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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시대 서막 오르다 - 세계 경제파워 아시아로 이동 중

아시아 시대 서막 오르다 - 세계 경제파워 아시아로 이동 중



글로벌 경제파워가 미국·유럽에서 아시아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이 경기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는 반면 아시아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유럽의 중산층은 속절없이 무너지는데 아시아 중산층은 두터워지고 있다.

탄탄한 재정 역시 아시아 국가의 상대적 강점이다. 아시아가 세계경제의 패권을 거머쥘 시기를 2025년으로 예상한 경제기관도 있다. 아시아의 가능성과 한계를 살펴봤다. 아시아 시대를 이끌고 있는 한중일 3국의 과제도 짚었다.
1997년 동남아시아 국가의 통화가치가 일제히 폭락했다. 해외 투기자본이 급격하게 이탈했기 때문이다. 동남아에 유입됐던 해외 자본은 1996년 2980억 달러에서 1997년 2293억 달러로 크게 줄었다. 이에 따라 신용경색이 발생했다. 동남아 외환위기의 유탄을 맞은 한국은 1997년 12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야 했다.

외환위기를 겪은 아시아 국가는 제2·제3의 경제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해법을 모색했다. 1998년 10월 미 워싱턴에서 열린 IMF·세계은행(IBRD) 연차총회에서 일본이 제시한 ‘미야자와 플랜’이 대표적이다.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대장상은 “1000억 달러 규모의 아시아통화기금(AMF)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 플랜은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오정근 고려대(경제학) 교수는 “미국은 자국 중심의 세계경제 질서가 바뀌는 걸 막기 위해 미야자와 플랜을 수용하지 않았다”며 “미국의 당시 목표는 아시아의 경제블록화를 막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11년이 흐른 2008년.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에서 세력을 넓히겠다”고 밝혔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통해서다. 2005년 뉴질랜드·칠레·싱가포르·브루나이 4개국 체제로 출범한 TPP는 2008년 미국이 참여를 선언하면서 영향력이 커졌다. 미국은 세계 1위 경제대국이다. 국내총생산(GDP·14조5867억 달러·2011년)은 세계총생산(GWP)의 23%에 달한다. 유로존 17개국의 GDP를 합쳐도(12조1453억 달러) 미국보다 적다.

경제대국 미국이 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하는 건 의미심장하다. 오정근 교수는 “20세기 후반 아시아의 경제블록화만 막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미국이 지금은 아시아 시장을 잡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며 “아시아의 위상이 10년 만에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종은 세종대(경제통상학) 교수는 “미국경제가 부활하려면 아시아 시장을 잡을 수밖에 없다”며 “반대로 말하면 아시아 시장만이 성장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유럽경제는 안갯속이다. 유로존의 실업률은 지난해 11월 사상 최고치인 10.3%를 기록했다. 소매업 매출은 1년 전보다 2.5%나 줄었다. 유로존 핵심 국가인 프랑스와 독일은 신용등급 강등설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의 미래도 예전 만큼 밝지 않다. 실업률이 최근 감소했지만 소비의 중심인 중산층은 줄어들고 있다. 미 인구통계국 자료(2011년)에 따르면 미국 빈곤층(4인가족 기준 연소득 2만4343달러 미만)은 전체 인구의 16%에 달했다. 1959년 이후 최고치다. 중산층이 그만큼 빈곤층으로 전락한 것이다.



