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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40년 쌓인 내부 부조리 청산”

[CEO] “40년 쌓인 내부 부조리 청산”

“신세계그룹은 사업을 인수하면 해당 사업장의 직원을 전원 고용 승계합니다. 입찰에서 이겼을 때도 마찬가지고, 한번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이번 입찰에서 승리한 워커힐 측에서 우리 직원 160명 가운데 단 몇 명에게라도 일할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5월 하순 최홍성 조선호텔 대표는 문종훈 당시 워커힐 경영총괄(현 사장)과 홍성원 코엑스 사장을 각각 만나 이렇게 호소했다. 조선호텔 외식사업부가 입찰에서 지는 바람에 지난 11년간 운영해온 비즈바즈·오킴스 등 코엑스의 4개 식당에서 철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모두 난색을 보였다. 비정규직까지 합하면 210여 명이 졸지에 일자리를 잃게 생겼다.

최 대표는 신세계 구학서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을 찾아가 사의를 밝혔다. 발등의 불인 일자리 문제부터 해결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일터를 잃은 정규직 160명을 끌어안을 방안을 모색했다. 이미 중구에 있는 호텔(웨스틴조선 서울)은 인건비 비중이 45%에 달하는 고임 구조였다. 이들을 그대로 수용했다가는 인건비가 60%로 치솟을 판이었다. 4월 말 기준으로 호텔은 이미 9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해마다 적자를 내는 기업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묘안이란 없었다. 이미 조선호텔은 경쟁력을 잃은 상태였다.

최 대표는 전 구성원이 고통을 분담하는 길밖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자신의 급여를 20% 삭감하고 임원 급여도 10% 깎았다. 노조와 대화를 시작하는 한편 서울과 부산 호텔(웨스틴조선 부산)의 전 직원에게 임금을 자진해 삭감하자고 e메일을 띄웠다. 이와 더불어 해마다 기계적으로 올라가는 근속수당, 업무 능력·성과와 관계없이 연한만 되면 승진하는 자동 승진제도, 근무성적 평가와 무관하게 지급되는 무성과급형 급여제를 폐지하자고 설득했다. ‘경쟁력 강화 4대 방안’이다. 40년간 조직 내부에 쌓인 부조리와 비생산성을 이 기회에 청산하자고 나선 것이다. 희망퇴직·명예퇴직도 실시했다.

그로부터 두 달, 160명 가운데 10명 이하가 희망퇴직을 했고 나머지는 조선호텔의 다른 부서에 재배치했다. 이를 위해 간부들은 급여를 10% 삭감했다. 최 대표는 “희망하는 사람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조선호텔에 못 들어오면 나도 같이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는데 약속을 지킨 셈”이라고 털어놓았다.



조선호텔이 경쟁력이 없습니까?“운영 경쟁력이 없는 거지, 입지 경쟁력은 무적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있고 땅값 포함해 4000억원이 투입된 호텔이에요. 이런 진입장벽은 누구도 뚫을 수 없습니다. 결국 그 덕에 먹고산 거죠.”



경쟁력을 상실한 원인이 뭔가요?“지난 30년간 오너를 포함해 외부의 어느 누구도 조선호텔에서 1원 한 푼 가져간 일이 없습니다. 내부에서 분배의 부조리를 방치한 결과 이런 사태를 맞은 거예요. 40년 동안 쌓인 문제를 역대 대표들이 임기 중 풀려 들지 않은 결과죠. 흔히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고 하지만 사리에 맞는 것이 좋은 겁니다. 경영진은 물론이고 노조나 직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임금 삭감에 구성원들이 선선히 동의했습니까?“처음엔 30%를 삭감하자고 했어요. 제 봉급도 30% 깎기로 했고. 이 안에 놀랍게도 전체의 70%가 동의서를 냈습니다. 임금 조정은 노조와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당사자들에게서 개별적으로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압박도 했죠. 서울 호텔 직원 가운데 15%인 70명을 뽑아 일산의 킨텍스 연회장으로 발령 냈습니다. 가서 코엑스를 떠나야 하는 동료들의 입장에 서 보라는 취지였죠. ‘여러분도 외식사업부에서 일하는 동료들의 신발을 한번 신어 보라’고 말했습니다. 노조의 입김으로 서울 호텔이 받는 서비스료를 분배할 때 서비스료를 받을 수 없게 돼 있는 외식사업부 근무자들은 배제합니다. 이 때문에 호텔과 외식사업부 간에 몇 십만원의 임금 격차가 있어요. 더욱이 킨텍스도 8월에 입찰이 있습니다.”

