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U-헬스케어산업의 빛과 그림자
국내 U-헬스케어산업의 빛과 그림자
U-헬스케어산업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각국은 U-헬스케어산업을 키우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관련 연구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독거노인이 숨쉬는 것만으로도 건강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한 기업도 있다. 한국의 발걸음은 더디다. U-헬스케어의 기본인 원격진료마저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다.
현행 의료법상 환자와 의료인의 원격진료는 불법이다. 원격진료를 받으려면 반드시 환자 옆에도 의사가 있어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4월 환자-의료인의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아직 소관상임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노령인구 비율이 높은 경북 영양군에서는 올 10월 20일부터 의료법의 조속한 개정을 촉구하는 군민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 U-헬스케어의 빛과 그림자를 살펴봤다.# 주민수가 120여 명밖에 되지 않는 전남 완도군의 작은 섬마을 덕우도. 3주 전 조선대병원에서 무릎을 수술한 김병민(74·가명)씨가 수술경과를 확인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이전 같았으면 배를 타고 조선대병원까지 가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배를 탈 필요가 없다. U-헬스케어 덕분이다. 김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덕우도의 보건진료소에서 원격으로 주치의에게 화상진료를 받았다.
완도군은 2006년부터 섬 주민을 대상으로 화상·원격진료를 하고 있다. 완도군과 조선대가 공동 실시하는 ‘희망의 e-doctor 시스템 구축사업’의 일환이다. 각 섬에 있는 보건진료소장과 조선대병원 의사가 원격진료를 한다. 대상은 조선대병원에서 수술한 환자나 뇌출혈 또는 맹장염 등이 의심되는 사람들이다. 덕우도 주민은 한해 20~30건 희망의 e-doctor 시스템을 활용해 진료받는다.
# 최근 들어 우울증이 부쩍 심해진 안양교도소 제소자 이철근(38·가명)씨는 교도소 안에 있는 치료감호소를 찾아갔다. 그런데 이곳 상주의사는 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다. 상주의사는 “김씨가 외부병원에서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게 좋겠다”고 결정했다. 제소자의 외부 진료는 쉬운 일이 아니다. 호송 스케줄을 짜야 할 뿐만 아니라 교도관 동행계획도 세워야 한다.
그러나 이씨는 너무도 간단하게 진료를 받았다. 교도소 안에서 원격진료를 받은 것이다. 이씨는 치료감호소 의사를 통해 원격으로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한 뒤 약을 처방 받았다. 여기서 처방된 약은 택배로 이씨에게 전달됐다.
법무부는 2005년 안양교도소를 시작으로 매년 3~4개씩 원격진료 대상기관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 20곳까지 늘릴 계획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제소자의 도주나 사고를 막기 위해 원격진료 시스템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U-헬스케어는 유비쿼터스 IT기술을 활용해 언제 어디서나 안전하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건강관리 및 의료서비스를 말한다. U-헬스케어 시스템이 도입되면 무엇보다 환자에 좋다. 화상·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병원비 절감이 가능하다. 외출이 어려운 노인이나 만성질환자에게도 유용한 서비스다.
한국정보과학회의 정보과학학회는 올 1월 U-헬스케어의 효과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만성질환자가 증가함에 따라 의료비 증가가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해결할 방법 중 하나가 U-헬스케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BCC(Business Communication Company) 보고서와 정부 자료를 종합해 보면 U-헬스케어 시장은 날로 커지고 있다. 2009년 1400억 달러인 세계시장 규모는 현재 1500억 달러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U-헬스케어 시장규모는 지난해 1조7000억원에서 2014년 3조341억원으로 3배가량 커질 전망이다.
