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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입맛 잡으려면 이름부터 바꾸자

중국인 입맛 잡으려면 이름부터 바꾸자

춘절 연휴가 막 끝난 직후인 2월 1일. 일본 유수의 유통업체인 아피타(APITA) 식품부장이 무역관을 찾아왔다. 상하이에 대형 쇼핑몰 오픈을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인데 한국 식품을 수입하려고 한다며 관련 기업을 소개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해 일본 원전사고 때문에 중국의 일본 식품 수입이 전면 금지돼 다급하게 한국 식품을 찾는 것이다. 원하는 제품은 채소류와 생선에서부터 유자차, 김, 막걸리와 소주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품목이었다.



중국에서도 막걸리 인기 지난해 우리나라의 농수산식품 수출의 가장 큰 효자 상품은 막걸리였다. 막걸리 수출금액은 5280만 달러로 1910만 달러 였던 전년보다 176.4%가 증가했다. 김치, 파프리카, 우유 제품 등 전통적 수출 품목을 제치고 가장 높은 수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막걸리의 최대 수출시장은 일본이다. 일본에서 막걸리는 웬만한 주점에선 소주나 맥주처럼 하나의 기본 메뉴로 자리를 잡았다. 최근 중국 역시 급성장하는 막걸리 소비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처음에는 상하이 지역교민을 중심으로 막걸리 판매가 시작됐다. 그 후 건강식품으로 알려지면서 중국인들과 중국 내 일본인들까지 막걸리를 찾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

현재까지는 막걸리 수출이 잘 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판매를 늘리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우선 미개척 시장인 내륙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해 6월 KOTRA 주관으로 개최된 후난성 창사시 한국상품판촉전이나 12월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개최된 제20회 중국 식품박람회는 한국 식품의 인기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행사였다.

내륙 대도시는 지역 균형개발 정책으로 내륙 소비자의 소득과 구매력이 늘고 있는 지역이다. 최근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간접적으로 받아들이는 한국 음식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커져 이곳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제품인 경우에도 단순히 드라마를 통해 본적이 있다는 이유로 사는 중국인이 많다. 특히 우한 중국 식품박람회에는 9개 식품업체가 한국관으로 참가했는데, 부대행사로 막걸리 칵테일 쇼가 진행돼 현지인들의 눈과 입을 사로잡았다.

다음으로 막걸리의 적절한 중국어 이름을 개발해야 한다. 막걸리가 몇 년 전 중국에 막 들어왔을 때 중국어 이름은 ‘한국 미주(米酒)’였다. 쌀로 만든 술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중국 전통주 중에도 미주란 술이 있어 혼동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미주는 낮은 알코올 도수에 쌀로 만든 술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다. 하지만 술을 빚는데 사용하는 발효제(누룩)가 달라 전체적인 맛과 향이 막걸리와는 큰 차이가 있다. 외형상으로도 막걸리보다는 식혜와 비슷하다. 막걸리 특유의 톡 쏘는 맛과 감칠 맛 역시 미주가 따라오지 못한다. 더구나 미주는 시골사람이 마시는 싼 술로 인식되어 고급 이미지의 술과는 거리가 멀다. 최근 미주 업계도 포장을 고급스럽게 하고 ‘마오타이’나 ‘우량예’처럼 브랜드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나 미주는 여전히 ‘싸구려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막걸리를 미주라고 중국 사람에게 소개하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중국인이 느끼는 싸구려 미주의 이미지가 아닌, 한국 고유의 술인 막걸리 그 이름 자체로 진출해야 한다. 업계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름을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다. 지난해 9월 막걸리의 중국어 이름을 ‘米酒’가 아닌 ‘瑪可利(마커리)’로 통일시키자는 움직임이 그것이다. 정부, 공공기관, 막걸리 수출협의회 25개 회원사간 ‘상표권 공동 사용계약’을 맺으면서 이동주조가 중국에 등록한 막걸리의 중문명칭 ‘瑪可利’를 모두가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음식점에서는 한국 미주로 불리고 있고, 상표 라벨링 역시 회사마다 제 각각으로 팔고 있다.

막걸리 브랜드와 포장도 좀 더 고급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막걸리 용기는 일반적으로 플라스틱 재질인 경우가 많은데, 이는 세금이 용기나 뚜껑까지 포함하는 종가세로 산정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고급스러운 병이나 외관포장을 사용하기가 힘들다. 중국인의 가장 큰 소비특성 중 하나가 바로 ‘현시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다. 중국인들은 소비행위를 통해 자신의 부나 신분을 나타내려는 생각이 아주 강하다. 체면을 중시하고 과시욕 강한 중국인을 제대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병, 브랜드, 포장할 것 없이 모두 프리미엄 이미지로 접근해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김치공정’ 역시 비슷한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관영 신화통신은 “한국의 김치 독은 쓰촨성의 김치 독을 모방한 것이다. 한국 김치 역시 약 1500년 전 중국의 파오차이가 한국으로 건너가 김치가 된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매운 음식을 즐겨 먹는 것으로도 유명한 중국 쓰촨성에서는 일찍이 김치와 유사한 파오차이(泡菜)가 발달했다. 김치 종주국 논란을 촉발시킨 파오차이는 무·당근 등에 생강, 피망, 마늘을 첨가해 소금물이나 식초, 설탕, 바이주(白酒)를 섞어 만든 물에 담가 만든 것이다. 배추를 주원료로 절임을 한 후 양념과 함께 저온에서 발효시키는 우리나라 김치와는 제조법이나 형태, 맛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파오차이가 우리나라 김치와 이렇게 많은 차이가 있음에도 중국은 김치를 파오차이의 짝퉁이라 주장한다. 이유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김치를 이용해 파오차이의 인지도를 높이고 홍보를 강화해 시장을 확대시키기 위해서다. 세계 음식시장에서 중국 파오차이는 인지도도 낮고 잘 알려지지 않은 초기 단계의 식품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 세계 음식시장에서 중국음식이 차지하는 규모나 위상을 감안하면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미 쓰촨성 파오차이 협회는 파오차이의 세계화를 위해 한국의 김치 세계화 사례를 열심히 벤치마킹하고 있는 중이다.



중국의 ‘김치공정’ 경계해야중국 파오차이의 도전을 뿌리치고 발전하려면 김치산업의 현대화, 산업화, 전문화를 통해 파오차이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김치의 우수성과 참맛을 중국 소비자에게 더욱 널리 알리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김치의 중국어 이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김치는 애당초 적절한 중문 이름을 가지지 못한 채 ‘한국 파오차이’로 중국에 소개됐다. 파오차이가 중국의 전통 음식이듯, 김치 역시 한국 고유의 음식이다. 김치의 중문 명칭을 중국식 파오차이가 아닌 ‘금과 옥, 귀하다’라는 뜻의 ‘진치(金琪)’나, ‘금과 복, 즐거움’이라는 뜻의 ‘진치(金祺)’로 바꾸면 어떨까? 앞서 막걸리의 사례에서 보듯이 김치가 중국에서 파오차이의 아류나 짝퉁이 아닌 한국 고유의 음식으로 제대로 인식되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의미 있고 서둘러야 할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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