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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대 그룹 승부수] 현대차그룹 - 내실 다지되 성장 고삐도 죈다

[2012 10대 그룹 승부수] 현대차그룹 - 내실 다지되 성장 고삐도 죈다

지난해 12월 12일 오전 5시30분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동이 트지도 않은 새벽 시간에 정몽구(73) 현대차그룹 회장이 차에서 내렸다. 정 회장은 평소 오전 6시에서 7시 사이에 출근하지만 하반기 들어 6시 전에 출근하는 날이 늘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로 2012년의 자동차 수요가 감소할 전망이 지배적이어서 정 회장의 고민도 커졌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새해 신년사에서 고민의 답을 내놓았다. 새해 경영의 기본 방향을 ‘내실 다지기’로 잡았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의 활약상을 감안하면 뜻밖의 일이었다. 지난해 현대·기아자동차는 세계 5대 자동차 메이커로서 위상을 다졌다. 현대제철도 고로 3호기를 착공해 세계적 철강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여기에 그룹 전체로는 현대건설 인수로 자동차·철강·건설의 삼각편대 체제를 구축했다.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이 버티고 있는 금융 부문도 보험사 인수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현대·기아차 새해 판매목표 700만대내실 다지기는 특히 그룹의 주축인 자동차 부문의 중점 전략이다. 현대·기아차는 2009년부터 3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왔다. 두 회사는 2008년 5.5%의 성장률로 400만대 판매를 돌파(417만9467대)한 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기승을 부리던 2009년에도 464만216대 판매로 11% 성장을 이뤘다. 이어 2010년에는 573만9973대를 팔아 23.7% 성장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지난해에도 660만대를 팔면서 15% 성장률을 기록해 세계 4위 자리를 위협했다. 올해 목표인 700만대를 팔면 성장률은 6.1%에 그친다. 현대차 판매량이 5%, 기아차가 7~8% 늘어나는 수준이다. 올해 중국의 베이징 현대 3공장(30만대)과 브라질 공장(15만대)이 가동에 들어가면 글로벌 생산능력이 368만대로 45만대가 늘어난다. 이걸 감안하면 지난해보다 40만대만 더 판다는 건 상당히 보수적인 목표다. 그동안 현대·기아차의 성장세를 고려하면 성에 차지 않을 숫자다.

정몽구 회장의 생각은 다르다. 이 정도면 무난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유로존의 재정위기, 미국의 경기 둔화 우려, 중국의 경착륙 가능성, 인도를 비롯한 신흥시장의 위축 등 어딜 둘러봐도 악재가 수두룩하다. 더구나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과 태국 홍수 등으로 맥을 추지 못한 토요타가 올해는 전열을 가다듬고 새해 벽두부터 뉴캠리 등 새 모델을 공격적으로 내놓고 있다. 미국 GM도 공세를 강화할 태세다.

정 회장은 이럴 때 굳이 무리해서 맞서기보다 지난 몇 년 사이 고성장으로 다진 기반을 더욱 탄탄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정 회장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품질 경영’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품질을 더욱 높여 브랜드 인지도를 더욱 끌어올리고 어디서나 제값을 받겠다는 포석이다. 삼성증권의 윤필중 애널리스트는 “새해 글로벌 자동차 수요가 4% 정도로 예상되는 만큼 현대·기아차의 6%대 판매 목표는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예전에는 물량이 중요했지만 토요타의 리콜 사태에서 봤듯이 대수만 늘리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이라고 덧붙였다.

정몽구 회장이 1월 5일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신년 인사회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를 도입할 계획에 대해 “우리가 고급이라고 얘기하는 것보다 제품(차)을 잘 만들어서 소비자의 인정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정 회장은 늘 품질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1999년 ‘그레이스 슬라이딩 도어 사건’이 시발점이었다. 정 회장은 당시 울산 공장을 갑자기 방문해 조립이 끝난 승합차 그레이스의 슬라이딩 도어를 20여 차례 힘껏 여닫았다. 그런데 문이 슬라이딩 레일에서 이탈하자 “처음부터 다시 만들라”고 지시했다.

700만대라는 숫자가 갖는 상징성에 주목하라는 관측도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한 임원은 “한번도 이루지 못한 7이라는 첫 자리가 남다른 의미가 있다”며 “내실을 다지면서 고삐를 늦추지 말라는 뜻도 담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어려울 때일수록 연구개발에 집중해 쟁쟁한 경쟁자들이 공격적으로 나올 때 진짜 실력을 보여주자는 뉘앙스도 있다”고 덧붙였다. 판매 성장률을 다소 낮추더라도 경쟁사에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라는 뜻이란 것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내실과 700만대라는 키워드를 동시에 제시해 어려운 가운데서도 위축되지 말고 한 단계 더 도약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내실 다지기는 투자 계획에서도 엿볼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새해에 14조1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해 투자액보다 15.6% 늘어난 수치다. 현대차그룹은 이 가운데 5조1000억원(지난해 4조6000억원)을 연구개발 부문에 투입한다. 나머지 9조원은 시설 부문에 투자한다. 연구개발 투자로 미래 신기술을 확보한다는 목표다. 연구개발 투자의 90%인 4조6000억원을 친환경 미래차와 고효율 신차 개발에 쓴다. 예컨대 올해도 하이브리드 차종을 더욱 늘릴 계획이다.



국내 투자액 늘려 또 품질 향상과 대량 생산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광주공장 등을 증설하고 영업과 A/S 환경 개선에도 3000억원을 투자한다. 정 회장은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같은 친환경 차량 개발과 첨단 전자제어 분야에서 원천기술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핵심 인력을 대폭 보강하고, 투자를 계속 늘려가겠다”고 말했다. 전자제어 기술과 관련 현대·기아차는 그동안 해외 합작사에 적잖게 의존해왔다. 예를 들어 현대·기아차는 1987년 보쉬와 함께 전장 부품 전문 제조업체인 케피코를 세워 공동으로 경영하고 있다.정 회장은 그런 구도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특히 전체 투자액 가운데 11조6000억원을 국내에 쏟아 붓는다. 올해 9조1000억원보다 27.5% 늘어난 수치다. 나라경제 활성화에도 보탬이 되겠다는 포석이다. 특히 청년실업 해소에 한몫을 하기 위해 6500명을 새로 뽑는다. 여기에 대학생 인턴 1000명도 별도로 선발한다. 고졸·전문대졸 출신의 생산직 직원도 2200명 채용한다. 정 회장이 지난해 현대차 정몽구 재단을 만들어 사회공헌 활동을 강화한 것도 같은 취지다.

현대차그룹에서 현대·기아차만 투자를 늘리는 건 아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4월 짓기 시작한 고로 3기 건설에 1조5000억원을 투자한다. 현대하이스코는 150만t 규모의 당진2냉연공장 건설에 7000억을 투입한다. 정 회장은 “올해 세계 9개국에서 30개 공장의 글로벌 생산체제를 갖추게 된다”며 “소재에서 완성차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품질관리로 고객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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