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essay] 우동 한 그릇의 기억
[CEO essay] 우동 한 그릇의 기억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우동은 뭘까? 특급호텔 주방장이 만든 고급 우동일까, 고급 일식집의 우동일까. 아마 열심히 일하다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먹었던 길모퉁이 우동집의 따끈한 우동 한 그릇 아닐까.
가장 기억에 남는 우동은 일본 출장길에 우연히 맛본 프랜차이즈의 100엔짜리 우동이다. 일본 프랜차이즈 시장을 분석하러 오전 내내 분주히 뛰어다니다가 점심시간을 놓쳐 배를 곯고 있는데 마침 간판에 100엔이라고 커다랗게 써 붙인 게 눈에 들어왔다. 면과 국물만 담아 간단하게 나오는 우동에 파, 튀김가루 등을 직접 선택해 곁들이는 패스트푸드 형식이었다. 하지만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따끈하고 값싼 우동 한 그릇이 남의 나라에서 밥도 못 챙기고 바쁘게 뛰어다니던 헛헛한 마음까지 채워주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우동집은 매일 사람들이 수십m씩 줄을 늘어서는 장관을 연출해 창업주가 일본 방송에 소개되고 한국에 초청돼 강연하기도 했다.
최근 우리나라 직장인의 점심식사 비용이 너무 올라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거나, 편의점 간편식으로 때우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뉴스를 보며 문득 100엔 우동이 떠올랐다. 젊은 직장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아도 세상사가 고단할 텐데 점심 한 끼 든든히 챙기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오래전 얘기지만 막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점심 한 끼는 걱정거리가 되지 않았다. 100엔 우동까지는 아니더라도 회사 근처 백반집에 가면 고봉밥을 두 그릇씩 담아 주던 밥집 아주머니가 있었다. 돈을 더 주려고 하면 삼시세끼 먹는 밥에는 인색하면 안 된다며 한사코 돌려주곤 했다.
얼마 전 이런 옛 인심을 떠올리게 하는 ‘착한 가게’들이 신문에 소개된 걸 봤다. 이 가게들은 바로 우리 옆집, 뒷골목에서 볼 수 있는 사진관이나 이발소다. 대학에 몇 억원씩 장학금을 기탁하거나 보육시설과 양로원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한 건 아니지만 서민들에게는 여느 대기업보다 더 착한 가게로 손꼽히고 있었다. 이들 가게에서는 가족사진을 15만원에 번듯하게 액자까지 해넣을 수 있고, 머리는 커트에 염색까지 단돈 1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해결할 수 있다.
한 푼도 남기지 못할 것 같은 이런 가게들이 어찌 명맥을 유지할까 싶겠지만 비결은 오히려 단순하고 명쾌하다. 바로 당장 물가에 휩쓸려 가격을 올리기보다 장기적으로 고객들의 신뢰를 쌓으면 손님이 많아 박리다매가 가능해져 가격을 안 올려도 된다는 선순환의 원리인 것이다. 또 그 안에는 각종 운영비를 아껴가며 손님들에게 부담 없는 가격을 유지하려고 하는 따뜻한 마음이 숨어 있다. 우동 국물을 맛있게 우려내려면 여러 가지 조미료 대신 단순하지만 좋은 재료와 그 맛을 살릴 수 있는 정성스러운 손길이 필요하듯이 좋은 기업이 되기 위해선 화려한 치장 대신에 좋은 제품과 고객에 대한 배려라는 단순한 원리가 필요하다.
날씨가 부쩍 싸늘해져 어느덧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오늘 점심에는 직원들과 함께 회사 앞 우동집에 갈까 한다. 몸속까지 덥혀주는 따끈한 우동 국물을 마시며 우리가 내놓을 우리만의 ‘100엔 우동’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눠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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