매 이후 최대인 797억 엔의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리포비탄의 매출은 급락하기 시작해 과거보다 연간 100억 엔 이상 줄었다. 수퍼마켓 판매가 늘어난 것보다 약국 판매 감소분이 더 컸기 때문이다.

다이쇼제약은 리포비탄의 판로가 다양해지고 음료와 경쟁이 시작되면서 판매가격을 제어하지 못했다. 기능성 음료나 비타민 음료 등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존에 하지 않았던 가격할인 정책을 편 것이다. 이에 따라 약국들은 이익이 적어진 리포비탄의 판매를 꺼렸고 이는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 동아제약 관계자는 “약국만을 상대로 할 때는 동일한 박카스 유통가격을 유지할 수 있어 약국에서도 비슷한 가격으로 판매됐다”며 “하지만 유통망이 늘어날 경우 유통과정에서 박카스 가격이 어떻게 형성될지 예측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기에 박카스가 음료로 시장에서 팔리게 되면 1962년 출시한 이후 가져왔던 ‘박카스=약’이라는 이미지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박카스는 50년 가까이 피로회복제라는 틈새시장에서 최강자로 군림해 왔다. 수퍼마켓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사정은 달라진다. 다른 청량음료처럼 음료시장의 ‘수많은 제품 중 하나’로 위상이 추락할 수 있다.

특히 과거보다 건강보조식품 등 영양섭취도 좋아진 상황에서 ‘약’이 아닌 ‘음료’로서 박카스의 효용가치는 평가절하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음료시장은 유행주기가 짧다.

최종 결정은 박카스 신화를 일군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이 내릴 것으로 보인다. 박카스는 제약업계 1위 동아제약을 만든 원동력이었다. 1963년 당시 서른일곱의 강 회장은 알약이던 박카스정을 드링크제로 바꾸는 결단을 내렸다. 변변한 영양제가 없던 시절 값싼 드링크 형태의 피로회복제 박카스는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1967년 동아제약은 단숨에 업계 1위에 올라섰고 44년간 이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동아제약 고위 임원은 “박카스는 강 회장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라며 “박카스를 수퍼마켓에서 판매할지는 강 회장이 아니면 누구도 결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올해 85세의 강 회장은 다시 결정의 기로에 서 있다. 50년 전 과감한 결단을 내렸던 것과 달리 강 회장은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결정이 박카스의 미래 50년을 좌우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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