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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ture] 나노캠텍 백운필 대표의 좌충우돌 창업기

[Venture] 나노캠텍 백운필 대표의 좌충우돌 창업기

LCD 보호필름과 전자제품 특수용기 전문…아파트 팔아 공장부지 사기도

제자 하나가 창업하자고 졸랐다. 1999년 12월 23일 법인을 세웠다. 일주일 뒤 세무사가 전화를 걸어 연말결산을 해야 한다고 했다. 매출도 없이 돈을 내고 연말결산부터 해야 했다. 지난해 매출 612억원을 올린 나노캠텍의 어설픈 창업 과정이다. 이 회사는 LCD(액정표시장치) 보호필름과 전자제품 특수용기를 제작·판매한다.

명지대 화학과 교수 출신인 백운필(55) 나노캠텍 대표는 경영에 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어 창업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생산 과정부터 유통·판매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난관에 부닥칠 때마다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엿한 코스닥 상장기업의 대표가 됐다.

창업 초반에는 프린터 롤러의 원료나 프리즘 시트의 원료 등을 납품했다. 하지만 단순히 원료를 납품하는 것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 제품을 직접 생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공장을 찾아 완제품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백 대표는 “아무리 설명해도 원하는 수준의 제품을 공장에서 뽑아내지 못하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백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공장 근처에 숙소를 잡고 대학원생 제자와 번갈아 머무르며 제작에 직접 관여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제품이 나왔다.

이때 나온 제품이 전자부품을 담는 용기인 ‘나노스’다. 전자제품은 조립 전에 부품을 운반해야 한다. 이때 부품을 특수용기에 담아 운반한다. 정전기 같은 외부 충격과 불순물을 막기 위해서다. 2004년 당시 한국의 부품용기 시장은 일본이 장악하고 있었다. 시장 전체 수요는 월 1000t 정도였고, 1t에 600만원 선인 일본 제품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 제품에 대한 신뢰가 워낙 강했다.

또 조그만 불량이나 품질 하자가 있어도 납품에 어려움을 겪었다. 공장과 계약해 생산하는 방식으로는 불량을 줄일 수 없다고 판단한 백 대표는 직접 기계를 구입해 생산을 시작했다. 제품도 품질별로 3단계로 나누어 생산하고 단가를 t당 280만~330만원 수준까지 내렸다.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판매가 쉽지 않았다. 그는 “부품에 따라 고품질 용기에 담아야 할 것이 있고 낮은 품질에 담아도 상관없는 부품이 있는데, 당시는 일괄적으로 일본의 최고급 용기만을 사용하고 있었다”며 “기업을 찾아다니며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겨우 100t 분량을 납품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품질을 차등화해 납품 단가를 줄이는 전략은 효과가 있었다. 그때 백 대표가 만든 세 가지 규격은 지금 업계의 공식 규격이 됐다. 백 대표는 “시장을 주도하던 일본 회사들이 지금은 우리가 만든 규격에 맞춰 생산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현재 나노캠텍은 국내 전자부품 용기 시장에서 70%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이제 시장에서 살아남는 법 안다”‘나노스’가 시장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2004년 봄 미국의 하드디스크 생산업체 ‘시게이트’로부터 연락이 왔다. 싱가포르로 와서 나노캠텍 기술을 설명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백 대표는 흔쾌히 수락했고 싱가포르로 갔다. 발표회장에는 20여 명이 자리하고 있었고, 한 시간가량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 하지만 발표를 시작하기도 전에 받은 질문은 “당신 회사가 Public Company(상장기업)입니까?”였다. 당시 백 대표는 상장기업이라는 용어를 알지 못했다. 통역을 동원해 30분간 씨름했고 결국 “상장기업이 아니다”라는 답변을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 절반 이상이 발표회장을 빠져나갔다. 결국 그는 빈손으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날의 경험은 백 대표에게 자극이 됐다. 인맥을 총동원해 코스닥에 상장하는 방법을 찾았다. 대부분 만류했다. 교수가 그렇게 무리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백 대표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한 증권사 IPO(기업공개) 담당자를 소개 받았다. 그 담당자는 여러 가지 제안을 했다. “상장을 하려면 순이익 20억원 이상을 달성해야 합니다. 또 몇 가지 기술에 대한 특허출원도 하시고 회사 대표이사가 회계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냥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란 뉘앙스가 강했다.

백 대표는 당장 회계 공부를 시작했다. 2005년에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 용인시에 공장부지도 매입했다. 전재산이나 다름없었던 아파트였다. 백 대표는 “아내 몰래 아파트를 팔아 투자를 하고 나니, 뭔가 큰일을 저지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더 절박한 심정으로 사업에 몰입하게 됐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러 나노캠텍은 코스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2007년 코스닥 상장을 마치고 순항하던 나노캠텍에 위기가 찾아왔다. 2008년 말 미국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것이다. 당시 나노캠텍은 리먼브러더스에서 1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받은 상태였다. 위기에 몰린 리먼브러더스가 투자금 회수를 요구했고, 그 과정에서 환차손만 30억원을 입었다. 이제 막 성장하는 중소기업으로선 적지 않은 타격이었다.

위기는 곧 기회로 바뀌었다. LCD 보호필름 시장에서 나노캠텍의 제품이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이다. LCD에는 광학필름이 들어가고 그 앞뒤로 보호필름 두 장이 필요하다. 나노캠텍은 대전 방지 기능성 보호필름인 ‘나노프’를 생산하고 있었다. 3조원 규모의 시장도 미국의 3M과 일본의 리코덴코 등 외국 기업이 독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발생하며 긴축정책에 들어간 국내 대기업들이 외국 제품보다 저렴한 국내 제품으로 눈을 돌렸다. 백 대표는 “부탁해도 외면하던 대기업들이 먼저 연락해 제품 설명을 부탁하더라”고 했다. 현재 국내 LCD 보호필름 시장 물량의 절반가량을 한국 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나노캠텍은 전체 시장의 1% 정도 물량을 소화하고 있지만 LCD 시장 규모가 워낙 커 사업성이 괜찮은 편이다.

올해 나노캠텍은 또 다른 위기를 맞았다. 창업을 하고 12년 동안 매출과 순이익이 증가세였는데 올해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이 큰 상태다. LCD 생산이 감소세로 접어들었고, 부품 용기의 단가도 하락 추세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 대표에겐 어려운 시기를 뚫고 성장했던 노하우가 있다. 일단은 LED 반도체의 방열·보호를 담당하는 메탈PCB 제품을 신성장동력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의 액정 보호필름을 만들어 소비자와 직접 거래도 시작했다. “이제 시장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이제 백 대표에겐 교수보다는 CEO라는 직함이 더 어울린다. 백 대표는 “사업에서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CEO의 노력이 채운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10년을 단 한마디로 정리했다. “모르니까 여기까지 왔지만, 알고는 다시 안 한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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