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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 다시 뜨는 악기산업] 오디션 프로그램 뜨니 악기산업도 들썩

[Repo 다시 뜨는 악기산업] 오디션 프로그램 뜨니 악기산업도 들썩

2월 2일 악기 판매점이 밀집한 서울 종로 낙원상가를 찾은 주부 이경선(39)씨는 “아들이 두 달째 졸라대는 통에 기타를 사주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슈퍼스타K를 보던 중학생 아들이 기타를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공부에 방해될까 계속 말렸지만 결국은 지고 말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가게 점원과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던 이씨는 15만원짜리 보급형 기타를 하나 구입한 뒤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씨뿐 아니라 평일인데다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임에도 낙원상가는 기타 등을 구입하려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최근 낙원상가에는 어린 중고등학생 고객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슈퍼스타K’나 ‘위대한 탄생’ 등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기타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두 달 전부터 교습소에서 레슨을 받고 있다는 김교형(15) 군은 “한 반에 10명 이상은 기타를 치는 것 같다”며 “가수가 되고 싶은 생각은 아직 없지만 더 늦기 전에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아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이돌 가수인 아이유 등이 어쿠스틱 기타를 이용해 노래를 부르거나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기타 연주를 하는 모습에 자극을 받은 청소년들이 많다. 한 조사에 따르면 방과 후 수업에서 가장 배우고 싶은 악기를 묻는 질문에 학생들은 압도적으로 기타를 꼽았다.

지난해 상반기 전국을 강타한 ‘쎄시봉’ 열풍도 한 몫 했다. 학생들은 아이돌 가수들 때문에, 40~50대 이상은 학창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기타를 잡은 것이다. 세대를 불문한 수요 확대 덕분에 지난해 국내 악기 시장에서 기타의 매출은 4배 이상 증가했다.

악기 수입도 늘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1년 1월부터 7월까지 우리나라의 악기류 수입량은 전년 동기 대비 21.8% 늘었다. 그중에서도 어쿠스틱 기타는 무려 154% 증가한 1418만 달러를 기록했다. 전자기타 역시 98.6% 증가했다. 낙원상가에서 기타를 판매하고 있는 김동훈(41)씨는 “10만원에서 30만원 사이의 보급형 통기타가 가장 많이 팔린다”며 “지난해는 하루 20여 대 이상을 꾸준히 판매했는데 학생들이 몰리는 주말에는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고 말했다.

올해도 인기는 여전하다. 기타를 판매하는 이은호(27) 씨는 “지난해보다는 덜하지만 꾸준히 판매가 이어지고 있다”며 “최근 TV에 자주 등장한 우쿨렐레도 하루에 2~3개씩 꾸준히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우쿨렐레는 기타의 반 정도 되는 크기에 4개의 줄이 달린 현악기다. 하와이 전통악기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 태생은 유럽이다. 간편하면서 쉬운 악기임에도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아 일부 동호인들만 아는 악기였지만 최근 들어 급속도로 대중화하는 추세다. 한 판매원은 “1년에 한 대 팔릴까 말까 했던 우쿨렐레가 지난해 말부터 갑자기 하루에 5~6개씩 팔려나가기 시작했다”며 “인터넷 상점의 경우 한 달에 수백 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날 우쿨렐레를 구입한 이정하(15)양은 “유튜브(인터넷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사람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 배우기로 결심했다”며 “인터넷에서 무료로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비용이 들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규호(33) 씨 역시 “동료가 가르쳐줘 한번 쳐 봤는데 그리 어렵지 않아 매력을 느꼈다”며 “알토, 소프라노, 테너 등으로 나눠져 있기 때문에 쉽게 화음을 맞출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반면 색소폰 등 전문가용 악기 판매 상인들은 울상을 지었다. 그나마 유행을 덜 타긴 해도 기타나 우쿨렐레의 폭발적인 인기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색소폰을 판매하는 김모 씨는 “기타의 인기가 너무 높다 보니 색소폰 등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었다”며 “동호회 등을 중심으로 약간의 수요가 있지만 그마저도 수리 주문이 대부분이고 판매량은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낙원상가에서 30년 넘게 악기를 취급해 온 경은상사 김지화 대표는 “악기별로 유행이 돌고 도는 경향이 있는데 1980~90년대에는 피아노, 2000년대 초반에는 바이올린이나 플루트가 인기를 끌었다”며 “교육용 악기는 특히 TV 프로그램이나 유명인사의 등장 등 교육환경의 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기타를 주로 취급하는 그로서는 지금의 인기가 반갑기 그지 없지만 교육용 악기 시장이 지나치게 잠잠한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아이돌 스타가 기타나 우쿨렐레의 유행을 만들어가듯 클래식에서도 대중적인 스타가 나왔으면 좋겠다”면서 “음악 역시 다양한 분야가 고르게 발전해야 좋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통 현악기도 관심 커져M악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수제 현악기 시장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이올린이나 비올라 등 현악기 전공자들은 주로 해외 제작사의 악기를 사용했다. 오래된 악기일수록, 유럽 지역에서 만든 악기일수록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국내에도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제작자가 늘어나면서 국산 수제 현악기 시장이 날로 커지고 있다. 현악기 공방인 라뮤자(La musa)를 운영하고 있는 장용 교수는 “우리나라의 수제 현악기 시장의 역사는 불과 20~30년 정도로 매우 짧지만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 같다”며 “처음 공방을 열던 때에 비하면 양적, 질적으로 크게 성장했다”고 말했다.

