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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업계 두께 경쟁 - “좀더 얇게” 치열한 1㎜ 전쟁

IT업계 두께 경쟁 - “좀더 얇게” 치열한 1㎜ 전쟁

모토롤라가 올 10月 출시한 스마트폰 레이저. 두께가 7.1mm에 불과하다.

IT 전자제품 제조사들이 ‘두께 1㎜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쪽에서 스마트 기기의 두께를 1㎜ 줄이면 다른 한쪽에서 1㎜를 더 줄이는 식이다. 삼성전자는 올 4월 두께를 8.9㎜까지 줄인 갤럭시S2를 선보였다. 올 여름 출시된 애플 아이폰4S의 두께는 2007년 아이폰보다 2.3㎜나 얇은 9.3㎜다. 모토롤라가 최근 출시한 스마트폰 레이저의 두께는 7.1㎜에 불과하다. 성인 남성의 손바닥 두께보다 얇다.

태블릿PC의 두께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격전을 벌이는 주인공은 삼성전자와 애플이다. 애플은 올 3월 두께를 8.8㎜로 줄인 아이패드2를 공개했다.



설계와 부품배치 바꿔지난해 출시된 아이패드1보다 4.6㎜ 얇았다. 아이패드2 출시 직전 두께 10.9㎜의 갤럭시10.1을 출시했던 삼성전자는 일격을 맞았지만 곧장 응수했다. 아이패드2가 출시된 지 3주 만에 두께를 8.6㎜까지 줄인 신모델을 선보였다.

노트북 분야에서는 두께 18㎜ 이하 규격의 인텔 울트라북이 인기다. 대만의 IT미디어 ‘디지타임즈’는 최근 “애플이 인텔 울트라북에 맞서기 위해 초슬림 맥북 에어 시리즈를 출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넷북 생산을 중단하고 울트라북 플랫폼을 도입할 뜻을 밝혔다.

IT 전자제품 업계의 두께 경쟁은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2006년 모토롤라가 슬림형 휴대전화 ‘레이저’로 돌풍을 일으켰을 때도 두께 경쟁은 치열했다. 하지만 2006년과 지금의 두께 싸움은 다른 점이 있다. 2006년에는 디자인 싸움이었다. 모토롤라 레이저는 슬림형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해 첨단기능을 많이 제외했다. IT 전자제품 제조업계의 당시 패러다임은 ‘휴대전화는 전화일 뿐’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두께가 얇아져도 성능과 기능이 떨어져선 안 된다.

IT 전자제품 제조사의 숙제는 ‘액정화면’을 키우는 거다. 2008년만 해도 스마트폰의 액정크기는 3.5인치가 대세였지만 지금은 4.5인치가 기본이다. 3년 만에 1인치나 커졌다. 여기에 다양한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칩을 탑재해야 한다. 단말기 크기는 더 커지고 두께는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 휴대는 당연히 불편해진다.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두께를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단말기가 얇고 가벼워지려면 부품을 재배치하거나 신소재를 활용해야 한다. IT 전문가들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재기술까지 보유한 업체가 미래 IT업계의 두께경쟁을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유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히트작 갤럭시S2는 전작인 갤럭시S(9.9㎜)보다 두께를 1㎜ 줄였다. 명함 2장 정도 두께 차이지만 삼성전자는 모든 기술력을 총동원했다. 회사 연구진은 기존에 쓰던 수퍼 아몰레드(AMOLED·능동형 유기 발광 다이오드)를 수퍼 아몰레드 플러스로 교체했다. 터치 입력장치는 화면표시 장치와 합쳤다. 이를 통해 갤럭시S보다 0.4㎜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내부 부품배치도 완전히 바꿔 0.5㎜의 공간을 없앴다. 여기에 배터리 커버를 신소재로 변경해 0.1㎜를 다시 줄였다. 노태문 삼성전자 선행개발팀 전무는 “1㎜를 줄이기 위해 제품설계와 부품배치를 완전히 바꿨다”고 말했다.

팬택계열은 올 10월 세계에서 가장 얇은 LTE폰 ‘베가 LTE(9.35㎜)’를 출시했다. 갤럭시S HD LTE(9.5㎜), LG전자의 옵티머스 LTE(10.4㎜)보다 얇다. 팬택은 9.35㎜ 두께를 실현하기 위해 핵심 기술력을 사용했다. 먼저 제품강도를 좌우하는 프레임의 중앙부를 제거했다. 뼈대만 남겨 위·아래 부품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김재용 팬택 국내상품기획팀 차장은 “모험이자 승부수였다”고 말했다.

프레임의 중앙부를 제거하면 두께를 줄일 수는 있지만 내구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팬택 스마트폰 연구개발(R&D) 부서는 중앙부를 제거한 프레임의 강도를 확보하기 위해 수개월에 걸쳐 시뮬레이션 실험을 했다. 이를 바탕으로 부품설계를 수 차례 수정했다.

김재용 차장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스마트폰 구조를 실현했다”며 “베가 LTE폰의 프레임은 두께가 기존보다 10% 얇지만 내구성은 10% 더 단단하다”고 말했다.

노트북의 두께를 줄이기 위해선 더 많은 기술력이 필요하다. 노트북은 구조상 열이 많이 발생한다. 좁은 공간에 수많은 크고 작은 칩과 카드가 촘촘하게 박혀 있어서다. 이런 이유로 노트북에는 발열(發熱)을 막아주는 팬이 들어 있고, 두께가 두껍다.

노트북의 두께는 평균 35㎜다. 가장 얇다는 울트라씬 노트북 두께도 25㎜로 두꺼운 편이다. ‘노트북은 20㎜ 이하로 얇아질 수 없다’는 속설을 무너뜨린 이는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다. 2008년 맥월드 행사에 참여한 잡스는 느닷없이 서류봉투에서 노트북 맥북 에어를 꺼내 들었다. 가장 얇은 부분의 두께가 4㎜(가장 두꺼운 부분은 17㎜)에 불과했다. 초슬림형 노트북 맥북 에어에 당황한 글로벌 노트북 제조사들은 두께를 줄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최근 두께 13.1㎜의 노트북 ‘아스파이어S3’를 출시한 글로벌 PC업체 에이서가 대표적이다.



발열 문제 해결해 두께 줄여에이서는 노트북 두께를 줄이기 위해선 무엇보다 ‘발열(發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봤다. 회사 연구팀은 내부공기 순환구조를 변경해 제품후면으로 열이 빠지도록 설계를 바꿨다. 아울러 작지만 내구성이 뛰어난 메인보드를 만들기 위해 낙하·온도테스트를 10개월 넘게 실시했다.

회사 연구팀 관계자는 “발열 등 각종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제품설계를 수정하고 또다시 테스트를 했다”며 “아스파이어S3는 기존 노트북보다 훨씬 긴 개발기간이 소요됐다”고 말했다.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두께를 줄인 아스파이어S3는 최고의 성능까지 뽐낸다. 슬립모드에서 복귀반응 속도는 2초 이하다. 부팅속도는 7초에 불과하다. 가격은 1000만 달러가 넘지 않는다.

다나와 정세희 마케팅팀 부장은 “요즘 소비자는 성능이 좋으면서도 얇은 디자인을 선호한다”며 “성능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휴대하기 불편하면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팬택계열 양율모 상무는 “IT 전자제품 제조업계의 단말기 두께경쟁은 단순히 부피를 줄이는 싸움이 아니다”며 “누가 더 기술력이 좋은지를 소비자에게 알리는 작업 중 하나다”고 강조했다. 두께는 이제 디자인이 아닌 기술력의 산물이다.



이윤찬 이코노미스트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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