해외 기업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일본 의료기기 전문업체 후쿠다 덴시는 휴대형 심전도 수집장치를 개발해 판매했다. 무게가 45g에 불과한 기계가 약 2분 동안 120회까지 심전도를 측정해 데이터를 송신할 수 있다. 일본 최대 전자업체 중 한곳인 마쓰시타(현 파나소닉)도 독거노인을 위한 애완동물(Pet) 로봇을 개발했다. 독거노인이 펫로봇를 만지거나 대화를 하면 건강정보가 외부로 전송된다. 코끼리밥솥으로 국내에 알려져 있는 일본 조지루시는 전기 포트를 사용할 때마다 신호를 보내 노인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독거노인 위한 U-실버 인기네덜란드 업체 필립스의 사업부인 필립스 메디컬 시스템은 2002년부터 울혈성 심부전증(심장기능이 약해져 숨이 가쁘고 부종이 생기는 증상) 환자의 건강관리를 위해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 및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필립스 메디컬 시스템은 ‘텔레스테이션’이라는 중앙제어장치를 개발해 가정에서 혈압계·체중계·혈당계로 측정된 데이터가 외부의료기관에 실시간 전송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한국도 출발은 그리 늦지 않았다. 1988년 서울대병원과 경기도 연천보건소가 실시한 원격영상진단 시범사업이 최초의 U-헬스케어 프로젝트다. 서울대병원은 1996년 ‘원격 치매센터’를 개설하기도 했다. 온라인으로 치매환자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상담하는 서비스였다. 이런 U-헬스케어는 IT기술이 발달하면서 서비스의 질이 개선되고 있다. 강북 노원구 보건진료소는 2005년부터 Tele-PACS(Picture Archiving Communication System)를 운영하고 있다. PACS는 엑스레이나 MRI 등 영상정보를 디지털로 전환해 관리·전송하는 시스템이다. 영상정보를 통해 건강을 확인하고 싶은 노원구 주민은 보건진료소에만 가면 원스톱으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보건진료소에서 찍은 엑스레이·MRI에서 이상이 있으면 곧장 상계백병원으로 데이터가 전송돼 2차 판독을 한다. 판독결과는 다시 보건진료소로 돌아와 환자에 제공된다. PACS를 통해 보건소에서 종합병원 전문의의 진단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노원구 보건진료소 관계자는 “한해 7000~8000건 의뢰를 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U-헬스케어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발표한 ‘스마트 공공보건의료서비스 도입 방안’에 따르면 국내에 서비스되고 있거나 추진 중인 U-헬스케어 시범사업은 2010년 말 현재 34건이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지식경제부가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케어(원격의료) 서비스’다. 이 사업에는 삼성전자·SK텔레콤·인성정보 등 민간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지식경제부 김경미(바이오헬스과) 사무관은 “스마트케어 서비스 시범사업을 통해 면대면으로 의료행위를 하는 데 비해 얼마나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여러 환자의 원격진료 데이터를 축적해 안전성을 확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북삼성병원은 스마트케어 서비스의 일환으로 올해 7월 13일 당뇨전문센터 안에 ‘헬스케어이노베이션센터’를 열었다. 강북삼성병원은 당뇨병환자를 대상으로 스마트케어 혈당관리 시스템 효과를 평가하기 위해 임상시험에 참여할 환자를 공개 모집하고 있다. 모집된 환자는 단말기와 통신 연결 등을 포함한 스마트케어 혈당관리시스템을 제공받는다. 환자는 3개월마다 병원을 방문해 진료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서울대병원 의료정보센터 김주한 교수는 “IT기술이 워낙 좋아졌기 때문에 간단한 U-헬스케어의 기술적 문제는 완전히 해결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은 이처럼 U-헬스케어 사업을 일찍 시작했지만 풀어야 할 숙제가 아직 많다. 우선 관련 법이 미비하다. 현행 의료법상 우리의 U-헬스케어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U-헬스케어의 핵심은 화상·원격진료다. 환자가 언제 어디서든 온라인을 통해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행 의료법은 환자와 의사간의 직접적인 원격진료를 금지하고 있다.
