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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 음지에 갇힌 5000억원 튜닝시장 열린다

[Car] 음지에 갇힌 5000억원 튜닝시장 열린다

올 후반기 국토해양부를 비롯한 정부 관계 부처들은 국내 실정에 맞는 한국형 튜닝 제도를 본격 논의할 예정이다. 이르면 내년 말에는 새로운 자동차 구조변경 제도가 마련될 전망이다. 현재 음지에 있는 튜닝시장이 양지로 나오는 것이다. 미국·일본 등 자동차 선진국에서 자동차를 튜닝하는 건 일반적인 일이다. 관련 업계 추산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의 튜닝시장은 20조~30조원에 이른다. 현재 규제에 막혀 걸음마 단계인 국내 튜닝시장은 정부의 규제 철폐 검토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국내 자동차 튜닝시장의 현황과 과제를 짚어봤다.
2010년 12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국제오토살롱. 이 전시회에는 드레스업, 퍼포먼스 튜닝카를 비롯해 자동차 튜닝에 관련된 제품이 선보였다.

직장인 김순택(36)씨의 취미는 자동차 튜닝(Tuning)이다. 튜닝은 운전자의 취향에 맞게 자동차의 형태나 성능 등을 개조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차를 구매하자마자 어떻게 튜닝할지를 가장 먼저 고민한다. 2002년 구입한 첫 차를 포함해 그동안 세 차례 바꾼 차를 모두 튜닝했다. 그는 “많은 돈을 들여 차를 사는데 이왕이면 남들과 다른 개성 있는 차를 갖고 싶어 튜닝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첫차 SM5의 경우 200만원을 들여 휠과 보디킷(차제 외부에 부착하는 튜닝 용품)을 교체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그는 돈을 아끼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직접 일본 부품업체에 연락해 휠을 구입했다. SM5 튜닝차 선발대회에 나가 3등을 한 이후 더욱 튜닝에 빠진 그는 수입차 튜닝을 해보고 싶어 BMW로 차종을 바꿨다.

지난해에는 포르쉐를 구입해 1500만원을 들여 휠, 머플러(소음기: 소리를 작게 하거나 없애는 장치), ECU(전자제어장치: 자동차의 엔진, 자동변속기 등의 상태를 컴퓨터로 제어하는 장치)를 교체했다. 커다란 휠을 장착해 역동적인 느낌을 강조하고 ECU 설계를 변경해 출력을 높였다. 머플러는 법에 걸리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높게 끌어올렸다. 김씨는 “태백의 경기장을 찾아 자동차 동호회 회원들과 시합을 종종 하는데 같은 포르쉐인데도 튜닝한 내 차가 훨씬 빠르게 달릴 때 쾌감을 느낀다”며 “시간과 비용을 들이면 얼마든지 개성 있고 성능이 향상된 새로운 차로 바꿀 수 있다는 게 튜닝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한국자동차튜닝문화포럼 대표를 맡고 있는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튜닝시장은 연간 5000억원대로 추정된다. 20조~30조원으로 추정되는 일본과 비교하면 아직 시장 규모는 작다. 김필수 교수는 “미국, 일본 등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를 보유한 국가들이 완성차시장에서 튜닝시장으로 영역을 넓혀온 것을 볼 때 튜닝과 관련된 법적, 문화적 환경이 바뀐다면 국내 튜닝시장도 3조~4조원 정도까지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보유대수는 2010년 6월 기준으론 1765만 대. 숙명여대 경제학과 강인수 교수는 “자동차가 생활용품으로 확실히 뿌리를 내리면서 튜닝을 통해 자신만의 다른 점을 부각시키고 싶은 소비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은 20조~30조원 시장튜닝은 크게 휠, 보디킷 등 외형을 개조하는 드레스업 튜닝(Dress-up Tuning)과 엔진, ECU 등을 비롯해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는 퍼포먼스 튜닝(Performance Tuning)으로 나뉜다. 12년째 튜닝숍을 운영하는 김종환 엔에프에스 대표는 “튜닝 비용은 차종이나 종류에 따라 적게는 수십만원대에서 많게는 수억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며 “운전자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튜닝 종류는 다양하지만 휠은 거의 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휠을 튜닝하는 비용도 수십만원대에서 수백만원대까지 다양하다.