장 교수가 악기 제작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 크레모나로 떠난 것은 20여년 전이다. 크레모나는 세계적인 명품 악기로 널리 알려진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넬리 등이 제작된 현악기 제작의 메카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한국에 공방을 열었을 때만 해도 환경은 척박했다. 장 교수는 “당시만 국내에 제작자가 없기도 했지만 해외 악기의 품질이 더 뛰어나다는 편견이 있어 쉽지 않았다”면서 “15년 정도 꾸준히 품질을 인정받아 지금은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국내에 장 교수와 같은 순수 현악기 제작자는 20명이 채 안 된다. 하지만 이들이 제작한 현악기는 세계 유수의 제작자 못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바이올린도 있다. 인기가 높아지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현악기를 배우는 학생이나 전문가는 물론 취미생활로 즐기는 사람들까지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찾는 사람이 느니 악기 제작을 배우는 사람도 늘었다. 장 교수 역시 모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바이올린 제작 과정을 운영 중이고 공방에서는 10여 명의 제자를 육성하고 있다. 장 교수는 “개인적으로 보면 20년 전에 시작했지만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라며 “그 동안 닦아온 토대를 바탕으로 훌륭한 제작자를 더 많이 길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현악기 제작에 관한 학제 시스템이 거의 없다. 반면 중국은 북경예술음악원 안에 제작과정을 개설할 정도로 적극적이고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어떤 분야든 경쟁력을 더 키우려면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피아노업계는 중국 시장 두드려한때 국내에서 전성기를 누린 피아노는 요즘 악기 붐에도 인기가 시들한 편이다. 국내의 대표적인 피아노 제조업체인 삼익악기와 영창뮤직 등은 198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이어진 피아노 교육 열기를 바탕으로 호황을 누렸다. 당시에는 피아노를 사겠다고 해도 일주일 이상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피아노의 인기는 뚝 떨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경제사정이 어렵기도 했지만 피아노 보급률이 선진국 수준인 30%대에 올라서면서 수요가 급감했다”며 “인구 증가율 하락에 따른 학령인구의 감소 또한 그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내수 시장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한 국내 기업들은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중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단순 생산지로 활용하던 중국을 주요 판매처로 바꿨다. 중국은 피아노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악기 시장이다. 국내에서는 연간 1만대 가량의 신제품 피아노가 팔리지만 중국은 약 30만대가 팔려 나간다. 전 세계 판매량의 50% 이상이다. 그럼에도 피아노 보급률은 아직 10% 미만. 판매량은 빠르게 늘고 시장은 해마다 8% 이상 성장하니 제조업체로서는 놓칠 수 없는 황금시장이다. 1가구 1자녀 정책으로 출산율이 줄어들면서 교육열이 높아진데다 중국 내 클래식 음악의 높은 인기도 한 몫 했다.

어려움을 겪던 국내 피아노업체들은 회복의 기회를 잡았다. 삼익악기가 제조하는 삼익피아노는 ‘중국의 10대 피아노 브랜드’에 선정됐다. 4~5년간 꾸준히 인지도를 높였고 2008년 독일의 피아노 브랜드 자일러를 인수하면서 덩치도 키웠다. 삼익악기는 지난해 11월까지 중국에서만 6000대 이상의 피아노를 판매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삼익악기는 자사의 피아노뿐 아니라 자일러, 크나베, 프람버그 등 명품 브랜드를 판매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판매 10위권 안에 포함돼 있다”며 “특히 자일러는 4만~5만위안(약 800만~1000만원) 상당의 고가임에도 판매량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삼익악기의 중국 매출은 약 80억원 규모였지만 올해는 100% 이상 성장해 16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2009년 판매 법인을 설립한 후 매년 상승세다. 덕분에 2011년 전체 매출도 1100억원 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삼익악기 관계자는 “현재 중국에 190여 개의 대리점을 확보하고 있는데 올해는 250개까지 늘릴 계획”이라며 “글로벌 경기 둔화가 예상되는 상황이지만 2012년에도 중국 시장에서 50~60% 이상의 성장을 계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1993년 국내 업체 중 가장 먼저 중국 시장에 진출한 영창뮤직은 전체 6위권의 판매 실적을 올리고 있다. 해외 브랜드로는 야마하에 이어 2위다. 지난해 매출은 약 260억원 규모. 중국 저가 제조업체와의 가격 경쟁 때문에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고가 브랜드인 ‘웨버’를 중심으로 다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영창뮤직 관계자는 “2010년 전체 매출에서 웨버가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20%로 성장했다”며 “고급화 전략을 바탕으로 내년에는 30% 정도의 성장세를 이어가 340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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