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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판도 바뀌나 - 미국 경제 영향력 약해졌지만 기축통화 달러 지위는 건재

세계 경제 판도 바뀌나 - 미국 경제 영향력 약해졌지만 기축통화 달러 지위는 건재

1991년 8월 소련 의사당 건물에 거대한 폭탄이 떨어졌다. 공산주의를 지키기 위해 공산당 추종세력이 던진 폭탄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공산주의 몰락이 빨라졌다. 친(親)공산세력은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에게 축출됐고 공산주의체제는 해체수순을 밟았다. 이런 변화를 가장 반긴 나라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소련이 무너진 틈을 타 세계 패권을 거머쥐었고 ‘팍스 아메리카(Pax America) 시대’를 열었다.

냉전시대가 종식된 후인 1993년 집권한 미 클린턴 정부(1993~2000년)는 호황기를 이어갔다. 빌 클린턴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3.8%, 실업률은 5%대였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집권한 2001년 이후 미국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1.6%, 현재 실업률은 10%에 달한다. 그러나 클린턴 정부의 성장에는 문제가 많았다. 바이오·우주항공 등 일부 첨단분야를 제외한 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있었다. 특히 제조업 분야는 일본·독일에 따라잡혔다.



미국 경제 잔치는 끝났다클린턴 정부의 목표는 사실 ‘금융산업의 거대화’였다. 이를 위해 미 금융회사의 다양한 달러 표시 자산을 세계시장에 유통하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제조업은 허약해졌고 금융산업은 비대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세계경제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한 중국은 ‘약(弱)위안화’를 무기로 수출대국으로 성장했다. 반대로 제조업이 약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날로 커졌고 빚(국채발행)으로 이를 메우는 신세가 됐다. 미 국채를 주로 매입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의 미국 국채 투자액은 1조1150억 달러에 이른다. 미국이 발행하는 국채의 26% 수준이다.

미국의 이런 ‘부채경제’는 최근 들어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이 자랑하는 월스트리트의 천재들이 만든 파생상품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가 터졌다.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국채를 발행해 돈을 풀었고 빚은 더 쌓였다. 2006년 8조633억 달러였던 미국 부채는 현재 14조5800억 달러로 늘어났다. 미국의 지난해 GDP(국내총생산·14조5300억 달러)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이는 1947년 이후 64년 만에 처음이다.

20여 년 동안 세계경제 패권을 잡고 있던 미국이 휘청거리고 있다. 미국 GDP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24%에서 2010년 19%로 5%포인트 떨어졌다. 중국을 위시한 브릭스(BRICs) 4국의 GDP 비중은 같은 기간 16%에서 25%로 늘어났다.

특히 중국의 성장이 가파르다. 중국은 지난해 5조8786억 달러의 GDP를 기록해 일본(5조4742억 달러)을 따돌리고 세계 2위 경제대국에 올랐다. 중국의 풍부한 성장잠재력을 감안할 때 “미국을 따돌리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온다. IMF(국제통화기금)는 “2020년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고 G1에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미국 경제가 유례없는 장기불황에 빠져 있다”며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간주되는 미국 국채를 둘러싸고도 회의적 시각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인호 서울대 교수는 “미국 경제에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 같지는 않지만 경제패권은 약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재영 서울대 교수는 미국 경제의 미래를 더 어둡게 전망했다. “세계경제에서 미국의 비중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과거에 누렸던 패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를 논의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달러 대체하기엔 위안화 미성숙미국의 경제패권이 흔들리면서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잃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서울 G20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세계 각국 정상들은 달러화를 대체할 수 있는 기축통화 시스템의 도입을 주장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새로운 글로벌 기축통화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G20 정상회의에서는 글로벌 기축통화 문제가 주요 의제로 설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중국 위안화다. 중국은 ‘통화공정’을 통해 위안화의 국제화를 서두르고 있다. 통화공정이란 위안화를 국제통화로 만들기 위한 중국의 다양한 시도를 말한다. 2009년 7월 홍콩·마카오 및 아세안 10개국과의 무역거래에 위안화 결제를 시범 실시한 중국은 각종 통화스와프 체결과 위안화 표시채권(딤섬본드) 발행을 통해 위안화 결제 범위를 넓히고 있다. 김소영 교수는 “중국이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는 “중국의 경제성장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한다. 이영 한양대 교수는 “영국 파운드보다 중국 위안화의 기축통화 가능성이 크지만 (기축통화가 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인호 서울대 교수는 “미국 경제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지만 미국 국채를 보유한 국가들은 당분간 미국의 통화정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위안화가 미국 달러를 대체할 가능성은 당분간 크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김재영 교수는 “기축통화는 교환성과 대체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통화공급량이 풍부해야 할 뿐만 아니라 기축통화국은 국제금융시장의 중심부에 있어야 한다”며 “중국은 이런 요건들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위안화의 단점이 적지 않다. 지난해 위안화의 무역결제 누계액은 5063억 위안(약 770억 달러)으로 세계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에 불과하다. 수출대금을 위안화로 받았다고 해도 이를 운용할 수 있는 금융상품이 부족하다. 위안화의 환리스크를 피할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 시장도 없다. 세계가 위안화를 믿고 국제결제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중국의 통화정책이 신뢰를 받는 것도 아니다.

김재영 교수는 “특정 화폐가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선 그 화폐를 발행하는 국가의 경제력, 국제적 지위, 영향력, 군사력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중국은 경제 규모에서만 G2가 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소영 교수도 “중국은 자본자유화가 완전하게 이뤄지지 않았고 금융시스템은 뒤처져 있다”며 “중국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 시점은 20~30년 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윤찬 이코노미스트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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