국내 튜닝 문화는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확산하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주춤해졌다. 특히 수입차 튜닝시장 타격이 컸다. 12년째 수입차 튜닝숍을 운영하는 이영구 스타일 대표는 “수입차를 사는 사람의 상당수는 소비수준이 높은 게 사실이지만 수입차 튜닝의 경우 거의 수입 브랜드 제품을 쓰는 게 일반적이어서 2008년 금융위기처럼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튜닝숍을 찾는 손님도 줄었다”고 말했다.

반면 국산차 튜닝숍은 타격을 덜 받았다. 4년째 국산차 튜닝숍을 운영하는 신형철 스트릿오토 대표는 “정비와 튜닝을 함께 하고 있는데 최근 3년 사이 튜닝 매출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회원수 5만 명 넘는 튜닝 동호회도튜닝 트렌드도 많이 달라졌다.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그랜저, 에쿠스 등 대형 세단을 튜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형차보다 아반떼, K5 등 준중형차 튜닝 수요가 더욱 늘고 있다. 신형철 대표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젊은이들 사이에서 튜닝 문화가 확산되면서 이들이 주로 구입하는 차종인 준중형차를 튜닝하는 경우가 늘었다”며 “준중형차 튜닝이 전체 매출의 70~80%”라고 말했다. 튜닝용 머플러 제조업체인 준비엘 해외사업팀 여우현 대리는 “2000년 초반과 비교했을 때 준중형차 머플러 매출은 30% 늘었다”고 전했다.

서울 중구 무학동에 위치한 튜닝숍 직원이 출력을 높이기 위해 터보 차저(과급기: 엔진에 공기를 강제로 압축해 넣는 장치)를 튜닝 중이다.

튜닝 문화의 중심에는 동호회가 있다. 네이버, 다음 등 인터넷 포털에는 자동차 튜닝과 관련된 동호회가 수백여 개에 이른다. 가입 회원수가 5만 명이 넘는 곳도 있다. 이들은 온라인 동호회에 가입해 튜닝 정보를 공유하고 정기적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열어 튜닝한 차를 비교한다.

동호회에서 추천 받은 튜닝숍을 이용하거나 아예 동호회에서 튜닝 부품을 공동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BMW 튜닝 동호회에서 활동 중인 이용학(31)씨는 “동호회에선 다양한 튜닝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며 “회원이 많은 동호회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튜닝숍도 많다”고 말했다.

국산차 튜닝시장이 활성화면서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들도 활기를 띠고 있다. 대표적인 업체가 머플러 제조업체 준비엘과 서스펜션(자동차의 구조장치로 노면의 충격이 차체나 탑승자에게 전달되지 않게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 제조업체 시명이다. 1998년 설립된 준비엘은 지난해 매출 22억원을 올렸다. 매출의 대부분은 튜닝숍 판매에서 발생한다.

