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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s in the world lawyer] 편견의 벽을 넘다

[Koreans in the world lawyer] 편견의 벽을 넘다



한인 최초의 경찰검사

박재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경찰청 경찰검사
“호주는 이제 한인 1.5~2세대가 막 사회진출을 하는 시기예요. 시드니 주류사회에는 여전히 영국계 호주인이 대다수죠. 백인이 절대적으로 많은 주류사회에 동양인이 들어가는 일은 아직 쉽지 않아 보입니다.” 1996년 부푼 꿈을 안고 호주 시드니로 떠난 14세의 소년은 13년 뒤 호주 최초의 한국인 경찰검사가 됐다.

박재현(30)씨는 호주 경찰검사 250명 가운데 유일한 동양인이다. 2009년 서류심사, 체력테스트, 적성검사, 면접의 4단계를 거쳐 시드니 소재 뉴사우스웨일스 경찰청 소속 경찰검사 시험에 합격했다. 경찰검사는 경찰청에서 뽑아 대학 5년간 법학과정을 이수토록 했었다. 2009년부터는 새로운 제도가 도입돼 법대 졸업생 10명을 뽑아 1년간 경찰로 복무한 다음 검사로 임용한다. “4차 시험을 거친 이후에는 경찰대학에서 일반 경찰들이 받는 교육을 단기간 이수해야 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문화적 차이로 늘 제가 먼저 다가가야 해 힘들었죠.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생각보다 크거든요.”

호주에서는 지방법원에서 다뤄지는 모든 사건의 수사권을 경찰이 100% 행사한다. 한국에서 검찰이 하는 일을 담당하는 셈이다. 그는 요즘 음주운전, 폭행사건, 교통사고, 성추행과 성폭행 범죄를 다루며 하루 4~5회의 재판을 진행한다. “더러는 한국인 유관 범죄를 맡기도 합니다. 최근엔 워킹홀리데이비자를 받아 온 한국인 남성 2명이 카지노에서 많은 돈을 딴 중국인을 따라가 때리고 돈을 뺏고 도망치다 경찰에 잡혔어요. 이런 사건이 비일비재한데 저는 검사로서의 기준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죄를 물어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박검사는 호주 대학진학시험에서 99.3(상위 0.7%)의 점수를 받아 뉴사우스웨일스 대학에 진학, 법률학과 회계학을 전공했다. 2008년부터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며 호주한인변호사협회에서 활동했다. 시드니 내 법대 한인학생들 모임에 참석해 그들을 돕기도 한다. “어렸을 때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했어요. 사실 조기유학생으로 호주 사회에서 성공한 경우는 1000명 중 1명 정도일 겁니다. 어느 누구도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거든요.” 그는 대학 2학년 때 영주권을 땄다. 하지만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잊어 본 적이 없다. “경찰조직 내부에서도 동양인이라 주목 받습니다. 제가 잘해야 한국 교민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합니다. 제가 그랬듯 희망을 갖고 더 많은 한국인이 법조계에 진출하길 바랍니다.”



“조선족 차별은 없다”

현명호

중국, 베이징 제2 중급 인민법원 법관
“조선족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현재 고위급에 조선족 11명 정도가 진출했다고 압니다. 중국은 다민족으로 이뤄진 국가이기 때문에 타 민족에게 크게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조선족 스스로가 한족의 문화를 배우지 않고 고립되길 자처하는 게 문제죠.” 현명호(37)씨는 조선족 3세대 법관이다. 2008년부터 베이징 제2 중급인민법원에서 법관으로 활약한다.

현명호 법관은 1998년 중앙민족대학 조선어문학과를 졸업하고 2002년 중국 정법대학 법률 석사를 거쳐 2002년부터 베이징 풍대구법원, 2008년에는 베이징 제2중급인민법원에서 법관으로 재직 중이다. 중국 베이징의 중급법원은 제1법원, 제2법원으로 나뉘어 각각 8개의 하위 구 법원을 관할하며 구 법원에서 넘어 온 안건의 재심을 맡는다. 구 법원에서 상위 법원인 중급법원으로의 승진은 자격시험과 심사를 거치기 때문에 쉽지 않다. 현명호 법관은 조선족임에도 중국어 구사력이 뛰어나고 안건처리율이 상위에 오르는 등 자질을 인정받았다. 현 법관의 부모는 중국 주류사회에 진출하려면 한족의 문화와 언어를 많이 배워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그가 하는 일은 당사자가 취득하기 어려운 증거를 공안국에 요청하고 안건을 심사해 판결문을 작성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판사, 재판관이라고 보면 된다. 그는 주로 민사재판을 이끈다. “법학을 공부하다 보니 처음엔 형사법이 재미있었지만 민법이 진정한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법은 생활의 일부거든요.”