의료법 34조는 “의료인은 컴퓨터·화상통신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먼 곳에 있는 의료인에게 의료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하는 원격의료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의 화상·원격진료는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의료인끼리만 진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의료법 개정 움직임도 더디다. 정부는 지난해 4월 의료인과 환자의 직접 화상·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소관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U-헬스케어 관련 법 개정안이 무려 19개월 동안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의료업계 양극화 우려개인정보 유출 우려도 있다. U-헬스케어는 온라인을 통해 진행되기 때문이다. KIET(산업연구원)가 올 2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원격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면 개인정보가 해킹되거나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온라인을 통해 진료를 받는 U-헬스케어의 보험수가는 병원에 직접 찾아갔을 때와 다르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한 의사가 스마트폰으로 화상진료를 했다면서 보험료를 청구했을 때 건강관리보험공단에서는 그 화상통화가 진료였는지 단순 화상통화였는지 알 길이 없다”고 털어놨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U-헬스케어가 본격화되면 의료업계에도 ‘양극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대형병원과 원격진료가 가능해지면 동네의원을 찾는 환자가 그만큼 줄지 않겠느냐는 우려다. 이는 정부가 제출한 의료법 개정안이 진통을 겪는 이유 중 하나다. 서울대병원 김주한 교수는 “사회 각 분야가 U-헬스케어의 성장성에 주목하면서 합의하는 일만 남았다”며 “지금으로선 환자 입장에서 문제를 풀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 U-웰니스가 뜬다
일반인 건강관리도 유비쿼터스 시대
직장인 김유경(27)씨는 운동을 할 때 애플 아이폰의 ‘나이키+’ 애플리케이션(앱)을 사용한다. 김씨는 운동을 시작하기 전 이 앱을 실행해 운동목표를 설정한다. 오늘은 10㎞를 걷기로 했다. 거리뿐만 아니라 시간이나 칼로리를 목표로 설정할 수 있다. 아이폰에 저장된 음악을 들으면서 김씨는 한참을 걸었다. 절반을 걸었을 무렵, 아이폰에 연결된 이어폰에서 “5㎞ 남았다”“힘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김씨의 운동량은 ‘나이키+’ 홈페이지를 통해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건강관리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김씨는 “혼자 운동하면 느슨해지기 쉬운데 나이키+를 통해 체계적으로 관리를 받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U-헬스케어라고 하면 화상진료나 원격진료가 떠오른다. 그러나 다이어트 식단제공, 운동량 체크 등 서비스도 U-헬스케어의 한 부분이다. U-헬스케어는 U-메디컬·U-실버·U-웰니스로 분류된다. U-메디컬은 원격·화상진료 등 치료를 목적으로 한 서비스를 말한다. U-실버는 노인 관련 서비스다. 독거노인의 행동을 센서가 인식해 움직임이 없을 때 자동으로 자녀나 병원에 연락하는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노인의 혈압 또는 심전도를 체크하는 시스템도 있다. U-웰니스는 환자가 아닌 일반인을 위한 서비스다. 사례로 소개한 나이키+는 U-웰니스의 일종이다.
U-헬스케어 시장에서 비중이 가장 큰 분야는 U-웰니스다. 세계 U-웰니스 시장규모(2009년 기준)는 766억 달러로 U-헬스케어 전체 시장(1431억 달러)의 절반 이상이다. 연평균 성장률도 U-웰니스는 U-메디컬(15.0%)·U-실버(9.7%) 보다 높은 17.9%다. 이런 이유로 해외 웰빙 관련 업체는 U-웰니스 시장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해외 U-헬스케어 업체 핏빗(Fitbit)은 2009년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서 ‘핏빗(Fitbit)’을 선보였다. 소형 단말기를 주머니에 넣거나 옷에 달고 뛰면 운동강도연소 열량, 이동한 거리가 자동으로 측정된다. 필립스의 다이렉트라이프(Direct Life)도 목에 걸거나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U-웰니스용 단말기다. 매달 일정 비용을 지불하면 전문가들이 운동 데이터를 분석해 조언한다.
U-웰니스 시장에 진출한 국내 기업은 아직 드물다. 국내 U-헬스 관련 기업과 의료기관, 연구기관 116곳 중 U-웰니스 사업을 추진하는 곳은 7곳에 불과하다. 몇몇 중소기업만이 U-웰니스 시장에 도전하고 있을 뿐이다. IT 솔루션 업체 인성정보는 특별한 기구를 사용하지 않아도 식습관, 체력를 측정할 수 있는 ‘하이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개인별로 영양 및 체력수준을 측정해 전문가와 함께 생활습관을 고치는 방식이다. 경북 영양군 보건소와 경기 성남시 보건소에 이어 올해 서울 강남구 보건소가 이 서비스를 도입했다.
IT솔루션 업체인 비트컴퓨터는 IPTV 기반의 드림케어 TV서비스를 2009년 시작했다. 셋톱박스에 연결된 장치를 통해 혈압이나 혈당, 체온 데이터를 측정해 데이터를 관리한다. KT올레TV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U-헬스케어 전문업체 대양이티엔씨는 2007년 ‘유비무환(Ubi無患)’ 솔루션을 개발해 지난해부터 서울 양재천에 제공하고 있다. RFID(전자태그) 카드를 소지하고 양재천변을 걷거나 뛴 후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이 운동한 거리나 시간, 칼로리 소모량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지식경제부는 지난해 ‘U-헬스케어 신산업 창출전략(안)’에서 “국내 기업들이 무면허 의료행위로 처벌받을 가능성을 우려해 건강관리 서비스 분야에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김홍진 인성정보 U-헬스케어 사업본부장(보건복지부 건강관리서비스활성화포럼 위원)은 “화상·원격진료 등 온라인을 활용한 진료는 U-헬스케어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며 “미래 U-헬스케어의 중심은 U-웰니스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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