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ig Fat Story] 9·11이 미국을 어떻게 바꿨나
[The Big Fat Story] 9·11이 미국을 어떻게 바꿨나
대화 방식9·11은 세상을 그 이전과 이후로 갈라놓았다. 이전에는 다른 나라와 전쟁을 치렀지만 이후에는 테러와의 전쟁을 벌였다. 이전에는 프렌치 프라이를 먹었는데 이후에는 애국주의의 양념을 곁들여 프리덤(자유) 프라이를 먹었다. 이전에는 국가를 수호했지만 이후에는 국토를 지켰다. 문학과는 거리가 먼 도시 워싱턴이 시대의 어휘를 규정했다.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은 ‘포터리 반 원칙(Pottery Barn rule, 망가뜨린 제품은 사야 한다는 원칙, 전쟁 후의 책임을 강조)’을 주장했고 딕 체니 부통령은 안보 상태를 ‘새로운 표준(the new normal)’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조지 부시는 그 속에 담긴 아이러니를 읽지 못했다. 나아가 ‘임무 완성’이라는 깃발 앞에서 자랑스럽게 활보하기까지 했다.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는 과거 핵과학자들이 사용하던 전문용어였지만 그 뒤로 뉴욕 심장부에 생긴 구멍을 상징하게 됐다.
공포의 대상과거에는 적을 식별하기가 쉬웠다. 제임스 본드 영화의 악당, 으르렁거리는 나치, 무표정한 러시아인, 미국을 도발하는 사악한 독재자가 저들이었다. 그러나 21세기로 들어선 지금 경계가 불분명해지면서 악이 우리 주변의 도처에 도사린다. 다른 보통 사람과 달라 보이지 않는 악인들이 트럭, 건물, 자신의 구두, 속옷 속에 폭탄을 설치하니 무슨 대책이 있을까? 실상 아무 것도 없다. 걱정하며 항상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이상한 걸 발견하면 신고하는” 수밖에. 해가 갈수록 그런 위협이 더 은밀해지고 실체가 없어지는 듯하다. 중국이 이젠 미국의 e-메일을 읽는다. 날씨가 미국을 위협한다. 미국은 지구, 미국의 적들, 그리고 서로를 불신한다. 9·11은 공포를 삶의 엄연한 현실로 바꿔놓았다.
안전대책미국인들은 ‘재해 대비 용품 세트’를 준비하고 덕트 테이프와 생수를 들여놓고 여분으로 비상약품을 마련했다. 그래서 더 안전해졌다고 느낄까? 천만에. 미국인들은 부시 정부가 테러 위협 수위를 녹색에서 노란색으로 그리고 오렌지색으로 높여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어 오바마 정부는 색깔 경보체계 자체를 폐지했다. 휴일에 고향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때도 수치스러운 몸 수색과 전신 스캔을 의무적으로 거쳐야 한다. 미국은 적이 파키스탄 보타바드의 건물 안이든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국경 부근의 동굴이든 어디에 숨어 있든 찾아내 끝장을 봤다. 그러나 지금은 주로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안전을 유지한다. 몸을 웅크리고 두 손 모아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는 일이다.
오락문화현실에서 도피하려고 시청하는 TV가 우리를 세상에 더 가깝게 이끌었다. 폭스TV의 ‘24’에서 키퍼 서덜랜드가 연기하는 잭 바우어는 픽션이라기보다 현실처럼 느껴지는 줄거리에서 시간과 싸움을 한다. 데니스 리어리의 ‘레스큐 미(Rescue Me)’ 같은 의외의 인기 프로그램은 소방관들을 화제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좌파들은 애니메이션 영화 ‘팀 아메리카: 세계 경찰’의 인형 주인공을 내세워 폭소를 자아냈다. 3인조 그룹 딕시 칙스는 같은 텍사스 출신인 부시 대통령을 공격했다가 곤경에 처했다. 한편 컨트리 스타 앨런 잭슨과 브루스 스프링스틴 같은 가수들은 그 시대적인 비극에서 영감을 얻어 우리 시대의 사운드트랙을 제공했다.
독서 취향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뒤 픽션의 거장들이 펜을 들었다. 존 업다이크, 마킨 에이미스, 돈 드릴로 등이 제각기 9·11을 주제로 걸작 소설을 저술하려 시도했다. 그리고 클레어 메서드, 조너선 새프란 포어, 조셉 오닐 등 다음 세대가 그뒤를 이었다. 하지만 그 긴박한 순간과 이어지는 세월을 제대로 포착했다고 주장할 만한 소설은 하나도 없었다. 마침내 위대한 미국 소설가 조너선 프랜즌이 정치 소설 ‘자유(Freedom)’로 시대정신의 정수를 담으려 했다. 하지만 미국을 집어삼킨 세계의 뒤죽박죽인 현실을 이해하려는 미국인들의 끊임없는 시도에 부응하는 건 논픽션이다. 지금은 고전이 된 ‘문명전쟁(The Looming Tower)’ ‘유령전쟁(Ghost Wars)’ ‘영원한 전쟁(The Forever War)’ 등이다. 미국의 에밀 졸라와 찰스 디킨스는 전쟁 특파원과 기자들이다.
존경의 대상9·11 이후의 세계에서 누구를 두려워할지 알아내기는 힘들지 모르지만 존경할 만한 인물을 찾기는 쉽다. 비극의 첫 순간에 등장한 첫 영웅들이다. 유나이티드항공 93편의 스콧 비머와 승객들, 미국 국방부와 세계무역센터로 달려간 경찰관과 소방대원들, 잔해 속을 샅샅이 훑은 자원봉사자들이다. 군인들은 네 차례나 해외 파견근무를 했으며 그들의 가족은 아끼고 저축하며 그들의 귀국을 기다렸다. 물론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의 팀6도 있었다. 그들은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를 급습해 거의 흠잡을 데 없이 공습작전을 완수해 미국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미국인들은 미국의 우수함을 구현하는 이런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들은 전쟁과 불황 그리고 추한 정치싸움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이 여전히 희생적이고 훌륭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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