준비웰 경영지원팀 관계자는 “2000년대 이후 매출이 떨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국내 튜닝 문화가 그만큼 활성화됐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준비웰은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등에도 수출하고 있다. 이 회사 해외사업팀 여우현 대리는 “회사가 처음 세워졌을 때만 해도 머플러 제작업체는 준비웰을 제외하곤 거의 없었지만 튜닝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머플러 제조업체 4~5곳이 더 생겨났다”며 “튜닝 관련 규제가 풀린다면 부품업체 수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시명은 지난해 매출 15억원을 올렸다. 이 회사 역시 2000년 이후 매출이 조금씩 늘고 있다. 시명 송원상 대표는 “자동차관리법에서 서스펜션 튜닝을 금지하는 조항이 없어 다행히 사업에 크게 영향을 받진 않았지만 튜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회사 이미지로 연결되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며 “선진국에선 튜닝이 선진화된 자동차 문화인 것처럼 국내에서도 튜닝에 대한 인식이 지속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시명은 BMW·폭스바겐·아우디 등의 자동차를 튜닝하는 해외 업체에 시명 브랜드가 찍힌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관련 전문가들은 “튜닝산업 활성화를 위해선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국내에는 튜닝부품을 시험하고 인증하는 전문기관이 없다. 튜닝부품 판매는 합법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차량에 장착되는 순간 불법인 경우도 이 때문이다. 신형철 대표는 “튜닝 부품을 제작하는 업체로서도 답답하다”며 “미리 인증기관에서 아예 표준화된 수준을 알려주면 튜닝부품을 만드는 것도 훨씬 수월하고 소비자도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동차 및 부품 공식 시험기관으로 자동차부품연구원과 자동차성능시험연구원이 있지만 일반인이 각종 시험을 의뢰하기에는 비용 및 기간이 많이 요구돼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반면 독일에는 독일기술검사협회, 일본에는 자스마(JASMA)와 자와(JAWA)라는 단체가 튜닝제품을 등록하고 테스트 및 심사를 해 제품이 환경기준을 비롯한 다른 기준에 적합한가를 결정한 후 시판 인정 여부를 알려준다. 튜닝부품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시험이 설정돼 있기 때문에 소비자와 업체의 혼선이 발생하지 않는다.

튜닝 관련 규제가 추상적이라는 점도 문제다. 자동차관리법 구조변경 시행규칙 80조는 튜닝 후 검사를 할 경우 14가지 판정 기준에 대해 기록한 규정이다. 6번 항목엔 ‘전기·전자장치 중 엔진정지 또는 화재발생 우려가 있는 결함’이 있는 경우 검사를 통과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 항목은 해석하기에 따라 튜닝에 대한 모든 것을 금지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김필수 교수는 “보는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자의적인 법 적용이 가능해 실제로 도로에선 이처럼 불분명한 법 때문에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는 운전자가 많다”며 “튜닝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애매모호한 법부터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토해양부 자동차정책과 김용원 사무관은 “튜닝 규제가 줄면 소비자와 부품업체 둘 다 좋다는 점에선 동의한다”며 “안전도 확보하고 튜닝도 활성화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복잡한 튜닝 절차도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차량 구조를 바꾸려면 떼야 하는 서류만 네 가지다. 특히 구조변경대비표라는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데 발급하는 기관이 없어 운전자 스스로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튜닝부품 인증기관 전무현재는 민간 튜닝숍에서 대신 서류를 작성해준다. 또한 운전자는 어떤 기관에서 네 가지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는지도 알기 어렵다. 강인수 교수는 “정부 산하 자동차 관련 기관에 튜닝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를 만들어 운전자들에게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되면 튜닝카 또는 튜닝부품의 사용등록 등 통계 자료를 내는 데도 훨씬 합리적이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올 하반기 국토해양부, 지식경제부, 환경부, 경찰청 등이 공청회를 개최해 국내 실정에 맞는 한국형 튜닝제도를 마련할 방침이다. 이후에는 국토부 주관으로 3~6개월 정도의 정책연구를 통해 내년 초에는 최종 공청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이르면 내년 말 혹은 내후년 초까진 새로운 구조변경 제도가 마련돼 국내 자동차 튜닝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튜닝부품 인증기관 마련, 규제완화 등 제도적인 변화가 이뤄진다면 수년 내에 국내 자동차 튜닝시장이 급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필수 교수는 “튜닝과 관련된 불필요한 규제가 풀리면 관련 부품업체도 늘어나 신규 고용창출에도 도움이 된다”며 “국내 대표적 산업인 자동차산업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 교수는 “모터스포츠 시장이 자동차 튜닝과 ‘실과 바늘’ 관계라는 점을 고려하면 모터스포츠도 활성화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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