달라진 미국의 아시아 전략아시아의 상황은 미국·유럽과 다르다. 세계경기 침체에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기관 피치는 아시아 신흥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7.4%에서 6.8%로 하향 조정했다. 그래도 미국(약 2%)·유로존(약 0.3%)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보다 훨씬 높다. 아시아가 최근의 성장세를 유지하면 “2050년 세계경제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아시아 GDP는 2010년 17조 달러에서 2050년 174조 달러로 증가할 전망”이라며 “이는 GWP의 52%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윌리엄 뷔터 씨티그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025년 아시아 신흥국이 서유럽을 따돌리고 세계 1위 교역시장이 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아시아가 세계경제의 패권을 거머쥘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일단 중산층이 늘고 있다. 현재 3000만명 수준인 중국의 중산층은 2025년 3억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농촌의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서다. 최용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의 13억 인구 중 농민계층은 최대 8억명에 이른다”며 “이들을 중산층으로 포섭하려는 중국 정부정책이 성공하면 이 나라의 중산층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 중산층 역시 두터워지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그룹 매킨지는 “연소득이 약 1만 달러인 인도 중산층은 현재 7000만명에 불과하지만 5년 후인 2017년에는 2억명으로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고 분석했다. 미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말 “중국·인도·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의 중산층이 갈수록 증가하면서 세계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아시아 국가의 재정이 비교적 탄탄하다는 점이다. 아시아 국가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대부분 50% 안팎이다(그래프 참조). 일본만 233%로 높다. 미국은 101.1%, 유로존은 95.6%다. 김항기 동부증권(스몰캡팀) 팀장은 “아시아 국가의 재정은 탄탄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재정정책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경기침체가 예상보다 깊어져 수출시장이 더 위축되면 재정정책으로 내수시장을 키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시아 국가의 내수시장 성장은 5년 이상 지속할 장기 패러다임”이라며 “그 원동력은 재정건전성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아시아 특유의 다양성 또한 경제성장의 동력이다. 유럽연합(EU)과 달리 아시아 국가는 다양한 특성을 갖고 있다. 동북아 3국 한중일의 경제규모는 세계 정상급이다. 3국 GDP를 합치면 12조 달러가 넘는다. GWP의 20%에 달한다. 말레이시아·태국은 수출과 서비스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싱가포르·홍콩은 금융강국이다. 인도네시아는 6000억 달러가 넘는 내수시장이 강점이다. 브루나이와 중앙아시아 5개국(키르기스스탄·카자흐스탄·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은 자원이 풍부하다.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등 체제전환국도 많다. 이 국가들은 체제전환으로 정치가 안정되면 언제든 성장할 만한 저력이 있다. 이병화 조선대 동아시아경제연구소 소장은 “아시아는 다양함을 발판으로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장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리처드 볼드윈 제네바 국제대학원 교수는 아시아를 ‘분업화된 공장’에 비유했다. “아시아에는 선진국·중진국·후진국이 모두 있다. 한국과 일본은 지식집약산업에 강하고, 중국과 동남아 국가는 값싼 노동력이 강점이다. 아시아는 마치 국가별 분업 시스템이 정착된 공장으로 보인다. 이런 다양성이 아시아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아시아 역내활성화가 관건아시아 경제는 물론 단점도 많다. 무엇보다 역내교역 비중이 작다. 아직도 40% 안팎에 머물러 있다. 한중일 3국 교역이 세계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2%에 불과하다. EU는 66%,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39%에 달한다. 이런 이유로 아시아는 미국·유럽 등 선진시장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먼삭스는 “대미·대유럽 수출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는 올해 경기 둔화세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홍택 KDI 선임연구위원은 “아시아의 역내교역량이 늘어나려면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가장 위험한 곳은 현재로선 중국이다. 중국의 대미·대유럽 수출비중은 40%에 이른다. 중국이 최근 역내교역 비중을 늘리기 위해 한중 FTA, 한중일 FTA 체결에 힘을 쏟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공동대응할 만한 기구가 없다는 점도 한계다. 1967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이 출범했지만 회원 10개국의 GDP 총합이 약 2조 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규모가 작다. 1989년 출범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는 공식기구라기보다는 포럼에 가깝다. 신종길 한중일 협력사무국 사무총장은 “아시아 시대를 앞당기려면 아시아를 대표하는 경제기구가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아시아 경제의 핵심인 한중일 3국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중일 3국은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아시아 경제의 스탠더드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새로운 미래가 온다』의 저자인 미국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미래는 3A가 지배하는 시대”라고 했다. 두 A는 자동화(Autpmation)와 풍요(Abundant)다. 마지막 A는 바로 아시아(Asia)다. 다니엘 핑크의 말처럼 아시아가 미래 세계시장의 패권대륙으로 부상하고 있다. 서막은 이미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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