현 법관은 가능한 한 중급법원에 오래 남고 싶어한다. 고급법원은 다루는 안건의 수가 적다. 그는 가능하다면 다양한 사건을 맡아 경험을 쌓고 싶어 한다. “사실 고급법원은 사회적 변화에 동떨어진 면이 없지 않습니다. 중급법원은 기층 8개 법원(우리의 지방법원에 해당)의 안건을 모두 다룰 수 있어요. 2심인 중급법원이 사회현실을 반영해 최종 판결을 확정합니다.”

지린성 군춘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지방관리의 횡포로 집터 일부를 빼앗긴 후 법을 공부하기로 다짐했다. 특히 도시빈민과 조선족 문제에 관심이 많다. 현 법관은 지난해 건축공사장에서 크게 다쳤으나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조선족 빈민노동자를 돕겠다며 법원에서 모금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사법계에서는 1년에 한 번씩 해외연수를 보내주더군요. 그때 친분을 쌓은 한국 법관이 몇 있어 이번에 한국에 왔을 때도 사법연수원에 들러 그분들의 강의를 듣기도 했죠. 아시아 쪽은 대륙법을 따르고 있어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서로 보고 배울 점이 많습니다. 중국은 넓게 보는 전체적 사유가 발달한 반면 한국은 매우 세세한 부분까지 건드리는 꼼꼼함이 돋보인다”고 말했다.





“브라질에서 판ㆍ검사 살인은 흔한 일”

김윤정

브라질, 상파울루주 검사
“차별이요? 차별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한인교포 분들은 브라질 사람들로부터 ‘너희 땅으로 돌아가라’는 말도 가끔 들어요. 검사 사회에서 최연소검사에 동양인이라는 시련에 부닥칠 때마다 제 스스로 확신을 갖고 늘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김윤정(33) 상파울루주 검사는 8년 차 검사다. 현재 상파울루주의 ‘자리누’라는 도시의 전담 검사다. 형사소송을 주로 담당한다. “브라질에서는 판·검사 살인사건이 흔한 일이에요. 큰 위협을 느껴본 적은 없지만 정치인 부패를 조사할 때는 압박을 좀 받았죠.”

김윤정 검사는 이달 중순 22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땅을 밟았다. “검사생활 8년째인데 6년 차까지 너무 힘들었거든요. 1년에 다루는 사건이 200개가 넘어요. 밤 새우며 일하느라 6년 동안 보름밖에 못 쉬었습니다. 지금은 여유가 생겨 휴가도 쓸 수 있지만요.” 그녀는 서울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1989년 브라질로 이주했다. “일종의 아메리칸드림이었던 셈이죠. 브라질이라고하면 원숭이가 튀어나오고 아마존 원주민 걸어 다니는 그런 곳인줄 알았어요.”

그녀는 포르투갈어를 빨리 배웠다. 한국아이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이민 6개월만에 수업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현지어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에서는 부모님이 한국식 문화를 따르길 원했고 학교에 가면 브라질 문화를 따라야 했다. “가끔은 두 나라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두 나라에 다 속해있기도 한 거 잖아요. “ 그녀는 대학 3학년 때 브라질로 귀화한다. “한국여권을 내놔야 한다기에 많이 울었죠.” 현지에서 한국을 보는 시각이 변한 것도 실감한다. “한국은 국민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이고 브라질은 1만 달러예요. 한국제품 선호도도 높아졌고 이제 한국을 높이 평가합니다.”

김윤정 검사는 상파울루 국립대학에 들어가 경영학을 전공하려 했지만 입학시험에 떨어졌다. 그후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했다. “20년 전 한국인의 브라질 이민 초기엔 포르투갈어를 못하거나 문화적 차이로 억울함을 당하는 사례가 많았어요. 법적 분쟁을 보며 법의 중요성을 실감하기 시작했죠. 대학에선 법대 교수님께서 검사 쪽을 추천하셨고요.” 그녀는 2002년 졸업과 동시에 검사 자격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한다.

김 검사는 2003년 9월 12일 검사가 된 이후 한 달도 채 못돼 재판에 들어갔다. 이후 지금까지 60회가량 법정에 섰다. 2007년엔 아동성범죄를 맡아 범인을 가려냈다. 아동을 강간한 한 종교지도자는 12시간의 재판 끝에 100년형을 선고받았다. “제가 모든 서류를 읽어보고 범인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으면 제가 맡지 않아요. 스스로 확신이 없으면 재판엔 지게 마련이거든요. 터무니없이 패소한 적은 한번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김윤정 검사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고민하겠다고 말한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면 제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생각해보려고요. 검사로서, 한국인으로서 늘 자부심을 갖고 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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