최 대표는 삼성물산 시절부터 자신의 멘토였던 김재우 한국코치협회장(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게 조언을 구했다. 김 회장은 두 가지를 권했다. 첫째, 스태프를 배제하고 직원들과 직접 대화하라. 둘째, 자리라는 기득권에 연연하지 마라.

마지막 고비는 명예퇴직에 따르는 가산금 액수를 둘러싼 노사 간 줄다리기였다. 최 대표는 12개월치 급여를 제시했다. 당사자들은 30개월치를 요구했다. 최 대표는 그 돈이 누구 돈인 줄 아느냐고 물었다. 회사 돈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회사는 망했습니다. 외식사업부는 말하자면 망한 회사예요. 오너가 여태 조선호텔에서 돈을 가져간 일이 없으니 그 돈은 결국 여러분 동료, 선후배의 돈입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나가서 식당 차리면 잘 되겠어요? 나라면 12개월치 받아 그 절반을 장학기금으로 쓰라고 내놓겠습니다. 그동안 다른 호텔보다 봉급 많이 받았잖습니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당을 차리면 성공할 겁니다. 안 되면 찾아오세요. 내가 취직시켜줄 테니.”

이렇게 해서 명퇴 가산금 액수를 12개월치로 확정할 수 있었다. 130명이 이렇게 회사를 떠났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직접 대화의 힘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직원들의 급여 삭감 수준은 10%로 내려갔다. 이마저 사원들에게는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중후하박으로 돼 있는 임금 구조를 감안한 결정이었다. 사원들은 임금삭감을 제외한 나머지 3개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해서만 동의서를 내도록 했다. 막판까지 사원들도 10%를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노조도 최 대표가 단체협약 해지라는 배수진을 치자 동의했다. 7월 1일 이렇게 해서 60일간의 장정이 끝났다. 최 대표는 그동안 전 직원과 만났다. 10% 삭감해도 다른 호텔들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그는 말했다.

“경쟁력 강화 방안도 제가 만든 게 아닙니다. 회사 앞날을 걱정하는 직원들과 숱하게 주고받은 e메일과 인트라넷인 블라섬에 올라온 의견을 취합한 거예요.”



직원들이 e메일을 많이 보내나요?“부임한 지 4년째인데 신입사원을 비롯해 직원들에게 평소 ‘내 이름만 알면 대표에게 의견을 보낼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이때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절대 비밀을 보장한다는 것과 여러분이 제기하는 문제를 대표가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죠. 때로는 전 구성원에게 e메일을 보내는데 20~30명이 답장을 합니다.”



10% 급여 삭감은 한시적인 건가요?“10% 삭감했지만 외식사업부에서 150명이 들어와 인건비 비중이 다시 45%입니다. 이런 인건비 들이고도 할 수 있는 장사는 대한민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없습니다. 열심히 돈 벌자고 했습니다. 월 10%면 연간 120%입니다. 오너가 여태 가져간 일 없으니 돈만 많이 벌면 성과급으로 급여의 400%를 돌려주겠다고 했어요. 곗돈 묻어둔 셈 치자고 했죠.”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는데 이 같은 반전의 비결이 뭡니까?“문제 해결에 대한 확고한 의지죠. 멘토의 충고에 따라 직에 연연하지 않고 직접 대화한 것도 주효했습니다. 하나 더, 오너와 구 회장이 저를 신뢰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못했을 거예요. 사실 가장 큰 변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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